후보 난립하면 ‘조직력’ 갖춘 서청원이 유리…‘박 대통령에 진 빚이 있지 않나’ 은연 중 압박
친박계 한 중진 의원은 최근 오찬에서 이런 관측을 내놨다. “아무래도 냄새가 나지?” 하면서 말이다. 그는 서 의원이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친박 핵심 실세인 최경환 의원이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한 날(7월 6일) 정갑윤 조원진 김명연 김태흠 박대출 박덕흠 윤영석 이완영 이우현 이장우 이채익 함진규 홍철호 등 친박계 의원들이 서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을 방문하고, 그 다음날 또 친박계가 찾아가는 등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을 두고 “멍석을 깔아주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분위기를 몰고, 등을 떠밀면서 무대 위로 던져놓는 모양새란 얘기였다.
이 중진 의원은 “서 대표가 안 나가겠다고 버틸수록, 그리고 친박계가 더욱 거세게 등을 밀수록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지 않겠냐”라고 반문했다. 그리곤 슬쩍 “혹 모르지. 서 대표도 은근히 전대 나가고 싶어 할 수도. 정치판은 몰라. 늘 상상 그 이상이었잖아?”라고 덧붙였다.
20대 국회 첫 본회의가 열린 6월 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임시 국회의장으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그렇다면 최경환 의원은 왜 불출마를 선언하고 서 의원 등을 밀고 있을까. 정가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친박 색채가 강할수록 이번 전당대회는 필패다. 4·13총선 민심이 아직 식지 않았다는 얘기다. 평의원이었지만 최 의원은 이른바 ‘진박 마케팅’의 선봉장으로 친박 색채를 강하게 드러냈다. 당시 2인자 최고위원이었지만 서 의원은 친박 최고위원이라기보단 당의 어른으로 김무성 전 대표와 각을 세웠다는 이미지가 크다. 최경환과 서청원만 비교했을 때 전당대회 당선 가능성은 서 의원이 더 크다고 친박계가 판단했다는 것이 된다.
서 의원이 필승카드는 아니지만 적어도 나설 수 있는 친박계 후보 중에는 단연 가장 앞서 있다. 우선은 그가 가진 조직력이다. 친박계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11대 국회로 들어와 지금 8선이다. 그 선수까지 겹겹이 쌓인 당내 지지 세력을 봐야 한다”며 “김영삼 총재 비서실장에서부터 당 대표, 상임고문까지 서 대표는 당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거의 대부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남은 친박계 후보 중 서 의원의 조직력을 따라갈 자가 없다는 것을 다시 강조했다.
2014년 7·14전당대회에서 서 의원은 김무성 전 대표에게 1만 표 이상 차로 크게 패배했다. 하지만 당시엔 김무성 대 서청원의 비박 대 친박 양자대결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친박에선 이주영 이정현 의원이 당 대표에 도전하고 있고, 비박에선 김용태 의원이 출마를 선언했다. 비박계의 정병국 나경원 의원도 시동을 걸었다. 후보단일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말 그대로 다자대결. 조직을 쥔 자가 승리하는 구도가 된다.
친박계의 판단은 이 지점에 있다. 당 한 관계자는 “전당대회 규정이 바뀌지 않았느냐. 1인2표로 당 대표에게 한 표, 최고위원에게 한 표를 주는 구도가 아니라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 선출하면서 각각 1인 1표가 된다”며 “조직력을 갖춘 자가 우선은 절대 유리한 판이 선 셈”이라고 했다. 그는 또 “새누리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잠실로 누가 오겠냐.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온다”면서 “박 대통령이 누구를 당 대표로 가장 원할까를 눈여겨 볼 것이고, 그렇다면 답은 나와 있다”고 했다.
서 의원은 2013년 10·30 경기화성갑 재보선에서 7선 국회의원으로 돌아왔다. 친박연대 공천헌금 수수라는 꼬리표를 달았지만 당시 민주당 후보를 더블스코어 차로 이겼다. 누구보다 박 대통령의 보이지 않는 지원이 있었다. 2014년 7·14 전당대회장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찾아왔다. 서 의원을 대놓고 민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서청원을 돕기 위해 왔다고 해석했다.
2위로 2인자 최고위원이 되긴 했지만 서 의원으로선 박 대통령에게 큰 빚을 두 번이나 졌다. 그의 정치적 꿈이 국회의장으로서 아름답게 퇴장하는 것이겠지만, 자기 꿈만 야무지게 좇을 수는 없는 것이 정치판이라는 얘기들을 한다. 앞서의 친박 중진 의원은 “사실 두 번의 당 대표도 진기록이긴 하다”고 했다.
친박계는 서 의원이 설득당할 때까지 설득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묘한 자신감이 묻어난다. 7월 7일 서 의원과 면담을 하고 나온 박대출 의원은 기자들이 ‘서 의원의 입장이 완강하다고 하는데 설득이 되겠냐’는 질문에 “지금 아직까지는 (완강하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란 복선으로 읽힌다.
박맹우 의원은 “서 의원은 생각해본 바 없다며 거절하셨지만 당을 생각하는 입장에서 계속 건의할 것”이라고 했다. 조원진 의원도 “계속 권유할 겁니다. 최경환 의원도 안 나온다는데 서 대표 말고 대안이 어디 있나”라고 했다. 최경환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기 하루 전 서 의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전당대회에 나가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친박계가 당 대표 출마 의지가 선명한 이주영 이정현 의원을 놔두고 서 의원에게 집착하는 것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다. 우선 이주영 의원을 두고는 친박계 진영에선 “정진석 스타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정진석 의원을 친박계 몰표로 당선시켜줬는데 정 원내대표가 친박계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 유승민 의원 복당에 가장 앞장섰기 때문이다. 범친박으로 분류되지만 이주영 의원도 다르지 않다고 판단한 듯하다. 한 친박 인사는 “해양수산부 장관을 시켰지만 세월호 사건 때문에 고생만 하다가 끝났다. 사실 이 의원으로선 친박계에 부채의식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정현 의원은 친박계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만큼은 인정하지만, 정치적 언행에 있어선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기류도 강하다. 당장 KBS 녹취록 파문으로 이슈의 중심에 있다. 일각에선 “이정현이 자기 정치를 한다”는 이야기도 흘리고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장면 한 가지. 친박계 5선의 정갑윤 의원은 왜 서 의원을 찾는 후배들의 자리에 동석했을까. 사실 지금 서 의원의 전대 출마를 가장 염원하는 이가 정 의원일 수 있다. 원내1당에서 국회의장 후보를 낼 수 있는 관행이 굳어졌으니 하반기 국회의장은 국회 최다선인 서 의원 몫이다. 하지만 서 의원이 전대에 나가면 국회의장 몫은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 정 의원 꿈도 국회의장이다. 서 의원이 당 대표에 당선되면 하반기 국회의장까지 욕심내기가 어려워진다. 반대로 낙선하면 당의 선택도 받지 못한 정치인이 입법부의 수장이 가능하냐는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 정 의원은 서 의원과 만난 뒤 기자들을 만났지만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당이 어렵고 힘드니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당내 경륜 있는 분, 우리 서 선배께서 좀 나서달라고 이야기했다. 야당도 보면 김종인 선배나 박지원 선배 이런 원로들이 나서서 당 위기를 수습하고 있지 않냐. 그런데 서 선배가 극구 사양하네. ‘내가 이 나이에 뭐 그거 할거냐’하시면서. 그래서 (나도) 나와 버렸어.”
이정필 언론인
최경환 전대 불출마 진짜 이유? ‘질 게 뻔한데…’ 계산서 이미 뽑았다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이 8·9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보통은 출마 기자회견인데 최 의원은 불출마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8일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 전원을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함께 하기로 한 이틀 전인 6일이었다. 최 의원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다시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그날을 위해 오직 평의원으로서 백의종군하겠다. 나의 불출마를 계기로 더 이상 당내에 계파라는 이름으로 서로가 서로를 손가락질하고 반목하는 일은 없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그간 최 의원은 물밑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며 당내 여론을 살펴왔다. 총선 공천정국에서 일찌감치 낙천한 인사들부터 만났고, 선거에서 낙선한 인사들도 일 대 일로 만나왔다. 자칫 적으로 돌아설 수 있는 그들을 다독이면서 공천과정에서 본인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미안하다, 사과한다는 취지의 말을 계속 해왔다는 것이 최 의원과 만났다는 전직 의원들의 전언이다. 그리고 최 의원은 지역별로 현역 의원들을 만나며 각개전투를 벌여왔다. 필요하다면 한 명씩이라도 만났고, 삼삼오오 만났고 그룹으로도 만났다. 그렇게 촘촘하게 만나면서 결론을 내렸다. ‘전당대회 불출마.’ 정가의 한 관계자는 “최 의원이 그만큼 치밀하다. 자신이 전당대회에 나갈 경우 스코어가 어떻게 될지 데이터를 모았고 분석하는 행보를 총선 이후 두 달 가까이 진행한 것”이라며 “숫자를 들고 왔는데 어떻게 설득당하지 않을 수 있겠나. 청와대가 최 의원의 불출마를 수긍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최 의원을 잘 아는 한 의원은 “일부 언론사가 자체적으로 차기 전당대회 여론조사를 돌렸고 그 결과물을 최 의원도 파악했을 것”이라며 “최 의원도 자체적으로 여론조사를 돌려보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마침 최근 출처 불명의 여론조사 결과가 돌았는데 최 의원은 다섯 손가락에 겨우 낄 정도였다고 한다. 최 의원실 보좌진은 꾸준히 최 의원에게 불출마를 설득해오기도 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최 의원의 불출마 회견문을 읽으면 전당대회 출마 선언문과 흡사하다. 자기는 나가고 싶지만 당내 여론이 반대이니 대승적 결단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탓이 아니겠냐”고 분석했다. 지난 총선 당시 최 의원의 ‘진박 마케팅’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도 최근 새삼 화제다. 최 의원은 공천이 확정되지도 않은 때 진박(진실한 사람들) 예비후보들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찾아 ‘이 사람이 진박’이라는 마케팅을 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친박계 중진 의원은 “당시 진박 마케팅에 대한 언론의 비판 기사가 많았는데 그 탓인지 대구경북(TK)에서부터 최 의원이 개소식에 참석하는 걸 꺼려했고, 어느 날 이후부터 최 의원은 TK에 아예 가지도 않게 된다”며 “수도권 일각에서도 최 의원에게 ‘안 오셔도 된다’는 시그널을 보내면서 최 의원이 좀 상처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아무리 떨어질 것을 알지만 최 의원이 이번 전대에 출마했어야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차기 지도부는 박근혜 정부 후반기를 성공적으로 뒷받침해 정권재창출의 토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최 의원마저 포기하면서 레임덕을 가속화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