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성폭행, 신이 알려줬다” 주장했다 번복하는 등 피해자측 진술·행동 아리송
경북의 한 도시에서 아동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편의점 오른편 작은 식당이 사건 발생 현장이다.
# 잘못된 만남
경북의 한 작은 도시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A 씨(60). 그가 한 성인 무도회장에서 낯선 중년 여성을 만난 건 2007년이다. 처음엔 친구처럼 지냈지만 각자 배우자와 떨어져 사는 등 공통점을 하나씩 발견하면서 서로에게 이끌렸다.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졌고 금방 특별한 관계로 발전했다.
낯선 중년 여성에겐 어린 손녀가 있었다. 신내림 받은 아들과 따로 살던 여성은 각자의 집에서 번갈아 아이를 돌봤다. A 씨도 여성의 손녀를 자신의 혈육처럼 대했다. 손녀도 A 씨를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랐다.
4년 뒤인 2011년, 여성이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 야식당을 개업하면서 식당에 마련된 방에 손녀와 함께 살림을 꾸렸다. A 씨는 업무를 마치면 곧장 식당을 찾았다. 주방을 비울 수 없는 여성을 위해 재료를 사다주거나 대신 배달을 나갔고, 자신의 차로 손녀를 학교와 학원에 데려다주기도 했다. 주변 상인들은 두 사람을 금슬 좋은 부부라고만 생각했다.
# 소문
1년 반이 지났을 무렵, 인근 식당 주인들과 지인들 사이에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내연관계라는 소문이었다. A 씨는 고민에 빠졌다. 적절치 못한 일을 했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다음해에는 공무원직 퇴직도 앞두고 있어,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2012년 12월, 요양원에서 일을 하게 된 여성이 식당을 폐업하던 시점과 동시에 일방적으로 만남을 줄였다. 두 사람은 점차 멀어졌다.
그런데 2014년 2월 6일, A 씨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성의 아들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일로 A 씨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만남을 줄인 지 1년이 지난 뒤였다. A 씨가 아들의 차에 올라타자마자, 아들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얼마 뒤, 자동차 뒷문이 열렸다. 과거 혈육처럼 대하던 여성의 손녀이자, 아들의 딸이었다. 아들은 딸에게 “이 아저씨가 네 몸에 손댄 거 맞지?”라고 물었다. 딸은 조용히 대답했다. “아저씨가 내 배 위에 올라왔잖아요.”
2014년 4월 14일 A 씨는 경찰에 구속됐다. 여성의 식당 운영을 돕던 2011년 11월부터 12월 사이, 여성이 배달 나간 틈에 방에서 혼자 잠들어 있던 아이를 5차례 성폭행했다는 혐의였다. 증거는 아이의 진술뿐이었다. A 씨는 구속 이후 변호사의 도움도 받지 않았다. 경찰이 몇 번이나 “변호사를 선임하고 진술하라”고 조언했지만, 오해는 금방 풀릴 거라 생각하고 거절했다. 하지만 A 씨의 생각과는 달리 재판에 넘겨졌고,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어린 아이가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진술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다”며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1년 뒤 대법원도 유죄확정판결을 내렸다.
# 합의
A 씨는 현재 교정시설에 수감돼 있다. 처음부터 그랬듯, 여전히 결백을 주장한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알게 된 피해자 측 진술과 행동에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A 씨 사건 기록을 보면, 최초 신고는 피해자 측이 아닌 A 씨가 했다. 2014년 2월 6일, 피해자의 아버지는 A 씨에게 전화를 한 날 “딸이 배가 불러온다. 당신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2년 전 발생한 사건으로 딸이 임신을 했다는 말이었다. 딸과 A 씨, 자신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딸에게 강압적으로 “이 아저씨가 그런게 맞느냐”고 다그쳤다는 진술도 포함돼 있다.
또 그는 이후에도 약 한 달간 전화와 메시지를 남기는가 하면, 매일같이 집 앞에 찾아와 소리를 치다가 빨간 글씨로 “아동성폭행범은 아이의 미래를 책임지라”는 벽보를 수차례 붙이고 돌아가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 곧 퇴직하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8000만 원을 주면 없었던 일로 해주겠다고 말했다. A 씨가 “그런 일을 하지 않았는데 왜 돈을 줘야 하냐”며 버티자, 5000만 원으로 줄여 “합의 하자”고 했다. A 씨는 결국 지난 2014년 3월 2일 인근 지구대에 신고했고, 피해자 아버지는 A 씨를 찾아가지 않았다.
# 이상한 진술
피해자 측은 다음날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아이는 경북의 여성‧학교폭력 피해자 원스톱 지원센터로 옮겨졌고, 이후 앞서의 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3차례 진술을 한다. 그런데 이 기록에서도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아버지는 “딸의 피해 사실을 어떻게 인지했나”라는 경찰의 질문에 “(신내림을 받아서) 기도 중에 신이 알려줘서 알았다”고 말했다. 이 답변은 1심 재판에서 변호인에게 지적받고 항소심부터 “아이가 2014년 초부터 갑자기 우울증 증세를 보여 대화를 하다가 알게됐다”는 증언으로 달라진다.
아이의 진술에서는 사건 발생 시점이 크게 다르다. 검찰 공소장에는 A 씨가 2011년 11월부터 12월까지 5차례에 걸쳐 아이를 성폭행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아이는 경찰 진술에서 2013년 11월부터 12월 말까지 할머니가 운영하던 가게에서 피해를 당했다고 했다. 아이가 경찰에 진술한 시점은 2014년 3월이다. 3개월 전에 사건이 발생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2012년 12월에 가게 운영을 그만뒀고, 2013년 3월 가게를 타인에게 넘겼다. 여기에 A 씨와 할머니가 헤어진 시점은 2012년 12월이다. 아이는 피해 시점 이후 1년간 A 씨와 평소처럼 행동했으며, 어떠한 피해를 받은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미성년자인 피해자가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구체적인 피해사실을 진술하고 있고, 할머니가 식당을 운영하던 시기에 대한 기억을 명확하게 하고 있어 시점을 오인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 확인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사건 현장 관계자들도 피해자 측 진술과 다른 이야기를 한다. 아이가 진술한 기록을 보면 A 씨는 △오후 9시 50분에서 10시 사이, △피해자가 잠들어 있는 방 안에서 △할머니가 야식 배달을 나간 틈을 타 범행을 저질렀다. 날짜만 다를 뿐, 범행 시각과 장소 등은 5차례 모두 같다.
그런데 이 시간대에, 이 같은 범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인근 상인들의 증언이다. 이들은 모두 할머니가 식당을 운영하기 전부터 알고지내는 등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다.
할머니가 운영하던 식당은 도로변 삼거리에 위치해 있다. 맞은편에는 기차역이, 우측에는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다. 식당 옆에는 편의점과 음식점 등 상가가 자리해 있다. 인근 상인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당시 인근 음식점 상인들은 보통 저녁 7시 30분~8시 사이에 문을 닫았다. 할머니가 운영하던 식당의 영업시간은 늦은 오후부터 새벽 2시까지다. 한 상인은 “당시 할머니 식당은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주민들이 늘 거쳐 가는 길목에 있다. 주변 음식점이 문을 닫으면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은 그 식당이 유일했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식당 바로 옆에서 음식점을 하는 상인은 “나는 가게 문을 닫으면 지인들과 술을 자주 마시는데, 우리 가게를 이용하거나 할머니 식당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저녁 8시 이후부터는 늘 손님이 많았다”고 말했다. 현재 이 식당은 다른 상인이 운영 중이다. 상인들의 증언대로 식사할 수 있는 곳은 이 식당이 유일했고, 늦은 시간까지 손님이 많았다.
오후 9시 이후 식당 모습. 식당을 찾은 손님들이 문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기차역과 시외버스터미널을 이용해 출퇴근 하는 주민들이 식당을 찾는다.
식당 문을 열면 정면으로 방이 보인다. 이 식당은 바로 옆 음식점 화장실과 연결돼 있어 창문으로 내부 전체를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음식점 상인은 A 씨 범행 시기에 늘 식당 뒷정리를 하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으나 단 한 차례도 큰 소리를 듣거나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범행 시간대에 A 씨를 봤다는 상인도 없었다. A 씨가 새벽 4시에 출근하면서, 저녁 8시 이후에는 보통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는 얘기다. 할머니가 식당을 운영하는 동안 간혹 늦은 시간에 재료를 사다 주거나 급한 일을 봐줄 때를 제외하면 늘 한결 같았다고 했다. 그마저도 일이 끝나면 금방 돌아갔다고 했다.
할머니의 야식 배달도 확인되지 않는다. 식당에서 주로 배달을 시키는 곳은 길 건너편 기차역에 위치한 지구대와 식당 뒤편의 모텔 등이다. 할머니는 경찰 조사에서 주 4회 이상 배달을 나갔다고 진술했다. 가게 앞을 출발해 돌아오는 시간까지 최대 10분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할머니가 배달 온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상인들은 기자에게 오히려 “주방에는 할머니 한 명뿐인데 어떻게 가게를 비우냐”며 되물었다. 저녁식사 시간엔 A 씨가 배달을 가거나, 늦은 시간엔 아들이 배달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지구대에 근무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업무 특성상 음식을 자주 먹을 수도 없고, 직원들 입맛에 맞지 않아 배달 주문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기억했다.
# 강력한 ‘피해자의 진술’
성범죄에서 피해자의 진술은 강력한 증거가 된다. 이 사건에서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사건 현장에 단 한 차례도 방문하지 않았다. 피해자 진술을 기반으로 조사가 진행됐다. 피해자 측과 A 씨의 진술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말이 엇갈렸지만, 당시 식당 카드 결제기 조회, 야식 배달 확인 등은 거치지 않았다. 할머니가 운영을 그만둔 식당을 넘겨받은 상인은 “경찰이 와서 조사한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수사 기록에 현장 사진이 첨부돼 있었지만 모두 피해자 측에서 직접 촬영해 보낸 사진이었으며, 현장 약도 등은 지금도 포털 사이트에서 확보가 가능하다.
변호사도 무죄 입증 대신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A 씨는 1심 재판 과정에서 부인과 이혼했다. “간통죄로 할머니를 고소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변호사의 제안이었다. 당시 부인과 A 씨 모두 이혼을 원치 않았지만, 변호사의 설득에 결국 이혼을 결정했다. 하지만 변호사의 예상은 금방 빗나갔다. 재판부는 A 씨 측의 이혼과 할머니에 대한 간통죄 고소 사실을 확인하고 의도가 다른 데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변호사는 A 씨의 이혼만 그대로 진행하고 간통죄 고소는 취하했다.
한편, A 씨의 딸은 “처음 사건을 알게 된 이후 재판을 받을 때까지 아버지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1심 재판 이후 자료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진술들이 많았다. 대법원까지 거쳤지만 풀리지 않는 의혹들이 너무 많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피해자 측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다 해결된 문제다. 특별히 할 말은 없다”고 짧게 대답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아동성범죄 ‘억울한 가해자’ 적지 않다 영화 <더 헌트>에서 주인공은 한 소녀의 거짓말 때문에 ‘아동성범죄자’가 된다. 아내와 이혼한 뒤 고향에 내려온 남자는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인기 많은 유치원 선생이다. 그중 한 학생이 아이답지 않은 애정을 표현하자 남자는 부드럽게 거절한다. 상처를 입은 소녀는 유치원 원장에게 투정 부리며 그의 성기를 봤다고 말한다. 남자는 항의하지만 그 누구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통념 탓이다. 아이가 뒤늦게 거짓말을 밝히지만 엄마는 말한다. “끔찍한 기억을 네 무의식이 차단하는 거야.” 법을 통해 루카스는 진실을 밝혀낸다. 경찰 조사 결과 아이의 진술 일부가 허위임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그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 성폭력 상담소 관계자는 아동 성폭력과 관련해 “성범죄에서 어린 피해자가 받게 될 상처를 생각하면 모든 진술을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아이의 말만 믿고 피고인을 무조건 유죄로 몰아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무죄가 나온 아동 성폭력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첫출발은 대부분 부모의 추궁이다. 부모의 반복 질문 끝에 성폭력 피해 진술이 나온다. 또 아동이 범인을 먼저 지목한 게 아니라 엄마가 특정인을 의심해 말하면 아동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이후 성폭력상담센터와 경찰에서 반복적으로 진술함으로써 상상과 현실이 뒤섞인다. 한 법조 관계자는 “아동들의 성폭력 사건에서 가장 무서운 일은, 실제 물리적 성폭력 피해를 당한 적이 없는 아동이 잘못된 기억 때문에 정신적 피해의 경험을 안은 채 평생 고통 받을 수 있다”며 “조심스럽게 조사하는 한편 명확하게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