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노무현 시계 ‘인기’…박정희·박근혜 시계 ‘품귀’
7월 12일 기자는 ‘전국의 모든 시계가 다 모인다’는 서울 예지동 시계골목을 찾았다. 이곳에서 20년째 장사를 해왔다는 한 시계 업자는 “옛날에 대통령 시계를 받은 사람들이 쓰다 싫증나면 팔러 오곤 한다. 대통령 시계를 팔겠다는 사람이 오면 우리가 약을 넣고 수리해서 가격을 정한다. 보통 가죽 끈 시계가 많다”고 전했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들어선 유리 캐비닛 안쪽에 수십 개 시계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유리 표면 한 가운데 매달린 ‘김대중 대통령’ 시계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도매상마다 문의해봤지만 대통령 시계를 파는 곳은 거의 없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대통령 시계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노무현 시계. 일요신문DB
대통령 시계 매매는 온라인 거래가 대부분이다. 중고 상품 매매 사이트 ‘중고나라’ 게시판엔 “대통령 시계 팝니다”는 글이 매달 3~4건씩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다른 대통령 시계와 달리 ‘김대중 노무현 시계’ 거래는 활발히 이루어지는 편이다. 두 시계의 보관상태가 좋고 매물이 많기 때문이다. 김대중 시계(가죽 끈 기준) 가격대는 5만~9만 원이다. 노무현 시계(가죽끈)는 5만~8만 원이다. 김영삼 시계(가죽 끈)도 꾸준한 인기 상품이다.
특히 노무현 시계는 제법 고가에 속하는 편이다. 사용기간에 따라 가격은 차이가 있지만 노무현 시계(메탈끈) 가격은 약 15만 원 안팎이다. 이라크파병 기념시계(약 15만 원), 노 전 대통령 하사품 여성용 시계(약 50만 원) 등은 시계의 재질과 상관없이 고가의 매물이다.
중고나라의 한 시계판매업자는 “노무현 시계는 인기가 워낙 많아 동묘 쪽엔 가품도 있다. 가품을 보진 못했지만 사는 사람도 있다. 노무현 시계를 팔겠다는 글을 올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연락이 온다. 보통 노 대통령을 존경하는 분들이 ‘꼭 구매하고 싶다’며 연락한다. 판매가 돼도 계속 문의가 온다. 이라크 파병 등 기념할 만한 일이 시계의 가치에 더해지면 가격이 더욱 올라간다. 보통 매물이 많은 청와대 방문 기념 시계 가격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귀띔했다.
‘이명박 시계’는 거래 자체가 드문 편이다. 2016년 1월부터 중고나라엔 대통령 시계 매물이 23건이 올라왔지만 이명박 시계 매물은 단 3건에 불과했다. 이 전 대통령 퇴임 직전 시계의 가격은 10만 원을 넘었지만 최근 3만~5만 원(가죽 끈 기준)으로 하락했다. 앞서의 업자는 “MB 시계는 갖고 있어도 안 나간다. 거래도 적은 편이다.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사람들이 사고 일반인들은 잘 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두환 시계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현재 중고나라에 올라온 전두환 시계는 단 한 건도 없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 중고장터의 전체 대통령 시계 매물 60건 중, 전두환 시계는 전국새마을대회지도자 기념 시계(13만 9000원) 등 2건뿐이다. 노태우 시계(가죽끈) 가격대는 약 10만 원(가죽 끈 기준)이지만 매물 자체가 거의 없다. 다른 시계 업자는 “메탈이냐 가죽이냐에 따라 가격이 다르겠지만 두 사람 시계는 별 인기가 없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시계. 일요신문DB
대통령 시계는 박정희 정권 시절 처음 제작됐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9대 취임 기념 메탈 시계’는 판매업자들 사이에서 보물로 통한다. 역사도 오래됐지만 ‘희귀성’ 때문이다. 1978년 12월 27일 박정희 대통령 취임을 기념해 제작된 이 시계의 가격대는 약 25만~40만 원이다. 다른 중고 시계 매매업자는 “박정희 기념 시계는 갖고 있으면 바로 팔리는 매물이다. 정말 귀하다. 지금껏 보지도 못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자 역시 “박정희 시계는 매물 자체가 나오기가 힘들다. 연도도 오래됐고 놔둘수록 값어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고 보탰다.
중고나라에 박정희 9대 취임 시계를 매물로 내놓은 판매업자는 “흔한 시계는 아니다. 아는 사람을 통해 지난해 기념으로 구입했고 차고 다니다 내놓았다. 시세는 40만 원이다. 50년 가까이 된 귀한 시계지만 싸게 팔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시계’ 역시 품귀현상이 일어날 정도로 귀중품이다. 박근혜 시계는 2013년 광복절 당시 청와대를 방문한 국가유공자와 유족들에게 처음 건네졌다. 두 달 뒤 ‘중고나라’에 박근혜 시계가 11만 원에 첫 매물로 나왔다. 제작단가가 3만 원인 점을 고려하면 세 배 이상 오른 셈이다. 3년 가까이 흘렀지만 박근혜 시계의 인기는 여전하다. 박근혜 시계를 찾는 이들은 희망가격그림까지 올리며 적극성을 보이고 있지만 매물 자체가 희귀하다.
최근 박근혜 시계를 중고시장에 내놓은 중고나라의 한 회원은 “파병을 갔다 와서 대통령 표창의 부상으로 받은 시계다. 게시글을 올리자마자 5명이 찾았지만 가격이 서로 맞지 않았다. 보통 박 대통령의 메탈 시계는 10만~15만 원 사이에 거래된다”고 전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