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초강세 ‘유목민’을 묶어라
▲ 김헌태 | ||
연초부터 매주 대형사건이 터지는 ‘연쇄폭발’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2007년이 되기가 무섭게 대형 정국이슈가 터져 나오는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이제 본격적으로 대선 밑그림을 짤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개헌이든, 불출마 선언이든, 탈당이든 각 진영이 대선 플랜을 가동하는 데 실기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특히 여권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초강세 상황에서 뭔가 돌파구를 만들어야 하므로 시간에 쫓기는 초조한 상황이다. 여권 후보가 가시화될 때까지는 당분간 이 같은 대형 사건들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이명박 고공행진 언제까지
대선을 앞두고 현재의 여론흐름은 한마디로 ‘이명박 대세기’로 요약할 수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의 초강세 지지도는 역대 대선에서 거의 유래가 없는 것이다. 지난 2002년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 당해 연초 지지도는 기껏해야 20%를 웃도는 수준이었다. 그동안 이 전 시장의 지지도는 크게 보면 3단계를 거쳐 왔다. 먼저, 청계천 완공 이후에 ‘수도권 40대 중산층’ 중심의 초기지지층이 형성되었다. 2단계는 지난해 추석 전후에 만들어진 ‘대구경북 지역’의 지지도 상승이다. 이 전 시장은 경북 포항 출신이다. 마지막으로 작년 말부터 최근까지 ‘대세론’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전 계층에서 지지도가 눈덩이처럼 커져왔다.
과연 이 전 시장의 고공행진은 계속될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게 보기 어렵다. 3김 시대 이후 우리 국민의 여론은 워낙 유동성이 크다. 어느 대권주자도 여론조사의 지지층을 고정지지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3김 때처럼 특정 정치인을 자신의 분신이라고 생각했던 맹렬한 지역주의도 유권자도 이제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여론조사 지지도는 인기투표 성격이 강한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전 시장의 위기는 자신의 초기 핵심지지층인 ‘중장년 수도권 중산층’에서 시작될 수 있다. 이들은 역대 지지후보를 쉽게 바꾸는 이른바 ‘유목민’ 층이다. 2002년 대선에서 정몽준 의원 지지도가 뜰 때도 이들이 제일 먼저 움직였고, 참여정부 들어 고건 전 총리의 지지도 급상승도 이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현재는 이 전 시장으로 지지를 옮겼다. 특히 유의할 만한 대목은 이들 중 상당수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층이라는 것이다. 데이터 상에서 대략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찍었던 층의 절반가량이 이 전 시장을 지지하고 있다.
이 전 시장의 지지도는 오랜 기간을 거쳐 샐러리맨의 신화, 청계천의 성공을 바탕으로 ‘일하는 정치인’ 또는 성과 중심의 ‘경제전문가’ 이미지를 선점한 것이므로 한동안 강세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최근 이 전 시장의 지지도는 대세론을 중심으로 형성된 ‘거품’ 요소가 누적되어 ‘조정기’에 들어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향후 완만한 감소를 통해 연착륙할지, 아니면 돌발 악재에 의해 지지도가 급락하면서 2차, 3차 연쇄 하락 현상을 보이느냐가 가장 핵심 문제다.
▲개헌 불씨 다시 살아날까
연초에 노무현 대통령은 4년 중임제 ‘개헌’을 비장의 카드로 던졌다. 그러나 개헌의 파트너인 야당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의 반응은 ‘썰렁함’ 그 자체였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노 대통령의 개헌 카드는 상황에 따라서는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회심의 카드였다고 볼 수 있다. 4년 중임제 개헌을 야당 주자 중 한 명이 받는다면 한나라당 전체가 이를 둘러싸고 내부 분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또 개헌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 중대선거구제 개편이나 정부통령제 등의 논의는 대선지형 자체를 완전히 바꿀 가능성이 있다. 중대선거구제의 경우 한 지역에서 2~3명의 후보가 당선되기 때문에 특정 정당이 독식하는 영호남 지역구도를 완화시키거나 정치권의 신당 창당 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통령제 역시 대선주자들이 서로 연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대선지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개헌은 앞으로도 정국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대형변수로서의 특성을 갖추고 있다. 다만 노 대통령 혼자서 개헌의 불씨를 다시 살리기는 어렵다. 최종적으로는 한나라당이 손을 맞잡아줘야 커지는 카드이다. 향후 정치권의 이해득실에 따라서는 논의 과정에서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대선에 미치는 파장은 작지 않다. 국민여론도 야당이 합의하면 긍정적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많으며, 최근 일부조사에서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 부정적 정서가 많지만 개헌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 의견이 많아지는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 정동영(왼쪽), 천정배 | ||
노 대통령의 개헌논의를 식게 만든 또 하나의 대형사건이 바로 고건 전 총리의 사퇴다. 고 전 총리의 사퇴 이유도 궁금하지만, 언론과 국민의 또 다른 관심은 누가 그 ‘떡’을 차지할지다.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고 전 총리의 지지층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호남 유권자이고 두 번째는 정당 지지가 약한 중도 유권자였다. 그러나 고건 전 총리 사퇴 이후 대체로 중도적 유권자를 중심으로 한나라당 후보 쪽에 분산되어 쏠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이명박 전 시장은 거의 10%에 가까운 지지도 상승이 나타나 뜻밖의 횡재를 한 측면이 있다. 다만, 이 전 시장 스스로 경쟁력이 높아졌다기보다 후보구도 변화에 의한 상대적 지지상승은 가뜩이나 거품요소가 있는 이 전 시장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다.
반면, 고 전 총리 사퇴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으로 관측되던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의외로 크게 재미를 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범여권 후보 지지도에서 보면 ‘전북’ 유권자를 중심으로 5%가 채 안 되는 지지도 상승으로 그쳤다.
그러나 여론조사의 지지도 흐름과 달리 사실 정 전 의장은 고 전 총리 사퇴의 최대 수혜자인 것은 분명하다. 정 전 의장은 고 전 총리에게 호남 지지층을 뺏기고 지지도가 빠진 이후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운신의 폭이 좁았던 상황이었다. 내부에서는 사퇴 압력까지 받고, 외부에는 호남을 중심으로 지지층이 겹치는 고 전 총리가 버티고 있어 어디로도 가기 힘든 입장이었다. 그러나 고 전 총리의 사퇴로 일단 정치적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할 수 있고, 향후 정국흐름에 따라 호남을 기반으로 다시 재기할 기회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호남 주도권을 놓고서는 천정배 전 장관과의 일전을 피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천정배 전 장관은 전남 목포 출신에다가 전반적 정치노선이나 남북문제 등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적통을 계승하는 측면이 커 정동영 전 의장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 있다.
▲열린우리당 탈당 덕 본다
열린우리당의 최근 정당 지지도는 그야말로 10% 안팎의 최악의 침체 상황이다. 민노당이 대략 7% 내외에서 지지도를 형성하고 있고, 민주당 역시 5% 수준의 지지도를 유지하는 점을 감안하면 최대 의석수에도 불구하고 군소정당 수준의 지지도를 기록하는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열린우리당은 김근태 의장과 지도부 등을 중심으로 ‘뉴딜’ 등을 추진하며 지지도를 올리기 위해 애써 왔으나 전혀 소득이 없었다. ‘관심 밖’ 여당이 국민의 관심을 다시 끌게 된 것은 의원들이 탈당하고 당이 깨질 조짐을 보이면서이다. 현 상황은 그동안 잠재되어 왔던 각 세력 간 갈등이 표면화되며 범여권이 재편되는 상황이다. 범여권 갈등의 축은 친노와 반노, 호남과 비호남, 중도와 진보 성향으로 나눌 수 있다. 또 외부적으로는 민주당과 시민사회 그룹 역시 새롭게 만들어지는 범여권의 ‘새판 짜기’의 축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각 세력이 생존을 위해 만들어가는 구도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면 국민들이 판단하는 민심 성적표가 다시 나올 것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