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의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7∼9시간 정도. 하루하루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인생의 3분의 1을 잠으로 낭비하기는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건강한 삶을 위해서라면 잠을 아껴서는 안 된다. 전날 밤 얼마나 푹 잤느냐가 활력있는 하루를 약속하는 밑천이기 때문이다.
▲ ‘잠은 보약’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숙면은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진은 취침상태를 측정하는 수면다원검사 장면. | ||
정상적인 수면 요구량은 개인에 따라 하룻밤에 3시간부터 10시간까지 매우 다양하다. 엄청난 개인차가 있는 셈.
수면 요구량을 결정하는 요소는 성별이나 환경 직업 활동량 성격 식사 연령 등이다. 수면량이 충분한지는 스스로 알수 있다.
“자고 나서 개운하고 머리가 맑으면 충분히 잔 것이다. 또 낮 시간에 업무를 보고, 활동하는 데 지장이 없는 정도의 수면 시간이 적당하다”는 것이 을지병원 신경정신과 김선욱 교수의 설명이다.
평균적으로 성인에게 필요충분한 수면시간은 7∼9시간 정도. 최근 일본에서의 한 연구에 따르면 하루 평균 7시간 수면을 취하는 사람의 수명이 가장 긴 편이다. 10년간 10만 명 이상의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추적 조사한 결과다.
그러나 국내에서 90세 이상 장수하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대다수가 하루 9시간 이상 잠을 잔다고 한다. 서울대 노화 및 세포사멸연구센터가 전북 순창과 전남 곡성, 구례군 등 ‘장수(長壽)벨트’에 살고 있는 90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연령별 수면요구량에는 개인차가 있다. 신생아의 경우 하루중 16시간 이상을 잠을 자지만 3세 이후에는 10시간 전후로 줄어들고, 12세 무렵이면 8시간, 성인이 되면 7시간 전후로 줄어들며, 노인이 되면 6시간 전후가 된다는 보고가 있다.
충분한 수면시간은 사람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를 회복하는 데 중요하다. 면역기능의 유지, 생체조직의 재생 등이 모두 자는 동안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성장호르몬과 프로락틴, 황체호르몬 등 호르몬은 수면 중에 분비가 증가해 생체의 원기를 회복시키는 기능을 한다. 아이들은 잠을 잘 자야 키가 잘 자라고 장기도 제대로 성숙된다. 성장호르몬은 성인들에게도 필요하다. 동맥경화를 막고 지방을 분해시키며 근육량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수면리듬 중에서 꿈을 꾸는 상태의 수면인 ‘렘수면’은 뇌 세포를 회복시키고 아이에게는 뇌를 성숙시키는 기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습 후 잠을 충분히 잔 사람과 밤을 새운 사람을 비교하면 잠을 잔 사람이 학습한 내용을 더 많이, 더 정확히 기억한다고 한다.
수면이 부족하면 우울증이나 심장병, 비만, 궤양 등의 질병은 물론 노화도 촉진된다. 또 낮 동안 과도한 졸음을 만들어 개인의 건강은 물론 사회활동에도 문제가 생긴다. 졸음운전, 업무능력 저하, 안전사고, 생산성 감소 등이 대표적 현상들이다.
하루 1시간만 잠을 덜 자도 다음날 직장에서의 업무수행 능력이 3분의 1 감소된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사고 등과 같은 대형사고 뒤에 수면부족으로 인한 판단착오, 조작 실수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보통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저녁형보다 성실하며 더 많은 일을 하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아침형이 되기는 어렵다.
다른 대부분의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고유의 생물학적 리듬을 갖고 있다. 이러한 생물학적 리듬은 뇌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시상하부 상교차핵에 있는 일주기 진동자(pacemaker)에 의해 조절된다. 이 진동자에 의해 수면과 각성, 호르몬 분비, 체온과 같은 생물학적 리듬이 결정된다.
개인에게 적당한 수면 패턴은 하루를 주기로 움직이는 일주기 진동자의 중심이 앞으로 당겨져 있느냐, 뒤로 밀려 있느냐에 따라 아침형과 저녁형으로 달라진다. 아침형은 생체시계가 앞당겨져 돌아가는 사람이다.
인간의 생물학적 리듬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는 빛, 소음과 같은 환경적 자극이나 연령, 약물 등 요소들이 있지만 수면 패턴을 정하는 최대의 요소는 역시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일주기 진동자다.
타고난 일주기 리듬 특성에 알맞는 유형으로 잠을 자는 것은 일의 능률이나 생체활동의 효율에도 가장 유리하다.
대체로 현장 근로자나 오전에 중요한 일을 많이 처리하는 사람, 비만이거나 아침을 많이 먹는 사람에게는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게 유리한 반면, 정신근로자나 중요한 업무가 오후에 많은 사람, 저녁을 많이 먹거나 마른 사람에게는 저녁형이 어울린다.
그러나 자신의 수면 패턴과 업무특성이 서로 다를 때 수면 주기를 조절할 방법은 없을까.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오강섭 교수는 “아침형이 되고싶은 사람은 원하는 아침시간에 억지로라도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고 30분에서 1시간 정도 햇빛을 쪼이면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처음 2∼4일은 매우 어렵지만 광선치료 후에는 저녁에 보다 일찍 잠들게 돼 아침에 일어나기도 수월해진다. 일단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익숙해지면 새로운 취침 기상시간을 잘 지키도록 한다.
그러나 너무 단기간에 성급히 바꾸려 하거나, 체력이나 타고난 수면패턴을 고려하지 않고 강행하면 몸에 무리가 올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잠자는 동안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은 항산화제의 하나. 숙면을 취하는 암환자들은 멜라토닌, 코티솔 호르몬이 잘 분비돼 회복에 도움이 된다.
멜라토닌은 어두울 때 합성 분비되고, 빛에 노출되면 생성이 억제된다. 주변의 빛-어둠 리듬에 의해 분비가 조절되어, 인체의 수면-각성 리듬에 영향을 준다. 일찍 잠자리에 눕는 것보다 수면 환경을 어둡게 하는 것이 수면을 돕는 멜라토닌 분비에 더 중요한 조건이다.
수면장애를 치료할 목적으로 간혹 멜라토닌을 복용하는 경우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호르몬제의 영향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전문의와 상의 없이는 복용하지 말아야 한다.
나폴레옹은 하루에 30분짜리 토막잠 3~4회면 충분했다고 한다.
평소 일, 공부 등으로 수면시간이 부족한 사람은 휴일에 약간의 늦잠을 자는 것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주중과 주말의 수면시간이 너무 차이 나거나 낮잠 시간이 너무 길면(1시간 이상) 오히려 신체 리듬에 혼란이 생겨 피로감이 더 높아질 수 있다. 특히 불면증 환자라면 좀 피곤하더라도 낮잠을 자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밤 근무자는 아침에 집에 돌아오는 시간에 선글라스 등을 사용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커튼 등으로 외부의 빛을 차단해 저녁인 것처럼 하면서 잠을 청하는 게 도움이 된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을지병원 신경정신과 김선욱 교수.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오강섭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