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은 이미 망가진 ‘시한폭탄’ 당신도 탈 수 있다
서울 용산역 인근 택시승강장. 기사 내용과는 관련 없음. 일요신문DB
# 죽은 택시, 살아나다
“(이 택시를) 얼마나 탔냐고 물어봤죠. 전화번호 주면서 차 바꿀 때 되면 연락 달라고….”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A 씨(57)는 최근 운행 중에 한 남자를 태웠다. 그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차량 내부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시트를 살펴보는가 하면, 계기판을 슬쩍 들여다보기도 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남자는 품속에서 종이를 꺼내 무언가를 적어 A 씨에게 건넸다. 그는 택시에서 내리며 A 씨에게 “차 바꿀 때 되면 연락 주세요. 비싸게 사 드릴게요”라고 말하며 자리를 떠났다.
A 씨는 “차를 비싸게 산다”는 남자의 말이 수상하다고 했다. 그는 “폐차장이나 중고차 딜러들의 ‘대폐차’ 대행 업무 영업의 일종”이라면서도 “업자들이 직접 택시를 타면서 영업을 하는 경우는 드문 데다, 가격을 높게 쳐준다고 말을 하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걸로 봐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택시기사들도 A 씨와 같은 이야기를 한다. 최근 종종 이런 영업을 하는 ‘수상한’ 승객을 직접 태웠다거나, 만났다고 이야기하는 기사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기자가 만난 택시기사들은 “대폐차 과정에서 ‘죽은 택시’를 다시 살리는 업자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기자가 택시기사에게 전달 받은 전화로 직접 연락을 해보니 자신을 “대폐차 대행 업체”라고 소개하면서 “차량 먼저 확인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겠다. 직접 계신 곳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대폐차’란 차령이 만료돼 폐차해야 하는 차량이란 뜻이다. 택시와 화물차 등 영업용 차량은 노후화 또는 사고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안전 문제를 이유로 기존 차량 등록을 말소하고 폐차한 뒤, 새로운 차량으로 교체해야 한다. 현행 여객법상 개인택시는 차종별로 5년에서 9년, 법인택시는 경형·소형 3년 6개월에서 6년 사이, 또는 법령으로 정해진 운행거리(km)를 초과하면 대폐차 대상이 된다. 이러한 택시를 일명 ‘죽은 택시’라고 부른다.
죽은 택시들은 ‘부활차’라는 이름으로 종종 중고차 시장에서 거래돼 왔다. 차량 연식이 오래되고 운행거리가 25만~50만km에 이르는 경우가 많아 일반 차량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다. LPG 택시는 국가유공자와 장애인이 중고로 구매가 가능해 부활차 매매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중고차 시장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일부 매매상들이 부활 이력부터 미터기, 지붕 위 택시표시 등 영업용 차량 흔적 등을 숨기고 비싼 가격에 되파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다.
# 대포택시의 탄생
죽은 택시는 중고차 시장에서만 ‘부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일반 중고 차량이 아닌 영업용 ‘대포택시’로 둔갑하기도 한다. 대폐차 과정에서 차량 등록만 말소시키고 폐차는 하지 않은 채, 중고차 매매업자나 전문 브로커에게 차량을 넘기는 수법이 대표적이다.
특히 말소 신청부터 폐차 작업까지 대행해주는 일부 폐차장이 대포택시를 유통시키기도 한다. 이들은 최대한 비용을 줄이고 간소한 방법으로 차량을 처분하기를 원하는 사업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접근한 뒤 차량을 확보한다. 일부 브로커나 매매업자들도 차량을 구입한 뒤 이곳에 맡긴다. 서울의 한 중고차 매매상은 “차량 등록 말소 신청 과정에서 폐차인수 증명서 등이 필요한데, 지방이나 수도권 지역 일부 폐차장은 5만~10만 원을 받고 허위로 발급해주기도 한다”며 “모든 절차를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점을 악용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또한 강원랜드나 전국 곳곳의 도박장 근처 전당포나 사채업자들을 통해 대포택시가 탄생하기도 한다. 사채업자들은 포기각서나 다른 사람이 담보차량을 소유해도 된다는 동의서 등을 받고 정해진 기간에 원금을 갚지 못하거나 이자가 밀리면 타인에게 팔아넘긴다. 이후 앞서의 절차대로 ‘부활’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죽은 택시는 깨끗하게 ‘세탁’된 무등록 차량이 된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포택시로 유통되는 경우 차량 종류별로 한 대당 1100만~1600만 원 사이로, 중고차 매매상이나 전문 브로커가 개인간 거래를 통해 판매한다. 한 개인이 여러 대의 대포택시를 구입해 기사를 고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유령 법인이 세워지기도 한다.
또 다른 중고차 매매상은 “보통 대포택시 한 대당 두 명의 기사를 고용된다. 음주운전이나 사건 사고 등으로 면허가 취소돼 영업을 할 수 없지만, 운전 경험이 많은 베테랑 기사가 그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주간, 야간으로 번갈아 영업한다. 사납금과 세금, 보험료 등의 부담이 없으니 두 사람이 하루에 20만 원씩만 벌어도 금방 대포택시 구입비용을 넘어선다”고 귀띔했다. 일부 고용주는 관할 구청에 차량 등록을 하기도 하지만 실소유주와 차량 운전자가 달라 이 역시도 대포택시다.
# 추적·단속 어려워
문제는 대포택시가 일반 대포차보다 추적과 단속이 어렵다는 것이다. 먼저 차량 등록 말소부터 사후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류상으로는 말소 신청 이후 차량이 실제로 폐차가 됐는지, 또는 타인에게 양도됐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지금으로선 없다. 말소 이후 관할 구청 등에 차량을 정식 등록했더라도, 허위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또한 시나 구청 등 지자체와 경찰이 대포차 단속에 나서지만, 같은 방법으로 대포택시 단속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의 한 구청 관계자는 “대표적인 대포차 단속 방법 은 주차된 차량을 대상으로 번호판을 조회하는 것”이라며 “반면 택시는 정해진 구역 없이 늘 도로를 달리고, 정차 시간도 짧아 일반 대포차 단속 방법으로는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 도로 위 유령, 흉기로 돌변
이렇게 도로를 달리는 유령은 ‘흉기’와 다름없다. 교통법규를 위반해도 각종 범칙금, 과태료 등에서 자유롭고, 추적 자체가 어려워 뺑소니부터 각종 범죄에도 악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실제로 기자가 만난 개인택시 기사들은 최근 대포택시 밀집 장소로 심야시간대의 서울역과 고속버스터미널, 주말 번화가 등 장거리 승객이 많은 곳을 꼽았다. 이 장소들은 과거부터 ‘총알택시’ 영업장으로 악명을 떨치던 곳이다.
지난 7월 20일 자정, 서울역에서 일부 택시 기사들은 차 밖으로 나와 수원이나 하남, 분당 등 지명을 외치며 승객들과 가격 흥정을 했다. 할증요금보다 2000원~5000원가량 더 비싼 가격이었지만 “평소보다 더 빨리 모셔다 드리겠다”고 자신했다. 앞서의 개인택시 기사 A 씨는 “아무리 새벽에 도로사정이 좋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속도에 자신을 보이는 이유가 뭐겠느냐”고 반문했다.
여기에 대포택시들은 부활 전, 일반 차량보다 가혹한 환경에서 운행돼 왔기 때문에 안전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죽은 택시들은 같은 연식의 일반 차량과 비교해 운행거리가 월등히 길다. 보통 30만~50만km를 달린 데다 이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번갈아가며 운전하는 경우도 잦아,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중요 부속품이 망가진 경우가 많다. 언제 사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시한폭탄’과 같다.
이에 대해 서울의 한 경찰 관계자는 “최근 대포택시와 관련된 첩보를 입수했다”며 “단속이 어려운 허점을 악용하고 있는데, 추적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끝까지 추적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택시 면허 확보 전쟁 부작용 ‘대포택시’로 삐죽 최근 대포택시가 고개를 드는 이유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일명 ‘택시 번호판 가격’을 꼽았다. 개인택시 면허는 개인간 거래가 가능한데, 이를 확보하려는 회사택시 기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면허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와 택시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초 7000만 원 수준에서 거래되던 택시 면허 가격은 최근 8000만~9300만 원에 형성돼 있다. 지난 2010년 이후부터 6000만 원에서 등락을 거듭하다 지난해 5월을 기준으로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현재 개인택시 면허를 구입해 영업하기 위해서는 기존 면허 소지자로부터 면허를 양수받아야 한다. 정부가 택시 공급과잉을 이유로 신규로 개인택시 면허를 내주지 않고 있어서다. 이런 이유로 개인택시 면허를 양수·양도하는 시장이 지방자치단체별로 형성돼 있다. 시장에서 거래되는 면허 시세는 이제 ‘부르는 게 값’이다. 해마다 서울에서 거래된 개인택시면허는 2000대 안팎이다. 서울에서 운행되는 전체 개인택시(약 5만 대)의 0.5%에 불과하다. 한정된 물량 때문에 가격 상승이 더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한 택시 면허 중개인은 “경기가 어려워 택시기사들이 딱히 다른 일자리를 찾지 못하니 개인택시를 가진 사람은 팔 생각을 하지 않는데, 구매하려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상황이다. 공급량이 적으니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오른다”며 “이대로라면 조만간 1억 원을 넘길 것 같다”고 전망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