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들 침묵 속 ‘진원지 누구냐’ 음모론 난무
그리고 모래알 친박은 박근혜 정부 임기 4년차 반환기를 돌면서 스스로 느슨한 결집도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그것도 친박 중 진박(眞朴)이라는 핵심들부터 “나 살겠다”고 도망하는 꼴이어서 비박계에서조차 “저러다 박 대통령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안타까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녹취록 파문에 휩싸인 윤상현 의원이 국회에서 동료 의원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김성회 전 새누리당 의원(전 지역난방공사 사장)이 총선 공천 정국이었던 지난 1월 친박계 핵심 최경환·윤상현 의원과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과의 전화통화를 녹음, 어떠한 경로로 언론에 전달하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주류 계파의 공천 개입 의혹이 만천하에 드러난 꼴로 당내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그런데 당사자들은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공개석상에 나오지도 않고 소셜네트워크(SNS)에는 전혀 엉뚱한 글을 올리며 이슈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비박계 3선 의원은 이런 말을 들려줬다.
“적어도 셋 중에 한 명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지 박 대통령 짐이 좀 덜어지는 것 아니냐. 자기들이 계파 핵심이라고 얼마나 호가호위했나. 그 은덕을 입었다면 ‘몸통 자르기’에 스스로를 내던져야 한다. 노(무현)통 때 안희정 이광재나, MB 때 SD(이상득)나 박영준(전 차관)이 대통령을 살리고자 (감방에) 들어간 것과 너무 대조된다. 게다가 이번 사안은 뭐 옥살이 할 경우도 아니지 않는가. ‘내가 대통령 팔아서 장사 좀 했소’ 하면 모두가 좋을 것을. 친박만 난리가 아니라 지금 당 꼬락서니가 뭐가 됐냐. 20대 공천을 받은 모든 우리 당 의원이 냄새 고약한 과정을 거쳐 공천되고 당선됐다는 것밖에 더 되나.”
김성회 녹취록으로 촉발되긴 했지만 ‘모래알 친박’의 징후는 앞서 돌출되기도 했다. 정치적 의미를 크게 담지 않아 부각되진 않았지만 오는 8월 9일 전당대회 당 대표로 나설 친박계 대표 주자가 부재한 것이 대표적이었다. 최경환 의원은 총선 참패 이후 약 석 달 가까이 당선자는 물론이고 낙선자와 낙천자를 두루두루 만나며 때로는 격려하고 때론 위로하거나 사과하는 제스처를 취해 왔다. 전당대회 출마 사전 정지작업으로 해석하는 이가 많았다.
최 의원과 만났다는 다수는 “전대 출마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굳이 이 타이밍에 우리를 만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최 의원과의 만남을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최 의원은 전대 불출마를 결정했고 이에 대해 청와대를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대면접촉 여론과, 가상 여론조사 결과가 ‘최경환 패배’로 모아졌다는 것이다.
그 뒤 대타로 거론됐던 서청원 의원도 불출마했다. 강원도 평창의 한 별장에서 두문불출하며 친박계 의원들과 회동을 이어갔지만 최종 결정은 “나도 안 하겠다”였다. 하반기 국회의장이 100% 확실한데 당락 확률이 반반도 안 되는 전당대회에 나서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됐다. 하지만 현 정부의 마무리를 성공적으로 뒷받침하고, 정권재창출에서 나아가 친박계의 향후 활로를 모색할 당대표 주자로 친박계 핵심 둘이 반기를 들면서 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촉발됐다. 거기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성회 녹취록까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친박계 내에선 서슬 퍼런 괴소문도 돌고 있다. 김성회 녹취록 유출 진원지가 친박계 홍문종 의원 측이 아니냐는 소리다. 전대에 출마 의지가 큰 본인은 만약 서 의원이 출마할 경우엔 의지와 관계없이 불출마해야 했지만 이번 녹취록 파문으로 길이 열렸다는 얘기가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어서다. 홍 의원 측은 펄쩍 뛰고 있지만 음모론에 익숙한 정가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김성회 녹취록 리스트에 홍 의원도 있었지만 둘이 친하기 때문에 유출본에서 빠졌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한 친박계 핵심 의원의 말을 들어보자.
“김성회가 사실 친이였거든. 그런데 지난번 대선 때 박 대통령 캠프로 들어오게 돼. 그 연결고리가 홍문종이었다는 이야기가 많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의심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겠어? 홍문종은 ‘반기문 대통령, 친박 총리’ 이야기도 잘못 꺼냈다가 우리한테 ‘당신 누구 편이야’ 하는 이야기도 들었거든. 홍 의원이 이번에 전대에 나오더라도 이런 의심이 큰 상황에서 친박계 지지를 받기는 힘들 거야. 아니면 김 (전) 의원이 직접 이번 유출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든가. 아니면 그 사람도 앞으로 정치하기 힘들지 않겠어?”
하지만 이번 ‘김성회 녹취록’ 파문은 예견된 것이었다는 게 당내 중론이다. 김 전 의원이 지역구(화성갑)를 서 의원에게 뺏긴 뒤 다른 곳으로 출마했고 낙천한 뒤 과거 동료들과 삼삼오오 만나 “가만두지 않겠다”며 수차례 분노를 표출했다는 것이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조차도 기자들과 만나 “김성회 이야기는 정말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확인해주기도 했다.
일각에선 이번 유출이 김 전 의원 작품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김 전 의원이 사석에서 이 통화내용을 공개한 것을 누군가 녹음한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서청원 의원이 “음습한 공작정치 냄새가 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 대목이 이런 설과 맥을 같이 한다.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김 전 의원이 유도질문을 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며 주위에 고충을 털어놨다는 전언도 있다.
정가에서는 박 대통령이 친박 핵심들의 향후 거취를 고민하고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둘러싼 논란까지 더해져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본인에 대한 충성심 가득했다고 여겼던 측근들이 ‘대통령의 뜻’ 운운하며 공천에 개입한 정황을 알게 된 이상 이들과의 교류를 끊고 가든 안고 가든 시그널을 내놓는 것이 박 대통령 스타일이란 얘기다.
이런 가운데 서 의원은 7월 말경 친박계 의원들만 초청해 대규모 회동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서 의원이 여의도 고급 음식점을 예약했다가 구설에 오를 수 있어 수수한 한정식집으로 바꿨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또 서 의원이 불출마에 대한 솔직한 심정과 함께 하반기 국회의장 의지를 강조할 것이란 이야기도 들린다. 서 의원은 자신을 돕는 선거·경선 실무진을 당권에 도전한 이주영 의원 캠프로 보낸 것으로도 알려졌다. 친박계가 이정현 의원보다는 이주영 의원 쪽으로 표를 몰아줄 것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이정필 언론인
주호영 울고 이주영 웃는다? 8·9전당대회 새누리 당대표 누가 뽑힐까 지난 총선에 낙천에 불복, 새누리당을 탈당했다가 당선된 후 복당한 주호영 의원이 8·9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면서 다크호스로 부상할지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당초 정가에선 주 의원을 두고 친박과 비박 모두에서 거부감이 적고, 박근혜 대통령 콘크리트 지지기반인 대구경북(TK) 유일 당대표 후보여서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총선 참패 책임론에서 친박계가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친박계도 친박 색채가 옅은 쪽으로 결집해 지원해줄 수 있고, 비박계도 계파 화합 차원에서 주 의원을 밀 수 있다는 논리를 들고 있다. 우선 주 의원의 출마 명분은 좋다. 본인이 공천학살 피해자였으니 모든 것을 용서하고 화합의 용광로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 일각에선 ‘친박 패권주의’를 지목하면서 ‘계파 청산’을 외친 그 순간부터 주 의원의 명분이 희석됐다는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조차 소위 친박이 무리하게 후보를 옹립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비박이 단일화 후보를 내어 이전투구를 계속한다면 새누리당은 분당에 가까운 분열과 증오가 지배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새누리당은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할 것입니다. 그런 전당대회라면 이겨서 당대표가 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친박계가 주 의원을 향해 ‘X표’를 하게 된 주 의원의 출마선언문 중 일부다. 한 친박계 의원은 “2007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경선 캠프가 꾸려져 주 의원이 이명박 후보 쪽으로 가기 전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현안마다 주 의원과 상의할 정도로 좋은 관계였다”면서 “특히 주 의원은 영남대 천마장학생 출신으로 박 대통령은 영남대에 각별한 애정이 있었다”고 전했다. 주 의원이 2년 전 친박계가 아닌 의원으로는 이례적으로 ‘청와대 정무특보’로 임명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숨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 의원은 지난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을 하고자 정무특보직을 서둘러 그만뒀고 박 대통령과 친박계는 주 의원을 ‘못 믿을 사람’으로 분류했다는 이야기가 적잖았다. 지난 공천 정국에서 주 의원 지역구가 ‘여성우선 추천지역’으로 선정된 것과도 무관치 않다. 주 의원이 친박계의 지원을 얻지 못하는 방향으로 가자 그 반사이익을 이주영 의원이 누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계파 색채가 강하지 않았던 이 의원은 이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하며 범친박 내지는 신박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이번 당대표 출마 선언에서 ‘친박 패권주의’를 겨누면서 친박계 눈 밖에 났다. 이에 이 의원은 당시 출마선언문을 작성한 측근을 내보내면서까지 친박계 표심을 잡으려 애썼지만 서청원 최경환 의원 등 핵심들은 꿈쩍도 않았다. 사실상 이주영 캠프는 그로기 상태였다. 하지만 이런 이 의원이 21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계파 청산을 주창하고 패권주의를 비판하면서 비박 후보 단일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또 다른 계파 패권의식의 발로”라면서 “전당대회가 가까워지면서 비박을 자처한 후보들의 단일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친박을 비판하던 이 의원의 태도가 급변해 비박을 겨누기 시작하는 이른바 ‘친박 마케팅’에 나선 것이다. 이를 지켜본 한 친박계 인사는 “고만고만한 인물 6명이 난립하다보니 대세가 없다. 하지만 2007년부터 거의 10년간 친박의 조직표가 존재해 왔고, 이번 전대에서도 친박만이 조직적으로 당원과 대의원을 동원할 수 있는 만큼 이 의원의 작전변경은 적절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유리할 것 같았던 후보가 급락하고, 죽었던 후보가 되살아나니 정치는 생물이란 말이 나오는 듯하다. [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