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넥슨 측 인사와 친박 전직 의원 간 수상한 돈거래’ 첩보 입수
박근혜 대통령. 일요신문 DB
아무도 몰랐다. 지난 3월 25일 진경준 검사장 재산공개가 이렇게까지 파장을 일으킬 줄은 말이다. 진 검사장은 넥슨으로부터 받은 비상장주식을 팔아 120억 원대의 차익을 거뒀고, 이 과정에서 무수한 의혹이 대두됐다. 진 검사장은 여러 차례 말을 바꾸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7월 17일 끝내 구속됐다. 검찰 역사상 현직 검사장이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 인해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고개를 숙여야 했고, 검찰은 이금로 특임검사팀을 꾸려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넥슨으로부터 시작된 추문은 현 정부 최고 실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번졌다. 검찰 주요 요직을 거친 뒤 2013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하던 우 수석은 2014년 민정비서관으로 발탁됐고, 지난해 1월 민정수석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박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바탕으로 청와대 내에서 가장 파워 있는 수석으로 통했다. 우 수석은 박근혜 정부 초반 ‘부통령’으로 불렸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비견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일보>는 7월 17일 우 수석이 처가 소유 부동산을 진 검사장 중개로 넥슨에 팔았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우 수석은 사실과 다르다며 해명했지만 그 후 자녀의 병역 문제 등 또 다른 의혹들이 봇물처럼 터졌다. 청와대는 “국정 흔들기”라며 강경 대응을 천명했지만 우 수석 퇴진론은 여권 내에서조차 거세다. 친박 몇몇 의원들은 “우 수석을 더 이상 비호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박 대통령에게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넥슨과 진 검사장을 비롯해 우 수석과 관련된 내용도 수사선상에 올려놓은 상황이다.
일단 검찰은 넥슨을 둘러싼 자금 부분에 수사력을 모은다는 방침이다. 넥슨 측으로부터 흘러나간 돈의 흐름과 그 성격을 규명하는 게 수사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그런데 검찰은 지난 2012년 말~2013년 초 사이 김정주 넥슨 회장의 지인으로 알려진 한 재계 인사와 친박계 전직 의원 간에 수상한 돈 거래가 있었다는 첩보를 확인 중이라고 한다. 이 친박 전직 의원은 박 대통령 ‘복심’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다음은 사정당국 고위 인사의 설명이다.
“친박 전직 의원이 평소 알고 지냈던 한 재계 인사가 넥슨 김정주 회장과 가까운 것으로 파악됐다. 넥슨이 친박계와 줄을 대기 위해 그 인사로부터 친박 전직 의원을 소개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이 재계 인사가 친박 전직 의원에게 두 차례 돈을 건넨 정황이 포착됐다. 어떤 명목인지는 아직 확인이 되질 않았다. 이게 넥슨으로부터 나왔는지는 면밀히 수사해봐야겠지만 주변인들 진술을 종합하면 개연성이 충분하다. 진 검사장에게 했던 것처럼 사실상 대가성의 뇌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정권을 강타할 초대형 게이트가 될 것이다.”
아직 첩보 성격인지라 정식 수사로 발전되진 않았지만 이러한 ‘민감한’ 내용이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권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우 수석 등 여권 핵심부 인사와 관련된 파일들이 새어나오는 것과 그 궤를 같이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친박 전직 의원과 넥슨 측 인사 간에 돈이 오갔다는 시기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라는 점에서 넥슨 측이 ‘보험용’으로 친박 전직 의원에게 돈을 건네며 관계를 맺으려 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일요신문>은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복수의 사정당국 및 친박계 인사들을 접촉했다. 대부분 답변을 꺼려했지만 한 친박 의원은 “인수위 시절이던 2013년 초 이런 말이 돌았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박 대통령 측에서) 주의를 줬던 것으로 안다. 그 전직 의원이 왜 돈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돌려주지 않았겠느냐. 최근 넥슨 사태가 터지면서 다시 불거질까 전전긍긍했다. 어찌됐건 수상한 거래가 있었던 것은 틀림없기 때문이고, 그 시기가 오해를 사기 딱 좋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사실 정치권에선 그동안 공공연히 ‘당선 축하금’ 성격의 돈이 대선 승리 진영 쪽으로 전달된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 측 역시 이러한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한 금융업체가 이 전 대통령 측 핵심 인사에게 거액을 건네기 위해 남산에서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수법으로 돈을 줬는데, 이게 바로 당선 축하금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더민주의 한 의원은 “부끄럽지만 우리가 정권을 잡았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정치권에서 먼저 돈을 요구했던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기업들로서는 새로운 정권에 잘 보여야 했고, 선거를 치른 정치권으로선 막대한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양 측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오래전부터 행해져오던 악습”이라고 말했다.
친박 측이 당선 축하금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검찰이 과연 ‘판도라 상자’를 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권에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는 ‘역린’과 다름없는 까닭에서다. 특히 박근혜정부의 정당성과도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앞서의 친박 의원은 “정권 후반기 권력 누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검찰이) 이런 내용까지 들여다볼 것이라곤 보지 않는다. (당선 축하금 같은) 그런 돈은 사법 처리보다는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또 박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도덕성을 강조했는데, 기업으로부터 돈을 대놓고 받았겠느냐. 설령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전직 의원의 일탈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기류도 감지된다. 정권 후반기 검찰을 제대로 컨트롤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그 핵심이다. 역대 정부 4년차엔 어김없이 실세들이 연루된 대형 게이트가 터지곤 했었다. 사정라인 정점에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이 난처한 상황에 빠져있다는 것도 이러한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서울중앙지검 고위인사는 “검찰은 정치적인 조직이다. 정권 초엔 대통령 눈치를 보겠지만 임기 후반부엔 나름대로 주판알을 두드린다는 얘기다. 또 검찰은 철저하게 내부 논리로 움직인다. 지금 친정 식구인 진경준 검사장까지 구속한 상황이다. 그 전엔 검사장 출신 홍만표를 구속했다. 독이 바싹 올라있다는 얘기다. 살아있는 권력은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또 명예회복을 할 수도 있다. 넥슨게이트에 연루된 친박 인사들이 타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사면초가 빠진 우병우 ‘검찰부터 친박까지 아군이 없네’ 우병우 민정수석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가길 바란다”며 힘을 실어줬지만 연일 새로운 의혹이 불거지면서 퇴진 압박이 거세게 일고 있다. 박 대통령 발언 후 입장 표명을 아끼고 있는 친박계 내에서조차 우 수석 용퇴론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우 수석이 코너에 몰렸지만 그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여야는 물론 검찰에서도 마찬가지다. 우 수석은 검찰 재직 시 요직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했지만 청와대 입성 후 친정과 불협화음을 빚었다. 검찰 인사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불거지면서 우 수석에 대한 비토 기류가 퍼졌던 것이다. 최근 우 수석과 관련된 고급 파일의 출처로 검찰이 꼽히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된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우 수석이 대통령 신임을 바탕으로 검찰을 너무 흔들려고 했다. 자기사람 심기에 치중하다보니 검찰 조직이 어수선해졌다”면서 “김수남 현 총장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우 수석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현 정부 사정기관 컨트롤타워인 우 수석이 야권에 대한 표적 수사를 했다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 참여한 검사 출신이라는 이유가 가장 크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홍만표 변호사에 이어 우 수석까지 곤욕을 치르자 ‘노무현의 저주’라는 말도 회자된다. 새누리당 역시 우 수석에 대한 동정여론은 드물다. 이는 비박은 물론 친박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엔 몇몇 친박 인사가 우 수석에 대한 비리를 캤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한 친박 의원은 “우 수석이 승승장구하다보니 견제론이 발동된 것”이라면서 “그는 친박 실세가 아니라 그냥 실세다. 계파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친박과 별로 교류가 없었다. 친박 입장에서 보면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나 다름없는 우 수석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았다”라고 귀띔했다. [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