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좀비영화 최단기간 500만 돌파…천만 탑승 예약
무엇이 이토록 관객을 열광케 할까. <부산행>은 제작비 100억 원 규모의 국내 상업영화에서 처음 다뤄지는 좀비 소재의 영화다. 좀비는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의 캐릭터로 간간이 만나왔을 뿐이다. 국내 관객에는 낯선 존재다. 하지만 그 새로움이 곧 신선함으로 작용하면서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물론 단지 좀비의 등장만이 <부산행> 열풍을 설명할 수는 없다. 긴장을 놓을 틈조차 주지 않고 진행되는 재난 블록버스터의 속도감, 재난의 상황을 우리 사회에 그대로 대비해 볼 수 있도록 여러 해석의 여지를 남긴 연출이 <부산행> 흥행의 또 다른 이유들이다.
# 좀비 영화 어떻게 탄생했나
<부산행>은 실사 영화 연출은 처음인 연상호 감독의 작품이다. 앞서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사이비> 등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2014년 또 다른 애니메이션 <서울역>을 완성한 직후 이를 확장해 실사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서울역>의 완성도를 확인한 영화사와 투자 배급사의 제안과 지원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울역>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서울역 주변에 퍼지면서 사람들이 좀비로 변해가는 상황을 그렸다. <부산행>은 서울역 그 이후의 이야기다. 서울역을 출발해 부산으로 향하는 KTX에 오른 사람들, 그들이 좁은 기차 안에서 좀비와 겪는 사투를 그리고 있다.
영화 ‘부산행’ 스틸컷.
<부산행>의 선택은 왜 하필 좀비였을까. 연상호 감독은 “이색적인 소재”이면서도 “여러 사회적인 함의를 담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좀비가 어떻게 탄생하는지, 그 과정을 역으로 추적하는 일 자체가 관객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연상호 감독은 “앞서 만든 애니메이션 <서울역>은 직설적이고 어두운 영화”라며 “거기에 개인적인 감수성을 가미한다면 실사 상업영화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사실 <부산행>은 영화 개봉 전부터 증폭된 관객의 기대감에 작품의 완성도가 뒷받침되면서 흥행 기세는 더해지고 있다. 극장가와 영화계에서는 새로운 스코어에 대한 기대 어린 전망을 꺼낸다. 특히 ‘1000만, 그 이상도 가능하다’는 예측은 <부산행>이 현재 나타내는 몇몇 징후에서 힘을 얻는다. 최근 흥행영화의 공통점인 각종 패러디물도 이어진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데만 그치지 않고 아이디어를 추가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휴가를 원하는 ‘속초행’부터 프러포즈용 ‘결혼행’ 등 패러디 포스터도 봇물을 이룬다. 앞서 <베테랑>부터 <곡성> 등 흥행작에서 나타난 현상과 같다.
# 영화 속 사회 비판적인 시선
<부산행>은 개봉 이후 다양한 반응을 얻고 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분석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와의 비교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폐쇄된 기차, 위기에서 벗어나려 앞 칸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두 영화의 설정은 비슷하다.
물론 확실한 차이도 있다. <설국열차>가 목적지 없이 반복해 달리는 기차를 내세운다면 <부산행>은 확실한 종착지가 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열차는 부산으로 직행한다. 과연 열차는 부산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 부산은 좀비들의 침범에서 자유로운지, 대체 누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지, 관객들은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종착역이 있기에 가능한 설정이고 긴장이다.
<부산행>을 향한 관객의 지지는 다양한 연령대를 넘나든다는 점에서도 눈에 띈다. 좀비 소재, 재난 장르의 특성상 20~30대 젊은 관객의 지지가 높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40~50대 중장년 관객의 선택 역시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다양한 세대가 보고 즐길 만한 영화라는 의미다. 영화가 견지한 사회 비판적인 시선이 여러 세대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 공유의 극 중 직업은 ‘큰 돈’을 움직이는 펀드매니저다. 일반 투자자를 “개미”라 부르고, 그들의 전화번호는 휴대전화 안에 있는 ‘개미들’이라는 폴더에 몰아넣어 저장한다. 또 다른 등장인물인 마동석은 그런 공유를 향해 “개미 피 빨아먹는 사람”이라고 칭한다.
공유의 직업은 왜 펀드매니저이어야 했을까. 여기에는 연상호 감독의 주관 그리고 계산이 담겼다. 감독은 “영화에서 계급 관계를 다룰 때면 위에 있는 사람보다 실제 나처럼 밑의 사람들에 더 주목하게 된다”고 했다. <부산행>에서 굳이 공유를 펀드매니저로 설정한 이유도 그렇다. 감독은 “성장 중심의 시대에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겨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그 일환으로 성장을 상징하는 펀드매니저라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좀 더 노골적으로 실제 일어난 일을 떠올리게도 한다. 좀비가 창궐하고 소요사태가 거세지자 영화 속 정부는 “동요하지 말고 집에서 나오지 말고 있으라”는 입장을 내놓는다. 정부의 늑장대처, 재난을 마주한 일반인들의 혼란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한편 <부산행>은 배우 캐스팅에서도 ‘최고의 선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공유는 물론 그의 딸로 출연하는 초등학생 연기자 김수안의 탁월한 연기, 또 다른 주인공 마동석의 활약이 이런 평가를 나오게 한다. 이들 배우는 적재적소에서 제 몫을 해낸다.
좀비 소재 재난영화는 제작진뿐 아니라 이들 배우에게도 ‘모험’과 같은 선택이었다. 특히 공유에게 그렇다. 심지어 공유가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 “좀비 영화에 출연한다”고 이야기할 때면 주위에서는 걱정부터 꺼냈다고 한다. “좀비 영화를 왜 하느냐”고 노골적인 부담감을 드러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공유의 생각은 명쾌했다. 출연 제안을 받는 자리에서부터 그는 “하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공유는 “감독이 가진 비범함을 느꼈다”며 “감독의 자신감이 그저 호기로만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선택은 옳았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