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의원들은 공/사석에서 “한바탕 지각변동의 바람이 불 것”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정점으로 한 여권 신주류의 언행 곳곳에서도 정계개편 구상이 태동단계에 있다는 점은 어렵지 않게 감지된다.
이와 관련, 노 당선자의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민주당 문희상 의원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비수 같은 화두를 던졌다. “노 당선자는 ‘인위적 정계개편 능력도 의지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을 다시 새겨보면 더 무서운 것이다. 국민과 함께 한다면 헤쳐모여 할 수 있다는 것이 깔려 있다. 헤쳐모여 한다면 아마 총선 전이지 지금은 아닐 것이다.” 98년 초반 DJ정권 초대 정무수석으로서 동교동계와 민주계간의 신민주대연합론을 펼쳤던 그가 정확히 5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98년 때와 비슷한 화법을 쓰고 있는 셈이다.
‘여소야대’라는 정치지형도 당시와 현재가 유사하다. 아니 정계개편의 필요성과 추진력은 더욱 강력하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무엇보다도 신중한 스타일인 DJ가 헤쳐모여식 정계개편을 꺼렸던 반면 노 당선자는 문 내정자와 ‘배짱’이 맞는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여권의 핵심관계자는 “노 당선자는 머리가 비상하고 판단이 빠르면서도 과감하고도 불도저 같은 성격이 있다.
문 내정자는 기자들에게 98년의 신민주대연합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때는 그게 방안이었다. PK 및 YS와 함께하는 게 지역•민주 연합이었다. 당시 신한국당 중진 S, S의원등과 접촉해 거의 도장 찍는 단계까지 왔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여권내 환경도 98년보다 심상치 않다. 당시에는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이 단순한 의석 증대를 위한 ‘개별의원 영입’을 주장해 관철시켰던 반면 문 내정자와 함께 노무현 정권에서 정치분야를 담당할 김원기 대통령 정치고문,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 내정자 등도 큰 틀의 정계개편을 선호하는 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 내정자는 상당수 한나라당 의원들과도 두루 친밀한 관계다. 통외통위에서 함께 활동했던 서청원 대표와 박근혜 의원, 경복고 선배인 김덕룡 의원, 개혁파인 이부영 의원 등과도 가깝다. 소장 개혁파 리더인 김부겸 의원은 가장 좋아하는 상대당 정치인으로 두 번이나 문 내정자를 꼽기도 했다.
또 98년과 같은 개별영입은 일시적 의석수 증가라는 단기적 이익을 주지만 총선에서는 오히려 그 반발로 인해 지역감정이 강화되는 역효과가 크다는 경험도 얻었다. 지각변동의 시나리오도 벌써 여러 가지가 설왕설래한다.
한나라당 내 소장 개혁파 및 수도권 초•재선의원들의 동요가 단초가 될 것이라는 게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다. 실제로 한나라당측도 현재 진행중인 당•정치개혁 특위에서 서청원 대표, 김영일 총장, 하순봉 최고위원 등과 같은 현재 지도부와 소장파간의 절충점을 찾지 못할 경우 여권 신주류가 예상보다 일찍 정계개편 작업에 시동을 걸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특히 지난 5일 ‘국민속으로’라는 진보성향 개혁모임을 결성한 이부영 이우재 김홍신 서상섭 안영근 김부겸 원희룡 이성헌 조정무 김영춘 의원 등은 주목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현 지도부의 2선후퇴’ 및 ‘인적청산’을 한나라당이 자기혁신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다시 얻기 위한 선결과제로 꼽았다.
특히 이들은 민주당 신주류측과도 개혁을 위해서라면 힘을 합칠 수 있다는 입장을 공개 표명했다. 따라서 이들의 최종 목표는 ‘탈당’ 및 민주당 신주류측과의 연대라는 관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민주당측이 한나라당 내 민주계와 소장파 의원들과 접촉중이라는 설이 떠돌고 있다.
노 당선자의 측근들이 한나라당의 수도권 L, K, K의원, 부산 대구 등 영남권의 4∼5명 등 15명 이상을 접촉했다는 얘기다. 접촉대상 의원들은 노 당선자와 과거 통일민주당에서 야당생활을 함께 했거나 YS의 상도동계 출신이라는 후문이다.
한나라당 내 소장파 등이 움직일 때 김원웅 의원과 시사평론가 유시민씨가 이끄는 개혁정당이 민주당에 합류할 경우 그 파장은 순식간에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신주류가 2월 말 전당대회에서 한화갑 대표를 밀어내고 당권을 공식장악할 경우 민주당 자체도 분열위기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민주당 내 갈등의 증폭과 분열 위기는 한나라당 소장파 및 민주계 등에게 민주당 신주류와 연대할 수 있는 명분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 단순한 실리에 따라 여권에 합류하는 게 아니라 이념적 재편, 나아가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정치개혁 차원의 당적 이동으로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신주류도 정균환 원내총무를 중심으로 한 동교동계 구주류가 당권경쟁에서 밀려나고 최악의 경우 탈당하더라도 ‘호남당’이라는 낙인을 떼어내는 효과를 볼 수도 있다. 결코 느리지 않은 속도로 밀려들고 있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갈등 폭발의 시대’는 바로 헤쳐모여식 정계개편을 촉발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은 문 내정자가 언급한 2004년 총선전이 아니라 훨씬 빨라질 수 있다는 전망이 만만치 않다. 김재철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