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면 ‘남’보다 못하다더니…
▲ 지난 6일 열린우리당을 집단탈당한 탈당그룹(위)과 14일 전당대회를 치르고 선출된 새 지도부와 대의원들. 분열 이후 여권 계파 간 세력다툼이 치열하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들의 경쟁은 과열된 모습이다. 정계개편 주도권 싸움에 제 계파들이 정치생명을 걸고 올인하고 있는 분위기다. 우선은 독자적인 색깔을 만들기 위해 상호 비난전이 시작된 형국이다. 얼마 전까지 머리를 맞대고 정책을 조율했던 동료들이 이제는 적으로 변해 야당보다 더한 비방전을 펼치고 있다.
대규모 2차 집단탈당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열린우리당이 2·14 전대를 무사히 치르면서 탈당 움직임은 잠시 소강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잔류파 내부에서도 정계개편 방향 및 주도권 문제와 관련해 여전히 동상이몽을 하고 있어 계파 간 갈등은 언제든 수면위로 재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친노그룹을 중심으로 한 당 사수파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만은 유지해야 한다는 데 방점을 두고 있는 반면 통합신당파는 리모델링에 그치지 말고 당명 개정 등 재건축도 불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부 강경 신당파는 새로운 지도부가 주도하는 신당 작업 추이를 지켜본 뒤 별다른 진척이 없을 경우 곧바로 탈당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특히 당내 최대 계파를 이끌고 있는 정동영 전 의장의 거취는 열린우리당 공중분해론과 맞물려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정 전 의장은 당분간 당내 통합신당 작업과 탈당파그룹의 지지율 추이를 지켜보면서 적당한 명분과 시기가 되면 탈당을 결행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호남·충청권 일부 의원들과 중도성향 재선그룹도 탈당에 따른 손익계산서를 들고 최후 선택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언제 다시 탈당 둑이 무너질지 모르는 위기상황에서 여권호 선장에 오른 정세균 의장은 외부세력과의 연대 등 기득권 포기를 담보로 한 세 규합에 총력전을 펼친다는 각오다. 특히 앞으로 한 달 정도 이내에 통합신당 추진과 관련한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대규모 추가 탈당 등으로 열린우리당의 공중분해가 현실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위기감이 강하게 당 주변을 압박하고 있다.
정 의장은 전대 이전부터 김원기 문희상 배기선 유인태 의원 등 당 중진그룹과 교감하에 외부인사들과 전방위 접촉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당 의장직에서 물러나 자유의 몸이 된 김근태 전 의장도 친분이 있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 외부인사 영입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탈당파그룹도 제3후보 영입 경쟁에 적극 뛰어드는 등 독자생존을 모색하고 있는 분위기다. 김한길·강봉균 의원이 주도하고 있는 ‘통합신당모임’은 13일 신당 추진체를 구성하고 소속 의원을 총동원해 외부인사 영입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당모임은 또 정대철 전 고문 등 중량감 있는 범여권 외부 인사들을 접촉하며 민주당과의 연대 문제 등 외연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동영 전 의장 측과 물밑 교감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신당모임은 정 전 의장을 비롯한 잔류파 의원들이 2차 대규모 탈당을 결행할 경우 이들을 끌어안아 세력 확장을 꾀한 다음 범여권 정계개편 주도권을 장악한다는 중장기 플랜도 물밑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천정배 의원이 이끄는 ‘민생정치모임’도 내실을 다지고 있다. 정치권 안팎의 유능하고 개혁적인 인사들과 사회적 대연대를 추진하고 있는 민생정치모임은 상반기 내에 ‘대통합신당 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킨다는 방침이다. 특히 천 의원은 최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 시민사회단체 원로들과 민변 출신 인사들을 두루 접촉하는가 하면 범여권 제3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과도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열린우리당 잔류파나 탈당파그룹 모두 독자생존 차원의 세 확산 경쟁에 돌입한 가운데 차별화 전략도 불을 뿜고 있다. 이러한 차별화 전략은 의원들 간의 치열한 상호 비방전으로까지 번져 냉정한 정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비방전은 우선 통합신당모임에서 시작됐다. 지난 10일과 11일 이틀간 경기도 용인에서 열린 통합신당모임 워크숍에서 노 대통령과 현 정부를 겨냥해 강도 높게 비판했던 게 발단이 됐다. 탈당 당시 참여정부의 국정수행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결국은 노 대통령을 밟고 넘지 못하면 신당도 결국은 ‘도로 열린우리당’이 될 수밖에 없다는 초조감이 배어 있는 모습이다.
특히 이강래 의원은 “노 대통령은 대통령감이 아니다”라는 직격탄까지 날려 상호 비방전에 기름을 부었다. 신당모임과 이 의원의 발언을 접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12일 열린 지도부 마지막 회의에서 문희상 의원은 “탈당세력, 분열세력은 끊임없이 제 발등을 찍고 있다. 일주일 전까지 몸담았던 우리당과 참여정부에 대해 온갖 독설을 퍼붓고 있는데 품위를 잃지 말기를 바란다”며 탈당파의 행태를 비난했다. 이 시점에서 탈당파의 기를 꺾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분위기였다.
친노직계인 백원우 의원은 한 방송에 출연해 노 대통령을 공격한 이강래 의원을 겨냥해 “이 의원이 2004년 겨울 행자부 장관 자리를 달라고 대통령 참모들에게 무릎 꿇고 술을 따른 기억이 있다”며 인신공격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잔류파의 반격에 신당모임은 맞대응을 자제하고 있지만 정계개편 주도권 및 세 확산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양측의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깊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여권이 ‘위장 이혼’한 것뿐이라며 결국 막판 대통합을 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강하게 나돌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주도권 쟁탈전이 치열하기만 하다.
여권 계파 간 생존이 걸린 세력 확산 전쟁에서 어느 계파가 살아남고 어느 계파가 몰락할지가 혼미한 정계개편 정국을 바라보는 또다른 관전 포인트로 부상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