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여기 힘 있는 작가가 있습니다…Future Art Market-Artist
緣(인연, 2016), 162.2×130.3, 캔버스에 아크릴 혼합재료.
Future Art Market-Artist 3
‘겹겹의 붓질을 통해 인생을 그리다’ 이희돈
이희돈의 그림은 추상화다. 추상화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추상은 형상을 빼버린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추상화는 형상이 없는 그림이다. 형상이 없다는 것은 구체적인 이야기가 없다는 말일 게다. 따라서 추상화는 내용이 없는 그림이다. 그러니 추상화를 보며 무엇을 그렸는지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는지를 찾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추상화에서는 뭘 봐야 할까. 무슨 재료와 어떤 기법으로 화면을 꾸몄는지를 찾는 그림이다. 이를 방법론적 회화라고 부른다.
이희돈의 그림도 방법론적 회화다. 그런데 그의 추상화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떤 이야기일까. 작가의 작품 제작 과정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緣(인연, 2016), 130.3×162.2, 캔버스에 아크릴 혼합재료.
그의 작품은 작심하고 그려서는 완성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고 하는 편에 가깝다. 캔버스 위에 그물망 같은 것을 붙이는 데서 그의 작업은 시작된다. 이런 밑작업 위에 작가는 평붓으로 붓질을 한다. 수행하듯이 여러 가지 색채를 무수히 반복해 칠한다. 색채는 붓질의 횟수만큼 층을 이루며 켜켜이 쌓인다. 그물망을 가로세로로 지나는 붓질로 인해 화면에는 다양한 색의 물감층이 쌓이며 불규칙한 점과 선으로 나타난다.
자연스럽게 생겨난 색점의 형태와 다양한 색채의 선으로 만들어진 추상 화면을 통해 이희돈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자신이 살아온 삶이다. 즉 색채로 번안해놓은 자신의 다양한 인생 경험이 그것이며, 겹겹이 쌓인 물감층은 작가가 살아낸 시간의 두께인 셈이다. 결국 우리네 삶은 무수한 붓질에 의해 자연스레 생긴 물감의 흔적처럼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의 연속이며, 그렇게 해서 쌓인 것이 인생이라는 보편적 진리를 추상화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희돈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마무리 작업으로 이루어지는 붓질에 들어 있다. 계속되는 붓질로 인해 생긴 물감층은 예측할 수 없는 형태와 두께를 만들며 그물망처럼 보인다. 그물망을 이루는 개별적 색점은 화면 좌우상하를 끝에서 끝까지 반복 교차하는 붓질의 결과로 생기는 셈이다. 씨줄과 날줄이 연결돼 그물을 형성하듯 전체와 하나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작업으로 그가 보여주는 것은 인간 존재의 존엄함에 대한 경외심이다. 인간은 우주태동부터 현재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까지 연결돼 있으며, 사방팔방으로 이어진 인연에 의해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한 인간의 삶은 자신이 만들거나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만물이 서로 주고받는 작은 힘으로 연결돼 있다는 생각을 스스로 만들어지는 추상 회화로 표현한 것이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