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3조 2000억 추가 손실 숨겨”…알고도 공적자금 투입? ‘외압’ 작용했나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놓은 홍 전 회장이 잠적하고, 서별관회의 참석자들이 하나같이 의혹을 부인하면서 논란은 수그러드는 듯했다. 그러나 야권이 연일 청문회 요구를 하고 있고, 검찰 역시 대우조선해양 비리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서별관회의는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선 서별관회의와 관련해 새로운 의혹이 제기돼 관심을 끈다.
박근혜 대통령과 서별관회의 참석자로 알려진 안종범 경제수석.
홍 전 회장은 인터뷰에서 “당시 최경환 부총리,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등으로부터 정부의 결정 내용을 전달받았다. 정부안에는 대우조선해양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최대주주 은행인 수출입은행이 얼마씩 돈을 부담해야 하는지도 다 정해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야권은 홍 전 회장 폭로에 대해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서별관회의 참석자들은 “홍 전 회장과도 충분한 협의가 있었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서별관회의는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는 비공식협의체이기 때문에 홍 전 회장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일부 인사는 “홍 전 회장이 궁지에 몰리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 후 감사원은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재무상태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아 기업회생의 기회를 놓쳤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직을 맡고 있던 홍 전 회장은 부총재직을 휴직하고 돌연 모습을 감췄다.
그런데 홍 전 회장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정황 증거가 최근 공개됐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지난 9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대우조선해양과 KDB산업은행이 삼정회계법인에 의뢰해 작성한 대우조선해양 실사보고서를 공개했다.
심 대표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회계연도 기준으로 2012년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미청구공사, 추가청구공사 대금, 하자보수 충당 부채 등 실행 예산 및 도급 금액에 따른 조정을 통해 약 1조 6000억 원, 투자 실패·채권 부실 등 다른 20개 항목을 통해 약 1조 5000억 원의 추가 손실을 숨기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심 대표는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상반기 3조 2000억 원의 영업손실을 약식 감리를 통해 공시했지만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3조 1000억 원의 추가 손실이 있었다”며 “추가 손실은 분식회계로 처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을 결정했던 지난해 10월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 이 보고서가 기초 자료로 활용됐다는 게 심 의원 주장이다. 청와대 서별관회의 참석자들이 대우조선해양의 3조 1000억 원 규모의 분식회계 사실을 알고도 4조 원이 넘는 공적 자금 투입을 결정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국민의당은 논평을 통해 ‘정권 실세들이 나서서 지원한 대우조선해양이 결국 관리종목으로 지정될 경우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되기 때문에 이를 막으려고 누군가 외압을 행사해 또 다시 회계 부정을 저지르도록 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산업은행 측은 대우조선에서 작년 하반기 이후 최대 3조 원의 추가 손실이 우려된다는 점은 이미 당시 실사 결과와 함께 발표했던 내용이고 숨긴 적도 없다며 추가 손실을 분식회계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문제라는 반응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실사 결과 3조 원 넘게 추가 손실이 있을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면 추가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상식적인 결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을 내리면서 참고한 보고서를 보면 대우조선해양이 신규 수주 목표치를 달성하고, 기존 거래를 유지하면 충분히 회생가능성이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당시 침체되어 있던 조선해양업계의 상황을 감안하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분석을 내놓은 것이라는 지적이다. 홍 전 회장의 주장처럼 이런 비상식적인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어떤 외압이 작용한 것 아니냐고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우조선해양의 부족 자금보다 더 많은 공적 자금이 지원된 것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다. 보고서는 2016년 대우조선해양의 부족 자금을 2조 4000억 원으로 책정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서별관회의에서 결정한 지원금은 4조 2000억 원이나 됐다. 부족 자금을 모두 지원해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심지어 1조 8000억 원을 더 지원해주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심 대표는 “과도한 자금 지원 결정을 누가했는지 서별관회의 청문회를 통해 밝혀야 한다”며 벼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검찰 수사도 주목받고 있다. 현재 검찰은 대우조선해양의 각종 비리와 관련해 강도 높은 수사를 펼치고 있는데, 홍기택 전 은행장 역시 수사선상에 올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수사 방향에 따라 홍 전 회장이 폭로한 서별관회의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서별관회의는? 책임은 없고 권한은 막강 서별관회의는 청와대 서쪽 별관에서 열려서 붙은 이름이다. 주로 경제부총리, 청와대 수석, 경제부처 장관 등 경제정책을 좌우하는 핵심관료들이 회의에 참석해 주요 경제 안건들을 처리한다. 서별관회의는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시작돼 20년 가까이 이어져오고 있다. 문제는 서별관회의가 철저히 비공개로 열린다는 것이다. 심지어 회의록도 작성되지 않는다. 종종 경제를 크게 좌우할 중요한 안건도 회의에서 처리되지만 누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엄청난 권한을 행사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인 것이다. 홍 전 회장 주장에 대해 당시 참석자들이 “홍 전 회장과도 충분한 협의가 있었다”고 반박하고 있지만 누구 말이 맞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는 셈이다. 따라서 야권에선 서별관회의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국회 대정부질문에 나온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중병에 걸린 기업을 살리지 못했다고 책임을 물으면 아무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마찬가지로 비공개회의를 모두 공개하라고 하면 그 회의에선 아무도 발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표명했다.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