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체제에선 대선 경선 통과 쉽지 않아…탈당설까지 돈다
정치권 시선은 자연스레 김무성 전 대표에게로 향한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비박계 단일화 후보 주호영 후보를 막후 지원했던 김무성 전 대표의 설 자리가 급격히 좁아진 이유에서다. 전국 배낭여행을 시작으로 사실상의 대권 행보 중인 김 전 대표 진영에선 진퇴양난에 빠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흘러나오고 있다.
국내 배낭여행에 나선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3일 광주 광산구 1913송정시장에서 굴비를 들어 보이며 “(김영란법 탓에) 이 좋은 걸 못주고, 못받네”라고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8월 9일 전당대회가 끝나고 난 뒤 여의도 곳곳에선 ‘뒤풀이’가 열렸다. 승리한 친박계와 패배한 비박계 분위기는 확연히 갈렸다. 선거 막판 후보 단일화에 성공하며 내심 당 대표 자리를 노렸던 비박 측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비박 인사들 대부분 이번 전당대회의 결과가 차기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며, 특히 김무성 전 대표에게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은 한 비박 의원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친박계의 조직력이 워낙 탄탄하기도 했지만 우리 스스로도 계파 프레임에만 얽매여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지 못해 패한 것으로 분석된다. ‘무대(김무성 전 대표)’가 비록 외곽에 머물러 있었지만 비박 후보 단일화 과정에 관여했고, 또 공개적으로도 단일화 후보를 지지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김 전 대표가 별 말은 안 하고 있지만 큰 표 차이로 완패한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전국을 순회하며 배낭여행을 하고 있는 김 전 대표는 전당대회 결과에 대해 “당원과 국민의 선택을 존중한다. 새 지도부 탄생을 축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발언들에선 서운함이 묻어난다. “지난 총선 참패를 보고 당의 분위기를 획기적,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는 비주류가 대표가 되길 바라면서 지원을 했다”는 말은 자신이 밀었던 후보가 떨어진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받아들여졌다.
또 “내가 언제부터 비박이었나.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이편, 저편 가르는지 모르겠어. 나를 너무도 잘 아는 사람(이정현 대표)이 그런 식으로 나를 몰아가면 내가 할 말이 없다”는 발언은 비박계가 전당대회 결과로 인해 상처를 입을 것이란 관측에 대한 불만이었다. “일을 잘하기 위해선 여당 대표가 대통령과 정례회동을 해야 한다”는 당부 역시 과거 당 대표 시절 박 대통령과 만날 수 없었던 상황을 꼬집은 것이란 반응이었다.
이러한 모습들은 전당대회 결과가 향후 대권주자로서의 행보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우선 비박 진영에서부터 ‘김무성 회의론’이 일고 있다. 앞서의 비박 의원은 “김 전 대표는 친박에 대항하는 비박계 수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전대에서 반드시 실적을 냈어야 했다. 그래야 김 전 대표를 따르지 않겠느냐. 그런데 ‘박근혜 마케팅’을 펼친 친박에 완패했다. 김 전 대표에 대한 믿음에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수적으로나 질적으로 친박에 열세인 김 전 대표로선 무엇보다 집안 단속이 필요한 상황인데, 이마저도 전대 패배로 차질을 빚고 있는 셈이다.
여권에서의 존재감이나 정치적 입지가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당청 관계가 친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비박계인 김 전 대표가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이정현 대표는 당선 후 김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며 비주류 끌어안기에 나섰지만 정권 재창출보다는 박근혜 정부 성공이 최우선 과제임을 분명히 했다. 당·청의 수평적 관계를 부르짖고 있는 비박계와 김 전 대표를 개의치 않겠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친박 핵심부가 박근혜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 있는 김 전 대표를 달갑지 않게 여긴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는 이정현 대표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이 대표는 지난 총선에서 이른바 ‘옥새 파동’을 일으킨 김무성 대표에 대해서 “자신의 마음속으로 대통령이 다 되어 있다고 믿고는, 과거 3김 같은 카리스마도 없으면서, 전 구성원을 이끌고 갈 큰 가치도 없으면서, 신뢰조차 못 받으면서, 혼자서만 자기 방식대로 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 한동안 주춤하던 ‘반기문 대망론’이 전대 이후 다시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은 김 전 대표 처지를 단적으로 나타내준다. 친박계가 미는 것으로 알려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적어도 당내 경선에서 김 전 대표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윤호석 정치평론가는 “어차피 경선은 ‘룰 싸움’이다. 누구에게 유리한 룰이냐에 따라 승부가 날 것이다. 지난 2007년 경선에서 박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진 것도 룰 때문 아니었느냐”면서 “당 대표와 최고위원 등을 친박이 장악하면서 김 전 대표는 절대적으로 불리해졌다”고 말했다.
비박계는 이정현 대표가 전당대회를 앞두고 공약으로 내건 ‘슈퍼스타 K’ 방식의 대선 경선에 대해서도 김 전 대표를 겨냥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이 방식은 출마한 대선 후보들이 매주 정책 등을 놓고 겨뤄 한 명씩 탈락하고, 마지막으로 두 명만 남겨두고 유권자들로 하여금 최종 후보를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반 총장을 비롯해 최대한 문호를 개방, 경쟁시키겠다는 뜻을 여러 번 내비쳤다. 이는 지지율이 한 자릿수인 김 전 대표에겐 다소 불리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어서 비박계는 부정적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 대표가 당선되면서 친박이 ‘룰 싸움’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 전 대표로선 예선 통과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전대를 전후로 새누리당 내부에선 ‘궁지에 몰린’ 김 전 대표의 탈당설이 흘러나왔다. 새누리당 대권 경쟁에서 불리해진 김 전 대표가 당에서 나와 정계개편을 통해 신당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다는 시나리오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전당대회에서 “새누리당은 두 차례 정권을 내주고, 천막당사의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헤어지거나 이별하지 않았다. 창당과 분당을 밥 먹듯 하는 야당과 달리 우리는 하나였고 앞으로도 하나”라고 말한 것도 김 전 대표 탈당을 염두에 둔 것이란 말이 나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 전 대표 측은 강하게 일축했다. ‘김무성계’로 불리는 한 의원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김 전 대표가 왜 나가냐. 죽어도 안에서 죽을 것이다. 상황이 불리한 것은 맞다. 그러나 김 전 대표를 따르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비박 의원 역시 “김 전 대표는 새누리당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경선 룰이 어떻게 정해지더라도 참여할 것으로 본다. 2014년 전당대회 때도 친박의 서청원 후보에게 열세라는 전망을 극복하고 완승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정치 전문가들 역시 김 전 대표의 탈당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명분도 약할 뿐더러 현실적으로 김 전 대표가 깃발을 세운다 하더라도 참여할 의원들이 얼마나 될지 미지수라는 점에서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지난 2012년의 안철수는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의 지지율을 갖고 있어도 실패했다. 그런데 지금의 김 전 대표는 한 자릿수 지지율이다. 누가 김 전 대표에게 합류하겠느냐. 이 정도 지지율로는 정계개편 시도도 어렵다. 또 새누리당에서 김 전 대표를 따라 탈당할 의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김 전 대표는 전국 배낭여행을 마친 뒤 공식 출사표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당 안에 있기도, 그렇다고 나갈 수도 없는 ‘외통수’에 빠진 셈이다. 김 전 대표를 지탱하는 비박이라는 정치 세력 역시 친박에 비해 ‘로열티’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평이다. 정치권에선 ‘김무성의 한계’가 전대를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말도 나온다. 이에 대해 앞서의 김무성계 의원은 “기회가 한 번은 오지 않겠느냐. 그걸 ‘무대’가 잘 잡아야 할 것이다. 이는 비단 친박과의 싸움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진퇴양난에 빠진 김 전 대표가 대권을 잡기 위해선 그렇게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김무성 서민행보 엇갈린 반응…“진심 알아줘야”vs“쇼하지 마세요” 김무성 전 대표는 본격적인 대권 출사표를 앞두고 호남 지역을 시작으로 전국 배낭여행에 나섰다. 그런데 김 전 대표 모습이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러닝셔츠 차림으로 직접 손빨래 하는 사진, 밀짚모자를 쓴 채 멍한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진 등이 SNS 상에 올라오면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또한 김 전 대표의 덥수룩한 수염도 회자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가 반응은 엇갈린다. 우선 다소 딱딱하고 엘리트 같은 이미지의 김 전 대표가 ‘서민 속으로’ 행보를 통해 민생과 가까워지려는 것은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비박 의원은 “서민 코스프레라는 비난도 있지만 그렇게라도 다가가고 싶어 하는 김 전 대표 마음만은 폄하할 것은 아니지 않느냐. 김 전 대표도 그동안 몰랐던 것을 현장에서 듣고 배웠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곱지 않은 시선도 적지 않다. 친박계 정우택 의원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일부러 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모습, 또 뭐 어디선가 뭐 속옷을 빠는 모습도 나오던데 좀 남사스럽지 않냐”고 말했다. 보수논객 전원책 변호사도 JTBC <썰전>에서 “마을회관에는 세탁기가 없냐. 결국 이미지를 빨래하는 사진”이라고 꼬집었다. 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 소장은 “평소에 김 전 대표가 보여줬던 이미지와 상반돼 오히려 반감이 느껴진다. 서민적인 이미지를 강조해 ‘민생을 살핀다’는 이미지로 보이려고 하는 것 같다. 사실 별로 와 닿지 않는다. 오히려 평소와 같은 자연스러운 모습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국민들을 아직도 순진하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