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승부사 ‘멀리보기’ 혹은 ‘올인’
▲ ‘경선불참’을 고민 중인 손학규 전 지사에게 3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기억될 것 같다. | ||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이번 경선 방식 논란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절감해 정치를 떠날 생각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그는 사석에서 측근들에게 “이렇게 할 바에는 정치를 떠나겠다”는 말을 얼핏 내비치기도 했다고 한다. 먼저 그의 주변 사정을 잘 아는 측근의 얘기를 들어보자.
“손 전 지사는 현실적으로 경선 국면을 돌파할 만한 답이 없기 때문에 답답해서 강원도 산골로 떠난 것이다. 그가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칼을 멋지게 한번 뽑아 보지도 못하고 다시 그것을 칼집에 넣은 것이다. 사실 그는 조직 강화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오로지 지지율 올리기에만 힘을 쏟았다. 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또한 경기도지사 시절 소장파의 맏형으로서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지금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 모든 이유가 모두 자신의 한계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며 매우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현재로선 백의종군해 뭔가 손학규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가장 강한 선택이지 않을까.”
자신의 한계와 함께 당에 대한 실망감도 그의 발걸음을 홀연히 강원도 산사로 이끈 것으로 전해진다. 캠프 측 조용택 언론특보는 “손 전 지사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면서 한나라당을 바꿔봐야 하겠다는 각오로 임했는데 최근 세 과시나 하는 구태를 재현하는 경선 행태를 방관하는 당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빅2’의 거대한 조직 대결에 경선이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는 상황을 참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홍준표 의원은 “손 전 지사가 경기도지사를 하면서 대통령 하려고 했다면 전국 조직을 만들고 전국 당원들과 접촉하고 당내 지지세력을 끌어 올렸어야 했다. 그런데 손 전 지사는 경기 지사 일에만 충실했다. (손 전 지사가) 너무 정직하게 하다보니까 당내 지지세를 끌어올릴 틈이 없었다”며 나름대로 손 전 지사의 ‘패인’을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과연 이대로 주저앉을까. ‘죽으면 살 수 있다’는 역설적 조어처럼 막바지로 몰린 손 전 지사에게도 기회는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는 것이 정치판의 논리다.
손 전 지사는 일단 경선 불참이라는 결연한 칼을 뽑아 들었다. 더 이상 경선에 참여해 봐야 공연히 이-박 대결의 들러리밖에 될 수 없다는 판단에서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그 뒤의 행보다. 경선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손 전 지사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4가지 정도로 보인다.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탈당 결행이다. 언젠가는 뽑아들 수도 있는 이 초강수는 그야말로 정치생명을 건 도박이랄 수 있다. 대부분의 정치 전문가들은 그동안 ‘탈당은 곧 사망’이라고 경고해 왔다. 경선 룰 결정 방식을 문제 삼을 수는 있지만 ‘빅2’가 합의에 이른 마당에 소수파가 이를 거부하며 탈당까지 하는 것은 치명적이라는 판단이 우세했던 것이다.
손 전 지사가 탈당 카드를 택할 수 있는 것은 제 3세력의 후보가 되는 길을 모색하거나 여권의 통합신당 대권주자로 우뚝 서는 두 갈래 길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는 실제 중도세력 모임인 전진코리아 축사에서 “우리는 이제 새 정치질서의 출현을 당위성으로 바라보고 있다”며 그 가능성에 한 자락을 걸치기도 했다. 여권의 한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전진코리아는 여권의 메인 스트림이 아니다. 세력화될 가능성이 별로 없는 제 3세력에 몸을 의지하는 것은 곧 정치적 사망이다”고 해석한다.
범여권 통합신당의 대권 주자 가능성도 한때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더더욱 여의치 않다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앞서의 관계자는 이에 대해 “여권의 대권 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두 사람이 여권의 최대 주주 아닌가. 그런데 양측 모두 손 전 지사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노 대통령은 아무리 어렵지만 남의 집에서 후보를 데려오는 것은 반대한다고 했다. 정세균 열린우리당 의장은 ‘손학규는 거론조차 하기 싫다’며 선을 그은 상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손 전 지사가 호남 사람들에게 완전히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회의적인 것으로 안다. 그래도 손 전 지사가 탈당해 여권에서 베팅을 하게 된다면, 경선 후보군의 병풍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손 전 지사가 경선에 불참하면서도 당에 남아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두 가지다. 우선은 백의종군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효과가 있다. 먼저 차차기를 위해 힘을 비축하는 것이다. 공정한 경선 관리를 하면서 당에 공헌하고 ‘다음은 손 전 지사 차례’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빅2’가 분열하거나 이 전 시장이 몰락하면서 그 대안으로 손 전 지사가 급부상할 가능성을 엿보는 것이다.
그런데 손 전 지사 측은 “정치 생리상 차기 보장이란 있을 수 없다. 또한 무슨 요행을 바라면서 정치를 하면 되겠는가”라며 이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힌다.
이와 함께 이 전 시장이나 박 전 대표 누군가와 전략적 동맹을 맺는 경우다. 이 전 시장이나 박 전 대표 모두 손 전 지사와 전략적 동맹을 맺을 수만 있다면 천군만마의 지원군을 얻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손 전 지사가 두 사람 중 누구에게도 선뜻 손을 내밀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시간을 두고 장고에 장고를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손 전 지사가 봉정암 구상을 끝낸 뒤 뭔가 일을 낼 것 같다”며 탈당에 점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만약 그가 ‘지옥의 길’을 택한다면 정치판은 ‘손학규 나비효과’에 따른 대대적인 정계개편으로 요동칠 전망이다. 과연 손 전 지사는 어디에서 꽃망울을 터뜨리고 싶은 것일까.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