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가지 바이러스 ‘원샷원킬’…가을전쟁 승자 누구
4가 백신이란 한 번 접종으로 4가지 종류의 독감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을 말한다. 기존에는 3가 백신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대한감염학회가 2014년 권장 성인예방접종 지침표를 개정하면서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지침표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최근 10년간 예상한 B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실제로 유행한 바이러스 계통이 50%가량 일치하지 않았고 두 가지 계통의 바이러스가 동시에 유행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4가 백신 접종을 권고했다.
왼쪽부터 GSK의 플루아릭스테트라, SK케미칼의 스카이셀플루4가, 녹십자의 지씨플루쿼드리밸런트. 사진출처=각사 홈페이지
지난해 GSK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4가 백신을 판매해 선점 효과를 누리고 있다. GSK는 지난해 약 150만 도즈(1회 접종분)의 백신을 공급한 데 이어 올해는 200만 도즈 이상을 공급할 계획이다. GSK의 플루아릭스테트라는 당뇨병, 호흡기질환 환자 등 만성질환자에게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GSK 관계자는 “플루아릭스테트라의 여러 임상실험과 객관적인 자료에 따르면 만성질환자에 대한 경쟁력은 충분하다”며 “올해부턴 다른 백신 업체도 4가 백신을 판매하지만 우리가 목표하는 타깃이 뚜렷하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밝혔다.
SK케미칼은 백신 생산량을 지난해 360만 도즈에서 올해 500만 도즈로 늘릴 계획이다. SK케미칼의 경쟁력은 국내 최초로 세포배양 방식을 통해 4가 백신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세포배양 방식은 기존 유정란 방식과 달리 계란을 사용하지 않고 무균 배양기를 통해 백신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항생제나 보존제의 투여가 필요 없고 계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도 접종이 가능하다. 또 백신 생산에 약 6개월이 걸리는 유정란 방식과 달리 세포배양 방식은 3개월 내에 백신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세포배양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는 낮은 생산성과 높은 생산 가격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배양기 내부 표면에서만 백신이 생산됐다. 그러나 SK케미칼은 부유방식 기술을 개발해 배양기의 표면뿐 아니라 배양기 내부 전체 공간에서 백신을 생산할 수 있어 생산성이 높아졌다. SK케미칼 관계자는 “유정란 방식은 양계장 시설도 만들어야 하고 제조 이후 달걀을 폐기하는 폐기비용까지 든다”며 “이제는 세포배양 방식으로 대량 생산까지 가능하니 사회적 비용까지 합치면 유정란 방식보다 더 가격 경쟁력이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공급 가격은 8월 말 이후 결정될 예정이다.
SK케미칼의 마지막 숙제는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지난해 SK케미칼이 생산한 백신에서 주요 성분의 함량이 미달돼 15만 도즈 분량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판매 승인을 받지 못한 바 있다. SK케미칼 관계자는 “작년은 백신 사업 첫 해고 미숙한 점이 많아 정부 공인기준과 약간 오차가 발생했다”며 “올해는 그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검사하겠다”고 밝혔다.
SK케미칼의 백신 공장 안동 L하우스에서 백신이 생산되는 모습. 사진제공=SK케미칼
녹십자는 올해 예년과 비슷한 수준인 900만 도즈의 백신을 국내에 공급할 예정이다. 녹십자는 지씨플루쿼드리밸런트의 품질로 승부를 보겠다는 입장이다. 녹십자는 임상실험에서 기존 3가 백신과 유사한 예방 효과와 안전성을 보였다. 녹십자의 3가 백신인 지씨플루는 범미보건기구(PAHO)의 백신 입찰 시장에서 다국적 제약사를 제치고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 2009년 이후 한 번도 품질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도 강점이다.
GSK는 유한양행과, SK케미칼은 JW신약과 백신을 공동판매하지만 녹십자는 단독 영업한다. 녹십자 관계자는 “녹십자 제품은 녹십자 직원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기에 한동안은 공동판매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시장이 4가 백신 위주로 재편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3가 백신은 중요하다. 질병관리본부(질본)가 시행하는 무료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사업 때문이다. 질본은 올해 무료 예방접종에서 3가 백신을 사용할 계획이다. 질본에 따르면 올해 무료 예방접종 대상자는 지난해와 비슷한 540만 명가량이다.
SK케미칼과 녹십자가 3가 백신과 4가 백신을 1 대 1 비율로 생산 판매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들은 대부분 3가 백신을 질본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면 GSK는 올해 4가 백신만 공급해 질본 무료 예방접종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작년 350억원어치 폐기…수요예측 머리싸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인플루엔자 백신 사용량은 약 1700만 도즈다. 그러나 백신 제조사들이 국내에 공급한 백신은 약 2200만 도즈다. 약 500만 도즈가 초과 공급된 것이다. 매년 바이러스 균주가 달라지기 때문에 남은 백신은 모두 폐기처분된다. 따라서 누가 백신을 더 적게 폐기하는지 싸움도 제조업체들 사이에서는 치열하게 전개된다. 지난해 기준 1도즈당 백신의 정부 조달 가격은 7000원. 이대로 계산하면 지난해 350억 원어치 백신이 폐기됐다. 각 사의 폐기량에 대해 업체들은 “업계에서 공개하지 않는 사항”이라며 비밀에 부치고 있다. 업체 입장에서는 수요 예측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한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관계자는 “우리가 타깃으로 하고 있는 만성질환자 숫자를 따져 나름 치열한 계산을 거쳐 백신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SK케미칼 관계자 역시 “기술력과 마케팅력, 병원과 소비자의 예상 반응까지 면밀히 체크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올해 주요 업체들이 백신 공급량을 작년에 비해 늘리는 만큼 폐기량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식약처 관계자는 “여전히 3가 백신을 생산하는 중소 백신 제조사들도 있기에 정확한 수요와 공급 계산이 힘들 것 같다”며 “고객이 4가 백신에 비해 저렴한 3가 백신을 선택할 수도 있어서 시장 상황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