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 대망론 실어 ‘용’ 만들기
▲ 지난해 2월 당의장 후보로 나섰던 김혁규 의원. 친노그룹이 그를 대권후보로 띄우려는 움직임이 포착됐다. | ||
한때 범여권 내 유력한 대권후보였던 고건 전 총리를 강력히 비판, 낙마시켰던 노 대통령이 12일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지사를 강도 높게 비판하자 정치권은 다양한 해석을 내고 있다.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이후 민감한 정치 현안에 대해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것은 레임덕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고자 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손 전 지사 비판을 둘러싼 여러 해석 가운데 노 대통령이 친노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대권 비밀플랜에 입각한 ‘대권 경쟁자 죽이기’ 차원에서 내놓은 의도적인 공격이라는 관측이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이미 자신의 후계자를 낙점해 놓고 친노그룹을 중심으로 ‘후계자 띄우기’ 작업을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을 것이란 한 단계 더 나간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이 염두에 두고 있는 범여권 대권후보는 누구일까. 범여권 관계자들과 정치권 소식통들의 관측을 종합해 볼 때 노 대통령은 내심 PK(부산·경남) 출신 후보를 내세워야 영남에 지역기반을 두고 있는 한나라당 후보(이명박·박근혜)를 이길 수 있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른바 ‘PK 대망론’에 방점을 찍고 후계자를 검증하고 있는데 경남 출신으로 민선 경남도지사를 세 번이나 역임한 김혁규 의원을 1순위에 올려 놓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명숙 전 총리와 유시민 복지부 장관도 노 대통령이 의중에 두고 있는 후보군에 속해 있으나 김 의원에 비해 행정경험이나 연륜 등 경쟁력에서 다소 뒤떨어지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일요신문>은 친노그룹이 ‘김혁규 띄우기’ 플랜을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친노그룹을 중심으로 한 대권 비밀 플랜은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386 세대 참모진 리더격인 안희정 씨가 주도하고 있다. 안 씨는 지난해 8·15 사면이후 공개적인 외부활동을 자제하며 노 대통령의 임기말 국정구상을 조용히 지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찬 전 총리의 방북 과정에서는 모종의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고 청와대 비서실 추가 개편 과정에서 청와대에 입성할 것이란 관측도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안 씨는 자신이 청와대에 들어갈 경우 비토세력들의 강한 견제 등으로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고사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 씨는 대신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노 대통령의 개혁정책을 지원하는 동시에 범여권 통합신당과 대선정국에서 막후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쪽을 선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 안희정 씨 | ||
특히 안 씨와 일부 친노의원들은 ‘김혁규 띄우기’ 플랜에 의기투합하고 대권 비밀프로잭트를 물밑 가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대권 관련 문건에도 김혁규 의원을 범여권 대권후보로 띄우기 위한 전략이 담겨져 있었다. 안 씨 측근들이 작성한 이 문건에는 김 의원이 선점해야 한 대권전략과 보안해야 할 점, 범여권과 한나라당 대권 경쟁자들의 장단점을 분석한 비교표를 바탕으로 한 김 의원의 경쟁력 등이 적시돼 있다.
안 씨의 측근인 A 씨는 문건과 관련, “실무단계에서 구상한 습작 수준이어서 내용이 다소 빈약하지만 친노그룹을 중심으로 ‘김혁규 대통령 만들기’ 플랜이 진행 중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친노직계로 의정연을 이끌고 있는 이화영 의원은 지난 23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정통 민주정부 10년의 성과를 계승하고 진보세력이 염원하는 한반도 평화와 새로운 사회투자국가 건설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연구하고자 친노그룹 중심의 모임을 정례화하기로 했다”며 “친노그룹과 고민을 함께하고 있는 안희정 씨도 모임에 참석하고 있지만 주도적 역할이 아닌 실무적 지원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친노그룹이 김혁규 의원을 대권주자로 밀기로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의원은 “지금 단계에서 뭐라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김혁규 의원은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정통성을 승계할 수 있는 훌륭한 후보라고 생각한다”고 답해 그 가능성을 열어놨다.
‘PK 대망론’과 ‘이명박 대항마’를 명분으로 내달 중순께 대선 출마를 공식화 할 것으로 알려진 김혁규 의원 측이 당내 친노성향 의원 30~40명의 서명을 받아 경선 출마를 선언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도 ‘김혁규 띄우기’ 플랜을 부추기고 있다.
이처럼 친노그룹이 구상하고 있는 ‘김혁규 대권 플랜’이 노 대통령의 대권 복심을 반영하고 있는지 여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현역 대통령이 특정후보를 지원할 경우 당 안팎의 거센 후폭풍 등 상당한 정치적 파문을 감내해야 하는 만큼 노 대통령은 대선 막판까지 심중에 있는 후계자를 드러내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다만 노 대통령을 정점으로 청와대 참모진과 친노그룹의 심상찮은 정치 행보에 비춰볼 때 특정후보 지원 차원을 넘어 재집권 전략과 맞물린 비밀 대권 프로젝트가 가동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