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 투자자에겐 제한적 영화 정보 제공…결국 ‘깜깜이 투자’ 하는 셈
<인천상륙작전> 크라우드펀딩의 투자 최소단위는 1주며 금액으로는 50만 원이다. 최대 투자금액은 200만 원. 영화가 흥행하면서 투자자들은 이미 수익을 낸 상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가 계속 상영 중이어서 앞으로 관객이 750만 명 이상 들면 30.5%, 800만 명을 돌파하면 35.6%로 수익률은 계속 올라간다.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이란 자금이 필요한 수요자에게 투자를 원하는 대중이 직접 투자하는 직접금융의 확장된 버전이다. 자본시장법에 따라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에 투자하면 전매제한이 있어 투자자는 최소 1년간 투자기업의 주식을 보유해야 한다. 성장 초기의 기업이 안정적으로 투자받을 수 있도록 돕고, 펀딩 플랫폼에서 직접투자하지 않은 2차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그러나 일반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1년 이상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초기 기업에 섣불리 투자하기가 꺼려질 수밖에 없다.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이 지난 1월 출범 후 6개월이 지났지만 5000여 명의 투자자를 모으는 데 그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으로 자금을 투자받을 수 있는 기업은 업력 7년 이하의 중소기업이다. 예외적으로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문화사업 등 프로젝트를 하는 경우(비상장 중소기업이 기존 사업과 회계를 분리해 운영하는 경우 포함)에는 업력에 무관하게 이용 가능하다.
‘인천상륙작전’의 흥행 성공으로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한 투자자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인천상륙작전>은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으로 자금 모집에 성공한 첫 번째 영화다. IBK투자증권이 지난 3월 일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집한 결과 단숨에 5억 원을 끌어모았다. 영화가 흥행하고 짭짤한 투자 수익을 안겨주자 ‘시네마 투자’에 대한 일반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문화콘텐츠의 경우 제작사가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목적이 종료되면 바로 청산하기 때문에 투자자는 투자 결과를 빠르게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자본시장법에 따라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의 제약인 ‘1년 간 전매제한’이 사라지는 셈이어서 일반 소액투자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요소다.
하지만 시네마 투자는 고위험·고수익 투자 상품군으로 분류된다. 영화 개봉 후 관객 동원 수에 따라 변동성이 큰 데다 관객이 얼마나 들지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증권형 크라우드펀딩 도입으로 일반투자자도 쉽게 영화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정확한 정보 없이 투자하다가는 큰 손실을 안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 6월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으로 일반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집한 <사냥>은 손익분기로 삼은 관객 164만 명의 절반도 안 되는 64만 관객(18일 기준)을 동원하는 데 그쳐 영화에 투자한 일반투자자들은 손실을 면치 못하게 됐다. 현재 관객 수로 봤을 때 <사냥>에 투자한 일반투자자들은 투자금의 절반도 건지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의 시네마 투자와 관련해 가장 큰 문제는 일반투자자들에게는 해당 영화에 대한 정보가 거의 가려져 있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투자자들이 알아야 할 기본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반투자자들은 영화의 기본인 시나리오조차 온전히 보지 못한 채 투자에 참여하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대형 투자사들이 영화에 투자할 경우 시나리오를 물론 시놉시스, 사업계획서, 예산서 등 해당 영화에 대한 정보를 꼼꼼히 검토하는 것이 상식이다. 또 영화 제작사는 대형 투자사에 제작 진행 상황을 주기적으로 알릴 뿐 아니라 촬영본·편집본까지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가 일반 소액투자자들에게는 닫혀 있다. 시네마상품에 투자하는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한 일반 소액투자자들에게는 기껏해야 해당 영화의 줄거리 요약과 감독·배우 프로필 정도만 제공될 뿐이다. 소액투자자들은 깜깜이 투자를 하는 셈이다.
영화제작사도 할 말은 있다. 대형 투자사들의 경우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도 비밀이 보장되지만 일반인들에까지 시나리오를 비롯해 영화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알린다면 영화 제작과 흥행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명필름 관계자는 “소액투자자에게 시나리오를 공개하는 것은 영화를 개봉하기도 전에 내용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관객 동원과 수익성에 직접적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중개사의 문제도 있다. 시네마 투자를 활발히 하고 있는 IBK기업은행은 자체적으로 문화콘텐츠금융부를 신설해 운영할 만큼 전문적으로 연구·투자하고 있지만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하는 일반투자자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정보 제공에 소홀하다.
IBK투자증권 온라인 사이트에는 <인천상륙작전> 투자를 모집하면서 ‘상영 예정 영화의 특성상 영화에 대한 세부 내용은 상영 전에 미리 공개할 수 없으며,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소개는 포털사이트의 영화 안내 페이지 등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짧게 소개할 뿐이다. 투자자들이 알아서 판단하라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심지어 스태프를 채용할 때도 시나리오를 보여준다”며 “다만 외부 유출 시 유출자를 알 수 있도록 각 시나리오에 신상이 포함된 워터마크를 찍어두는데, 소액투자자들에게도 이처럼 시스템을 보완하면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
크라우드펀딩으로도 영화 독립성·다양성 지키기 어려워 지난 1월 도입된 증권형 크라우드펀딩과 달리 순수 크라우드펀딩은 일반인들이 영화나 예술계에 기부형식으로 자금을 지원해주는 개념에 가깝다. 따라서 크라우드펀딩이 도입되면 영화의 다양성이 확보되고 제작의 독립성이 지켜질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예산을 모집하면 대형 투자자들의 입김에서 벗어나 영화의 다양성·독립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영화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전망에 비관적이다. 국내 영화계 현실은 대형 투자사의 투자금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이를 대형 배급사가 유통시키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 같은 구조에서 제작사는 대형 투자사와 배급사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일 수밖에 없다. 즉 제작사는 ‘갑’인 투자자와 배급사의 입김에 휘둘리는 ‘을’의 처지다. 특히 CJ, 롯데 등 대기업이 막대한 자금과 유통망을 활용해 영화산업을 장악하면서 이 같은 현실은 더해졌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오히려 10년 전보다 영화 제작의 독립성이 떨어졌다”며 “투자자와 배급사의 간섭이 없을 때 독립성이 지켜지는데 캐스팅 단계부터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경우가 태반인 현실에서는 영화의 독립성을 지키기가 사실상 힘들다”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영화계는 대형 투자사·배급사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크라우드펀딩에 대해 회의적이다. 현재 영화 한 편이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으로 조달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은 7억 원에 불과하다. 상업영화 한 편의 제작비라기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실제로 크라우드펀딩이 성사된 영화들의 자금 조달 규모는 3억~5억 원 수준에 그친다. 크라우드펀딩이 성사됐다 해도 대형 투자사·배급사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한 크라우드펀딩 중개사 관계자는 “속을 들여다보면 영화사들이 크라우드펀딩을 하는 것은 자금 조달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케팅에 목적이 있다”며 “펀딩에 참여한 투자자는 해당 영화를 지지하고 홍보하는 잠재적 고객이자 마케터”라고 말했다. 영화에 투자한 일반투자자는 해당 영화가 개봉하면 필연적으로 관람하고 지인들을 동반하거나 영화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게 마련이다. 본인이 투자한 영화가 흥행해야 투자금과 수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크라우드펀딩이 영화의 다양성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대해서도 영화계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앞의 영화계 관계자는 “일반 투자자들이 영화에 투자하는 까닭은 본질적으로 수익을 거두기 위해서인데 흥행하기 힘든 독립영화·예술영화에 투자하겠느냐”며 “크라우드펀딩이 상업영화에 치우쳐 있는 현실에서 영화의 다양성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