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후에서 정계개편 주도할 듯…잠룡들은 ‘김종인 역할론’을 ‘대선 불쏘시개’로 한정
김종인 전 대표.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독단적인 행보로 때때로 ‘차르 리더십’이란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그는 더민주의 중도화 전략을 고집, 끝내 총선 승자로 등극했다. ‘김종인 역할론’이 1992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중도화 전략인 ‘뉴 DJ 플랜’의 마지막 퍼즐을 맞춘 김종필(JP) 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총재를 연상케 하는 이유다.
김종인 발 대선 플랫폼의 큰 그림은 ‘중도화’ 전략이다. 단순히 이념에 국한한 중도 노선 추구는 아니다. 경제민주화의 상징인 그가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를 외쳤듯, 실사구시 정책노선을 통한 중도 외연 확장이 핵심이다. 특정 정파의 당 독식화도 반대한다. 주류니, 비주류니 하는 조직논리는 뒷전이다. 김 전 대표가 당내 주류인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계와 사사건건 대립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 전 대표는 8월 21일 국회에서 가진 퇴임 기자회견에서 “경제민주화·책임정치·굳건한 안보, 이 세 가지 축이 대선 승리의 관건”이라며 “이를 위한 선결조건은 개헌”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판 흔들기’다.
그러면서 제 정당·정파 인사들이 참여하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설치를 촉구했다. 그간 김 전 대표가 임기 단축을 불사하면서 개헌을 추진하는 후보의 지지 가능성을 밝혔다는 점에서 ‘개헌 연합 작전’에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전 대표의 대선 플랫폼 안에 있는 대권주자는 여야 통틀어 10여 명이다. 그는 퇴임 기자회견을 일주일여 앞둔 8월 13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정계복귀가 임박한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과 배석자 없이 2시간 동안 단독 비공개 회동했다. 이들의 구체적인 회동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제3 지대 정계개편에 관한 얘기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표가 퇴임 기자회견에서 “더민주가 아닌 (여야에 상관없이) 경제 민주화를 위한 역할을 맡겠다”고 한 부분을 놓고 손 전 고문을 염두에 둔 말이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다. 앞서 김 전 대표는 지난 6월 ‘2016 광주세계웹콘텐츠페스티벌’에서 손 전 고문에게 “서울 올라오셔야죠”라며 ‘손학규 정계복귀’에 불을 지핀 바 있다.
김 전 대표는 손 전 고문 외에도 독자 행보에 나선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세대교체 주자 안희정 충남지사와 김부겸 더민주 의원, 이재명 성남시장 등을 두루 만났다. 여당 내 비박(비박근혜)계인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김무성·유승민 의원도 김종인 발 정계개편 내에 있다.
여의도 정가에선 김 전 대표가 자신이 세운 장기판의 말을 찾고 있는 모양새다. 김종인 발 정계개편의 파급력에 따라 ‘야권통합’ ‘손·안(손학규·안철수) 연대’ ‘더민주 내 세력·세대교체’를 넘어 ‘여권 정계개편’의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친박(친박근혜)·친문’을 제외한 제 세력의 헤쳐모여다. 김 전 대표는 9월 전국 순회를 통해 경제민주화 행보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김종대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과 주진형 전 한화증권 대표, 곽수종 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등이 김 전 대표를 뒷받침할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대목은 김 전 대표의 대권 구상이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의 전개 과정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는 점이다. 호남과 재야세력 등에 지지층이 한정된 DJ는 1992년 중도화 전략인 ‘뉴 DJ 플랜’을 제시, 중간층 다가서기의 서막을 알렸다. 정계은퇴를 번복한 DJ는 1995년 복귀 당시 민주정의당(민정당)에서 세 번(11대∼13대)이나 당선된 이종찬 전 의원을 전격 영입했다. 이 전 의원은 수평적 정권교체 이후 국민의정부에서 제22대 국가정보원장을 지냈다. DJ가 1992년 대선 당시 경쟁자이기도 했던 이 전 의원을 영입, 이른바 ‘적과의 동침’을 구성한 것이다.
DJ가 1992년과 1995년 두 차례에 걸쳐 ‘선 정책의 중도화’-‘후 세력의 중도화’ 전략을 쓴 점은 눈여겨볼 부분이다. 김 전 대표의 대선 플랫폼 전개 과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념의 중도화’를 천명한 김 전 대표에게 남은 것은 DJ가 중도화 전략에 마침표를 찍었던 인물구도 맞추기다.
DJ의 중도화 전략에 화룡점정을 한 인물은 ‘영원한 킹메이커’인 JP였다. 1990년 3당(민정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 이후 JP는 1992년 대선에서 내각제를 약속받고 YS에게 자리를 양보했지만, 결국 팽당했다. 1996년 총선에서 자민련 돌풍을 일으킨 JP는 1년 뒤 대선에서 내각제를 고리로 DJP연합에 합의했다. DJ의 중도화 전략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이다.
헌정 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는 DJP연합의 호남과 충청 등 지역적 연대,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연대 등이 맞물린 결과였다. 당시 신한국당이 이회창과 이인제로 분열, 지지층 결집과 함께 중도층 갈라치기가 핵심 변수로 격상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DJP의 노련한 승부사 기질이 역사를 바꾼 ‘신의 한 수’였던 셈이다. 더민주 한 중진 의원은 “우리 당은 (여전히) ‘선과 악’, ‘가치 대 비가치’, ‘미래 대 과거’, ‘개혁 대 보수’ 같은 이분법에 여전히 익숙하다”며 중도화 전략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김 전 대표의 대선 플랫폼이 차기 대선정국의 태풍의 눈인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다. 2012년 대선을 기점으로,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총선 등의 핵심 변수는 중원(세력)과 경제민주화(이슈), 50대(세대) 등이다. 중간층을 누가 포섭하느냐가 선거 당락을 가르는 분수령이라는 얘기다.
야권의 아킬레스건인 친노·친문 패권주의는 중도 외연 확장의 최대 걸림돌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닮아가는 한국 경제의 최대 화두는 중산층 복원이다. 경제민주화의 상징인 ‘김종인 역할론’이 유효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한 수도권은 야권 지지층으로, 영남과 충청은 여권 지지층으로 양분된 상황에서 호남의 전략적 선택은 차기 대권 승부를 결정짓는 변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김 전 대표는 호남 출신이다. 더민주 범주류 한 관계자는 “주류든 비주류든 김 전 대표를 팽하고 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뜻밖의 승부사’ 기질을 지닌 김 전 대표의 타이밍 정치 때문이다.
실제 그는 더민주 사령탑을 맡은 지난 1월 말부터 4월 13일 총선까지 뉴스의 중심이었다. 지난 2월 7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신 북풍 논란이 일 때 그는 느닷없이 ‘북한 궤멸론’을 꺼냈다. 중도층을 겨냥한 전략적인 발언으로 분석됐다. 2월 테러방지법을 위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가 정국 이슈로 떠오르자 같은 달 29일 “선거 지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라고 이종걸 당시 원내대표를 질타했다.
김 전 대표는 또 더민주 내 노선 투쟁이 수면 위로 부상한 3월 10일 국민의당에 ‘야권통합’을 제안했다. 3월 하순 들어 비례대표 순번 논란으로 ‘셀프 공천’ 비판을 받자, ‘사퇴 승부수’를 던져 문재인 전 대표까지 만류하는 그림을 만들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슈를 던지는 타이밍과 갈등의 긍정적인 부분을 활용하는 전략적 갈등 국면 조성은 김 전 대표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표와 문 전 대표의 갈등을 놓고 당 안팎에서 중도층과 기존 지지층을 포섭하려는 전략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그러나 김종인 대선 플랫폼의 그림자도 명확하다. 킹보다는 킹메이커에 가까운 김 전 대표는 DJ보다는 JP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크다. 대권 여의주를 띄우는 ‘불쏘시개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 JP는 김영삼(YS)과 DJ에게 연달아 ‘팽’당하며 ‘충청도 핫바지론’을 탈피하는 데 실패했다. 대권 때마다 캐스팅보트로 거론됐지만, 불쏘시개 이후 언제나 팽당했다.
김 전 대표도 마찬가지다. 더민주 내 강경파가 향후 당내 주도권을 잡을 경우 ‘김종인 역할론’의 공간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나 손 전 고문 등도 ‘김종인 역할론’을 장기 전략으로 쓸지 미지수다. 4년 전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 당시 두 번이나 당무를 거부한 그는 여권에서도 부담스러운 존재다. 대선 판을 흔들어도 그의 꿈은 끝내 이뤄지지 않는 영원한 2인자로 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종인 장기판’의 첫 시험대는 중도 세력화 여부다. 이 지점이 ‘김종인 사단’ 출범의 분수령이다.
윤지상 언론인
“차차기 대권열차 탑승하자” 야권 서울시장 후보군 움직인다 야권의 대선 시계가 빨라지면서 대권의 급행열차인 차기 서울시장 후보군의 물밑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2018년 6월에 치러질 예정이지만, 후보군은 2017년 대선 정국과 함께 물꼬를 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권 잠룡으로 분류되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남경필 경기도지사, 안희정 충남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의 차기 대선 출마가 현실화될 경우 이 같은 움직임은 한층 증폭될 전망이다. 최대 관심사는 역시 서울시장 후보군이다. 박 시장의 차기 대권 도전 여부가 불투명한 터라, 야권 내부에서도 표면적인 움직임은 없는 상황이다. 다만 당 내부에선 몇몇 인물군이 ‘포스트 박원순’ 체제의 적임자로 거론된다. 야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4선의 박영선 의원(서울 구로을)과 3선의 우원식 의원(서울 노원을), 3선을 지낸 전병헌 전 의원 등이 후보군으로 꼽힌다. 박 의원은 중도파 모임인 통합행동 소속이다. 박 의원은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내 박원순 서울시장(52.15%)과의 야권 단일후보 경선에서 45.57%를 기록, 패한 바 있다. 최규엽 당시 민주노동당 후보는 2.28%에 그쳤다. 야권 발 정계개편의 중간지대 영역 확장 여부에 따라 박 의원의 행보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인 우 의원은 당내 주류인 친문(친문재인)계와도 가깝다. 당 산하 을지로위원회 위원장 역할에 대한 호평으로 계파와 관계없이 두루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현재 가습기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다. 20대 총선에서 낙천한 전 전 의원은 정세균계로, 범주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그는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당내에서 가장 먼저 출마 의사를 밝혔다. 그만큼 서울시장에 대한 애착이 적지 않은 셈이다. 20대 총선 낙천에 대한 동정표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호재다.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의 대표 격인 우상호 원내대표도 변수다. 본인이 직접적인 출마 의사를 밝힌 적은 없지만, 당내 운동권 그룹에선 우 원내대표의 출마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당 한 관계자는 “출마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원내대표 이후 대표나 대권주자로 갈 수밖에 없지 않으냐. 서울시장을 거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우 원내대표를 호평하며 잠재적 대선주자로 꼽는 것으로 알려진 점을 고려하면, 정계개편 향방에 따라 차기 대권주자와 차기 서울시장 사이에서 줄타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포스트 박원순’ 체제를 향한 야권 주자들의 전쟁도 초읽기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