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20대 여성…퍼가고 퍼오고 ‘맞팔 사이’ 알고보니 생판 남남
인스타그램 계정 ‘강남패치’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검거된 ‘강남패치’의 운영자 정 아무개 씨(여·24)는 자신의 범행동기에 대해 “자주 가던 클럽에서 국내의 한 대기업 회장의 외손녀를 보고 박탈감과 질투를 느껴 범행을 시작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정 씨가 지난 5월 초 개설한 ‘강남패치’는 운영 초반에 명품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한 일반인 여성을 겨냥한 게시물을 여러 건 올려 왔다. 이 여성이 수차례 성형을 해 과거를 세탁했으며, 쇼핑몰을 차리기 전에는 강남 유흥업소에서 접대부로 일했다는 내용이었다. 정 씨는 이 여성에 대해 “재벌 손녀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친손녀도 아니다”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팔로어들이 급속도로 증가하자 정 씨는 이들로부터 강남의 유명한 ‘82피플(클럽 등을 돌아다니며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은어)’에 대한 제보를 받아 게시물을 올리는 방식으로 계정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얼짱, 레이싱 모델, 인기 쇼핑몰 운영자 등 젊은 여성이 정 씨의 주된 먹잇감이었다. 정 씨는 이들이 유흥업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들이 유흥업소에서 연예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게시하기도 했다.
유흥업소 접대여성이 연루된 ‘박유천 사건’이 불거지면서 ‘강남패치’의 팔로어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정 씨의 ‘강남패치’는 신고를 받고 계정이 정지되기 전까지 무려 10만 명 상당의 팔로어를 보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피해자들의 신고를 받고 계정이 수차례 정지되거나 삭제됐지만 정 씨는 30여 개의 또 다른 아이디를 이용해 계속해서 새로운 ‘강남패치’ 계정을 만들어 운영했다.
‘강남패치’의 게시물이 이슈화되자, 이를 다른 홈페이지로 옮겨 공개한 뒤 삭제를 요청하는 피해자들에게 금품을 요구한 인터넷 블로그 운영자 김 아무개 씨(28)도 함께 검거됐다. 경찰은 정 씨에게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허위사실 유포) 위반 혐의를 적용하고, 김 씨에게는 같은 혐의에 공갈·협박 혐의를 추가 적용했다.
강남경찰서 사이버팀 관계자는 “현재 정 씨가 ‘강남패치’ 계정을 운영하면서 피해자들에게 금품을 요구하는 등 공갈·협박했는지에 대해서도 추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라며 “‘강남패치’ 운영을 정 씨 한 명만으로 보기는 어려워 공범의 행방도 함께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인스타그램 계정 <한남패치>. <강남패치>가 팔로우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6월 25일부터 29일까지 5일 동안 ‘한남패치’를 운영해 온 양 아무개 씨(여·28)는 정 씨보다 하루 먼저 검거됐다. 여성들을 등쳐먹는 남성들을 겨냥하고 있다며 ‘한남패치’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해 온 양 씨는 주로 강남의 유명한 클럽, 유흥업소 등에 출몰하는 남성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이들은 클럽에서 만난 여성들을 성폭행하거나 폭력을 휘둘렀으며 사기 행각을 일삼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양 씨가 제보를 받고 올린 게시물은 대다수 일반 남성들에 관한 제보였으나 서울의 유명 재수학원 원장과 현역 모델 등 유명인 관련 게시물도 일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몇몇 관련 인물들은 의혹의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직접 인정하기도 했다. 이들은 양 씨에게 “이런 식으로 글을 올리면 내가 살 수 없으니 삭제 좀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양 씨는 “삭제를 요청하면 제보 받은 또 다른 글도 공개하겠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양 씨에게는 명예훼손 혐의 외에 협박 혐의도 적용됐다.
실제로 수사를 맡은 수서경찰서 사이버팀 관계자는 “만일 명예훼손만 적용됐다면 인스타그램의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으나, 협박을 당한 피해자들이 다수 있었기 때문에 인스타그램 미국 본사도 수사에 협조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공개한 양 씨의 범행 동기는 “내 성형수술을 실패한 남자 의사가 떠올라 그 의사처럼 겉과 속이 다른 남자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 씨는 이에 대해 “진술한 범행 동기는 이 내용이 아니었는데 경찰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동기를 짜깁기해서 언론에 공개했다”고 반박했다. 대신 양 씨는 “범법을 저지르는 비양심적인 남성들과 이에 대해 약한 처벌이 내려진다는 사실이 싫었기 때문”이라고 자신이 ‘한남패치’를 만든 이유를 밝혔다.
# 명예훼손 피의자들 검거 영상 보도 ‘이례적’
경찰은 지난달 31일 ‘강남패치’ 운영자 정 씨의 검거 영상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제까지 억대의 도박현장 검거나 폭력 조직 간 패싸움, 음란물 대량 유포범 등에 대한 검거 영상이 보도된 일은 잦았으나 사이버 명예훼손 피의자의 검거 영상을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영상에서 정 씨는 “강남패치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혀 모른다”고 발뺌했다. 경찰은 곧바로 정 씨의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한 뒤 불특정 다수로부터 ‘강남패치’ 계정을 통해 제보 받은 자료를 확보했다.
검거 영상이 보도되자 시청자들의 의견은 둘로 갈렸다. 일부 시청자들은 “흉악 범죄자들을 검거할 때 집안의 내부까지 확인될 정도로 명확한 영상을 보도한 사례는 거의 없다”라며 “집 구조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피의자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는 영상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실적 올리기에 급급해 성급한 판단을 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정 씨의 얼굴에만 모자이크를 했을 뿐 집안을 그대로 공개한 일부 언론과 경찰에 대해 민원을 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영상 공개를 찬성한 쪽은 “수백 명에 이르는 피해자들이 이들 때문에 허위 소문과 정신적인 충격에 시달리고 있다”라며 “이번 영상 공개는 익명을 이용한 SNS 범죄자들에게 철퇴를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날 정 씨의 집을 압수수색한 강남경찰서 측은 “검거 영상을 공개하는 것은 경찰의 판단 문제이고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공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해외 SNS 수사 협조 이례적…별별 ‘패치’ 떨고 있다 ‘강남패치’와 ‘한남패치’가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명예훼손성 게시물을 해당 계정에 올리면서 자신만만했던 것은 인스타그램의 모기업인 페이스북 미국 본사의 수사 협조 방침 때문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와 서버를 두고 있는 페이스북의 수사 협조를 얻기 위해서는 수색영장이나 법원 명령서, 소환장 등 법적 요청을 제출해야 한다. 제출만 하면 되는 게 아니고 페이스북 자체 심의 결과를 거쳐야 수사 협조 여부가 결정된다. 페이스북 본사는 ▲한국 법에 의한 수사 협조 필요성이 인정되고 ▲사건 협조가 국제적으로 용인되는 기준에 부합하거나 ▲수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용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수사에 협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복잡한 과정을 겪어야 하기 때문에 이제까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 외국 기업의 SNS를 통한 개인과 개인의 명예훼손 또는 모욕 고소 사건이 흐지부지 마무리되는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 강남경찰서 사이버팀 관계자는 “이제까지 명예훼손이나 모욕으로 고소된 사건을 인스타그램 본사에서 협조한 사례가 없다”며 “개인이 다른 개인을 고소한 비슷한 사건에 대해 직접 페이스북 본사에 영장까지 보냈지만 결국 수사 협조 요청이 기각됐다”고 밝혔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강남패치’와 ‘한남패치’ 검거 사건에서 페이스북 본사의 수사 협조는 매우 이례적이다. 경찰에 따르면 페이스북 측이 이번 사건에 대해 ‘협조할 수 있다’는 답변을 보내왔다고 한다. 소수로 이뤄지는 개인 간 명예훼손 고소 사건과는 달리 이번에는 다수의 피해자들이 고소를 했으며 실제 피해자가 100여 명에 이른다. 그만큼 중대한 사건이었다는 얘기. 인스타그램에는 ‘강남패치’와 ‘한남패치’를 필두로 대중교통 임산부석에 앉은 남성들을 촬영해 게시하는 ‘오메가(창작 작품에서 임신을 할 수 있는 설정을 가진 남성들을 가리킴)패치’, ‘메갈리아’와 ‘워마드’ 지지 여성들의 사진과 개인정보를 게시하는 ‘메갈패치’,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에서 성매매를 한 남성들의 개인정보를 게시하는 ‘재기패치’ 등이 운영됐던 바 있다. 이 가운데 경찰은 ‘오메가패치’ 등 4개 ‘패치’ 계정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받아 수사하고 있다. 사이버팀 한 경찰 관계자는 “이번 ‘강남패치’와‘한남패치’ 운영자 검거를 통해 다수의 피해자와 이후 지속적으로 피해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있다면 해외 서버 업체와 공조 수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라며 “최근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한 일반인 음란 게시물 등도 개인과 개인의 1 대 1이 아니라 다수의 피해자들이 고소에 참여한다면 정상적인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 |
한남패치 운영자 반박 “성형 실패 때문? 경찰 입맛대로 해석” 성형 부작용을 겪으면서 자신을 성형한 남성 의사에 대한 적대감으로 ‘한남패치’를 운영했다고 알려진 운영자 양 씨가 경찰과 언론보도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여성들만 가입할 수 있는 한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으로 알려진 양 씨는 이 커뮤니티를 통해 “경찰과 언론이 나를 순식간에 ‘못생긴 여성이 성형까지 망해서 남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까이는 바람에 범죄를 저지른 희대의 정신병자’로 만들어놨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양 씨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검거된 직후 그는 사흘간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 가운데 조사 마지막 날인 29일은 경찰 측이 “그만해도 될 것 같으니 오지 않아도 좋다”고 했으나 자진해서 범행 동기를 증언하기 위해 방문했다고 밝혔다. 양 씨가 직접 밝힌 자신의 동기는 “성범죄를 저지르는 남성과 이를 묵인하고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였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언론에 보도된 성형 수술 실패를 언급하기는 했으나 주요 동기가 아니었고, 경찰 측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도 덧붙였다. 양 씨는 “성형수술 망쳐놓은 의사에게 반감을 가졌으면 ‘의사패치’를 만들지 왜 ‘한남패치’를 만들었겠나”라며 “진술 과정에서 강조한 목적과 동기는 전혀 언급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경찰 측의 이야기는 달랐다. 수서경찰서 사이버팀 관계자는 “피의자 진술 과정에서 성형 수술 관련 이야기를 공개하지 말아달라고 이야기 한 적 없다”라며 “진술을 받을 때 그 근거를 가지고 범행 동기를 설명했을 뿐인데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일축했다. 보도 직후 양 씨가 경찰에 새로 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으나 이에 대해서도 경찰은 “요청을 받은 바도 없고 이미 범행 동기 수사가 모두 종결됐기 때문에 더 이상의 추가 조사는 무의미하다”고 곧바로 검찰에 송치할 것을 밝혔다. [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