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일까 납치일까…CCTV 촘촘해 제3자 개입 가능성 높아
실종된 부부가 살던 아파트. 비상 계단이 외부로 도드라져 있다.
[일요신문] 부산에 사는 30대 부부가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않고 종적을 감춰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실종된 부부는 지난 5월 27일 저녁과 28일 새벽 각각 귀가했으며 당시 모습은 CCTV에 담겨 있다. 그렇지만 이들이 언제 집을 나섰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와 그 주변 CCTV에 귀가 당시의 모습은 분명 담겨 있지만 아파트에서 나와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은 포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일 두 사람의 휴대폰도 신호가 끊어져 추적이 불가능한 상황. 경찰은 이전까지 부부가 남긴 몇 가지 단서를 놓고 조사하고 있지만 혼란이 가중되며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CCTV에 귀가 장면은 찍혔지만 나간 장면은 없다.
자신을 실종된 아내의 친구라고 밝힌 A 씨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친구 부부를 찾아 달라”는 글을 올렸다. A 씨의 글 중에서도 특히 “CCTV에 부부가 귀가하는 장면은 찍혔지만 나가는 모습은 없다”는 대목이 게시판 이용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부부가 살던 아파트는 생각보다 CCTV가 꼼꼼히 설치돼 있어 촬영을 피해 출입하기는 상당히 어려워 보였다. 단지로 들어서자마자 ‘CCTV 감시카메라 24시간 작동 중’이라는 문구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아파트 건물 내부에서는 엘레베이터 안과 1층 출입구 방향에만 CCTV가 설치돼 있어 비상계단을 이용한다면 얼마든지 CCTV를 피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했다. 복도식과 계단식이 혼재된 아파트에서 이들은 복도식 가구 15층에 살고 있었다. 복도식 가구는 중앙 계단과 복도 끝에 위치한 외부로 드러난 계단 등 양방향의 계단을 이용해 외부 출입이 가능했다.
하지만 15층에 살던 부부가 계단을 통해 1층이나 지하로 내려간다 하더라도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기는 힘들어 보였다. 1997년에 준공된 아파트는 1개 동으로 이뤄져 단지 내 공간이 넓지 않았다. 입구는 동서 방향으로 2개가 있었고 모두 CCTV가 설치돼 있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들이 지하주차장 방향으로 빠져나갔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았지만 지하에서 외부로 나가는 출구 또한 예외 없이 감시카메라가 지켜보고 있었다. 경비실에서 화면을 확인해보니 카메라는 아파트를 출입하는 모든 이들을 사각 없이 비추고 있었다.
아파트 지하주차장 입구. 오가는 차량을 촬영하는 CCTV가 설치돼 있다.
이처럼 촘촘히 CCTV가 설치돼 있는 탓에 촬영되지 않고 아파트를 걸어 나가기는 매우 힘들어 보였다. 사건을 맡고 있는 부산 남부경찰서 관계자도 “우리도 부부가 차를 타고 나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부부의 차는 주차장에 세워져 있지만 제3자의 차를 탈 수도 있다. 아파트 내부뿐만 아니라 주변 도로의 CCTV까지 모두 확인했지만 성과는 없었다”고 말했다.
# 아내는 장을 보고 집에 들어갔다.
친구 A 씨가 인터넷 포털 게시판에 올린 CCTV화면 속의 실종된 아내.
실종된 아내는 공개된 CCTV 화면에서 양손에 구입한 뭔가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며칠간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 등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간 집을 비울 사람이 간식을 산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에 아내만큼은 이번 사건을 계획하거나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경찰에서도 아내가 장을 본 물품이 그대로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고 전했다.
# 생존 흔적이 없다.
실종자가 신용카드를 사용하거나 인터넷 사이트에 자신의 아이디로 로그인을 하는 등의 ‘생존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이 어딘가에서 생활하고 있다면 지출을 위해 카드를 이용하거나 일상 속에서 인터넷 접속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부부가 단독적으로 CCTV를 피해 나가기 힘들고 아내는 장을 봤으며 생존 흔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에 제3자가 개입됐다는 의혹이 힘을 받고 있다. 이들이 강제로 납치된 것인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자발적으로 잠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제3자가 이번 사건에 개입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 경찰은 집안에서 혈흔이나 벽지를 뜯어내고 충격이 있었는지 조사했지만 별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부부 관계나 이들의 금전적인 상황도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 경비원은 “복도식 아파트가 층간 소음이 어느 정도 있을 수밖에 없는데 항의 한 번 받은 적이 없을 만큼 조용한 집이었다”며 “이사 온 지 1년이 좀 안됐지만 특별할 게 없는 사람들이라 지금 내 앞에 지나가도 못 알아 볼 것 같다”고 말했다.
# 자발적 잠적 의혹
반면 이들이 스스로 잠적을 했다는 추측도 나오는 상황이다. 부부는 속옷 몇 벌과 여권, 사용하던 노트북을 챙겨 나갔다. 여권이 없어진 것을 보고 경찰은 부부의 출입국 기록을 조회했지만 역시 해외로 나간 흔적은 없었다. 밀항을 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간간이 나올 뿐이다.
이외에도 식당을 운영하던 남편은 5월 28일 동업자에게 “가게 하루 쉬자”는 문자를 보냈고 다음날에는 자신이 갖고 있던 운영비를 보냈다. 동업자가 사정을 묻기 위해 전화를 하자 “당분간 가게에 나갈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구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건강식품 등을 전하기 위해 남편의 아버지도 연락을 시도했지만 답이 없었다. 6월 2일 아버지가 보낸 “무슨 일 있냐”는 문자 메세지에 “괜찮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남편의 휴대전화 신호는 이날 오전 부산 기장군에서 끊겼다. 아내의 경우 같은 날 저녁 서울 강동구 천호동 일대에서 신호가 끊겼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난무하는 억측에 상처받는 가족·지인 이번 사건은 경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자 부부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과 지인들이 나서서 상황을 밝히게 됐다. 연극배우인 아내의 동료로 알려진 A 씨는 사건 개요와 함께 CCTV 화면, 아내 사진 등을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올렸다. 아내 가족의 허락을 받았다는 글에는 ‘꼭 자신의 친구를 찾아 달라’는 호소도 함께였다. 하지만 상황은 이들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A 씨의 글에 달린 댓글과 사람들의 반응은 부부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상처를 줄 뿐이었다. 댓글은 사건의 유무 자체를 의심하는 내용부터 ‘남편이 아내를 납치했다’ ‘흉악 범죄에 휘말렸다’ 등 무분별한 억측이 나왔다. A 씨가 올린 글이 한 유명 1인 미디어에서도 보도되며 본격적인 언론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많은 취재진들이 A 씨의 글에 공개된 A 씨와 아내의 어머니에게 연락을 취했고 관련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실종된 부부의 지인과 가족들은 일부 자극적인 보도에 더욱 가슴 아파했다. 경찰 관계자도 언론의 취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부담스러워했다. 부산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오늘(8월 31일) 아내 가족 6명이 경찰서로 찾아와 취재 협조를 자제해달라고 했다. 그때 마침 한 방송사에서 경찰서로 찾아와 가족에게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반발만 샀다”며 “실종자를 찾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가족과 지인들이 협의해 글을 올린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단 한 건의 제보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가족 분들이 오히려 실종자가 돌아왔을 때를 걱정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초로 글을 올리며 적극적으로 나섰던 A 씨도 자신의 SNS에 “사람이 무섭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며 힘들어하고 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