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볼·폭행·난투극…서승화가 ‘악동 끝판왕’
한국 프로야구가 35년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그라운드 안팎에서 수많은 사건, 사고와 해프닝이 벌어졌다. 동업자 정신을 망각한 위험한 플레이부터 도가 지나친 야구팬들의 난동, 유망주의 계약을 둘러싼 구단들의 꼼수까지, 그야말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임창용의 견제구도 이런 수많은 사례들 가운데 하나로 기록됐다.
8월 28일 KIA-두산 경기에 앞서 임창용이 전날에 벌어진 ‘견제 위협구 논란’과 관련해 오재원에게 사과하고 있다.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 오재원의 머리를 향해 공을 던진 임창용
8월 27일 광주 KIA-두산전. KIA가 5-3으로 앞선 9회 두산 공격 2사 2루였다. 마운드에 있던 KIA 마무리 투수 임창용이 갑자기 2루 쪽으로 몸을 틀어 주자 오재원을 향해 공을 던졌다. KIA 유격수와 2루수 중 누구도 베이스 쪽으로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보크 상황은 아니었다. 임창용이 굳이 2루로 공을 던져야 할 이유가 없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임창용은 베이스가 비어있는 것을 보고 한 템포 멈칫한 뒤에도 공의 스피드를 줄이지 않고 던졌다.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은 임창용이 던진 공의 ‘방향’이다. 공은 마치 겨냥이라도 한 듯 오재원의 머리 쪽을 향해 날아갔다. 오재원이 급히 몸을 숙여 피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공에 맞을 수도 있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양 팀 더그아웃이 모두 얼어붙었다. 두산뿐만 아니라 KIA 선수들까지 모두 놀란 플레이였다. 김태형 두산 감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달려 나왔다. 거세게 항의했다. 경기 후 KIA 관계자는 “임창용이 ‘유격수 최병연과 사인이 맞지 않았다’는 해명을 했다”고 전했다. 임창용 역시 “고의로 던진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다음 날인 28일 경기를 앞두고 두산 더그아웃을 찾아 오재원에게 사과도 했다. 김기태 KIA 감독 역시 김태형 감독을 따로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고의성에 대한 의문과 비난은 가라앉지 않았다. 정황상 임창용의 해명이 석연치 않아서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언론에서도 이 장면을 다룰 정도로 파장이 커졌다. KBO는 신속하게 상벌위원회를 열어 임창용에게 3경기 출장 정지와 사회봉사활동 120시간 징계를 내렸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할 경우 엄중하게 대처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김기태 감독은 임창용의 징계 다음날 머리카락 한 올도 남기지 않은 민머리로 야구장에 나타났다. 마무리 투수의 이유 모를 견제구 하나가 치열한 5강 순위 경쟁을 하고 있는 KIA의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2003년 8월 9일 열린 삼성-LG전에서 이승엽과 서승화 간에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 윤재국의 시즌을 끝낸 서승화의 ‘다리 걸기’
사실 그라운드에서의 비신사적 행위로 자주 이름이 오르내렸던 선수는 따로 있다. 전 LG 소속 투수 서승화다. 그는 2004년 6월 2일 잠실 두산전에서 상대 선수였던 윤재국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안겼다. LG가 5-4로 간신히 앞선 8회 무사 1루. 좌전 안타로 출루했던 윤재국이 1루와 2루 사이에서 런다운에 걸려 1루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그러나 1루 커버를 들어갔던 서승화가 윤재국을 태그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황급히 다리를 걸었다. 윤재국은 그대로 쓰러지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돼 그대로 시즌을 접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선수 생활 내내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비난이 쏟아졌다. 서승화는 그해 5월 14일에도 삼성 김재걸에게 연속 빈볼을 던져 퇴장당했고, 벌금 200만 원과 10경기 출장 정지 제재를 받은 선수였다. 이 일로 또 다시 제재금 200만 원과 3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가중 처벌의 의미였다. 동업자 정신을 망각한 이 행위는 ‘잠실 라이벌’인 LG와 두산 팬들 간의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졌다. 서승화는 당시 “고의가 아니었고, 정말 죄송하다. 정중하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며 “앞으로 다시 마운드에서 자신 있게 공을 던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2003년 삼성 이승엽과의 멱살잡이를 비롯해 여러 차례 그라운드 난투극과 빈볼 시비에 휘말리면서 ‘악동’ 이미지가 강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많지 않았다. 실제로 2004년에만 무려 네 차례나 퇴장을 당하는 악명을 떨쳤다.
입단 전부터 이미 문제를 일으켰다. 대학 재학 시절에 비밀 입단 테스트를 받고 메이저리그 피츠버그와 가계약한 사실이 적발됐다. 대한야구협회로부터 무기한 선수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다행히 징계가 1년 만에 풀려 2002년 LG에 입단하게 됐지만, 가진 재능에 비해 너무 사고를 많이 일으켰다.
2009년 벌어진 후배 폭행 사건도 유명했다. 2군에서 후배 선수를 체벌하다 말썽을 빚었다. “대답하는 태도가 불손하다”는 이유로 후배의 머리를 야구 방망이 노크 부분으로 때렸다. 머리 윗부분이 찢어진 이 후배 선수는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돼 여덟 바늘을 꿰맸다. 후배 체벌에 야구 방망이를 사용한 것으로도 모자라 머리를 건드렸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서승화는 다시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1군 선발 등판이 예정됐던 당일에 다시 2군으로 내려가야 했다.
결국 투수로서의 타고난 잠재력과 좌완 강속구 투수의 강점을 살리지 못했다. 2010년에는 팀 훈련 도중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2군으로 강등되자 자신의 SNS에 은퇴를 암시하는 글을 올렸고, 2011년에도 SNS에 자살 암시글을 써 소동을 피운 끝에 자진해서 은퇴했다.
# 이중 계약 파문에도 휘말렸던 ‘악동’ 호세
롯데에서 뛰었던 펠릭스 호세는 KBO리그에 많은 족적을 남긴 외국인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문제는 좋은 기억만큼이나 나쁜 기억도 많았다는 점이다. 다른 팀 투수였던 배영수, 신승현은 물론 관중과도 싸움을 벌이는 초유의 난동을 부렸다. 이중 계약 파문도 호세의 여러 말썽들 가운데 하나다.
1999년 처음 한국에 온 호세는 2001 시즌이 끝난 뒤에도 롯데와 재계약했다. 롯데는 겨울이라 멕시칸리그에서 뛰고 있었던 호세를 대신해 그의 에이전트와 대리 계약을 했다. 그러나 호세는 남몰래 메이저리그 재진출을 꾀했다. 몬트리올 산하 트리플A팀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미 KBO에 계약 통보까지 마쳤던 롯데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격이었다.
롯데는 2002년 2월 뒤늦게 이 사실을 확인하고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몬트리올 구단에 호세의 신분을 문의했다. 사무국 측은 곧 “호세가 에이전트에게 대리 계약을 허가했더라도 선수계약서에는 선수 본인이 서명을 해야만 적법한 계약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롯데의 호세 계약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통보했다.
설상가상으로 호세와 몬트리올의 계약이 실은 구두 약속에 불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호세의 몬트리올 입단은 무산됐다. 롯데 역시 재계약 의사를 철회했다. 그 사이 일본 주니치 구단이 호세를 영입하려고 나섰다가 이중 계약 사태를 듣고 포기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당시 주니치 대표가 “그런 상황인지 몰랐다”며 공식 사과까지 했을 정도였다.
호세는 그렇게 소속팀을 찾지 못한 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한동안 멕시칸리그와 도미니칸리그를 전전하며 야구를 했다. 그러나 2001년부터 4년 연속 최하위에 머문 롯데는 다시 마음이 급해졌다. 2005년 말 결국 호세를 재영입했다. 호세는 복귀 후에도 여전히 성적과 별개로 ‘악동’ 이미지를 버리지 못했다.
# 일본의 빈축을 산 LG의 무리한 스카우트
LG는 두산과의 스카우트 전쟁이 치열했던 1993년에 무리한 007 작전으로 빈축을 산 적이 있다. 그해 한일 친선 고교 야구대회가 열리던 일본 오키나와에 LG 관계자가 잠입해 신일고 강타자 김재현을 몰래 만난 것이다.
당시 그 대회는 경기력 경쟁보다 한일 아마야구의 우호적 관계를 다지는 데 더 큰 의미를 뒀다. 그러나 LG가 김재현과 비밀 입단 계약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고교야구연맹 관계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당시 일본에는 ‘프로 구단과 입단 계약을 맺은 선수가 아마추어 경기에 출전하면, 함께 경기를 뛴 선수들의 아마 자격을 모두 박탈한다’는 엄격한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측 관계자들은 “애꿎은 우리 선수들이 피해를 보게 생겼다”며 한국 선수단 숙소를 찾아와 해명을 요구했다. 한국 선수단은 부랴부랴 “이 문제는 특정 프로구단의 성급한 스카우트에서 빚어진 문제일 뿐, 한국 측은 사전에 통보받은 적이 없다”고 공식 사과했다. 초고교급 타자로 유명했던 김재현을 꼭 데려오고 싶었던 LG의 무리수였다.
그런가 하면 2008년 6월 4일에는 KIA와 한화가 스포츠 정신을 망각한 ‘추태’로 빈축을 샀다. KIA가 6-1로 앞서고 있던 4회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서로 경기를 빨리, 혹은 늦게 진행시키기 위한 꼼수를 부렸다. 5회가 끝나야 정식 경기로 인정된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한화는 4회 투수나 야수가 일부러 평범한 땅볼 타구를 놓치는 등 시간을 끌면서 비로 경기가 무효화되기만을 기다렸다. 반대로 KIA는 빨리 5회를 넘기기 위해 베테랑 타자들이 일부러 볼에 헛스윙해 3구 삼진으로 물러나는 작전을 썼다. KBO 야구 규약에는 ‘경기를 고의로 단축 혹은 지연시키기 위해 술책을 썼을 경우’ 징계를 받는다고 분명하게 명시돼 있다. 두 팀은 결국 KBO로부터 엄중 경고 조치를 받았고, 야구팬들과 다른 야구인들의 손가락질도 감수해야 했다.
# 한화의 스마트워치 해프닝
2015년 9월 12일 사직 롯데-한화전. 롯데의 2회 공격이 한창이던 시점에 TV 중계 카메라가 한화 더그아웃에 앉아 있는 김성근 감독을 비췄다. 이때 김 감독 바로 뒤에 서 있던 일본어 통역 담당 직원이 손목에 스마트 워치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KBO리그 규정 제1장 26조는 더그아웃 내 전자기기 반입 및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카메라에는 이 직원이 스마트 워치 화면을 조작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잡혔다. 화면을 확인한 KBO는 즉각 사직구장 대기심에게 연락해 해당 직원을 퇴장 조치했다.
한화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이었다. 스마트 워치를 부정하게 이용했을 가능성이 희박한 데다, 실제로 KBO도 불공정한 정보 수집 행위를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부주의에서 나온 방심이 파장을 불렀다. 이미 한화가 일주일 전 CCTV와 관련한 오해에 휘말렸던 사실도 비난을 부추겼다. 9월 5일 청주구장에서 김기태 KIA 감독이 원정팀 더그아웃에 설치된 CCTV와 모니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KBO는 이 장비들을 철거해 달라고 한화 구단에 요청했고, 한화는 이를 받아들였다. 큰 파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타 구단의 경각심까지 일깨운 두 사건이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메이저리거들도 거칠다…볼판정 불만 품고 구심한테 ‘캭~퉤’ 세계 최고의 리그인 메이저리그라고 해서 모든 선수가 양심적이고 깨끗한 플레이만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한국보다 더 과격한 몸싸움과 비신사적인 행위가 난무한다. 시카고 화이트삭스 투수 프랭크 프란시스코는 텍사스 소속이던 2004년 오클랜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자신에게 야유하는 관중에게 의자를 집어 던져 한 여성 팬의 코를 부러뜨렸다. 결국 그해 말 팔꿈치 수술을 앞두고 해당 여성과 민사 소송에 휘말렸다. 또 LA 다저스 출신 외야수 밀턴 브래들리는 현역 시절 한 홈팬이 물병을 던지자 그 병을 주워 다시 같은 팬에게 되던지는 행동을 했다. 브래들리는 은퇴 후에도 아내 폭행 혐의로 유죄를 받았던 악동이었다. 뉴욕 양키스에서 최근 은퇴한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2004년 보스턴전에서 상대 투수 브론슨 아로요의 공에 몸을 맞은 뒤 포수 제이슨 배리텍에게 항의하다 몸싸움을 일으켰다. 심지어 그해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에선 땅볼을 치고 1루로 달리다 자신을 태그하려던 아로요의 팔목을 고의로 세게 치는 ‘복수’를 감행했다. 이뿐만 아니다.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로베르토 알로마도 볼티모어 시절이던 1996년 스트라이크 판정에 불복하면서 당시 구심에게 침을 뱉은 적이 있다. 다저스와 캔자스시티 등에서 뛰었던 호세 오퍼먼 역시 마이너리그 시절 자신에게 위협구를 던진 투수와 상대 포수를 방망이로 가격해 형사 입건됐다. 투수는 손가락 골절상을 입었고, 포수는 뇌진탕을 일으켰다. 이 일로 은퇴 후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당했다. 그런가 하면 볼티모어 매니 마차도는 2014년 오클랜드와의 경기에서 풀스윙을 하면서 배트를 뒤로 길게 뻗어 상대 포수 데릭 노리스의 마스크를 세게 쳤다. 한 번으로 그치지도 않았다. 1회에 이어 6회에도 같은 동작을 취해 결국 노리스가 충격으로 교체됐다. 노리스가 교체될 때 배트에 기댄 채 미소 짓는 마차도의 표정이 포착되기도 했다. 오클랜드가 마차도의 다음 타석 때 노골적인 위협구로 응수하자, 마차도 역시 두 번째 위협구를 피하는 척하면서 다시 자신의 배트를 오클랜드 더그아웃 쪽으로 집어 던졌다. 결국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진 플레이였다. 최근에는 신시내티 간판타자 조이 보토가 어린이 팬에게 냉정한 태도를 보여 빈축을 샀다. 타격 훈련을 하다 관중석 맨 앞줄에 앉은 어린이가 “배팅 장갑을 줄 수 있겠느냐”는 요청을 하자 “너는 비싼 좌석에 앉는 엘리트다. 불우한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일 같은 건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는 것. 다른 메이저리거들이 어린이 야구팬들을 대하는 태도와는 많이 달라 빈축을 샀다. 보토는 앞서 다른 경기에서도 경기 도중 한 관중이 던진 종이비행기가 그라운드 안으로 들어오자 신경질적으로 밟는 제스처를 취해 야유를 받았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