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막은 공사의 ‘일방통행’ 대처에 노조측 강경 대응 ‘맞불’
한국공항공사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청소노동자들에게 성추행을 일삼은 용역업체 간부가 공항공사 퇴직 직원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일요신문DB.
이번 사태는 지난 5월 김포공항 청소노동자 노조가 용역업체 관리자들의 성추행과 폭언 등을 폭로하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노조에 따르면 용역업체 관리자들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노동자들의 가슴을 멍이 들도록 만지거나 강제로 키스를 했다. 심지어 여성을 못 건드릴 때는 남성 미화원을 상대로도 추행한 사실이 있다고 노조는 전했다. 관리자들은 “아들 둘이면 성관계는 두 번만 한 거냐”라고 말하는 등 성희롱도 서슴지 않았다. 논란은 지난달 9일 청소노동자들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2일 한국공항공사 앞에서 삭발식을 거행하며 거세졌다. 당시 김포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상식을 벗어난 열악한 노동 처우 등을 고발했다.
문제는 이같은 성추행과 성희롱을 일삼은 용역업체 관리자들이 공항공사의 퇴직 직원이라는 점이다. 현재 청소노동자 노조는 이같은 열악한 처우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며 한국공항공사가 대화에 나설 것을 요청하고 있다. 김포공항 청소용역업체 비정규직노조 손경희 지회장은 원청회사인 한국공항공사에 대화를 호소하기 위해 지난달 30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사태가 커지자 공항공사는 뒤늦게 입장을 내놓고 수습에 나섰다. 공사는 지난달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현재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문제는 물론 노동강도 및 임금문제, 공사 퇴직자 선임 문제 등에 대해 반박했다. 이어 공항공사는 성일환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청소노동자 등 용역업체 지엔지(GNG) 직원들과 간담회 시간을 마련, 제기된 건의사항에 한해 공사에서 조치 가능한 방안에 대해선 조속히 개선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 “성추행 논란은 사실관계 없는 노조의 일방적 주장”
하지만 이 같은 공항공사의 대처는 갈등 봉합이 아닌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됐다. 성추행 문제의 경우 공항공사는 노조 측이 제기한 성추행 의혹에 관해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노조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반박했기 때문이다. 공항공사 관계자는 “(용역업체 관리자 성추행 문제는) 현재 소문만 무성한 상황이다. 청소노동자들이 제시한 의혹에 관해서는 경찰 수사가 이뤄진 것도 아니고 법적으로 가해자 피해자가 명확히 된 게 없기 때문에 손경희 지회장 등 일부 노조원들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말했다.
공항공사에 따르면 문제가 된 관리자 성희롱 문제는 당시 사실관계를 확인한 결과 피해사실이 밝혀지지 않아 종결처리됐다. 공사 관계자는 “지엔지 측에서 피해자라 주장하는 사람을 불러 면담을 했을 때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소문만 무성했다”고 전했다. 폭로 당시 거론되던 공사 출신 관리자들은 현재 사퇴하거나 김포공항 내 다른 용역업체로 자리를 옮긴 상태다.
하지만 노조 측 입장은 달랐다. 손 지회장은 “피해자들 중에는 남편도 있고 자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자살기도까지 하려고 약 먹은 사람도 있다”며 “그런데 법정 대응해서 가슴 어디를 주물렀느니 어디를 만졌느니 다 말해야 하나. 안 했다 해서 덮어지는 건 아니지 않나”고 호소했다. 사실관계 확인 결과 규명된 사실이 없다는 공사 측의 입장에 대해서는 “지엔지 측에서는 해당 피해 미화원을 불러다 녹음을 시키더라. 정신적 충격 때문에 자살기도까지 한 사람이다. 그 사람은 용기를 내서 피해 사실을 알린 것인데 또 다시 그 이야기를 그들 앞에서 하려니 분노가 솟아오르고 눈물이 났다더라”고 역설했다.
노조가 지난달 추가로 제기한 성추행 의혹에 대해서 공사 측은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관리자가 사실을 폭로한 손 지회장을 명예훼손죄로 처벌해 달라며 서울남부지검에 고발장을 제출한 상태”라며 “수사결과를 토대로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손 지회장은 “그 소장이 당시 술 접대해 달라며 다리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 사람이 여기 있으면 인권유린 문제가 절대 맑아지지 않는다”며 “(고발당한 것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 특혜 의혹 근절 공언했지만 여전히 ‘공사 퇴직자 왕국’
공항공사 퇴직자 출신 용역업체 관리자의 성추행 문제가 제기되며 ‘항피아(항공+마피아)’ 논란도 불거졌다. 손 지회장은 “노조를 만들기 전까지 용역업체 사람은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김포공항은 16개 업체와 용역계약을 맺고 있고 대부분 공항공사 퇴직자들이 관리소장을 맡고 있다”며 “아파도 쉬지 못하고 늘 폭언과 성추행 등 열악한 근무환경에 시달리고 있다”고 폭로했다.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은 올해 초 새로 입찰을 따낸 지엔지로 소속이 변경됐다. 노조 측에 따르면 지엔지 역시 한국공항공사 퇴직자 출신들이 다수 관리자로 포진돼 있다. 공공비정규직노동조합 서경지부 측은 “관리자들에게 과도한 인건비와 권한을 주며 공항공사 내 용역업체가 공사퇴직자의 왕국으로 전락하고 있어 그 관계가 척결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공항공사는 이에 공사 퇴직자 출신의 현장관리자 특혜 의혹을 근절하겠다고 나섰다. 공사는 “향후 공사 퇴직자 현장대리인을 배제하고 정기적인 현장 종사자 설문조사와 면담을 통해 관리자의 부당한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은 공사 퇴직자가 협력업체 관리자로 들어가는 것을 배제시키는 윤리강령이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잘 지켜지지 않았다는 게 공사의 입장이다.
공항공사 관계자는 “공항이라는 게 전문 경력을 필요로 하는 직책에서는 그 경력이 인정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퇴직자가 용역업체 관리자가 될 수도 있었다”며 “이번에 운이 좋지 않게 퇴직한 관리자가 성추행·인권유린 의혹에 연루돼 공사 측도 당혹스럽다. 앞으로는 공사 퇴직자의 협력업체 현장대리인 선임을 완전 배제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강서구 한국공항공사 앞 인도에서 용역업체 소속 김포공항 환경미화원이 공사 측과의 대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다. 일요신문DB.
# “김포공항 미화원의 임금과 근로조건은 국내 최고”
성추행·성희롱 문제뿐만 아니라 청소노동자들의 심한 노동강도와 낮은 임금 문제도 제기됐다. 하지만 공항공사는 “현재 김포공항 미화원의 월 급여는 205만 원으로 국내 최고 수준”이라며 “고용승계율도 100%로 완전 재고용되고 있으며 이직률도 제로(0.82%)에 가깝다”고 노조 입장을 반박했다. 임금 이외 인센티브도 1인 평균 150만 원을 지급하고 해외 및 국내 연수, 경조화환 지원 등을 하고 있어 동종 분야 최고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 공사 측의 주장이다. 공사 관계자는 “다른 데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쪽으로 오고 싶어 한다”며 “정년퇴직 하는 사람들만 그만두는 것이고 이직률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 측은 공사의 주장에 즉각 반박했다. 노조 측에 따르면 지엔지 소속 135명 노동자의 임금은 126만 원으로 최저임금(시간당 6030원) 수준에 그친다. 여기에 식대, 교통비 등 기타 수당을 포함해도 실제 손에 쥐는 돈은 170여만 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3일에 1번씩 저녁 10시에서 11시까지 초과연장 근무를 하면 받을 수 있는 금액이라는 것이 노조 측의 입장이다. 정부가 마련한 ‘공공기관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에 따르면 시중 노임단가(8200원)에 맞춰 미화노동자의 임금을 정하고 400% 이내의 상여금을 지급하도록 돼있다.
그렇다면 공사가 주장한 205만 원의 진실은 무엇일까. 손 지회장은 “죽을 듯 살 듯 일하다 근무시간에 안 들어가는 과외 작업까지 하면 205만 원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업무일과가 끝나는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진행되는 왁스작업을 해놓고 가면 7만 원 정도의 수당을 받는다. 연차를 쓰면 나머지 쉬는 사람이 그 대체 근무를 해야 하는데 1.5배의 수당이 지급된다”며 “그것을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하면 그제야 205만 원 정도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서울 강서을)은 김포공항 청소노조 문제와 관련해 “한국공항공사가 직접 나서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김 의원은 “대부분의 원사업자들은 수급사업자에 대한 경영상의 간섭을 금지하고 있는 하도급법(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상 조항 등을 이유로 하청 노조와의 직접 대화를 회피하거나 거부하고 있지만, 이는 ‘부당한 경영간섭’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원칙”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이어 “오히려 원청 사업자는 구체적인 근로조건 등의 결정에 직접적인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실질적 사용자로서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의 사용자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상훈 기자 ksanghoon@ilyo.co.kr
‘사장 간담회’ 하고도 풀어지지 않는 실타래…원인은? “실무 모르는 사장과 대화하면 뭣해” 노조서 참여 보이콧 공항공사는 지난달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공항공사 성일환 사장과 협력업체 지엔지 소속 미화원 및 직원들과 함께 간담회를 열어 현장의 애로와 건의사항을 듣는 자리를 가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간담회를 두고도 공사와 노조가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공사는 “성일환 사장이 노조원을 직접 만나 고충을 들어볼 계획으로 마련한 자리였으나 노조원 옆에서 투쟁 중인 공공비정규직조합에서 파토를 냈다”며 “그래서 간담회장에는 비조합원 미화원들만 나와 면담 시간을 갖고 그때 들은 고충을 토대로 휴게실 등 미흡한 부분에 대해 개선사항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공사 관계자는 “김포공항 청소용역 건은 한국공항공사 서울지역본부에서 지엔지와 체결한 도급계약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주장은 해당 협력업체와 논의돼야 할 사항”이라며 “그럼에도 공사 측은 대화와 소통을 시도하려 노력하고 있는데 노조 옆에 있는 공공비정규직조합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뿌리고 언론 플레이를 하려 해 봉합이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노조 측 입장은 정반대였다. 김포공항 청소노동자 김 아무개 씨는 “간담회 열린 전날(8월 23일) 조합원들 보는 곳에 공고장이 붙었는데 ‘사장과의 간담회’가 아니라 ‘교육’이라고 쓰여 있더라. 보통 1년에 상반기, 하반기 두 번씩 직원교육을 받는데 느닷없이 교육 공고가 붙은 것이다”고 말했다. 이에 노조는 참석 거부 의사를 밝혔다. 사장과의 대화보다는 현장 상황을 잘 아는 실무 관리자들과 대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손 지회장은 “원청에서 문제가 풀어지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으니 원청이 나서달라는 것인데 사정 모르는 사장이 오면 뭐하나”면서 “노조와 전혀 협의 없이 진행된 상황이었고 실무 책임자들과의 면담이 효과적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거부했다”고 간담회 거절 이유를 밝혔다. [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