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당하고, 사기 고소 당하고…엎친 데 덮친 악재가 그를 벼랑 끝으로
명 야구해설가였던 하일성 전 KBO 사무총장이 지난 8일 세상을 떠났다.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야구해설가 하일성 씨가 지난 8일 오전 7시 50분께 서울 송파구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무실 직원이 숨진 그를 확인하고 신고했다.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원은 발견 당시 하 씨가 숨진 지 2시간 정도 지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하 씨의 휴대폰에서 부인 앞으로 작성된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가 발견됐지만, 전송은 되지 않았다. 현재 경찰은 현장 정황을 토대로 스스로 하 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내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타살 혐의점이 있는지도 함께 확인하고 있다.
하일성 씨가 숨진 채 발견된 사무실.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하 씨의 소식을 접한 주변 관계자들은 침통한 표정이다. 하 씨 빈소에서 만난 김인식 KBO(한국야구위원회) 기술위원장은 “최근 몇 년간 연락이 거의 없었다. 지난 1월 통화한 게 전부다. 하 씨는 그동안 야구계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건물을 파는 과정에서 문제가 시작된 것 같다”며 “하 씨는 늘 식사나 소주 한잔 하는 자리에서 재밌는 이야기로 모두를 즐겁게 해줬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이용철 KBS 해설위원은 “후배들이 먼저 연락하기 부담되는 상황이었다. 근황은 지인을 통해 듣고 있었다. 지병으로 수술 경험이 있으셔서 건강 걱정은 많이 했지만 이런 일은 생각도 못했다”며 “(하 씨는) 내가 해설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인연이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하 씨 사무실 인근의 한 식당 관계자는 “어제(지난 7일) 밤에도 하 씨와 인사를 나눴다. 평소와 다름없었는데 이런 소식을 듣게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 씨의 주변 관계자들은 그가 최근 몇 년간 건강악화로 인해 방송 활동도 줄어드는 동시에 각종 악재가 겹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하 씨가 사망 전 잇단 사기사건 연루, 피소, 음주운전 적발 등으로 구설에 휘말리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 왔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2014년 이후 심각한 경제난과 우울증을 겪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 씨가 구설에 휘말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부터다. 당시 하 씨는 박 아무개 씨(45)에게 3000만 원을 빌리고 갚지 않은 혐의(사기)로 불구속 입건된 것. 박 씨는 하 씨를 서울 송파경찰서에 고소하면서 “지난 2014년 11월 하 씨가 ‘강남에 빌딩을 갖고 있는데 건물에 붙은 세금 5000만 원이 밀려서 그러니 임대료가 들어오면 갚겠다’며 3000만 원을 빌리고 갚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 씨는 박 씨에게 선(先) 이자로 60만 원을 제외한 2940만 원을 빌렸으나 “곧 갚겠다”면서도 8개월여 동안 변제 기일을 미뤄온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하 씨가 박 씨에게 언급한 강남 빌딩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드러나면서부터 불거졌다. 빌딩을 소유한 적은 있지만 돈을 빌리는 시점에서 2년여 전에 매각한 것으로 밝혀진 것. 경찰은 하 씨가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데도 박 씨에게 강남 빌딩을 언급하며 무리하게 빌린 것으로 보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악재가 겹쳤다. 앞서의 사기 혐의로 조사를 받던 지난해 11월, 자신 소유의 전원주택 부지가 경매에 붙여진 것. 하 씨는 2010년 이 토지를 1억 2250만 원에 매입했지만 경매에 붙여질 당시 채권최고액 3억 원 상당의 개인 근저당과 송파세무서의 압류, C 저축은행 2억 원 상당의 가압류, 소유권이전청구가등기 등이 설정돼 있었다. 개인 근저당 설정권자의 임의경매 신청으로 경매에 나왔으며 청구액은 1억 5000만 원이었다.
하 씨는 앞서의 사기 혐의로 경찰과 검찰 조사를 받으며 이같이 상당한 재정적 압박이 있다는 내용을 숨기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수사 과정에서 “현재 월수입이 2000만 원이 넘지만, 워낙 부채가 많아서 박 씨에게 돈을 갚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하 씨가 사실관계 일부를 인정하고 3000만 원을 모두 갚자 검찰은 지난 2월 재판에 넘기지 않기로(기소유예) 했다.
당시 하 씨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된 배경에는 오래 알고 지내던 부동산 업자에게 100억 원대 빌딩을 사기를 당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하 씨는 앞서의 사기혐의로 피소된 이후 보도자료를 내고 “강남에 시가 100억 원 상당의 빌딩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부동산 업자에게 매각을 권유 받았다”며 “하지만 이는 사기였고, 건물 판매 대금은 한 푼도 받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10억 원가량의 양도세 및 기타 세금을 미납한 국세 체납자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기 혐의로 고소한 박 씨로부터 돈을 빌릴 때는 강남의 빌딩을 매매하는 과정에서 세금이 많이 나와 돈이 필요하다고 했을 뿐, 빌딩의 임대 수익금으로 돈을 갚겠다고 한 것은 이야기가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 씨는 사건이 불거진 이후 꾸준히 채무를 변제하려고 노력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하 씨는 10억 원에 달하는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 은행권 대출에 사채를 끌어다 쓰기도 했다. 그는 차를 렌터카로 바꾸고 살던 집을 매각하는 등 경제난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재기의 발판을 다지기 위해 방송출연을 재개하는 등의 행보도 이어갔다.
하지만 구설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하 씨는 지난 7월 부인 A 씨가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 가던 중 사고를 냈고, 당시 부인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서 음주운전 방조죄로 경찰에 입건됐다.
같은 기간 하 씨는 또 다른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인으로부터 ‘프로야구단에 입단시켜 달라’는 청탁과 함께 5000만 원을 받은 혐의(사기)로 고소를 당한 것. 공소사실에 따르면 하 씨는 지난 2014년 4월 초 지인으로부터 “아는 사람의 아들을 프로야구 구단에 입단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에 하 씨는 “NC 다이노스 구단 감독에 알아보니 테스트를 받으면 입단할 수 있을 것 같다”며 “5000만 원이 필요하고, 그중 2000만 원을 감독에게 주겠다”고 말했다.
며칠 뒤 하 씨 지인은 5000만 원을 하 씨가 운영하던 회사 계좌로 송금했지만, ‘아는 사람의 아들’이 프로야구 구단에 입단하지 못하자 앞서의 지인은 지난해 10월, 사기 혐의로 하 씨를 고소했다.
당시 하 씨는 “나에게 돈을 줬다는 선수의 아버지를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전화 통화만 두 차례 했을 뿐”이라며 “(지난 2014년) 부산의 지인으로부터 5000만 원을 빌렸다가 3000만 원을 갚았다. 나와 지인의 거래이지 앞서의 선수나 그의 아버지와는 관계없다”고 주장하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 결과 하 씨가 선수를 프로야구 구단에 입단시켜 줄 의사나 능력이 없었고 개인 빚을 갚는 데 쓸 생각으로 돈을 받은 것으로 판단했다. 주변 관계자들에 따르면 하 씨는 지난 7월 이 사건이 재판에 넘겨지면서 극심한 심적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하일성 씨의 빈소에는 늦은 시간 까지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박정훈 기자 onepark@ilyo.co.kr.
하 씨 소식이 전해진 이후 각지에서 추모와 애도의 물결이 번졌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8일 저녁 열린 프로야구 5개 경기에서는 별도로 하 씨의 사망을 애도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별도의 보도자료를 내고 “고(故) 하일성 해설위원의 타계에 대해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 고인은 프로야구 해설과 KBO사무총장직을 수행하며 대한민국 프로야구계에 큰 업적을 남겼다. 우리 프로야구 선수들은 고인의 야구발전에 대한 공로를 잊지 않겠다”고 전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하일성은 누구? 요물 ‘촉’ 인기…“야구 몰라요” 어록제조기 하일성 씨는 1949년 2월 18일 서울에서 태어나 성동고등학교에서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기준으로도 늦은 출발이었다. 1967년 경희대학교 체육학과에 야구 특기생으로 입학했지만 곧바로 야구를 그만뒀다. 대중에 ‘명 해설가 하일성’은 잘 알려져 있지만 ‘야구 선수 하일성’은 그렇지 못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하 씨는 환일고 체육교사로 일하던 1979년부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 환일고 교사 선배이자 KBS 배구 해설위원이었던 오관영 위원의 소개로 동양방송(TBC)에서 서동준 위원의 후임으로 마이크를 잡고 고교야구 해설을 맡은 것. 이후 하 씨는 특유의 구수한 입담으로 야구팬들의 귀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3년 뒤인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했고, KBS에서 야구 해설위원을 맡게 됐다. 이듬해인 1983년 하 씨는 교직에서 물러나 야구 해설에만 전념해 본격적인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하 씨는 선배 해설가들과는 다른 해설로 주목 받았다. 당시 야구 감독 출신이거나 현직 감독인 기존 해설가들은 선수의 실수를 질책하는 해설을 자주했다. 하지만 하 씨는 야구규칙을 외우다시피한 철저한 공부와 현장 정보를 바탕으로 정확한 분석과 예측 해설로 대중의 눈높이에서 야구를 전달하려 애썼다. 여기에 엔터테인먼트를 가미하기도 했다. 과감히 예측을 하고, 맞아 떨어지면 “그것 보세요”라고 툭 뱉는 한 마디와 “야구 몰라요” “역으로 가나요” 같은 어록을 남겼다. 당시 허구연 MBC 해설위원과 양대 산맥을 이루면서도 시청률 경쟁에서 앞서 나가던 하 씨는 야구뿐만 아니라 각종 예능과 오락프로까지 단골 게스트로 활동했다. 하지만 건강 악화로 고비를 겪기도 했다. 2002년 심근경색과 위종양에 걸려 여러 차례 생사를 넘나들었지만 기적적으로 병마를 떨쳐냈다.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와 마이크를 잡고 이전처럼 왕성하게 활동을 하면서 ‘건강 전도사’로 유명 CF를 찍기도 했다. 이후 하 씨는 2006년 5월, 해설위원으로는 처음 KBO 사무총장 자리까지 올랐다. 당시 프로야구단 현대 유니콘스 문제로 부정적인 시각도 많았지만, 국가대표 야구단 단장을 맡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에 일조하기도 했다. ‘金사무총장’ 이라는 별명이 생긴 건 이 때부터다. 2009년 사무총장 직을 내려놓고 다시 KBS에서 해설을 시작한 하 씨는 2014년 시즌을 마친 뒤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경기도에 야구장을 만들려 오랫동안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을 팔았다. 그런데 매각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양도소득세 등 급한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조직폭력 관련 인사를 통해 거액을 빌렸다.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면서, 돈과 관련된 사기 혐의 등 각종 구설수에 휘말리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야구계와의 인연도 거의 끊겼다. 야구계에서 누구보다 인맥이 넓었지만,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문] |
에피소드 셋 오랜 인연 김태촌 “나같은 인생 살지 말라” # 김태촌과 인연 하일성 씨는 오래전부터 김태촌과의 인연을 밝혀왔다. 그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김태촌과 나는 손을 잡고 걸어다닐 정도로 각별한 사이다. 매일 만나지 못하면 속이 탄다”고 말했다. 이들의 인연은 김태촌이 1986년 ‘청보 핀토스(현 SK 와이번스)’ 구단 이사를 맡으면서부터 시작됐다. 우정은 청소년 교육을 함께 하며 나눴다. 김태촌은 출소 뒤 청소년 교육에 관심을 가져왔는데, 2006년 그의 청소년 범죄 예방을 위한 전문연수원인 국제청소년범죄예방교육원 개소에 하 씨가 함께 했다. 당시 하 씨는 “김태촌은 청소년 강의를 다니며 ‘나같은 인생을 사지 말라’고 말해왔다”며 그를 설명했다. 김태촌은 1980년대 전국 3대 폭력조직의 하나인 범서방파의 두목으로 ‘인천 뉴송도호텔 사장 피습사건’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그는 2006년 구속돼 당뇨 협심증 저혈압 등을 앓다 2013년 1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하일성 씨는 방송과 사석에서 김태촌과의 각별한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 편파해설의 원조 하 씨는 “내가 편파 해설의 원조”라고 당당히 밝히기도 했다. 이는 10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룬 타이거즈와의 인연에서 시작됐다. 하 씨는 1983년 해태 타이거즈의 첫 우승을 홀로 예견하면서 해설가의 입지를 굳혔다. 하 씨는 2011년 발간한 타이거즈 30년사 ‘RED REGEND’에 기고한 칼럼 첫 머리에 “당시 신문을 보면 알겠지만 83년 (해태) 타이거즈 우승을 예상했다. 원년 4위에 그쳐 주목받는 팀은 아니었다. 두 가지 이유였다. 김응용 감독이 부임했고 취약점이던 포수 쪽에 김무종을 보강했다. 두 단점을 메웠으니 우승한다고 예상했고 그대로 적중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당시 라인업이 1번부터 9번까지 모두 스타였고 개성도 강했다”며 “각자 사연도 많았으니 타이거즈 선수들에 대해 멘트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해설가 입장에서는 풀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게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서울 사람이 아닌 광주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상대 팬들은 편파 해설이라고 지적했다. 현장뿐만 아니라 방송사에 항의 전화, 항의 편지를 무수히 받았다”고 회고했다. # 보이스피싱 사기 하 씨는 지난 2년 간 사기 ‘피의자’ 신분이었지만, 반대로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지난해 1월, 하 씨는 저축은행 직원이라는 사람에게서 “하일성 고객님 맞느냐. 우수 고객이어서 5000만 원가량 저리 대출이 가능한데 사용하겠느냐”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직원은 대출 전 세금을 사전에 입금해야 한다고 말했고, 직원이 안내한 은행 계좌로 오랜 기간 거래해온 하 씨는 의심 없이 대출에 응하며 모두 2차례 걸쳐 340여만 원을 입금했다. 하지만 하 씨가 입금한 계좌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사용하는 대포통장 계좌였고, 그가 받은 서류 및 팩스번호 역시 전부 거래 은행과는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 씨는 경찰조사에서 “‘공인이니 방문하지 않고 믿고 서류로 대출해주는 것’이라고 했다”며 “돈을 입금한 뒤에야 잘못된 걸 알았다”고 진술했다. 이후 2015년 1월 20일 서울 서부경찰서는 보이스피싱에 이용되는 대포통장을 모집한 혐의로 곽 아무개 씨를 구속하고 통장을 양도한 혐의로 강 아무개 씨 등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