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싸움서 밀린 쪽 튕겨져 나올 수도…김종인-안철수 정계개편 키 누가 쥘까
# 바보야, 문제는 룰이야!
새누리당 친박계는 대선 경선 룰에 민감하다. 지난 2007년 룰 때문에 박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학습 효과 때문에 2012년 대선에 이어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룰 싸움에 임하는 자세는 사뭇 비장하다. 한 친박 의원은 “일단 예선부터 통과를 해야 대선을 나가든 말든 할 것 아니냐. 우리에게 유리한 룰이 어떤 것인지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저쪽(비박)도 마찬가지기 때문에 치열한 수싸움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계가 4월 총선에서 진박논란 등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공천을 주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내 우군을 많이 만들어 향후 벌어질 룰 싸움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8월 전대에 공을 들였던 것도 비슷한 이유다. 결국 ‘대통령의 입’이라는 이정현 대표가 당선됐고, 이로써 친박계는 당을 장악했다. 친박으로선 비박과의 룰 싸움을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셈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야권에서도 룰 얘기는 금기시된다. 그만큼 조심스럽다는 얘기다. 더민주에서는 친박계와 마찬가지로 친노 진영 세가 공고하다. 이는 룰 싸움에서 비노계보다 앞서 있다는 뜻이다. 비노계의 한 의원은 “온라인상에서 친노가 강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지 않느냐. 우리로서는 온라인 투표 비중을 최대한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아직 새로운 지도부도 뽑지 않은 상황에서 룰과 관련된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반응이다.
정치권의 룰 싸움이 주목받는 것은 대선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정계개편 등의 전초전이 될 수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룰 싸움에서 밀린 쪽은 튕겨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 비주류들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겠느냐. 이는 곧 정계개편의 동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각 당의 룰 싸움은 대선의 최대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점쳤다.
# 3자 구도, 누구에게 유리?
그동안 야권 진영에선 ‘분열은 필패’라는 공식이 불문율처럼 여겨졌다. 이는 매번 선거 때마다 이뤄졌던 야권 단일화의 전제가 됐다. 그런데 지난 총선에서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단일화를 하지 않고도 눈부신 성적을 거뒀다. 3자 구도로 선거를 치르고도 거대 여당을 격침한 것이다. 거센 단일화 요구를 거절했던 국민의당과 안철수 전 대표는 호남 지역 승리를 바탕으로 제3당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야권에서 3자 구도, 즉 안철수-문재인 동시 출마로도 대선 승리가 가능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른바 ‘3자 필승론’이다. 안철수 전 대표는 8월 30일 야권 단일화에 대해 “야권이 분열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아주 옛날 생각”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우상호 원내대표도 지난 5월 “3자 구도를 전제로 대권 전략을 짜겠다”라고 밝혔었다.
3자 구도가 더민주와 국민의당 중 어느 곳에 유리할지는 의견이 갈린다. 더민주 측은 문재인 전 대표가 영남과 수도권에서 지금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호남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린다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 한 친노 의원은 “지난 대선처럼 단일화에 목맬 필요가 없다. 반기문 총장이 출마하면 안 전 대표 핵심 지지층인 중도 보수층은 급격히 이탈할 것이다. 그럴 경우 안 전 대표 지지율은 추락할 것이고 야권 표는 유력 주자인 문 전 대표에게로 쏠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인사들은 총선에서의 결과가 재현되기를 바라는 모습이다. 3자 구도가 인물 대결로 흐를 경우 안 전 대표 경쟁력이 가장 앞설 것이라는 기대다. 단일화를 놓고 제1야당 후보와 겨뤄봤자 이기기 힘들 것이란, 지난 2012년 대선 때의 경험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 친안계 인사는 “안 전 대표 결심은 확고하다. 지더라도 완주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잡음이 많이 나는 단일화는 오히려 야권의 분열만 가속화하고 여권을 결집시키는 계기만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9월 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가 대화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이에 대해 정치권에선 ‘총선과 대선은 다르다’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문재인-안철수’ 동반 출마는 새누리당 필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야권은 1997년 DJP 연합, 그리고 2003년 막판에 깨졌지만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때 간신히 이겼다. 유권자 분포상 야권은 분열해서 절대 이길 수 없다. 3자구도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은 오판이자 4월 총선의 착시효과”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한 친박계 중진 의원도 “3자구도가 된다면 새누리당은 손 쉽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탰다.
# 반기문은 무소속, 안철수는 DJ 벤치마킹? 정계개편 설설설
최근 새누리당 안팎에선 반 총장 거취와 관련해 흥미로운 소문이 돈다. 반 총장이 무소속으로 대권 출마를 한 뒤, 새누리당 후보와 단일화를 거친다는 게 골자다. 이는 주로 반 총장을 밀고 있는 친박 내부에서 들린다.
앞서의 친박 중진 의원은 “반 총장이 독주하는 모양새는 경선 흥행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 비박계 이탈도 가속화할 수 있다. 그래서 반 총장이 외부에서 독자적 행보를 하다 새누리당 후보와 경쟁하면 어떻겠느냐 하는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반 총장을 중심으로 하는 정계개편이 모색되고 있는 것이다.
여권과는 달리 야권에선 보다 다양한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나온다. 관전 포인트는 김종인 더민주 전 대표와 안 전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 간 힘겨루기다. 물론 김 전 대표와 안 전 대표가 손을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양측의 공통점은 문 전 대표와 맞설 수 있는 후보를 내는 것이다. 또 손학규 전 대표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우선 ‘킹메이커’를 자처하고 있는 김 전 대표가 여러 야권 잠룡 중 누구를 ‘킹’으로 밀지가 관심을 모은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내년 대선에서 경제 이슈가 부각되면 김종인의 주가는 다시 올라갈 것이다. 또 야권주자들로선 취약 계층인 중도 보수로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선 김종인만 한 인물이 없다. 김종인을 ‘킹메이커’로 둔 후보는 천군만마를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확실한 대권후보를 보유했고, 제3당으로 캐스팅보트를 확보한 국민의당이 향후 진행될 야권 정계개편에서 ‘키’를 쥘 것이란 전망이 많다. 그 중 새누리당 비주류와 더민주 비주류 등이 가세하는, 이른바 ‘제3지대론’이 주목을 받는다. 가장 파급력이 높을 것이란 까닭에서다.
국민의당 일각에선 호남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안 전 대표가 충청권 유력 인사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가 손을 잡아 대선에서 승리했던 ‘DJP 연합’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의 친안계 인사는 “아직 확실히 정해진 것은 없지만 지금 상황이 계속되진 않을 것은 분명하다. 합종연횡이 벌어질 수밖에 없고, 이를 안 전 대표 측이 주도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 중”이라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깜짝 대권후보 등장? 김영란 손석희 뜨면 ‘지각변동’ 역대 대통령 선거에선 깜짝 후보들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지난 대선에서 신드롬을 일으키며 대권 판도를 뒤흔들었던 안철수 의원도 그 중 하나다. 현재 자천타천 잠룡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수도 있다. 아직 그 누구도 대세론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은 더욱 높다는 관측이다. 먼저 선거 때마다 러브콜을 받고 있는 손석희 JTBC 사장이 거론된다. 그동안 손 사장은 정계 진출할 뜻이 없다고 선을 그어왔다. 하지만 상황은 언제든 급변할 수 있다. 더민주의 한 보좌관은 “손 사장은 지난 총선 때도 우리 쪽이 접촉을 시도했는데 단호하게 거절의 뜻을 밝혔다. 그래도 야권에선 손 사장만큼 시장가치가 있는 사람이 없다. 국민들에게 가장 신뢰받은 언론인이라 신선한 색깔도 지니고 있다. 본인이 의지만 있다면 대선 판은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김영란 전 대법관이 차기 주자군으로 자주 오르내린다. 김 전 대법관은 9월 28일 시행되는 ‘김영란법’을 입안한 장본인이다.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도 김 전 대법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또 ‘부패척결’과 ‘청렴’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새누리당의 한 보좌관은 “김영란법의 최대 수혜자는 어쩌면 김 전 대법관이다. 지금은 안 전 대표보다 훨씬 인지도가 높다. 대선후보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전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 이름도 들린다. 참여정부 당시 서울대 총장을 지낸 정 전 총리는 MB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다. 정치권 일각에선 정 전 총리에 대해 ‘세종시 수정안 문제로 자신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잠룡으로서의 주가는 여전히 높다. 최근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도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 참여해달라며 정 전 총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앞서의 더민주 보좌관은 “정 전 총리는 총리 한 번으로 본인의 내공이 다 드러났다고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는 대표적인 경제학자다. 내년 경제상황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대선후보로 급부상할 수 있다. 겉으론 무색 무취해보이지만 정 전 총리는 나름대로 정치적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국민의당에서도 이 점을 알기 때문에 정 전 총리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고 밝혔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전 대표도 대권 잠룡이다. 김 전 대표는 최근 경제민주화 관련 저서 출간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경제민주화와 포용적 성장’ 등을 주제로 연일 강연 행보도 이어가고 있다. 곽수종 전 삼성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주도로 ‘김종인 토크 콘서트 개최’도 기획 중이다. 김 전 대표가 수개월 공들인 경제포럼엔 정·재계 유력 인사들이 참여할 예정이다. 최근 김 전 대표의 행보를 분석해보면 다른 대권잠룡들과 유사하다. 김 전 대표가 킹메이커를 벗어나 스스로 대권 출마를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까닭이다. 9월 6일 창당발기인대회를 가진 늘푸른한국당의 이재오 전 의원은 변수가 될 수 있다. 늘푸른당의 4대 정책목표는 분권형 개헌, 행정구역 개편, 동반성장, 남북자유왕래다. 늘푸른당 관계자는 “이 의원이 직접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이 전 의원은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신당을 통해 이루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이 전 의원이 제 세력 가운데 어느쪽과 손을 잡느냐에 따라서 판도변화가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