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은 ‘상선영감’ 한쪽은 ‘독불장군’ 리더십 흔들
대립각은 세워졌다. 이 대표는 보수정당 사상 첫 호남 대표다. 추 대표는 민주당 60년 당사 사상 첫 대구·경북(TK) 당수다. 여권의 불모지였던 호남 공략을 위해 ‘서진 전략’을 앞세운 이 대표와 야권 텃밭인 호남에 방어선을 친 추 대표. 이미 차기 대권 플랜은 가동된 셈이다.
문제는 아킬레스건이다. 이들의 데뷔전은 화려했지만, 초반부터 양쪽 모두 약점을 드러냈다. 이 대표는 지난 한 달간 ‘파격 행보’를 보였지만, 청와대 참모 출신 탓에 수직적 당·청 관계에 대한 비전은 보여주지 못했다. 참배정치에 나섰던 추 대표는 전두환 전 대통령 예방을 둘러싼 논란에 직격탄을 맞았다. 각 당 내부에선 ‘비토론’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 7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진행된 기념사진 촬영 장소에서 악수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이정현 호의 출범은 3심(박심·민심·당심)이 만들어낸 친박계의 전략적 카드였다. 이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 ‘입’으로 통한 몇 안 되는 인사다. 충격적인 4·13 총선 패배로 비박(비박근혜)계의 결집이 수면 위로 부상한 상황에서 충성도 높은 당 대표가 필요했다. 8·9 전당대회 막이 오른 뒤 친박계 좌장인 최경환 의원과 서청원 의원의 불출마는 총선 패배 후 당내에 퍼진 ‘친박 책임론’을 허물었다. 박심을 업은 이정현 바람은 단숨에 당심을 파고들었다. ‘무수저’인 이 대표의 인생 드라마는 민심까지 파고들었다.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라는 특유의 연설은 ‘서번트 리더십’으로 이어졌다.
연일 ‘파격 행보’였다. 당 안팎에서 ‘쇼’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이 대표는 민생 현장으로 달려갔다. 또한 당내 권력투쟁의 장으로 변질했던 매일 오전 최고위원회 공개 발언을 없앴다. 그간 매일 오전 TV를 통해 생중계된 새누리당의 봉숭아 학당 등에 대한 비판이 사라졌다. 대신 전통시장과 소방서, 양식장 피해현장, 여의도 당사 청소부 오찬, 중견기업 간담회 등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홍길동식 행보에 나섰다. 기존의 정치 문법과는 다른 ‘탈여의도’ 정치를 보여준 셈이다.
보수정권 연장의 대선 플랜도 공개했다. 이른바 ‘서진 전략’이다. 극과 극이었던 새누리당과 호남 간 연대가 그 핵심이다. 이는 보수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2012년 대선 때 민주통합당(현 더민주)의 영호남 민주화 세력 연대인 ‘남부민주벨트’의 여권 판이다. 이 대표는 9월 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김대중(DJ) 정부, 노무현 정부 때 새누리당의 전신 정당이 국정에 대해 제대로 협조하지 못했다”며 ‘호남 연대론’을 꺼냈다. 하루 뒤인 6일에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만든 호남 발전을 위한 모임(가칭 ‘새호회’)을 하고 금명간 새만금 발전 특위를 만들기로 했다.
여기에는 3가지 전략이 담겨있다. 하나는 이정현 호 출범 직후 나온 ‘영남(여권 텃밭)+충청(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고향)+호남’의 ‘3각 연대’다. 다른 하나는 ‘도로 친문당’으로 전락한 더민주를 배제한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간 전략적 연대다. 이 두 가지가 실패하더라도 과거 역대 정권보다 호남표를 잠식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도 깔렸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보수정당에서 호남 대표가 나온 것만으로도 역대 어느 대선보다 득표율이 많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18대 대선에서 박 대통령이 받은 호남 득표율은 광주 7.8%(6만 9574표), 전북 13.2%(15만 315표), 전남 10.0%(11만 6296표)였다. 반면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는 92.0%(82만 3737표), 전북 86.2%(98만 322표), 전남 89.3%(103만 8347표)를 기록했다.
연일 광폭 행보인 이 대표가 보이지 않는 지점이 있다. 청와대 문제다. 8월과 9월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 문제에 대해선 ‘로우키’를 넘어 ‘청와대 참모’로 돌변했다. 이 대표가 ‘우병우 사태’와 관련해 ‘선 진상 규명-후 조치’의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하자 ‘낀박’(친박계와 비박계에 끼었다는 뜻)인 정진석 원내대표는 “민정수석의 신분으로 어떻게 검찰에 가서 조사를 받겠느냐”고 사퇴를 촉구했다. 투톱 간 균열이 발생한 것이다.
이 대표가 수평적 당·청 관계는커녕 사실상 청와대 거수기로 전락할 경우 범친박계 균열은 불가피하다. 경우에 따라 비박계 대선주자인 김무성 전 대표를 비롯해 유승민·나경원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의 활동 공간이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대표의 이중 행보가 표심의 엇박자로 귀결하다는 점이다. 이 대표의 민생행보는 중도 무당층, 서진 전략은 야권 지지층에 보내는 강력한 러브콜이다. 하지만 수직적 당·청 관계의 고착은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전통적인 보수층에 구심력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집토끼와 산토끼가 정치적 사안마다 충돌, 결국 ‘도로 친박당’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분석도 이 지점과 맞닿아있다.
특히 4·13 총선에서 나타난 여소야대 국면이 ‘친박도 싫다’ ‘친문도 싫다’는 중도 무당파의 파워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정현 리더십’은 새누리당 대권 가도에 치명타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중도 무당파의 이탈, 야권의 비토 등이 맞물릴 경우 상당한 고전이 예상된다.
한 평론가는 ‘이정현 리더십’과 관련해 “그간 당·청 관계에서 약점을 드러낸 보수정당이 또다시 박 대통령을 에워싸면서 거수기 역할을 한다면, 총선과 마찬가지로 역풍이 일 수 있다”고 말했다. 최대 시험대는 차기 대선 경선 룰이다. ‘반기문 대망론’이 상수인 상황에서 이 대표가 공정한 대선 경선 룰을 만들지 주목된다. 이 대표가 넘어야 할 산은 다름 아닌 박 대통령과 친박계인 셈이다.
제1야당을 이끄는 추미애 더민주 대표는 추석 직전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고 이승만·박정희·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참배하며 통합론을 앞세운 추 대표는 9월 12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예방할 계획이었다. 추 대표는 “살아계신 분에게 그냥 예의를 갖추겠다는 정도”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으나, 내부에선 5·18 군사 쿠데타에 대한 전 전 대통령의 사과를 이끌어내 통합 메시지를 던지려는 의도였다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결국 무산됐다. 예방 나흘을 앞둔 9월 8일 우상호 원내대표와 당 최고위원과 소속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반나절 만에 취소했다. 추 대표와 8·27 전당대회 예비경선(컷오프)에서 경쟁한 송영길 의원은 “헌정 찬탈 살인범을 전직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고 친문계인 양향자 최고위원도 “파렴치한을 왜 만나느냐”고 반발했다. 당 안팎에선 “터질 게 터졌다”며 독불장군식 불통 리더십이란 비판까지 제기됐다.
추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의 ‘불화설’도 점화됐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환상의 호흡을 맞췄던 우 대표는 9월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침묵정치를 펼쳤다. 회의 사회를 본 최충민 사무부총장이 “우 원내대표는 사전에 침묵으로 말하겠다고 했다”고 하자, 추 대표가 “예, 침묵의 시간을 드려야죠”라고 말했다.
‘우병우 사태’를 비롯해 조선·해운산업 구조조정 연석청문회(서별관회의 청문회) 등 정국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제1야당 원내사령탑이 입을 닫은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우 원내대표는 “몸이 안 좋았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최근 추 대표가 사무처 당직 인선 등에서 우 원내대표를 배제한 채 ‘나 홀로 인사’를 강행하자, 우 대표가 침묵시위를 벌였다는 얘기도 나온다. 더민주 한 중진 의원은 “추 대표의 리더십은 계속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예고된 침묵이었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추 대표의 독선적 리더십으로 1차적으로 친문계와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등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의 갈등, 2차적으로 범 친노계의 분화를 촉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친문계와 운동권 그룹은 이미 8·27 전당대회에서 친문계 지지를 받은 양향자 최고위원과 민평련 소속인 유은혜 의원의 대결에서 한 차례 진행된 바 있다. 정치적 현안마다 노선·이념 투쟁이 벌어질 수 있다.
이 경우 범 친노계 내 강경파 그룹에서 ‘추미애 비토론’이 확전 양상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호남(지역)과 2040(세대), 중도 무당파(이념)를 잡아야 하는 더민주로선 국민의당과 제3 지대론의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 등에게 대권 이니셔티브(주도권)를 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추 대표의 본격적인 시험대는 추석 직후부터”라며 “새누리당과 더민주 중 어느 당이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연말정국 승자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
원샷원킬 국감 여야 저격수는? ‘제2의 노무현’ 누가 될까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국감)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의 저격수들도 칼날을 갈고 있다. 정기국회의 꽃으로 불리는 국감은 초선 의원들과 숨어있던 저격수들이 자신의 존재감과 인지도를 올릴 수 있는 향연장이다. 1988년 헌정 사상 첫 5공 청문회 당시 초선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신군부 핵심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명패를 던진 일은 28년이 흐른 지금까지 회자된다.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인제 전 새누리당 의원도 그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청문회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면서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촉발한 한보 사태 당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김민석 민주당 대표도 빼놓을 수 없는 청문회 스타다. 더민주 한 관계자는 “청문회는 여당보다는 야당, 중진보다는 초선이 주목받을 수 있는 정치의 장”이라고 말했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한국 대선사의 한 획을 그은 노무현 신드롬을 바탕으로 대권 고지에 올랐고, 이 전 의원은 1997년 대선에서 제3 후보론 바람을 일으켰다. 김 대표는 2002년 대선에서 탈당, 정몽준 당시 국민통합21 후보를 지지한 후 사실상 야권의 역적으로 찍혔지만 그 이전까지 그는 차세대 지도자 1순위였다. 20대 국회도 저격수들이 즐비하다. 국회 정무위원회의 대표적인 ‘원샷원킬’ 의원은 더민주에선 간사인 이학영 의원을 비롯해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 출신인 김영주 의원, 민주정책연구원장을 지낸 민병두 의원, 초선 최운열·제윤경 의원 등이 있다. 국민의당에선 좋은기업지배연구소 연구위원 출신의 채이배 의원, 정의당에선 심상정 의원 등이 재벌 저격수로 나선다. 새누리당에선 간사인 유의동 의원을 비롯해 정책통인 김용태·김종석 의원 등이 야권 저격수의 맞수로 거론된다. 법제사법위원회도 뜨겁다. 새누리당은 간사인 ‘킬러본능’ 김진태 의원, 더민주는 간사인 율사 출신의 박범계 의원이 정면 승부를 예고하고 있다. 여기에 ‘정보통’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과 ‘삼성 X-파일’을 폭로했던 노회찬 정의당 의원도 검찰 개혁 등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 전망이다. 기획재정위원회도 각 당 간사인 이현재·박광온·김성식 의원이 진검승부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정책통인 새누리당 김광림·유승민·이종구·이혜훈·추경호 의원과 더민주 김종인·김진표 ·김현미·박영선·송영길·윤호중·이언주 의원 등도 저격수 출격 채비를 마쳤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내년에는 정기국회 때 대선이 치러지면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며 “이번 정기국회 국감이 자신의 인지도 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다. 올해가 아니면 2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