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제처럼 복용 땐 ‘저용량’ 드세요
▲ 아스피린은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지만 장기 복용시 남성보다 여성에게 위장출혈과 내출혈 등의 부작용이 생기기 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아스피린이 심혈관 질환이나 뇌졸중 등을 예방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영양제처럼 매일 복용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고 한다. 과연 그래도 될까. 아스피린의 효능과 부작용 등 안전한 복용상식을 짚어본다.
아스피린이 심혈관 질환을 예방한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연구 결과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대규모 임상연구를 실시한 결과, 아스피린을 매일 적당히 복용하면 심장병은 44%, 뇌졸중은 48%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용량 아스피린이 폐색전증과 심정맥혈전증 발병률을 33% 이상 낮춘다는 보고도 있다.
미국심장학회(AHA) 역시 아스피린이 매년 5000명 이상의 미국인을 심장마비에서 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아스피린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심혈관 질환 예방 필수 약물 리스트에도 올라 있다.
아스피린은 암의 예방이나 치료에도 도움이 될까. 암 중에서 유방암이나 전립선암, 대장암, 식도암의 발생 위험을 낮추는 효과는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60세 이상 남성 1000여 명을 6년 동안 관찰한 결과, 아스피린을 복용한 그룹은 전립선암 발병률이 4%로 복용하지 않은 그룹의 9%보다 훨씬 낮았다.
대장암과 관련해서는 아스피린을 6년간 복용한 그룹에서 대장암이 70%까지 예방됐다는 연구결과가 있고, 최근에는 아스피린을 정기적으로 복용한 여성들에게서 유방암 예방 효과가 나타났다는 보고도 있었다.
당뇨병 환자에게는 아스피린이 혈당을 떨어뜨리고 눈의 망막병증 같은 합병증 발생을 늦추는 효과가 있다. 당뇨병 환자는 혈소판 생존기간이 짧아 더 빨리 응집되는데, 아스피린이 이것을 줄여준다.
치매에 걸릴 경우 초기단계에선 아스피린을 보조치료제로 쓰기도 한다.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아스피린을 1일 325mg 투여했더니 인지력, 뇌혈류가 개선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해열·진통 목적으로 보통 500㎎의 고용량 아스피린을 쓴다. 하지만 심장병이나 뇌졸중, 암 예방 등의 목적으로 매일 복용할 때는 이것보다 용량이 훨씬 적은 100㎎의 저용량 아스피린을 쓴다. 처방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인 데다 가격이 저렴해 부담이 없다는 것이 아스피린의 큰 장점이다.
간혹 500㎎짜리 고용량 아스피린을 5분의 1로 쪼개 먹어도 똑 같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장에서 녹도록 코팅이 된 저용량 아스피린과 달리 해열·진통제로 개발된 고용량 아스피린은 바로 위에서 흡수돼 위장장애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할 때는 식후에 위벽을 자극하지 않는 상태에서 복용하는 것이 좋고, 먹은 후에는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 올바른 복용법이다.
그렇다면 예방 목적으로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건 어떤 사람들이 해야 할까. 심혈관질환의 위험이 높은 40대 이상의 남성이나 폐경기 이후의 여성, 그리고 고혈압이나 당뇨병, 고지혈증 등의 질병으로 인해 심혈관 질환의 발병률이 3~4배 높은 사람들이 대상이 된다. 애연가들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심혈관질환의 위험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효과를 보는 것은 아니다. 지난 6월에 동아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한진영 교수팀이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면 뇌졸중이나 심장마비 등 심혈관 질환을 예방할 목적으로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환자의 13%는 약효가 듣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신경과 아스피린 복용 환자 30명을 대상으로 혈소판 응집능 검사(ADP)를 한 결과 4명(13.3%)은 아스피린 저항성이 생긴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아스피린 저항성’이란 혈소판 응집능 검사에서 응집이 70% 이상이고, 아라키돈산에 대한 응집이 20%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미국 클리블랜드클리닉 기준).
또한 성별에 따라 아스피린의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주장도 나왔다. 미국 심폐연구센터 연구팀은 11만 3000여 명을 대상으로 심장마비에 대한 아스피린의 효과를 연구한 결과, 남성이 많이 참여한 연구에서는 아스피린이 심장마비 발병 위험을 크게 줄인 반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심장마비 발병 감소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심혈관 질환을 일으키는 위험 요소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많기 때문이다. 보통 남성들은 심혈관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흡연이나 과도한 스트레스 등에 많이 노출돼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아스피린을 복용할 때는 남성보다 위장출혈, 내출혈 등의 부작용이 생기기 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고혈압 같은 심혈관 질환 위험 인자가 있는 여성이라 해도 아스피린을 복용할 때는 반드시 전문의와 상의한 후에 복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무리 좋은 약도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아스피린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위장출혈로, 아스피린을 장기 복용하는 이들 중에는 위 점막이 손상돼 속쓰림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평소 위장이 약하거나 위궤양 등의 장내 출혈이 있다면 아스피린 복용을 피하고, 아스피린을 복용한 후에 변 색깔이 검게 나오면 위장관 계통의 출혈이 의심되므로 즉시 복용을 중지하는 것이 좋다.
아스피린이 지혈 작용을 방해하기 때문에 수술을 앞둔 환자나 평소 코피를 잘 흘리는 사람, 혈우병 같은 출혈성 질환이 있을 때는 복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기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이나 천식, 활동성 간질환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삼성서울병원 손기호 약제부장은 “수술을 계획 중인 경우에는 수술 1주 이내에 아스피린을 복용했을 때 지혈을 방해해 출혈이 많다는 보고가 있는 만큼 미리 아스피린 복용을 일시적으로 중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아스피린과 관절염 치료제로 사용되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를 함께 복용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둘 다 위장에 좋지 않은 약으로 같이 복용하면 위장관 부작용 위험이 무려 9배나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통풍 환자는 아스피린이 요산의 배설을 방해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심한 천식이나 만성 두드러기가 있는 경우에도 심혈관 질환 등을 치료하기 위해 아스피린을 사용했다가는 자칫 아스피린 과민증으로 위험할 수 있다. 아스피린 과민증이 있는 사람들은 만성 두드러기에서 만들어진 히스타민이란 물질이 아스피린과 반응해 과민증을 보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주대병원 알레르기·류머티스내과 박해심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만성두드러기 환자 227명 중 35.7%인 81명이 아스피린 과민증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은 출산을 앞두거나 생리 중일 때는 복용하지 않도록 한다. 드물기는 해도 어린이들이 아스피린을 복용하는 경우에는 뇌와 간에 손상을 주어 의식불명 상태가 되는 ‘라이증후군’에 걸릴 수도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두통약 등으로 쓰기 위해 가정상비약으로 둔 아스피린을 무심코 영유아의 해열제로 쓰지 않도록 주의한다. 영유아가 심한 열이 날 때는 아스피린 대신 타이레놀을 쓰는 것이 안전하다. 물론 타이레놀도 과다 섭취할 경우 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다른 약보다 부작용이 적은 편이어서 영아, 임산부에게도 사용되고 있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서울대의대 약리학과 장인진 교수, 삼성서울병원 손기호 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