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한(반한나라) 전선’ 구축 가랑비가 소나기 될까
▲ ※ 자료출처: KSOI, 2007년 5월 8일 조사, 전국 700명 전화조사,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 3.7% | ||
열린우리당의 창당 주역이자 참여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양대 잠룡인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전 의장은 이번 사태로 정국의 중심으로 복귀했다. 지난 200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 전횡과 아들들 비리로 시작된 정풍운동을 함께 주도해 왔던 두 사람이 이번에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투쟁’ 전선에 다시 함께 선 것이다. ‘공조’의 모양새를 취했던 당시와 달리 이번에는 각자의 셈법을 가지고 따로 움직이고 있긴 하다.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과 싸우면 죽는다’는 정가 괴담이 퍼져있던 상황에서 이들 두 사람이 정면대응에 나선 것은 새판짜기가 더 이상 늦어진다면 사실상 정치적으로 고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세력은 이미 당 대 당 통합 형태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합쳐져 이른바 호남과 충청을 중심으로 한 서부연합이 복원되는 것에 대해 절대 수용 불가의 입장을 보여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국 열린우리당의 몸통세력들이 당을 뛰쳐나가 ‘노무현 사단’을 배제하고 제3지대에서 ‘도로 민주당’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에 강력히 제동을 걸고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청와대는 김근태 전 장관은 몰라도 그동안 ‘장학생’ 수준의 밀월관계를 유지했던 정동영 전 장관 측의 움직임에 적잖게 당황하는 모습이다.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의도하는 새로운 진보노선에 기반한 전국정당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주요 주자를 잃는 것과 동시에 친노그룹이 정국 전반에서 실질적으로 고립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 정치를 시작한 이후 끊임없는 정면승부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 시켜왔던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까지와 달리 불리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게 전망된다. 이러한 전망은 열린우리당에 남아 있는 의원들 중 거의 대부분이 지금의 열린우리당, 즉 노무현당으로는 안 된다는 ‘의지’가 뚜렷하고, 스스로의 정치력에 한계를 가진 고건 전 총리나 정운찬 전 총장과는 달리 정동영 전 의장이나 김근태 전 의장 등은 만만치 않은 현실 정치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무당적의 임기 말 현직 대통령이 정치에 깊이 개입해 차기 대선주자들과 힘겨루기를 하는 양상 자체가 여론의 명분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비노 친노 간의 갈등이 불거진 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한미FTA 협상 타결 등으로 지지도 상승세를 보이던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다시 하락곡선을 그리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반대로 같은 조사에서는 이번 친노 비노 전쟁의 가장 선두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정동영 전 의장의 지지도는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소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실제 정동영계 및 김근태계 의원들은 물론 친노직계를 제외하고 두 사람의 돌출행동에 자제를 촉구하는 나머지 세력들 역시 그동안 명분으로 내세웠던 ‘대통합’의 가시적 성과가 없다면 5월 말에서 6월 초까지는 탈당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이 실제 벌어질 경우 열린우리당은 일부 친노세력만이 남게 되며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와 김혁규 의원 등이 남아 이른바 ‘꼬마우리당’ 내부에서 대선주자 경선을 치러야 하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만들어 질 수도 있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이번 정치적 파동은 결국 호남 중심의 대통합을 저지하려는 ‘노무현 일병 떼놓기’가 될 가능성이 높아져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번 승부에서 비록 노 대통령 측이 고립되고, 정동영 김근태 중심의 비노 진영이 승기를 잡는다 해도 범여권의 새판짜기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재로서 가장 구체적 그림은 범여권의 ‘대통합’ 신당 구상이 가장 구체적이다. 즉 외부 제 3지대에 열린우리당 탈당세력의 상당수가 집결하고 여기에 천정배 의원 중심의 민생정치모임, 그리고 민주당 등 일부 정치세력이 합쳐져 ‘대통합’을 명분으로 한 새로운 세력이 부상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대통합을 전제로 주요 대선주자인 손학규 전 지사, 정동영 전 의장, 김근태 전 의장, 천정배 전 법부장관 등이 이를 축으로 한 경선에 참여해 반한나라당 전선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3지대 대통합신당의 시나리오가 실제 실현될 지는 아직 전망이 불투명하다. 이는 근본적으로 비한나라당 진영의 어느 후보도 자신을 중심으로 한 의미 있는 구심력을 확보할 수 있는 동력 즉 ‘지지도’가 받쳐 주지 않기 때문이다. 대선주자들이 정치공학적 유·불리에 집착할 경우 섣불리 대통합에 올라타기 어려울뿐더러 각 세력들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대통합 과정 자체가 순탄치 않을 가능성이 높다. 즉 ‘뭉쳐야 산다’는 확신 하에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국회의원들 중심의 셈법과 달리 자신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을 구상하는 대선주자들의 셈법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마디로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 대선주자 스스로 주도권을 장악해 경선에서 유리한 구도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없이는 섣불리 대통합 흐름에 올라서는 데 주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손학규 전 지사 역시 대통합 신당에 쉽게 올라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현재 만들어지는 제3지대의 신당은 열린우리당의 ‘유민’ 중심의 정치세력인 만큼 한나라당에서 굴러들어 온 자신이 주도권을 확보하고 경선에서 승리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따라서 당분간 범여권과는 일정한 수준의 거리두기를 계속하면서 자신이 중심이 되는 제 3세력화를 모색할 가능성이 높아 ‘대통합’을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의 변수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손 전 지사 측은 열린우리당의 이탈 세력 중 개별적 친분을 중심으로 자신의 세를 불려 정치세력화한 후 국민경선에 참여하거나 후보단일화 단계에 참여하려 할 수 있다. 그러나 탈당한 이후 5% 안팎의 지지도에 머물고 있는 손학규 전 지사가 자력으로 지지도를 급상승시켜 의미 있는 ‘구심력’을 확보하고 독자적으로 정치세력화 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한 곳에 모여 대통합을 추진하려는 ‘군집’ 성향이 강한 탈당세력들이 손 전 지사의 지지도가 반한나라당 전선의 핵이 될 만큼 높이 상승하지 않는다면 동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전망이 밝지 않다.
이 경우 손 전 지사로서는 두 가지 선택이 남아 있게 되는데 앞서의 제 3지대 대통합에 ‘할 수 없이’ 참여하거나, 그 동안 정동영 전 의장이 주장해 온 ‘정-손’ 연대 또는 한 발 더 확대해 심대평 전 지사까지를 아우르는 중도대연합을 수용하는 것을 말한다. 전자의 경우 비한나라당 진영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대통합의 흐름이 만들어 본선에 유리한 반한나라당 전선에 합류하는 그림이지만 개별 대선주자로서는 다양한 세력이 모여 있어 대선경선의 주도권을 잡기가 쉽지 않고 경쟁 대선주자 후보군이 난립함으로서 주도권을 확보하기도 어렵다는 단점을 가지게 된다. 반면, 중도대연합의 경우 중도성향의 대선주자인 정동영 전 의장 등과 손을 잡음으로서 양강 간의 대결로 압축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으나 지금의 상황에서 정동영 전 의장이 끌고 들어오는 세력에 대항해 자신의 지지세력을 확보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어서 역시 쉽지 않은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치세력 역시 범여권 대통합의 구상과는 다른 흐름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제3지대의 대통합 세력은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과 최열 환경연합 대표 등이 중심이 된 시민사회 세력의 참여를 촉구할 가능성은 높으나 정작 시민사회 세력은 아직까지 정치세력화에 대한 최종결정이 난 상황도 아니고 대선에 참여한다 해도 참여정부의 정치적 자산을 승계하는 데 적잖이 부정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 진영 역시 열린우리당 탈당세력이 추진하는 경선 그림에 합류하기보다는 일부 범여권 세력과 개별적으로 연대하되 큰 틀에서는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꾀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 같은 상황에서 김근태 전 의장과 천정배 의원을 중심으로 한 진보 신당 추진은 또 하나의 그림이 될 수 있다. 즉 반FTA 등을 중심으로 나름대로의 선명성을 드러내고 있는 이들 진보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열린우리당 이탈 세력을 흡수하고 특히 상대적으로 ‘진보’ 입장이 강한 시민사회 진영과의 통합을 추진하는 이른바 ‘진보신당’의 그림이다. 그러나 기존 정치권과의 연계를 최소화하고 독자세력화에 무게를 두는 시민사회 진영이 이들과 함께 진보신당을 만드는 데 동참할지는 불투명하다. 또 현재로서는 김근태 전 의장과 천정배 의원을 따르는 세력의 수가 많지 않고, 실제 지금 따르는 의원들 역시 제3지대의 대통합 신당을 현실적 대안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아 이 역시 실현되기가 쉽지 않다.
범여권의 새판짜기에 있어 마지막 변수는 친노 진영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친노세력은 일단 독자생존의 방식을 택해 내부 경선을 통해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와 김혁규 의원 중 한 명의 후보를 선출해 대선에 독자적으로 출마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니 경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떨어질 수 있고, 반한나라당 전선을 만들어 가는 큰 흐름에서 홀로 고립되는 구도인 동시에 흥행성도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 내부적으로 회의론에 봉착할 가능성을 무시하기 힘들다. 따라서 상황을 지켜보면서 일단 외부의 세력 즉 대통합 신당추진 세력이나 시민사회 진영 중 하나와 연대해 연합 경선의 형태를 추진할 가능성도 있고, 독자 후보 선출 후 과거 2002년과 같은 ‘후보단일화’에 참여하는 형태가 만들어 질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로서는 향후 범여권 새판짜기는 크게 봐서 열린우리당 중도계와 손학규, 정동영, 김근태 등 주요 대선주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대통합 신당의 흐름과 2개의 독자세력, 즉 친노세력 중심의 열린우리당과 시민사회 중심의 독립적 정치세력이 분열하는 3분 구도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기존의 정치세력이 중심이 되어 대선주자 간 경선을 추진하는 ‘대통합’ 흐름과 대선주자들이 중심이 되고 각 정치세력이 헤쳐모여 대선주자를 중심으로 한 중도신당과 진보신당이 나뉘는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흐름이 가시화 되는데 있어 결정적 변수는 각 주자들의 지지도 상황일 가능성이 높다. 기존 정치세력의 이해관계나 구상에 앞서 ‘뜨는’ 대선주자들 중심으로 정국의 흐름이 만들어질 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한나라당 내부 상황과 별개로 아직까지 범여권의 대선주자 누구도 두각을 나타낸 후보는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 한나라당의 정당 지지도가 하락하더라도 비한나라당 진영의 어느 쪽도 반사이익을 거두는 현상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이런 점에서 범여권의 정계개편은 한나라당의 대선주자와 적어도 ‘경쟁이 될만한’ 인물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진통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