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기반에도 국내연구진 ‘일당백’, 세계와 어깨 나란히…“기초연구 절실” 한 목소리
[대전=일요신문] 박하늘 기자 = 최근 메르스, 지카, 에볼라, 뎅기열, 독감 등 갖가지 바이러스 감염증이 우리사회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메르스의 출현으로 대한민국 경제는 마비됐으며 에볼라는 대처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몰아넣고 있다. 지카바이러스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직접 나서 감염지역 여행자들에게 6개월간 성생활을 중단하도록 권고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최근 발생하고 있는 바이러스 감염증들은 기존 데이터가 없는 돌연변이에 의한 것으로 백신개발이 더욱 까다로워지고 있다. 그 어느때 보다도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계 각국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바이러스를 제압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바이러스의 실체가 점점 밝혀지고 있으며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는 효소, 독성활성을 선택적으로 저해하는 물질 등 항바이러스제 개발도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바이러스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 기반은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 2월 한국화학연구원의 주관으로 열린 ‘인수공통감염병 다부처 연구개발(R&D) 기획 공청회’에서 2010년 기준 국내 생명공학 전체 연구자 중 인수공통감염병 전문연구인력은 3.8%에 불과하며 고위험병원체를 실험할 수 있는 생물안전 3등급 연구시설 BL3도 2014년 기준 국내 39개밖에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공청회에서 한 연구자는 “우리나라는 바이러스 기초연구의 사각지대”라고 꼬집었다. 우리사회가 바이러스 감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은 필연이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열악한 연구 환경에도,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일당백’의 역할을 해내며 바이러스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생명연, 세계최초 효소복합체의 바이러스 면역 시스템 규명…“바이러스 면역 활성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미생물면역연구센터 김명희 박사와 충남대 이종수 교수는 체내에 있는 효소복합체 중 EPRS 단백질(세포내 효소복합체의 구성원)의 항바이러스 면역 활성 기전을 규명해 바이러스 치료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체내 거대 효소복합체의 근원적인 세포 기능을 규명하기 위해 입체구조분석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 중 효소복합체가 단백질합성효소의 기능 외에도 감염과 같은 긴급한 상황에 대응해 감시와 면역 조절시스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가설을 토대로 연구를 수행한 결과, 연구팀은 인체가 RNA 바이러스가 감염되면 이를 즉각 인지한 효소복합체는 EPRS 단백질을 방출해 항바이러스 면역 반응에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는 MAVS 단백질(미토콘드리아 세포막에 존재하는 단백질, 바이러스 감염시 항바이러스 면역을 일으키는 싸이토카인 분비를 조절해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을 보호해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EPRS가 결여되면 항바이러스 싸이토카인 분비가 저해돼 바이러스 억제 능력이 떨어져 생존율이 현격하게 낮아지고, 반대로 EPRS가 과발현되면 바이러스 증식 억제 능력이 현저히 증가함을 확인했다.
연구책임자인 생명연 김명희 박사는 ”인체가 바이러스에 감염됐을때 면역이 활성화 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 연구는 EPRS 단백질이 인체의 면역을 활성화해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것을 발견한 것으로 세계 최초“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명희 박사는 ”바이러스는 체내 면역이 활성화되면 증식이 억제되고 결국 감염된 세포가 죽거나 바이러스 활동이 멈추게 된다“ 며 ”바이러스 치료 연구는 체내 면역 기술 개발로 향하는 것 좋다고 생각한다“며 바이러스 치료 연구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KAIST, 국내 최초 ‘네이처 리뷰 면역학’에 초청…”세계적 수준 도약“
그런가 하면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에 초청돼 우리나라 면역학을 세계에 드높인 연구자도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의과학대학원 신의철·박수형 교수, 카톨릭의대 성필수 박사는 우리나라 과학계에선 최초로 ‘네이처 리뷰 면역학(Nature Reviews Immunology)’ 초청 리뷰에 논문을 게재했다.
면역학 분야 최고 권위지인 네이처 리뷰 저널은 세계적 석학을 초청해 각 분야의 전반적인 내용을 총정리하는 저널이다. 네이처 리뷰 저널에 초청됐다는 것은 우리나라 면역학이 세계적 반열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지난 15년간 C형 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인체 면역반응 연구에 매진했으며 최근에는 A형 간염 바이러스 면역에 대한 새 연구 결과들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A형·B형·C형 간염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반응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총체적으로 고찰하고 체계적으로 비교해 미래 연구의 방향을 제시했다.
신의철 교수는 ”이번 초청 리뷰는 KAIST 의과학대학원의 면역학 연구가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하고 있음을 증명한 것“이라며 ”면역학 연구에 정진해 인간 질병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바이러스 분야, 기초연구 절실해“ 한 목소리
이들 면역학 분야 권위자들은 바이러스에 대한 기초연구가 절실하다 입을 모았다.
생명연 김명희 박사는 ”우리나라 바이러스 감염 부분에서 기초연구 많이 부족하다. 바이러스 인체에 감염되는지 기전이라든지 인체 내에서는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며 ”우리나라의 바이러스 연구는 백신, 치료제 등 실용화에 연구비가 치우쳐져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바이러스는 돌연변이가 만들어진다. 돌연변이가 생길때 마다 이에 맞는 새로운 백신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바이러스를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서는 기초지식 축적되야 한다“며 ”바이러스를 감시하고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어떻게 감염되는지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밝혀 내야 한다. 이것이 선행된다면 메르스 사태와 같은 창피한 경험을 하지 않을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KAIST 신의철 교수는 ”메르스, C형 간염 등이 터졌을 때 사람들은 ‘이런 감염병이 생긴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밝혀지지 않은 미생물들은 계속 나올수 없다. 생긴게 문제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예전에 우리는 경제성만을 생각하고 바이러스 백신 연구를 소홀히 했다. 외국에서 나온 백신을 들여와 사용했기 때문에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했다“며 ”그러나 이제는 바이러스 문제를 스스로 해결 해야한다. 극단적인 예로 우리나라와 중국에만 있는 살인진드기 바이러스가 있다. 미국 등 바이러스 분야 선진국들은 이에 대한 백신은 개발하지 않는다. 이는 생존의 문제임다. 합리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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