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체 없는 젊은이들 거리에 가득
▲ 현재까지 알려진 간염 바이러스는 A형 B형 C형 D형 E형 G형 등이다. 이 중 A형의 증가 속도가 최근 매우 빨라졌다. 사진은 A형 간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혈액검사를 하는 장면. 사진제공=을지대학병원 | ||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02년 317명이었던 A형 간염 환자는 2005년 798명, 2006년 2081명, 2007년 2233명, 2008년 7895명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지난달 20일에 이미 환자가 4265명에 달해 이런 추세라면 연말에는 지난해의 2배 수준을 넘는 환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게 질병관리본부의 예측이다.
바이러스가 침입했을 때 이에 대응하기 위한 신체의 면역반응으로 간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 간염. A형 간염은 주로 바이러스에 의해 오염된 식수나 음식물을 통해 감염된다. 또한 감염된 사람의 침, 대변을 통해서도 전염되므로 직접적인 접촉이나 환자의 대변에 오염된 물을 이용할 때도 전염된다. 때문에 단체생활을 통해서 옮는 경우가 많다. 계절적으로는 야외 활동이 많은 시기인 요즘이 A형 간염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
문제는 A형 간염은 감염과 동시에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보통 4주간의 잠복기를 거친다는 점이다.
을지대학병원 소화기내과 이향이 교수는 “A형 간염 바이러스는 주로 간염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잠복기와 발병 초기에 전파되고, 진단이 이루어질 때는 이미 전염력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가장 전염성이 높을 때는 간 효소의 수치가 증가하거나 황달이 나타나기 2주 전이다. 이 시기에 대변에 바이러스가 가장 많이 섞여 있다.
또 증상이 감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간염인 줄 모르고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A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증상이 없거나 가벼운 감기 증상만 겪고 넘어가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자연면역이 생긴다.
하지만 어른의 경우 초기에는 감기몸살처럼 열이 나고 식욕부진, 근육통, 관절통, 두통, 오심, 구토 등으로 고생한다. 감기와 달리 콧물이 나지는 않는다. 나중에는 소변의 색이 진해지고 황달도 생긴다. 이때는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서 무리하지 않고 고단백 식이요법, 휴식에 신경 쓰면 좋아진다. 아직까지 A형 간염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약은 개발되지 않았지만 증상을 완화시키면 점차 개선되는 것이다. 증상이 심하다면 입원 치료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대로 두었다가는 바이러스가 간 전체로 퍼지고, 간세포가 빠른 속도로 파괴돼 급성 간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만성 간질환이 없다가 갑자기 간 기능이 나빠지는 것을 급성 간부전이라고 한다.
이향이 교수는 “급성 간부전 상태에서는 간 이식을 하지 않으면 50~80%의 환자들이 1개월 안에 사망할 정도로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급성 간부전은 A형 간염 외에도 B형 간염이 갑자기 악화되거나 약물 복용 등으로 간이 손상됐을 때도 생길 수 있다.
A형 간염은 과거에는 어린아이들에게 많았지만 요즘은 위생 상태가 좋은 환경에서 자라 항체가 거의 없는 청소년기나 20~30대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A형 간염 환자 10명 중 8명은 20~30대의 젊은 층이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9년 사이에 건강검진을 받은 103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29세의 경우 A형 간염 항체 양성률이 4.4%에 불과했다. 30~39세는 이보다 높은 38.8%, 40~49세는 85.2%, 50~59세는 98.4%, 60세 이상은 96.1%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15세 이상 국내 인구는 대부분 A형 간염 바이러스 항체를 가지고 있었다. 또 1990년대 후반까지도 A형 간염 항체 양성률이 20세 미만 20%, 20~30세 40~60%, 30세 이상 80~90% 등으로 지금보다는 높았다.
때문에 A형 간염에 걸리면 증상이 심한 20~30대는 미리 예방접종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만성 B형, C형 간염이나 다른 간질환으로 이미 간 건강이 나쁜 경우, 집단생활을 하는 경우, 의료업 종사자, A형 간염 유행지역으로 여행을 가는 경우, 혈우병이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A형 간염 예방접종을 받도록 한다. 40세 이후에는 혈액검사를 통해 항체가 있는지 확인한 후에 접종한다.
아직 B형 간염 항체가 없는 경우에는 B형 간염 예방접종도 같이 하는 것이 좋다. 예방접종 후에는 검사를 해서 항체가 생겼는지 확인한다. 만약 가족 중에 B형 간염 환자가 있다면 나머지 가족들은 반드시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
B형 간염이 무서운 것은 만성화된 지 10년이 지나면 전체의 약 11%, 20년이 지나면 35% 정도가 간암에 걸리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성 간염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진행돼 간경화, 간암 같은 심각한 질환으로 발전된 경우가 의외로 많다.
A형이나 B형과 함께 급성 간염을 일으킬 수 있는 C형 간염은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다. C형 간염은 일단 감염되면 만성화되는 비율이 50~70%로, B형 간염보다 더 높다. 만성 간염에서 간경변으로는 진행되는 확률도 25%로 높다.
때문에 C형 간염은 예방이 최선의 방법이다. C형 간염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혈액 등 체액에 의해 주로 감염된다. 성적인 접촉이나 수혈, 혈액을 이용한 의약품, 오염된 주사기 또는 소독하지 않은 침 등을 잘못 사용할 때 위험성이 높다. 또는 피어싱을 하거나 문신을 새기는 과정 등에서 감염되는 예도 있다.
C형 간염을 예방하려면 주사기는 반드시 1회용을 사용하고 침을 맞거나 문신, 피어싱을 할 때도 반드시 소독된 도구를 사용한다. 그 외에 면도기나 칫솔, 손톱깎기 등 혈액에 오염될 수 있는 물건은 따로 사용하는 것이 좋고 성적 접촉을 할 때는 콘돔을 쓰도록 한다.
평소 술을 좋아하거나 업무상 술자리가 많은 경우에는 알코올성 간염을 경계해야 한다. 술을 오랫동안 폭음한 후에 찾아오는 것이 알코올성 간염으로, 알코올이 간세포에 직접 작용해 간세포를 파괴한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간경화가 된다. 알코올성 간염의 주증상도 바이러스성 간염의 증상과 비슷하다. 전과 같이 활동을 해도 피로감이 심하고 입맛이 없다. 또 구토감, 복통, 열이 있고 심한 경우에는 바로 황달이 오는 경우도 있다.
알코올성 간염이 심해지면 바이러스성 간염보다 더 빨리 간의 합성기능이 약해진다. 해독기능도 떨어져 혈중 알부민 수치가 낮아지고 혈액응고 요소도 줄어든다.
하지만 알코올성 간염은 당장 술만 끊어도 치료에 크게 도움이 된다. 간 조직에 증가해 있는 섬유조직도 줄어든다. 이때는 저지방, 저칼로리의 식사를 하면서 단백질과 비타민, 미네랄이 충분한 식사를 하는 것이 좋다.
‘독성 간염’이라고 해서 양약이나 한약, 각종 건강식품 등을 오남용할 때 생기는 간염도 있다. 대부분의 증상 없이 간 기능이 손상되지만 구역질이나 구토, 피로, 황달, 가려움증 등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원인이 되는 약이나 식품을 바로 중단하면 간 기능이 회복된다. 드물기는 해도 만약 급성 간부전으로 진행되면 간이식이 필요할 수도 있다.
때문에 무슨 약이든 필요한 용량만 복용법을 잘 지켜서 복용하고, 건강식품도 안전성이 입증된 것을 고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A형 간염 예방수칙]
1)음식을 익혀 먹는다.
A형 간염 바이러스는 85℃ 이상에서 1분간 끊이면 죽기 때문에 음식을 익혀서 먹는 것이 좋다. 물도 끓여서 먹는 것이 안전하다.
2)개인위생에 신경 쓴다.
밖에서 돌아온 후 또는 화장실에 다녀온 후에는 손을 깨끗이 씻는 것이 좋다. 술자리에서는 술잔을 돌려서 술을 마시는 것을 피하고 물컵도 따로 사용한다.
3)미리 예방접종을 한다.
미리미리 A형 간염 예방접종을 통해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 좋다. A형 간염 백신은 2세 이상이면 접종이 가능하고, 초기 접종 후 4주가 지나면 항체가 만들어진다. 1회 접종 후 6개월이 지나서 한 번 더 접종하는 것이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