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밥그릇 넘보지마” vs “새만금 살리기에 꼭 필요”
강원도 내 시장·군수들이 29일 태백시 오투리조트 컨벤션센터에서 시장·군수 협의회(회장 최명희 강릉시장) 정례회를 열고 새만금 특별법 개정안의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만금 복합리조트는 단순한 카지노 시설이 아니다.”
8월 3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전북 군산)은 이같이 강조했다. 김 의원은 “새만금 리조트 건설로 일자리를 만들고 미래성장산업인 관광산업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수십 년간 지지부진했던 새만금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동력을 위한 투자가 될 것이다”고 보탰다.
새만금 정책은 전라북도의 군산시 비응도동부터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까지, 총 33.9㎞의 새만금 방조제를 건설하고 서해안을 육지로 바꾸는 간척 사업이다. 1991년 11월에 착공된 새만금 방조제는 2010년 4월 27일 준공됐다. 매립작업과 부지 조성은 2020년에 끝날 예정이다. 김 의원 최측근은 “새만금은 미래의 땅이다 명품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현재 전북지역 제조업이 성장의 패러다임을 상실했다. 새만금 복합리조트가 새만금 발전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이 8월 17일 대표발의한 새만금 특별법은 ‘내국인 카지노’ 유치를 포함하고 있다. 기존의 새만금사업법에 따르면 일정 요건을 갖춘 외국인투자자는 새만금 지구에 외국인전용카지노업 허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새만금 특별법엔 ‘외국인전용카지노업만 해당한다’는 내용이 삭제됐다. 법안이 통과된다면 내국인이 새만금 지구에서 카지노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판도라 상자가 열린 탓일까. ‘내국인 카지노’ 추진 소식이 알려진 뒤 강원 의원들은 발끈했다. 여야 구분도 없다. 8월 30일 김진태(춘천) 염동열(태백·횡성·영월·평창·정선) 등 6명의 여야 의원들은 새만금 내국인 카지노를 막기 위해 모였다. 이 자리에서 염 의원은 “내국인 카지노 추가 허용을 반대하는 데 공감하는 동료 의원들과 철저히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염 의원의 측근은 “카지노를 왜 추진하는지 모르겠다. 내국인 카지노는 절대로 열어주면 안 된다. 새만금에 주면 다른 지역도 전부 허용해야 한다. 부산도 추진 중이라고 하는데 급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나. 이런 식으로 하나를 열면 나중엔 내국인 카지노를 막을 명분이 없어진다”고 주장했다.
강원 의원들이 새만금 특별법을 강력히 반대하는 속사정은 따로 있다. 강원랜드 영업에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보좌관은 “강원도는 관광 카지노로 먹고산다. 마땅한 생산기반이 없다. 수도권 사람들에게 강원도는 오지나 다름없다. 새만금에 카지노가 생기면 이들은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해 금방 갈 수 있다. 강원랜드의 기본 취지도 사라져서 결국 강원도가 쫄딱 망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강원도 의원들은 난리가 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강원도는 내국인 카지노의 지위를 2025년까지 확보할 예정이다. 1996년 3월부터 시행된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폐특법) 제1조는 “석탄산업의 사양화로 인하여 낙후된 폐광지역의 경제를 진흥시켜 지역 균형 발전과 주민의 생활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강원랜드는 폐광지역의 생존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정부가 예외적으로 내국인 카지노업을 허가한 곳이다.
앞서의 보좌관은 “정부가 탄광산업을 구조조정하면서 그 지역에 먹고 살 것이 없어 카지노를 만든 것이다. 강원도의 청년들에게 딜러 교육을 시켜서 일자리를 창출했다. 강원랜드 수익을 강원도에 재투자하면서 지역 경제가 유지될 수 있었다. 새만금 내국인 카지노는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북 의원들 생각은 다르다. 국민의당의 한 보좌관은 “폐특법은 폐광지역에 한 곳의 카지노를 두는 것이다. 대한민국 전체에서 한 곳에만 내국인 카지노를 허용한다는 것은 아니다. 새만금 특별법이 통과되면 새만금에도 내국인 카지노를 둘 수 있다. 다만 새만금하고 강원랜드 두 곳만 허용한 뒤 30년간 묶어두자는 것이다. 내국인 카지노 없이 복합리조트 투자를 받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다른 보좌관 역시 “강원도가 반대하는 것이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다. 폐특법의 독점적 지위 외에 새로운 사업권을 허용하는 것이 뭐가 잘못됐나”고 반문했다.
김관영 의원 측은 “강원랜드가 도박의 폐해에 대한 규제를 엄격히 하지 못해 문제가 발생했다”는 입장이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강원랜드를 만들 때 도박중독 예방 절차를 만들었어야 했다. 1인당 9000원만 내면 누구나 출입이 가능하고 한 달 기준, 이틀에 한 번꼴로 출입이 가능하다. 너무 헐겁다. 신분 확인 감독도 허술하다. 우리가 추진하는 복합리조트 모델은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샌즈다. 이곳 카지노는 규제가 엄격하고 출입에 대한 관리감독도 철저하다. 자체적으로 계산한 결과 새만금 지구가 복합리조트를 유치할 경우 세수가 매년 1조씩 나올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선 전북 지역 의원들이 새만금 지역에 복합리조트를 추진하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것은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한 보좌관은 “복합리조트를 추진하려면 내국인 카지노를 빼고 추진하면 된다. 그런데 새만금 사업이 지지부진하고 다른 사업들이 잘 안 되니까 전북 의원들이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한 것 같다. 카지노는 들어가는 돈에 비해 이득이 압도적으로 많은 사업이다. 설비만 해놓으면 현금이 쏟아진다”고 말했다.
다른 비서관 역시 “새만금 때문에 지역 여론이 안 좋으니까 성과를 내기 위한 ‘액션’ 중 하나가 카지노다. 복합리조트 건설사업이 말만 번지르르하다. 카지노 업체들 입장에선 우리나라가 노다지다. 중국 동남아 자본까지 쓸어 담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기 때문에 호시탐탐 노리는 것이다. 마카오 쪽은 규제가 심해 들어갈 구멍이 없어 포화상태다. 아시아 쪽에 새로운 출구를 찾아야 하는데 그 출구를 대한민국으로 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여의도발 ‘카지노 대전’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정선태백시지역현안대책위원회 등 등 폐광지역 6개 시민단체는 최근 새만금 카지노 설립을 저지하기 위해 공동행동에 돌입했다. 전북 지역 시민단체들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의 이정현 사무처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복합리조트가 새만금 사업을 촉진시키는 마중물은 절대 아니다. 복합리조트 업체가 공항·도로·항만 등을 만들지 않는다. 10조 원의 투자를 받아도 자신들의 호텔을 짓고 건물을 짓기 위해 사용할 뿐이다. 결국 국민예산으로 도박산업을 증진시켜 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