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당시 “힘 있는 사람이 매물 찾는다” 소문
법인 설립 신청 하루 만에 허가증 발급...안종범 수석이 개입한 정황도
[일요신문] 박근혜 대통령 비선실세 논란이 또 다시 정국을 강타했다. 이번엔 ‘막후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정윤회 씨 전 부인 최순실 씨(최서원으로 개명)가 도마에 올랐다. 고 최태민 목사의 다섯 번째 딸이기도 한 최 씨는 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재단 설립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재단법인 미르. 박정훈 기자
야권은 이번 사건을 ‘권력형 게이트’로 규정하고 화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사실로 확인되면 탄핵감”이라고까지 했다. 친박 핵심부는 곤혹스러워하는 기류가 역력하면서도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그동안 여권 주변에선 ‘역린’이나 다름없는 최 씨와 관련해 여러 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자 박근혜 대통령은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이라며 직접 맞대응에 나섰다. 정권을 겨냥한 공세가 거세지자 정면승부를 택한 것이다. 향후 여야 간 치열한 공방이 불가피해보이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일요신문>은 최 씨가 두 재단 설립 과정에서 일정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정황을 포착했다.
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재단은 각각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설립됐다. 미르는 문화 콘텐츠를 통한 한류 확산, K스포츠재단은 체육을 통한 국민 건강과 행복 실현이 설립 목적이다. 미르에는 삼성그룹 계열사 125억, 현대차그룹 85억, SK그룹 68억 등 19개 기업이 486억 원의 출연금을 냈다. K스포츠 재단에도 역시 19개 기업이 모두 288억 원을 냈다. 공교롭게도 출연금 규모는 재계 순위와 거의 일치한다. 누군가 재계 순위에 따라 출연금 규모를 인위적으로 조율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여기서 나온다.
기금 모금과 재단 설립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주도했는데 야권은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대기업들이 거액을 내놓은 것은 정권의 눈치를 봤거나 외압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에서 추진하는 사업이고 전경련에서 그룹별로 출연금을 할당해 울며 겨자 먹기로 출연금을 낼 수밖에 없었다”며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야권은 과거 전두환 정권 시절 기업에 대한 강제모금으로 물의를 빚었던 ‘일해재단’의 재현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실제로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당시 경제수석)이 두 재단의 설립과정에 개입한 정황이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미르재단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언론사 인터뷰에서 “청와대 개입이 없으면 (이렇게 많은 돈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 수석하고) 직접 통화한 적이 많다”고 폭로했다. 물론 안 수석 측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했다.
K스포츠재단. 박정훈 기자
두 재단은 설립 과정부터 석연치가 않다. 법인 설립을 신청한 지 하루 만에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허가증을 발급해줬기 때문이다. 최근 5년 동안 문체부의 법인 허가 기간이 평균 21.6일이나 걸렸었던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일 만큼 빠른 시간에 이뤄졌다.
법인 설립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신청서를 포함해 사업계획 및 예산서, 재산목록, 정관, 창립 회의록 등 7가지 서류의 적합 여부가 모두 확인되어야 한다. 그런데 문체부는 모든 서류를 하루 만에 검토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문체부 측은 신뢰할 수 있는 전경련이 신청했고 미비 서류가 없어 바로 허가를 내줬다고 해명했다.
법인 설립 허가 신청 시 필수 구비서류인 두 재단의 창립총회 회의록도 마치 복사한 것처럼 일치해 논란이 되고 있다. 회의 장소는 물론이고 안건과 회의 순서, 등장인물까지 거의 유사하다. 그나마 창립총회가 열렸다는 회의장은 정작 창립총회 개최일에 외부에 대여된 적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창립 회의록에는 일부 심각한 오류도 있었다. K스포츠재단 창립총회 회의록에는 한 기업의 간부가 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한 것으로 적혀 있다. 그런데 이 기업은 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낸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 간부가 창립총회에 참여할 명분과 이유가 없었다. 이 기업은 K스포츠재단보다 3개월 먼저 설립된 미르 재단에는 출연금을 냈다. 미르 재단의 창립총회 회의록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과정에서 회의에 참석하지도 않은 인물의 발언까지 포함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회의록은 법인 허가 신청 시 핵심 구비 서류다. 허위로 작성됐다면 법인 허가 취소 사유가 된다. 게다가 두 재단은 문체부에 제출한 공문 내 재산목록도 거의 유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두 재단의 재산목록은 집기목록과 가격, 수량은 물론이고 비품의 기입 순서까지도 일치했다.
청와대는 최순실 씨가 재단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재단 주변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최 씨 이름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우선 두 재단의 사무실 선정과 관련해서다. 미르는 강남구 논현동 4층짜리 건물 3층에, K스포츠재단은 역시 논현동 5층짜리 건물 2층과 3층에 입주해 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두 곳 모두 개인 소유로, 건물 간 거리는 약 500m다.
논현동 인근의 한 부동산업자는 “재단들이 입주할 당시 ‘힘 있는 사람’이 매물을 찾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그 장본인으로 최순실 씨가 거론됐었다”라고 귀띔했다. 정윤회와 최 씨를 잘 알고 있는 지인 역시 “(최 씨가) 재단을 준비하고 있는데 업무를 볼 사무실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을 여러 번 했다”고 보탰다. 이는 최 씨와 재단이 밀접하게 연관이 돼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재단 의혹을 내사했던 이석수 특별관찰관 측 역시 이러한 내용을 확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두 건물이 최 씨가 거주하고 있는 신사동 빌딩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 삼성동 자택과도 가깝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 씨의 신사동 빌딩에서 출발해 두 재단 빌딩을 거쳐, 삼성동 박 대통령 자택까지 차로 이동해본 결과 채 15분이 걸리지 않았다. 야권 일각에서 두 재단이 박 대통령 퇴임 후를 대비한 것 아니냐는 주장을 내놓는 이유다.
최 씨가 재단 이사장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야권은 9월 20일 최 씨를 국회 교문위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해놓은 상태다. 지난 5월 13일 K스포츠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정동춘 이사장은 강남의 위치한 한 스포츠마사지센터의 원장 출신이다. 공교롭게도 최 씨는 이곳의 단골손님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최 씨의 치료와 상담은 정 이사장이 직접 맡아왔다고 한다.
최 씨는 올해 초부터 주변 체육인들에게 K스포츠재단 설립 취지를 설명하며 이사장 등의 자리를 제안하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정 이사장을 추천한 것이 최 씨가 아니겠느냐는 의혹이 나온다. 정 이사장 측은 자신에게 이사장 자리를 제안한 것은 최 씨가 아닌 전경련 관계자라며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다.
최 씨가 재단뿐만 아니라 청와대 인사에까지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월 2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우병우 민정수석의 발탁이나 헬스 트레이너 출신인 윤전추 행정관의 청와대 입성도 최 씨와의 인연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있다”며 최 씨의 인사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두 재단은 대기업들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출범했지만 현재까지 뚜렷한 활동은 없는 상태다. 미르의 경우 박 대통령 해외 순방행사에 참여해 프랑스 유명 요리학교와 협약을 체결한 것이 지금까지의 유일한 공식 활동이다. K스포츠재단의 경우도 지난 5월 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 태권도 시범 공연, 지난 6월 장애인 선수 관련 행사, 7월 어린이 태권도 교실 개최 등 3건이 공식 활동의 전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이석수 감찰관 역린 건드리자 내쫓았나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지난 7월 재단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대해 내사를 진행했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청와대와 연관이 있는 두 재단이 대기업들을 상대로 강제모금을 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후다. 특히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기업들에게 재단설립 기금을 출연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제보도 있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이 감찰관이 수사기밀을 유출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국기 문란’이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이 감찰관은 결국 8월 29일 사표를 제출했고, 박 대통령은 9월 23일 사표를 전격 수리했다. 당초 청와대가 이 감찰관을 공격한 이유에 대해서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감찰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특별감찰관실에서 근무했던 한 인사는 이 감찰관이 두 재단을 내사하려 했기 때문에 청와대가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 관계자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이 감찰관의 수사기밀 누설 논란을 거론하며 ‘국기 문란’이라고 비판한 것은 단순히 수사기밀 누설이나 우병우 수석을 감찰한 데 대한 불만이 아니라 두 재단을 내사한 데 대한 박 대통령의 당혹감과 불쾌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