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2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에 참석한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NEIS와 관련한 보고에 앞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청와대사진 기자단 | ||
그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에이즈(AIDS)보다 더 무섭다는 ‘네이즈’(NEIS:교육행정정보화시스템) 바이러스에 걸린 때문이다. 윤 부총리가 여론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이유는 잦은 말바꾸기. 어느덧 그는 무원칙과 무소신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윤 부총리를 잘 아는 지인들은 지금 상황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시골 훈장 선생님’으로 통할 만큼 30년 교육자 생활에 원칙과 소신을 지켜왔다는 평가를 듣는 그가 결국 ‘내각의 무덤’으로 통하는 교육부 내에서 제대로 뜻을 펴지도 못한 채 흔들리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는 노무현 첫 내각에서 교육부장관으로 발탁된 뒤 취임 일성으로 “나를 뺑뺑이 돌리지 마라”며 부처공무원들에게 호기있게 경고했다. 그러나 그의 카랑카랑했던 기개는 지금 온데간데없다. 결국 그도 3개월간 정신없이 뺑뺑이만 돌아야 했다.
요즘 방송가에서는 ‘NEIS’를 ‘엔이아이에스’로 풀어서 부른다. 그런데 이렇게 부를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 참으로 서글프다. ‘네이스’로 부르면 한국교총 등에서 반발하고, ‘나이스’라고 하면 전교조가 반발하기 때문이다.
반발하는 이들의 주장도 유치하기 짝이 없다. 전교조는 “‘나이스’라니, 뭐가 좋다고 나이스인가”라며 비아냥거리고, 한국교총은 “교육부에서 공식적으로 나이스라고 부르기로 한 것을 그들(전교조) 스스로가 비하하려고 네이스라고 하는 것 아닌가”라며 불쾌해 하고 있다.
하지만 NEIS는 결국 나이스도 네이스도 아닌 ‘네이즈’(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바이러스라는 새로운 별칭)로 다가와 윤 부총리를 쓰러뜨렸다. 후폭풍은 나라 전체를 둘로 갈라놓을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4월 한 여론조사 기관은 국민 가운데 88%가 “NEIS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온 나라를 혼란으로 몰고온 NEIS는 과연 무엇일까.
NEIS는 ‘National Education Information System’의 약자. 우리말로 하면 ‘교육행정정보화시스템’으로 풀이된다. 학생생활기록부, 건강기록부, 교원인사기록 등 학교 업무와 학생 개인 신상에 따른 모든 학사 기록이 컴퓨터에 저장되어 통합관리되는 시스템을 말한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교사들이 학사 기록을 일일이 손으로 직접 기재한 카드로 관리해 왔다. 2000년대 들어 컴퓨터가 활성화되면서 각 학교에서는 이런 기록을 컴퓨터에 입력시켜 저장 관리해왔다. 이를 ‘CS’(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라고 부른다.
NEIS는 지난 2001년 김대중 정부가 ‘전자정부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즉 각 학교별로 분산 관리하던 학사 기록들을 중앙 정부에서 통합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분쟁의 발단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전교조는 “학생 개개인의 사생활이 모두 공개될 수도 있는 비교육적인 처사”라고 반발했다. 교육부는 “행정정보화와 정보통합관리는 시대적 추세이며, 어떤 해커의 침입에도 뚫리지 않는 방어벽을 구축할 수 있다”고 맞서왔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가 출범했고, 새로운 교육부총리로 윤덕홍 대구대 총장이 임명되었다. 윤 부총리는 취임 이튿날인 지난 3월8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NEIS는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유보해야 할 것 같다”며 이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 4월8일 업무보고를 하는 윤 부총리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자리를 권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그를 경질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 ||
3월12일 윤 부총리는 NEIS 사업을 총괄했던 김정기 당시 교육부 국제교육정보화기획관과 함께 서울 성산초등학교와 배문고등학교를 방문한 후 “취임 전에 생각했던 것만큼 개인 재산, 병력 등 노출되면 부끄러운 자료들은 들어 있지 않은 것 같다. 정보 유출도 쉽게 이뤄질 것 같지 않다”며 당초 ‘유보’ 발언에서 한발 물러섰다.
그리고 그 다음날 윤 부총리는 부산에서 열린 전국 시도교육감 협의회에서 “사생활 침해 및 정보유출 가능성은 적은 것 같다. 일단 운영한 뒤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라도 중단을 검토하겠다”며 예정대로 시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5일 만에 유보에서 시행으로 바뀐 셈이다.
이후 교육부와 전교조 간의 대립 양상이 한창 이어지던 이 문제는 인권위원회로 공이 넘어갔다. 학생 및 학부모의 인권 침해 사례에 대한 판단 여부를 인권위 결정에 맡긴 것이었다. 당시 윤 부총리는 “인권위원회의 결정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5월12일 인권위에서 “NEIS는 일부 항목에서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전교조의 손을 들어주자, 윤 부총리는 이틀 후 대구 모교를 방문한 자리에서 “인권위 결정을 존중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며 전교조의 주장대로 NEIS의 유보 내지는 CS로의 복귀를 받아들일 뜻을 시사했다.
하지만 윤 부총리의 말은 다시 7일 만에 정반대로 돌아섰다. 그는 지난 5월19일 국회대정부 답변을 통해 “인권위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CS와 NEIS 중 하나만 선택하라면 NEIS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혀, 다시 NEIS로의 선회 의지를 피력했다.
이어 나흘 후인 지난 5월23일에는 “대화는 하겠지만 일단 결정을 한 사안인 만큼 공신력의 문제도 있고 하니 강력하게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확인했다.
그러던 중 지난 5월26일 윤 부총리의 기자회견장은 다시 한번 아수라장이 되었다. 윤 부총리가 “NEIS 총 27개 시행영역 중 인권위가 제기한 3개 영역은 그 의견을 존중해 NEIS 이전 체제로 가겠다”며 사실상 전교조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틀 뒤 윤 부총리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6개월간 재검토하면 NEIS의 우수성이 입증될 것이며 전교조가 반대해도 NEIS로 갈 것”이라고 다시 뒤집기성 발언을 했다.
윤 부총리는 결국 가장 최근 시점인 이달 1일 기자회견을 통해 “현 고2 이하에게도 ‘수기’(手記)를 원칙으로 하되 각 학교 사정에 따라 NEIS, CS 등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NEIS를 전면 시행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한 나라의 교육부 수장이 하나의 정책을 놓고 3개월간 무려 다섯 차례나 말을 바꿨다면 각계에서 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일각에서는 ‘무원칙 무소신’의 대명사로 윤 부총리를 낙인 찍었다.
그러나 윤 부총리가 3월 초 새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될 때만 해도 그에 대한 여론은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개혁적이면서도 합리적이고 현장 경험이 풍부한 교육가라는 평이 다수였다.
경북 영덕이 고향인 윤 부총리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성격이 호탕하고 사교적이어서 술도 꽤 즐긴다. 대화하기를 좋아하고 다소 직선적이며 급한 면도 있다고 한다.
반면 고집과 독선을 내세우기보다는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곧바로 인정하고, 수정하는 유연성도 갖췄다는 평이다.
그를 잘 아는 지인들은 이런 윤 부총리의 성격이 오늘날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몰고온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대구대의 한 관계자는 “윤 부총리가 차라리 독선적인 성격이었다면 지금 어느 한쪽과 피 튀기는 전쟁은 치렀을망정 이렇게 끌려다니는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5월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한 참석자가 ‘네이스 는 ‘위헌’이다’라는 한 신문의 기고문 자료를 읽고 있다. | ||
보수적 성향의 도시, 대구에서 가장 ‘개혁적인’ 인사로 꼽혀온 윤 부총리는 발탁 배경에 전교조의 지지 표명도 상당부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 직후 한 NEIS 유보성 발언도 친전교조적 성향의 일환이라는 얘기도 있다.
신임 장관의 ‘반NEIS’ 발언에 비상이 걸린 교육부 내에서는 윤 부총리에게 본격적인 ‘현실적 상황의 보고’가 계속 이어졌다. 이를 가리켜 일부 언론에서는 ‘장관 길들이기’로 표현하기도 했다.
윤 부총리가 처음 말을 바꾼 지난 3월12일의 일선 학교 현장 답사 상황.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던 윤 부총리가 두 학교에서 머문 시간은 각 30분씩. 그나마 목소리를 전달한 이들은 모두 교장(교감)과 정보부장 등 ‘NEIS 찬성론자’들이었다.
일선 교사들은 만날 새도 없이 “시간이 늦었다”며 다음 일정을 다그치는 교육부 직원에 의해 그는 서둘러 자리를 나서야 했다. 당시 현장을 취재한 한 기자는 “교육부 직원의 재촉으로 일선교사는 만나지도 못하고 30분 만에 배문고 계단을 거의 뛰어내려오다시피 하던 윤 부총리의 모습을 보면서 불과 나흘 전 취임사에서 ‘나를 뺑뺑이 돌리지 말라’고 경고하던 모습이 오버랩되더라”고 말했다.
지난 5월19일 국회 대정부 답변 역시 그 배경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강한 질책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노 대통령은 다음날인 5월2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전교조의 NEIS 반대 투쟁을 전례없는 강한 톤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 5월26일 NEIS 유보를 이끌었던 전교조와의 타협 석상에는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어 지난 6월1일 다시 NEIS로의 복귀한다는 선언을 하기 직전인 지난 5월31일에는 고건 총리의 강한 질책을 받았다.
당초 윤 부총리가 교육부 수장으로 발탁됐을 때만 해도 주위에서는 그의 개혁성과 친화력이 어우러지면 가장 장수하는 교육부 장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래서 최근 그의 사퇴를 주장하는 목소리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윤 부총리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유머러스함’과 ‘소탈함’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다. 대구대 총장 시절, 고등학생을 상대로 직접 입시설명회를 한 윤 부총리는 당시 한 학생이 “왜 별명이 ‘발로 뛰는 총장’이냐”고 묻자 “손으로 뛰면 이상하잖아”라고 답해 좌중을 폭소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일화가 있다.
좌우명이 ‘성실과 아껴쓰기’일 정도로 소탈한 그의 또다른 별명은 ‘시골 훈장님’. 지금은 기자들과의 접촉 자체를 꺼리고 있지만, 취임 초기만 해도 “어디 연탄불에 돼지고기 구워먹는 데서 한잔 하며 얘기하자”고 말할 만큼 격식없는 대화를 즐겼다.
부총리에 임명되면서 서울에 기거할 곳이 마땅치 않아 조카집에 며칠 얹혀 지내던 그는 부인 장순애씨가 발품을 판 끝에 그나마 싼 가격으로 겨우 홍제동에 1억4천만원짜리 아파트 전세를 얻었다. 그러나 이를 전해들은 윤 부총리는 “25평 전세가 뭐가 그리 비싸냐”며 서울 부동산 가격에 대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한다.
교육계의 많은 지인들이 NEIS 파동으로 자신의 매력과 특기를 미처 발휘할 틈도 없이 만신창이가 되고 있는 윤 부총리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이유도 이 같은 그의 인간성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