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원 ‘제자리’…감염자들 ‘사회적 낙인’ 찍힐까 쉬쉬
2016 에이즈 검사 포스터.
UN 에이즈 대책 전담기구인 유엔에이즈계획(UNAIDS)에 따르면 2000년 전세계 에이즈 신규 감염자 수는 310만 명이었으나, 2014년에는 200만 명으로 줄어 14년 동안 35%가 감소했다. 이처럼 ‘죽음의 불치병’에서 벗어나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함으로써 한국이 에이즈 사각지대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에이즈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돼 면역력이 저하된 신체에 폐렴, 뇌수막염 등 감염성 질환이 발생하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HIV 감염자와의 성관계를 갖거나 감염자가 사용한 주사바늘을 이용할 경우, 감염자의 혈액을 직접 수혈할 경우 감염된다. 드물지만 감염자인 산모가 아이를 출산할 경우에도 아이가 HIV 바이러스를 보유한 채 태어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주로 HIV 감염자와의 성관계를 통한 감염이 환자의 대다수(98%)를 차지했다.
2015년 말 기준으로 누적된 국내 HIV 감염 환자는 총 1만 2522명이다. 이 가운데 1만 1604명이 남성, 918명이 여성으로 집계됐다. HIV 감염 환자 중 누적 생존 환자는 1만 502명으로 남성 환자 9735명, 여성 환자 767명이 현재까지 생존해 있다.
정부에서는 보건소에 실명으로 등록된 HIV 감염환자에 한해 이들이 의료기관에서 HIV 관련 질환으로 진료를 받을 경우 진료비 일부를 지원하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 사업은 1985년 12월 한국에서 내국인 첫 HIV 감염환자가 발견됨에 따라 1987년 에이즈 예방법 제정 후 시행됐다.
사업 시행 이후 HIV 감염환자 가운데 사업에 지원한 환자의 수는 지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HIV/에이즈 진료비 지원 사업 지원자 수는 2010년 2147명에서 지난해 6650명으로 약 3배 이상 증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 예산액은 2010년 26억 4700만 원에서 2015년 26억 2600만 원으로 도리어 감액됐다. 2010년에도 지원자 수에 비해 지원 예산액은 약 1억 원이 부족했는데, 지난해에는 20억 6900만 원 상당이 부족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지난해 지원 예산액만으로는 환자 가운데 절반 정도만 지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부는 HIV/에이즈 예방 및 사후 관리 사업을 위해 연간 90억 원의 예산을 책정하고 있지만 결국 예방을 통한 신규 감염자 수도 줄이지 못했고 누적 감염자들의 진료 지원조차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심지어 이처럼 지원 및 예방 사업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환자를 포함한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도를 높이지 못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지난해 건강보험으로 진료를 받은 HIV 감염 환자 수는 7983명으로 집계됐지만, 이 가운데 진료비 지원 사업에 지원한 환자는 6650명이었다. 나머지 1333명은 신분노출을 우려해 자비로 진료를 받았다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의 HIV 감염 환자 진료비 지원사업의 지원대상은 국민건강보험가입자이면서 감염인 번호를 부여받아야 하며, HIV 검사에서 익명으로 등록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실명으로 전환 등록한 뒤 지원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 등을 우려한 다수의 HIV 감염환자가 치료를 꺼리거나 사업에 지원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2015년 기준으로 생존자 1만 502명 가운데 사업에 지원하지 않고 자비로 치료 받은 환자 1333명 외에도 아예 치료조차 받지 않는 감염환자가 729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이 이처럼 감염 사실을 쉬쉬하며 정부의 지원 사업에 지원하지 않는 이유는 사회 전반적으로 퍼진 에이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탓이 크다. 질병관리본부가 지난해 발표한 에이즈 행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이즈 감염 환자에 대해 “대부분 성매매를 통해 감염됐다(75.6%)”로 여기며, 감염 경로에 대해서는 “동성애가 에이즈 감염의 주된 원인이다(73.6%)”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동성애 등 특정집단을 통해서 감염된다는 인식으로 인해 수혈 등 다른 경로로 감염된 환자까지 이 같은 ‘낙인’이 찍힐 것을 우려, 사업 지원이나 진료 자체를 꺼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에이즈 예방을 위한 한 민간단체 관계자는 “국내 HIV/에이즈 감염 환자의 경우는 이성이든 동성이든 무분별한 성관계로 인해 감염되는 경우가 더 많다”라며 “동성애 집단의 경우 주5일 익명으로 HIV/에이즈 검사를 받게 되는데 이 때문에 감염 확진자가 많아 보이는 것일 뿐, 확률로 따진다면 검사를 받지 않은 이성애자 가운데 자신도 알지 못하는 HIV 보균자가 더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행법 상 HIV/에이즈 감염 환자는 질병 전파를 방지하고 관련 부서의 조치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지만 사회적 인식상 부정적인 측면이 강한 질병이기 때문에 스스로 감염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신분 노출을 우려해 병원조차 가지 않는 경우가 있다”라며 “무조건적으로 HIV/에이즈 감염 환자들에게 부정적인 낙인을 찍을 게 아니라 병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정부차원의 체계적인 교육과 지원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