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포 불똥에 이미지 타격…‘내 탓 아니라오’
한화테크윈의 실적과 행보는 옛 삼성테크윈 시절보다 훨씬 나아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해 함께 인수한 한화탈레스(옛 삼성탈레스) 역시 지난 4월 업계 예상을 깨고 한국형전투기(KF-X)에 탑재될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개발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되면서 위상을 강화해나가고 있다. 이에 힘입어 한화는 최근 프랑스 탈레스가 보유하고 있던 한화탈레스의 나머지 지분 50%를 전량 인수했다.
방산사업 글로벌 10위를 꿈꾸는 한화그룹이 감사원의 K55자주포 관련 문제제기로 이미지에 타격을 받았다. 일요신문DB
재계에서는 한화테크윈·한화탈레스 등 방산·방위사업 부문에서 한화의 도약은 김승연 회장의 의지와 적극적인 인수합병(M&A)에서 비롯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김 회장은 방산·방위사업 부문을 세계 최대 방산업체 중 하나인 미국 록히드마틴사처럼 키우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화가 한국항공우주산업(KAI)까지 인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끊이지 않으면서 김 회장의 꿈이 가시화하는 것 아니냐는 예상이 적지 않다.
하지만 최근 방산·방위사업과 관련한 한화의 질주와 김승연 회장의 꿈에 제동이 걸릴 만한 일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다. 지난 9월 22일 감사원은 K55자주포 성능개량사업의 사업관리 부분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1주일 후인 지난 29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방위사업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방위사업청을 향한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빗발치기도 했다.
K55자주포 성능개량사업은 2007~2022년 1조 2373억 원을 투자해 진행하는 사업이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 K55A1이 작전에 요구되는 성능을 갖췄는지 평가하는 중요한 시험평가 방법과 기준이 적절한 절차 없이 변경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또 성능개량사업의 일부 항목에서 그 효과에 비해 소요 비용이 1200억 원가량 과다 산정됐다고 방위사업청에 통보했다.
감사원의 지적은 시기상으로 삼성테크윈 시절 얘기지만 이를 인수한 현재의 한화테크윈에 불똥이 튈 수밖에 없다. 한화테크윈 관계자는 “국가 주도로 모든 사업이 이뤄지고 기업은 그것에 맞춰 생산할 뿐”이라며 “감사원 지적은 방위사업청의 문제지 한화테크윈에 문제 될 건 없다”고 밝혔다.
방산·방위사업의 특성상 국내 시장에서 수요자는 정부가 유일하다. 방위사업청이 국가에 필요한 제품을 방산업체를 통해 생산하는 구조다. 정부의 필요에 따르고 정부 주도의 사업이다보니 성장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즉 사기업이 주도적으로 기술개발을 하거나 상품을 출시할 수 없다. 대부분 무기는 국방과학연구소에서 해당 기술을 개발하고 기업은 이를 토대로 생산·제조한다. 따라서 감사원의 지적은 기업보다 방위사업청과 관련돼 있다는 한화테크윈의 주장은 일견 타당한 셈이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안보상 밝히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며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수용한다”고 답했다.
그렇지만 무기와 관련된 최근의 문제제기는 한화테크윈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나라 무기 생산 체계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국내 유일의 자주포 생산기업인 한화테크윈을 좋게 볼 리 만무하다. 삼성이 방산·방위사업을 정리한 배경에는 이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털어내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다.
일부에서는 삼성이 수익이 보장된 사업을 정리한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업계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방산·방위업체는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보유하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실상은 앞서 설명한 대로 정부 물량을 수주해 무기를 제조하는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수요자이기에 수익이 보장된 사업 아니냐는 평가에 대해서도 불만이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마진율이 형편없다고 토로한다. 업계 관계자는 “방산사업 마진율은 2%도 안 돼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에 한참 못 미친다”며 “(유일한 수요자인) 정부가 광고선전·마케팅·소송 등에 드는 비용을 원가로 인정해주지 않아 실제 수익은 더 낮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장교동에 위치한 한화그룹 빌딩 전경.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한화는 지난해 삼성과 빅딜을 통해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한화탈레스)를 인수한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두산DST(한화디펜스)를 인수해 방산·방위사업을 확대했다. 방산·방위사업은 한 번 시작하면 정부 허가 없이 그만둘 수 없다. 또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사업부문이다. 한화가 계속해서 몸집을 불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업계에서는 김승연 회장의 다음 타깃으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점치고 있다. ‘글로벌 10위 방산기업’을 목표로 삼은 김 회장과 한화로서는 KAI 인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삼성 방산 부문과 두산DST 인수로 지상 분야 무기 생산에 경쟁력을 확보한 한화는 항공 분야 진출과 성과가 숙제로 남아 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바로 KAI 인수다. KAI는 전투기 엔진뿐 아니라 완제품 전투기 생산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또 한화가 KAI 지분 6%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 정부가 KAI 민영화에 적극적이어서 업계에서는 한화의 KAI 인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KAI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 관계자는 “KAI 민영화는 이미 예정된 것”이라며 “다만 올해는 힘들고 내년에 본격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화 관계자 역시 “적절한 시기가 오면 KAI를 인수할 곳은 우리뿐”이라며 인수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KAI 민영화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이미 여러 차례 연기된 사안인 데다 국방과 안보라는 민감한 문제와 연결돼 있는 만큼 쉽게 풀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KAI 민영화는 어디까지나 정부 뜻에 달려 있으며 정부 허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국방 문제와 직결돼 있어 정부의 그림과 기업의 셈법이 맞아 떨어져야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방산·방위사업에 대한 김승연 회장의 의지는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상태다. 업계 분석에 따르면 ‘한국형 록히드마틴’을 꿈꾸는 김 회장은 무기체계와 사업에 대한 잇단 비리 의혹에서 파생한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고 KAI 인수를 성사시켜야 한다. 그런데 최근 이 두 가지가 모두 불확실한 상태여서 우려를 자아낸다. 김 회장이 이 두 가지 과제를 어떻게 풀어낼지 관심이 집중된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