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영철 소장(67) 김대중 대통령 추천 전북 순창, 광주고, 서울대법대, 고시11회, 수원지방법원장·대법관 | ||
한국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에서 가결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 이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 사상 최초로 단행된 만큼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헌법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금 다음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이다.
그래서 지금 국민들의 눈과 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쏠려 있다. 그동안 헌법재판소는 국민들에게 가까이 있지 않았다. 사실 헌법재판소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 잘 몰랐던 국민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 헌법재판소는 가장 주목받는 기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출범한 것은 지난 88년. 그 이전까지만 해도 위헌 여부의 최종 판결자는 대법원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의 속성상 지나치게 법리해석에 얽매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출범했다. 말하자면 헌법재판소는 위헌 여부를 최종 판단하는 기관이지만 보다 정치적인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출범 16년 만에 전례없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재판관 9인의 결정에 한국 정치권력의 향배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은 9인. 대통령 추천 3인, 국회 추천 3인, 대법원장 추천 3인 등으로 구성돼 있는 것. 이들은 현재 전대미문의 대통령 탄핵안을 받아들고 엄청난 무게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국회로부터 탄핵 가결안을 받아든 윤영철 소장을 비롯한 9인의 재판관들은 한결같이 “정치적 상황에 상관없이 법정신에 입각해서 신중히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개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출신 배경에 따라 입장이 달라질 수 있는 만큼 재판관들의 성향 분석에 정치권은 여념이 없다. 현재로서는 탄핵 결정이 다소 어렵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지만, 9인 재판관의 역대 판결 성향을 보면 세간의 여론만으로 섣불리 단정짓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04년 3월 현재 인터넷, 언론 등 각종 매체에서 최대 관심인물로 떠오른 헌법재판소 위원들은 누구인지 알아본다.
윤영철 소장 - 판사시절 진보적 판결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은 법조계에서 ‘신사’로 통한다. 술을 즐기지도 않고 보스형 기질도 덜하다. 일각에서는 그를 가리켜 ‘무색무취의 사나이’로 평하기도 한다. 그만큼 정치적 지향성이 약하다는 뜻.
전북 순창이 고향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헌재 소장으로 발탁된 탓에 그는 법조계의 호남 인맥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민주당 등 호남 정치권과 큰 연관성을 갖고 있지 않아 호남 색채가 거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광주고, 서울대를 졸업한 그는 전형적인 수재형의 호남 명문가 출신이다. 특히 그의 처가쪽은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김병로씨 집안이다. 김 전 대법원장의 손녀가 그의 부인이다.
비교적 무난하고 평탄한 엘리트 코스를 거친 그를 법조계 인사들은 “합리적이고 온건한 성격의 전형적인 선비 스타일”로 평한다.
파격적인 변화보다는 점진적 개혁을 지향하는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대법관 시절에는 이회창 전 총재와 비슷한 성향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래서 보수적 성향이 다소 강한 것으로 기억하는 후배들이 많다.
하지만 그의 판사 시절을 되돌아 보면 의외로 진보적 판결이 많았음을 볼 수 있다. 대법관 시절이던 지난 94년 당시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직된 교사 두 명의 손을 들어주며 서울시교육청을 난처하게 한 판결은 당시로선 교육계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런 그의 성향 탓에 이번 대통령 탄핵의 가부에 대해 부결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법조 인사들이 많다. 한 변호사는 “비록 윤 소장이 이회창 후보의 대학 3년 후배이고 판사 시절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마도 지난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을 것”이라고 점치기도 했다.
특히 여권에서는 그가 지난 2000년 헌재 소장 내정 당시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한나라당으로부터 삼성 법률 고문 재직 사실에 대해 인신공격에 가까운 질문으로 크게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는 데다, 당시 한나라당의 거부로 여권 의원들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임명동의안 찬성을 받은 경험도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국회의 당쟁으로 인해 지난 2월 하경철 전 재판관 이후 후임자를 신속히 확정짓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던 점 또한 국회의 기능에 다소 회의감을 가질 소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윤 소장은 지난 2000년 임명 당시 한 인터뷰에서 헌재의 정치적 성향과 영향력에 대해 “헌법 자체가 정치와 사실상 밀접한 관련이 있고 또 헌재의 업무 역시 정치적 사안을 심판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헌재는 헌법에 따라 재판해야 하며 그 어떤 외부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 (왼쪽 위부터)주선회 주심재판관 (58) - 김대중 대통령 추천.
권성 재판관 (63) - 한나라당 추천, (왼쪽아래부터)김경일 재판관 (60) - 최종영 대법원장 추천, 김영일 재판관 (64) - 최종영 대법원장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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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재판관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는 인물은 주선회 재판관이다. 그는 이번 탄핵 사안에 대해 주심 재판관으로 결정됐다.
현재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바와 같이 노 대통령과의 과거 악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9명 가운데 유일한 공안검사 출신으로 2001년 임명 당시에도 인권단체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았다는 점이다.
주 재판관은 지난 87년 부산지검 공안부장으로 있을 당시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씨 사망사건의 노동자 투쟁에 노무현 변호사가 개입했다는 이유로 전격 구속을 단행한 바 있다.
특히 당시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기각되자 주 재판관은 판사와 법원장 집까지 찾아가서 기어이 영장 청구를 승인받는 열성까지 보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대통령과의 악연에 대해 주 재판관은 “이미 다 지난 옛날 얘기일 뿐”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지난 2001년 임명 당시 인권단체들은 주 재판관에 대해 “97년 1월부터 98년 3월까지 대검 공안부장으로 재직하면서 민주노총과 한총련 등을 지나치게 탄압하는 등 공안몰이에 앞장선 인물로 김대중 대통령이 지역 안배와 검찰 통제력 강화를 위한 미끼로 경남 출신인 주 전 부장을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했다”며 강력 반발하기도 했다.
주 재판관은 경남 함안 출신으로 마산상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대통령 추천 케이스로 헌법재판소에 입성했다.
이런 그의 성향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오히려 과거 노 대통령과의 악연이 주 재판관으로서는 부담으로 작용할 소지가 많다”며 “헌법재판관 임명 이후에는 과거 공안검사 시절과 확연히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고 보고 있다.
일례로 그는 지난 2002년 4월 좌익사범이나 양심수에게 가석방 결정의 전제 조건으로 준법서약서를 작성토록 하는 것에 대해 “국가가 직간접적인 강제 수단을 동원해 그들의 신념까지 번복하도록 강요해서는 안된다”며 헌법 위반이라는 소수 의견을 제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권성 재판관 - 이회창 전 총재와 친분
권성 재판관은 지난 2000년 정당 추천케이스(한나라당 추천)로 헌재에 입성했다. 이회창 전 총재의 경기고 후배로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을 가장 긴장시키는 재판관으로 현재 인지되고 있기도 하다.
그는 지난 96년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에서 ‘항복한 장수는 죽이지 않는 법’이라는 뜻의 ‘항장불살’이란 고사성어를 인용, 당시 1심에서 사형과 징역 22년6월을 각각 선고받았던 두 전직 대통령을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으로 감형 선고한 전력도 있다.
이처럼 판결문에 한시를 곧잘 이용하는 등 권 재판관은 딱딱한 법리 해석에 파묻힌 가운데서도 문학적 취향의 낭만적 정서를 드러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에서는 “합리적이고 온화하며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로 통하고 있다. 이회창 전 총재와의 친분에 대해서는 “그런 친분 관계 탓에 재판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성향은 아니다”라는 것이 중론이다.
법복을 벗은 후에는 전관예우의 틈바구니에 휩쓸리기 싫다는 이유로 변호사 개업이 아닌 대학 교수를 선택하기도 했고, 전직 대통령 재판 당시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증인 출석을 거부하던 최규하 전 대통령을 기어이 재판정에 세우는 강한 소신과 원칙을 보이기도 했다.
김경일 재판관 - 원리원칙주의자
광주일고 서울법대 출신인 김경일 재판관은 원리원칙주의자로 통한다. 그는 일찌감치 대법관 또는 헌법재판관 발탁이 점쳐질 만큼 법조계에서 신망이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2000년 최종영 대법원장의 추천 케이스로 입성했다.
소탈하고 원만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으나, 소신이 강한 만큼 주변의 시선이나 여론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평을 듣고 있다.
법조계에서 김 재판관의 판결 내용을 특히 예의주시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 다른 재판관들이나 주변 분위기에 휩싸이지 않고 소신 판결을 고수할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까닭이다.
실제로 그는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있던 지난 96년에는 가야산 국립공원 내 골프장 건설을 중단시킨 문화체육부 처분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는데, 당시 시민들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원칙에 입각한 판결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일 재판관 - 전두환 노태우 중형선고
김영일 재판관은 지난 96년 서울지법 형사부장 재직 당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게 각각 사형과 징역 22년6월의 중형을 선고, 96년 최고의 판관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당시 1심에서 김 재판관은 “정치 경제 역사 모두를 고려하기보다는 오로지 기소가 된 재판 대상인 하나의 사건일 뿐이며 그런 측면에서 피고인들을 위해서도 법의 원리원칙에 따라 판결하는 것이 법관으로서 최선이라고 생각했다”는 강직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그에게는 늘상 강직하고 깐깐하고 빈틈없는 법관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는 전직 대통령 재판 당시 한 변호사가 피고인들을 향해 ‘대통령’ ‘각하’라는 호칭을 쓰자 이를 강하게 질책했던 일화로 유명하다.
특히 이 변호사는 김 재판관의 경기고 서울법대 1년 선배였던 것으로 밝혀져 법조계에서는 두고 두고 화제가 되기도 됐다.
▲ (왼쪽 위부터)김효종 재판관 (61) - 한나라당 민주당 공동추천,
송인준 재판관 (60) - 김대중 대통령 추천, (왼쪽아래부터)전효숙 재판관 (53) - 최종영 대법원장 추천,이상경 재판관 (59) - 민주당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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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고 서울법대 출신으로 충남 조치원 태생인 김효종 재판관은 2000년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 공동 추천을 받을 정도로 정치 성향이 덜한 서민풍의 판사로 잘 알려져 있다.
법조계에서는 그에 대해 온건 보수적 성향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조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남다른 친화력을 바탕으로 후배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운 그는 지난 2000년 대법관으로 뽑힐 것으로 점쳐졌으나 임명 제청에서조차 빠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법조계 주변에서는 이회창 전 총재와 같은 학맥으로 분류된 탓이 아니겠느냐는 동정론이 나왔다. 하지만 이 전 총재와 친분이 두터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송인준 재판관 - 대전법조비리 담당검사
검사 출신의 송인준 재판관은 99년 대전지검장 재직 당시 대전법조비리 사건을 다룬 담당검사로 알려져 있다. 외유내강형의 전형적인 검사로 통하는 그는 후배들로부터 흔히 ‘보스 기질’이 있는 선배로 잘 알려져 있으나, 시집을 출간하기도 하는 등 감성적인 면모도 풍부하다고 한다.
그의 성향에 대해서는 주변의 평가가 다소 엇갈리고 있다.
검사 시절부터 서민들의 삶에 남다른 관심을 보일 정도로 인권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평가받는 측면이 있고, 헌재 재판관 시절에도 청소년 성범죄자의 신원 공개는 합헌이라는 소신으로 진보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국가보안법 철폐에는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는 보수 성향도 나타냈다.
하지만 법조계와 시민단체 등에서는 지난 2000년 퇴직 당시 그가 펴낸 칼럼집 <달리기 사호 이것이 문제다>라는 책의 내용을 인용, 비교적 노 대통령의 정치 성향과 코드가 통하는 인사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한국 사회는 서열구도가 극명하고 선두주자에게만 특권과 특혜가 집중되는 ‘1인 승자 다수 패자’의 게임이 지배하는 구조”라며 일부 특권층을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상경 재판관 - 소장법관 집단행동 비판
전효숙 재판관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재판관이다. 그는 올해 2월 민주당 추천 케이스로 입성했다. 하지만 그의 추천을 둘러싸고 열린우리당이 발목을 잡는 등 현 정부와 개운치 못한 인연을 갖고 있다. 또한 최근 그의 주요 발언이 다소 보수적 성향으로 일관하는 양상인 점도 주목을 끌고 있다.
그는 재판관 후보자 시절 국회 청문회에서 일제 잔재 청산 관련 입법 추진에 대해 “친일파나 반민족행위 처벌이 민족정기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일이지만 공익 목적에 한해야지 어떤 보복적 차원이나 후손의 명예를 훼손해선 안된다”는 입장을 밝혀 보수 성향이 강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 그는 부산고법원장을 사퇴하던 지난 2월 퇴임사에서도 보수적 성향을 드러냈다. 지난해 불거진 대법관 인사파동 등 개혁을 요구하는 일부 소장법관들의 집단적 움직임에 대해 “아무리 좋은 생각이더라도 외부에 공표될 경우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오해를 초래할 소지가 있는 부분은 공표를 자제하는 것이 도리”라며 후배들에게 비판을 가했다.
전효숙 재판관 - 여성 최초…진보적 판결
헌재 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진보적 성향의 재판관으로 꼽힌다. 국내 최초의 여성 헌법재판관이기도 한 그는 판사 시절이던 지난 97년 “수사과정에서 가혹행위가 없었더라도 무리한 구속수사로 피해를 입었다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지난 98년에는 부실 경영으로 소액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힌 C은행장과 임원 등에게 4백억원 배상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특히 그는 국가보안법 개정 문제에 대해서도 “정치권에서는 북한과 여러 방면에서 교류를 하고 있는데 법은 바뀌지 않고 있으니 국민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법관들의 고민이 많은 만큼 입법기관에서 결단을 내려줘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과 사시 동기라는 이유만으로 법조계의 친노 인사로 분류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전 재판관은 “어린 시절 한국전쟁을 겪으며 빨치산이니 뭐니 하는 아픔을 지켜보기도 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분법적 사고로 분열을 조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여권에서는 가장 확실한 ‘우군’으로 전 재판관에게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