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y Bear Collection(2016), 각각 32×32×32cm, 조형작업 후 폴리에 오일.
Future Art Market-Artist 11
‘미술계 엄숙주의 비웃는 인형 그림’ 이사라
“우리 학계는 통이 큰 편이다. 관심은 계급 구조, 세계 체제, 민족 문제 같은 주제에 쏠려 있다. 일상세계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학계가 전장화하고 황폐화되니 ‘배우고 때로 익히는 일’이 즐거울까?”
한 인문학자가 자신의 책을 출간하면서 토해낸 서문이다. 우리 학계의 엄숙주의 학문 풍토에 대한 자기 반성적 고백이다. 어찌 학계만의 문제일까.
미술계의 엄숙주의는 더욱 견고하다. 소위 가치 있는 작품으로 인정받으려면 심각하고 묵직한 주제가 필수 과목처럼 되어 있다. 그래서 작가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철학적 주제나 이념을 내세우거나 서양의 첨단예술 사조를 추종한다. 엄숙주의를 부추기는 것은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치장한 미술 전문 언론과 이론가 집단 그리고 최신 서양 미술 경향을 추종하는 작가 그룹들이다.
그런데 엄숙주의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부실하기 짝이 없다. 수준 높은 주제를 담았다는 작품 대부분에서는 작가 자신의 생각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작품을 옹호하는 이론가 집단의 글은 해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난해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대중과의 소통이 어렵다. 미술계에서 가치 있는 작품이라고 치켜세우는 작품 대부분이 미술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튼실한 알맹이와 견고한 형식을 갖추지 못한 본 모습을 난해함으로 분칠하고 엄숙주의로 포장하고 있는 셈이다.
Dream(2016), 100×80.3cm, 캔버스에 오일.
미술계의 엄숙주의 허구성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젊은 작가가 이사라다.
이사라가 그리는 것은 인형이다. 그래서 ‘인형 작가’로 알려져 있다. 화단의 엄숙주의 잣대로 보면 형편없는 주제다. 그러나 이사라에게 인형은 작품의 모티프인 동시에 주제다. 비교적 안정된 집안의 외동딸로 자란 작가에게 인형은 분신 같은 존재였다. 같이 자고, 외출할 때도 곁에 있었으며, 희로애락을 함께했고, 고민까지도 나눌 수 있었던 존재. 그것이 이사라에게는 인형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연스럽게 인형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사라가 인형을 통해 하려는 이야기는 외동딸로 자란 여성이 갖고 있는 외로움, 부모의 과보호 속에 자란 그 또래 여성이 느끼는 환상 같은 꿈. 그런 것이다. 꿈은 꾸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소심함. 속으로만 되뇌면서 표현하지 못하는 수줍음. 생각은 많지만 정작 현실로 옮기지 못하는 소극성. 이것이 자신처럼 자라난 세대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그는 인형의 생리에 담아내고 있다. 인간처럼 치장을 하고, 눈도 깜빡이며, 관절까지 움직일 수도 있지만 정작 말을 하거나 걸어 다닐 수는 없다. 인형이기 때문에.
인형의 눈을 들여다보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생각뿐이다. 실행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사람의 의도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부모 세대의 인형놀이에 작가 또래의 외동딸들이 출연한 것이라고 이사라는 예쁜 인형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