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테네올림픽 남자탁구 단식에서 금메달을 딴 유승민 선수가 귀국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근 고구려사와 관련해 반중감정이 높은 상황에서 중국을 넘어선 그의 플레이는 통쾌함을 안겨주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5세 때부터 탁구 라켓을 잡고 초등학교시절부터 전국 무대를 휩쓸며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던 유승민. 고교1년 때 전국대회에서 당시 선배이자 지금은 스승인 김택수를 3-0으로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겁 없는 소년’, ‘탁구 천재’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한국 탁구계의 최고 유망주로 떠오른 그다.
지난 26일 한국선수단 1진과 함께 귀국한 유승민은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생애 처음으로 수많은 환영 인파와 취재진들로부터 집중 공세를 당하며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아테네에서 출발하기 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금메달의 반응이 이토록 뜨거울 줄 상상조차 못했다는 유승민.
귀국 첫날 기자는 유승민의 이동을 뒤쫓으며 또 한 명의 스타플레이어의 탄생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인천공항과 환영 행사가 열렸던 삼성생명 본사, 그리고 강화 유승민의 집에서 이뤄진 유승민과의 인터뷰를 정리해 본다.
지난 26일 저녁 9시30분 도착예정인 아테네발 비행기가 2시간 지연되는 바람에 한국 선수단이 출국 게이트를 빠져 나온 시간은 12시30분을 훌쩍 넘겼다. 선수단 중 제일 먼저 나타난 사람이 다름 아닌 탁구 금메달리스트 유승민. 그의 등장으로 인해 순간 모든 취재진들은 얽히고설키고 밀고 밀리는 난장판을 연출하며 유승민한테 달려들었고 사람들한테 포위(?) 당한 유승민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가에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당황한 유승민과 그를 잡으려고 아우성치며 몸싸움을 벌이는 취재진들 사이에서 어렵사리 기회를 포착한 기자의 소감을 묻는 짧은 질문에 유승민은 스피드하게 이런 답변을 이어 나갔다.
“이렇게 많이 환대해 줄지 정말 몰랐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여전히 세계 최강은 중국이다. 앞으로 그들을 진짜 이길 수 있도록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
▲ 중국의 왕하오를 이긴 후 김택수 코치(왼쪽)와 함께 기뻐하는 유승민.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
삼성생명에서 마련한 환영식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곧바로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본사로 이동한 유승민은 여자복식에서 석은실(대한항공)과 함께 은메달을 목에 건 이은미(삼성생명)와 함께 공동으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공항에서 시달린 탓인지 취재원이나 취재 기자들 모두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유승민은 조금 전 공항에서의 정신없음을 상기하며 “내가 이런 일을 처음 겪는 탓에 경황이 없었다. 공항에서 실수한 일이 있으면 예쁘게 봐 달라”는 애교 섞인 멘트로 기자들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썼다.
유승민은 우리나라의 탁구 사랑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저조한 부분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토로했다. “시합 때문에 중국과 유럽 각지를 돌아다녀 보지만 우리나라만큼 탁구 열기가 뒤떨어지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프로축구보다 탁구를 더 좋아한다. 그들의 탁구 사랑은 실로 엄청나다. 올림픽 금메달로 인해 탁구 열기가 되살아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러한 관심이 ‘반짝’이 아닌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유승민은 왕하우와의 결승전을 회상하면서 기자에게 “왕하우 인기가 그렇게 높다면서요?”라고 되묻는다. 이동국을 닮았다고 해서 관심을 모은 왕하우는 유승민의 상대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잘생긴 외모로 인해 올림픽 결승전 이후 우리나라의 여성팬들이 부쩍 늘었다는 소식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결승전을 앞둔 난 의외로 느긋했다. ‘탁구의 신’이라고 불리는 스웨덴의 발트너를 이긴 후라 더더욱 자신감이 붙었는지도 모른다. 그에 반해 경기장에서 만난 왕하우는 상당히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인 내 입장에선 느긋하게 승부를 즐기면 그만이지만 쫓기는 왕하우로선 결승에서 날 만난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심리전이 유리하게 작용했고 결국 난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유승민은 어린 나이에 패배와 좌절을 안겨준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잊지 못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기량의 50%도 채 발휘하지 못하고 맥없이 돌아와야 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모양이다. 특히 유승민은 제주 삼다수와 삼성생명간의 이중등록 파문에 휘말리며 무적 선수로 두 달 가까이 독일과 중국 프로리그를 떠돌아다닌 시기를 여러 차례 곱씹었다.
▲ 8월26일 집에 돌아온 유승민 선수가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금메달을 들어보이며 즐거워하고 있다. | ||
그 어려운 시기에 유승민은 시드니올림픽이 열리기 한 달 반 전에 만난 김아름씨와의 전화통화와 이메일을 통해 용기를 잃지 않고 자신감을 살려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여자친구가 없었더라면 유승민의 ‘오늘’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두 사람의 사랑쌓기는 힘든 과정을 통해 더욱 단단한 성을 구축해 나갔다.
강화도 하점면 이강리 유승민의 집은 축제 분위기였다. 농악패들의 꽹과리와 장고치는 소리로 온 동네가 떠나갈 듯 했다. 유승민의 친척과 동네 사람들이 유승민을 보기 위해 집으로 몰려들었고 소형 카메라를 들고 유승민의 일거수일투족을 찍고 있는 방송 관계자들도 어김없이 유승민의 집까지 찾아 들었다.
유승민은 여전히 경황이 없었다. 오랜 비행과 수많은 인터뷰 세례를 받고 집에 도착했지만 유승민을 기다리는 것은 휴식이 아닌 연이은 인터뷰와 축하 인사들이었다. 신문사 중엔 <일요신문>만이 유일하게 집에까지 찾아온 정성 때문인지 유승민의 스케줄을 담당하는 삼성생명의 홍보 과장이 개별 인터뷰를 허락했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똑같은 질문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무지 애를 썼다. 듣기도 지겨운데 되풀이하는 사람은 얼마나 지겨울까 싶었던 것.
유승민에게 전날 기자가 은밀히 여자친구인 아름씨를 만났다는 말을 전하자 눈빛이 반짝거린다.
“벌써 한 달 넘게 얼굴을 보지 못했다. 오늘도 딱 한 번 전화 통화했다. 많이 보고 싶은데 내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만날 수가 없다. 워낙 기다리는 일에 익숙한 친구라 잘 이해해 줄 것이다.”
모든 매스컴의 관심이 여자친구한테 쏠려 있는 부분에 대해 유승민은 처음엔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귀국해 보니 장난이 아니라며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고 털어 놓았다.
“주위에선 여자친구를 공개한 데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물론 사귀다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헤어질 수도 있겠지만 사귀고 있으면서 여자친구가 없다고 거짓말하기 싫었다. 아름이와의 관계를 처음 밝힌 건 지난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이후부터다. 그 당시만 해도 반응이 이 정도는 아니었다. 올림픽이 대단하긴 대단한 모양이다.”
두 사람의 결혼 시기에 대해 유승민의 부모는 2006년 북경올림픽 이후라고 못 박은 반면, 유승민은 빠르면 1~2년 안에, 늦으면 3~4년 후라고 말했다. 운동선수인 아들이 결혼 후 슬럼프에 빠지게 될 것을 우려한 부모와 사랑하는 여자와 한시라도 빨리 결혼하고 싶어하는 아들의 생각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피곤으로 가득한 유승민이었지만 인터뷰만큼은 진솔한 멘트들로 정성을 다했다. 하루 종일 유승민을 쫓으며 덩달아 피곤해졌음에도 유승민의 이런 태도들로 인해 기자는 작은 감동을 받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유승민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찬 신세대 유승민의 대답이 환상적이다.
“금메달 획득 후 ‘신동’이란 꼬리표가 떨어지고 ‘황제’란 타이틀이 붙었는데 만족하나요?”
“그럼요. 얼마나 멋진 수식어입니까. 그러나 ‘진정한’ 황제가 되기 위해 더 노력할 겁니다. 사람들의 관심에 발목 잡히지 않고 제가 세워둔 길만을 걸어갈 거예요. 지금의 인기는 한 한 달 지나면 잊혀질 걸요? 그게 비인기 종목의 한계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