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현재 시리아에서 청소년대표팀과 함께 전지훈련중인 박주영은 이런 폭발적인 관심의 사각지대에서 생활하는 바람에 한국에서 불고 있는 ‘박주영 열풍’에 대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일요신문>에선 지난 29일, 한국청소년대표팀이 묵고 있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의 알 잘라 호텔로 전화 연결을 시도해 박주영과 전화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시리아의 특수한 정치적인 상황과 열악한 통신 시설로 인해 결코 쉽지 않았던 전화 통화, 그리고 기자와의 인터뷰를 피해 다녔던 박주영의 목소리를 듣기까지에는 오랜 기다림이 필요했다. 힘들게 이뤄진 박주영과의 인터뷰를 정리해본다.
“너무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합니다.”
박주영이었다. 박주영의 룸메이트인 한제광(20·울산 현대)과 오준석 주무의 노력 끝에 연결된 ‘작품’이었다. 저녁 식사 후 물리치료를 받고 돌아왔다는 박주영은 지난 1월11일 카타르행을 시작으로 계속된 오랜 외국 생활에 심한 ‘멀미’를 느끼는 중이라며 심신의 고단함을 호소했다.
박주영에게 열광하고 있는 한국의 현재 상황을 설명하자, 박주영이 피식 웃었다. “작년에 아시아청소년대회를 제패했을 때보다 더 뜨거운 분위기”라고 덧붙이자, 박주영은 “여긴 인터넷이 안되거든요.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솔직히 알고 싶지 않아요”라고 대답한다. 박주영다운 멘트다. 이미 한 차례 ‘인터뷰의 홍수’를 힘들게 헤엄쳐 나온 터라 또다시 매스컴의 달뜬 분위기에 휩쓸리고 싶지 않은 속내였던 것이다.
카타르 8개국 초청대회에서 9골을 터트리며 대회 최우수선수로 뽑힌 소감에 대해 물었다. 박주영식의 썰렁한 대답이 이어진다.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아무래도 마음이 편해서 더 좋은 골이 나왔던 것 같아요. 갈수록 자신감도 생기고.”
최근에 박주영을 둘러싼 가장 큰 이슈 중 하나가 성인대표팀 합류 논란이었을 것이다. 그 미묘한 부분에 대해 정작 당사자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솔직함을 전제로 물었고 박주영도 비교적 ‘양념 없이’ 깔끔하게(?) 대답했다.
“본프레레 감독님이 저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계시는지 잘 알고 있어요. 제가 모자라니까 모자란다고 얘기하시는 거잖아요. 불만은 없습니다. 분명 부족한 부분은 있어요. 감독님이 저의 체력과 경험부족을 지적하셨는데, 이 부분은 좀 그래요. 경험 부족이야 나이가 어리니까 어쩔 수 없는 거죠. 근데 체력은 괜찮아요. 지적받을 만큼 문제는 없다고 생각해요.”
본프레레 감독은 여론의 박주영 선발 압력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박주영이) 후~불면 날아갈 것 같은데 게임이 되겠는가”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즉 키 182cm에 몸무게 70kg의 체격으론 성인대표팀에서 외국 선수들을 상대하기가 버겁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지난 1월28일 발표한 이집트, 쿠웨이트전에 참가할 대표팀의 명단을 분석해 보면 대표팀의 평균 체격은 키 181.53cm, 체중이 74.69kg이다. 특히 박주영보다 키가 작고 체중이 적게 나가는 선수들이 눈에 띄었는데 같은 포지션의 최성국(울산 현대)은 170cm, 68kg이고 이천수(누만시아)는 172cm, 62kg이다. 체격을 중시한다는 본프레레 감독의 선수 선발 논리와는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박주영이란 이름 석자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성인대표팀 합류와 관련 찬반양론이 들끓는 상황들이 박주영한테는 조금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특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체력과 실력을 이리저리 헤집고 분석해서 발가벗겨 놓은 듯한 모호한 분위기가 약간은 기분 상하게 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다소 속보이는(?) 질문을 제시했다.
“팬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이 골 감각인 것 같아요. 어떤 팬은 축구공을 마치 입 안의 혀처럼 마음대로 갖고 논다고 표현했어요. 이런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경기를 하면 할수록 업그레이드되는 듯한 느낌이에요. 특히 골을 다루는 상황에서 마지막 순간에 침착해질 수 있는 건 제 자신도 놀라울 정도예요. 잡념 없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게 큰 요인인 것 같아요. 좋은 찬스도 많았구요.”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가능성에서 큰 ‘보험’을 든 것마냥 든든한 ‘빽’이 되지만 이런저런 ‘말들의 향연’에 휩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힘에 부칠 수가 있다. 언론을 통해 감독, 선배들이 쏟아 놓은 갖가지 충고와 조언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많은 도움이 돼요. 전 혼자 잘 클 수 없어요. 특히 운동만 잘해선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아요. 어느 선배님이 훌륭한 축구선수도 중요하지만 겸손한, 인격적으로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깊이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큰 관심을 받다보니 자꾸 움츠러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인터뷰를 기피하는 이유도 너무 언론에 노출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새 잠시 동안 우쭐해지거나 자만에 빠질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박주영에게 ‘박주영 팬클럽’이 생겼고, ‘박주영 응원가’도 만들어진다는 얘기를 전했다. 많이 놀라는 눈치다. 그러나 자신을 좋아해주는 팬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함을 느끼지만 아직은 ‘조용히’ 축구에만 전념하고 싶다고 한다.
“그런 거 알고 싶지 않아요. 느끼고 싶지 않아요. 그냥 지금 하는 대로만 하고, 살고 싶어요. 절 너무 과대포장해서 보지 않으셨음 해요.” 그러면서도 자신의 팬카페가 아니라 팬클럽이 생겼다는 부분에 대해선 굉장한 호기심을 나타냈다. 구성원이 누구냐고 묻는 걸 보면.
유명세를 타다 보니 진로 문제도 초미의 관심사다. 그래서 박주영에게 ‘만약 당신 앞에 유럽, J리그, K리그라는 세 가지의 진로 선택 카드가 앞에 놓여 있다면 어떤 걸 택하겠냐’고 물었다.
“당연히 유럽이죠. 제 꿈이자 목표니까요. 그런데 그 결정은 혼자서 할 부분이 절대 아녜요. 학교, 협회, 가족들의 입장들이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잘 조절해서 좋은 방향으로 결론지을 겁니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학교에선 올해가 고려대 1백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고·연전만큼은 꼭 출전시키고 싶다고 말씀하셨거든요.”
행복한 고민일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K리그의 경우 포항은 브라질 유학을 보내줬고, FC서울은 고려대에 무상으로 잔디를 깔아줬는가 하면, 울산은 대학 감독과의 인연을 내세우며 강하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수원 삼성의 입질도 만만치 않다는 소문이다.
박주영으로선 어디를 가도 ‘절대 환영’을 받는 입장인데 다양한 이해관계, 역학관계를 고려해서 진로를 결정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고려대 조민국 감독은 이전 인터뷰에서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J리그에 일단 진출시켜놓은 뒤 유럽으로 이적시키겠다는 복안을 흘린 적이 있었다.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선취골을 터트린 뒤 김승용이 춘 ‘리마리오 춤’을 거론하며 기도 세리머니를 다른 내용으로 바꿀 수도 있는지를 슬쩍 떠봤다.
“전 승용이가 리마리오춤을 출지 전혀 몰랐어요. 골을 넣은 뒤 축하해주려고 막 뛰어가는데 뭔가 이상한 액션을 취하고 있더라구요. 나중에서야 알았어요. 그게 리마리오춤이라는 사실을. 기도 세리머니는 바꾸지 않을 겁니다. 제가 축구를 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선교 활동이기 때문에 제 세리머니를 보고 단 한 사람이라도 신앙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나타났음 좋겠어요. 기도 세리머니는 계속될 거예요.”
마지막으로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다른 질문에는 한참 뜸을 들이던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속사포처럼 대답을 쏟아냈다.
“지금 날짜 세고 있어요. 한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죠. 너무 힘들어요. 지루하기도 하고. 한국에서 뭐하고 싶냐구요? 아무 것도. 무조건 자고 싶은 거. 그냥 푹 잠만 자는 게 소원입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