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읽기 능한 고수‘1년 뒤’를 보라
▲ 지난달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의 인사청문회에 나온 김종빈 신임 검찰총장. 부드러운 외모 때문에 “강단이 없어 보인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전형적인 외유내강 스타일로 꼽힌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김 총장의 취임사는 전임 송광수 검찰총장이 검찰독립을 위해서라면 과감한 발언을 했던 것에 비해 다소 맥이 빠진다는 게 검찰 안팎의 평가다. 이미 인사청문회에서도 김 총장은 송 총장과 달리 정치인들의 파상공세를 제대로 맞받아치지 못하고 수긍해 ‘송 총장에 비해 약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취임식이 끝난 후 김 총장은 기자실에 내려와 간담회를 가졌다. 특유의 친화력 있는 표정으로 대검 출입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 기자는 이 자리에서 김 총장에게 “취임사에서 검찰이 가진 창과 방패 가운데 방패만 부각된 것 같다”라고 물었다. 김 총장은 이에 “검찰이 가진 창이란 실체적 진실을 파악해 사회악을 척결하는 것이고 방패란 인권보호를 말한다”며 “지금까지 검찰은 실체적 진실을 지나치게 강조했고 인권측면을 소홀히 해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 인권을 강조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김 총장의 취임사는 지난해 8월 취임한 김승규 법무장관의 취임사와 거의 흡사하다. 김 장관은 취임사에서 인품과 인권을 강조했으며 인품이 안되는 검사는 특수부 등 요직에서 배제하겠다고 일갈한 바 있다. 당시 검찰 내부에서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 특히 김 장관은 대검 중수부 수사로 구속기소됐던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과 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변론을 맡기도 해 김 장관의 발언은 일부 몇몇 검사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그런데 김 총장이 김 장관과 똑같은 취지의 발언을 하자 검찰 내부가 술렁인 것이다.
하지만 김 총장의 경력과 성격을 보면 이런 취임사는 예상됐던 바다. 김 총장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며 연구하는 검사로 분류된다. 1990년 수원지검 강력부장 시절 화성연쇄살인사건에서 최초로 유전자 감식기법을 도입해 우리나라 과학수사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또 명지대 법대 대학원을 다니면서 작성한 논문에서는 검찰의 자백 강요수사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한 적이 있을 만큼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또 김 총장은 이런 숨겨진 경력뿐만 아니라 숨겨진 성품이 있다. 김 총장은 언론에서 자신을 평가할 때 가장 싫어하는 말이 ‘학자풍의 부드러운 성품’이고 가장 좋아하는 말은 ‘강단있다’다. 그는 출입기자가 자신을 ‘강단있다’고 쓰면 취재력이 있다고 평가할 정도다.
▲ 지난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당시. 김종빈 차장(가운데) 좌우로 안대희 중수부장, 문효남 대검수사기획관 등이 보인다. | ||
그러나 2002년 그는 대검 중수부장 시절 김대중 대통령 차남 홍업씨의 이권청탁 및 개입의혹 수사를 지휘하면서 정치권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홍업씨를 구속기소했다. 또 이 과정에서 자신이 모셨던 신승남 전 검찰총장과 김대웅 전 광주고검장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이런 강단을 인정받아 참여정부에서 호남을 대표하는 검찰 수뇌부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당시 김 총장이 송광수 검찰총장을 보좌해 대검 차장으로 있던 시기는 검찰 최대의 위기였다. 노무현 정부가 검찰개혁을 정부 개혁 1순위로 걸고 검찰수뇌부보다 10년 이상 어린 판사 출신의 강금실 장관을 임명했다.
강 장관은 파격적인 검찰 인사안을 대검에 제시했고 검찰은 심하게 동요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진화에 나섰다. 2003년 3월10일 평검사와 대통령이 최초로 토론회를 가졌다. 노 대통령은 평검사들에게 “나는 검찰 수뇌부를 믿지 않는다. 수사나 잘하라”며 특유의 화법으로 검사들을 몰아붙였다. 이를 지켜보던 김각영 당시 검찰총장이 사표를 던졌고 이어 기수파괴의 파격인사가 이어졌다. 검찰 수뇌부들이 청와대에 독설을 퍼부으며 사표를 썼다. 그때 사표를 쓴 대표적인 이가 현재 한나라당 법사위 간사인 장윤석 의원(경북 영주)이다.
이런 뒤숭숭한 시기에 대검 차장으로 부임한 김 총장은 송광수 전 총장과 함께 조직 안정에 최대한 신경 썼다. 원칙적인 송 전 총장과 포용력 있는 당시 김종빈 차장 콤비는 금새 검찰 조직을 안정시켰다. 검찰은 조직안정 와중에 2003년 2월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SK 비자금 수사 결과 한나라당에 1백억원의 정치자금을 전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그러나 이 수사만을 했을 경우 야당이 검찰 수사의 형평성을 문제삼을 것으로 보고 SK가 노무현 캠프에게 돈을 준 사실을 집중적으로 파기 시작했다. 또 다른 기업도 돈을 줬을 것이라고 보고 삼성, 현대, LG, 대우 등으로도 수사를 확대했다. 송 총장과 함께 이 수사를 기획하고 지휘한 것이 김 총장이었다. 그해 5월부터 10월까지 수사팀은 철저한 보안속에 수사를 준비했고 이와 같은 착실한 준비는 대선자금 수사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검찰은 오랜만에 국민에게 뜨거운 호응을 받았고 시민들은 손수 만든 도시락을 들고 검찰을 찾기도 했다.
김 총장이 이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는 다음 일화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대선자금 수사가 본격화되기 직전인 2003년 10월쯤 과로로 왼쪽 눈에 실핏줄이 터져 간단한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때 송 총장이 입원중이던 그를 찾아 의견을 구했다.
특히 대선자금 수사 당시 김 총장은 비둘기파였기 때문에 매파였던 수사팀 의견을 조율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매일같이 대검 차장실에서 회의가 열렸고 여기서 모든 것이 결정됐다. 호랑이 등을 타고 질주하듯 위태롭던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는 이런 김 총장의 노련한 조율을 통해서 연착륙할 수 있었다.
김 총장이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수사와 기획을 두루 거쳐 이론과 실무에 모두 정통했기 때문이다. 그는 1978년 대전지검 발령 후 법무부 대검 특수부 형사부 강력부 등을 두루 거쳤다. 엘리트 코스를 밟으면서도 강력, 형사, 공판송무, 조사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이런 현장 경력은 그의 머리를 유연하게 만들었다.
그의 유연함은 종교에서 비롯된 철저한 자기관리와 절제에서 나온다. 그는 불교에 심취해 주말에 늘 근교의 절을 찾는다. 가까운 절은 부인과 함께 가고 먼 절은 본인이 직접 운전해서 찾는다. 마음이 답답할 때는 강원도의 한 곳을 즐겨 찾는다고 한다. 특히 자신이 보좌했던 신승남 전 검찰총장을 불구속기소하면서 겪은 마음고생 때문에 건강이 악화됐을 때 매주 불공을 드리며 몸을 다스렸다. 재산과 벼슬을 탐하지 말라는 좌우명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잠실의 한 아파트에서 살다가 최근 주상복합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분양대금이 모자라 전문지 편집장을 하는 큰딸의 돈을 빌리기도 했다. 그 큰딸은 2월 대검 대강당에서 소박하게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김 총장은 그러나 취임사에서 유연하지 않게 피의자 인권보호를 누누이 강조했다. 이는 검사들이 “우리가 인권보호를 안했단 말이냐”라는 내부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김 총장은 “검찰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그동안 검찰이 쌓은 업보”라며 ‘인권존중의 선진검찰’이 되려면 검찰이 과학화 전문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검찰이 피의자의 인권존중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서 자백 위주의 수사관행에서 벗어나야 하며 불구속 수사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주장은 정치권이나 법원에서 검찰을 비판할 때 애용되는 말들이다.
그러나 이는 그의 소신이다. 그는 명지대 대학원을 다니며 ‘진술거부권과 그 침해 여부가 문제되는 사례’ ‘언론의 자유와 기본권 상충에 관한 연구’ 등 세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중 수원지검 강력부장 시절(1990년) 헌법재판소가 펴낸 헌법논총 제1집에 발표했던 ‘진술거부권…’ 논문은 피의자의 인권을 강조하며 자백보다는 과학적 증거를 중요시해야 한다는 취지다. 본인 동의 없는 거짓말 탐지기 이용은 헌법에서 보장한 진술거부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이 논문에서 등장했다.
▲ 김 총장과 송광수 전 총장(오른쪽). | ||
때문에 후배들은 인권과 검사 인품을 강조하는 김승규 장관에 이어 뻣뻣한 시어머니가 또 한 명 등장했다고 긴장하고 있다. 게다가 김 장관은 대대적인 감찰 강화를 공약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총장이 과학수사 인권수사를 강조하고 감찰 강화를 천명한 것이 일선 검사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
거기다 김 총장은 후배를 잘 안챙기는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신중한 성품인데다 고려대에 호남 출신인 비주류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출신 고등학교도 광주일고나 목포고가 아닌 여수고다. 특히 김 총장은 고교시절 매일 당시 여천군의 고향 섬에서 혼자서 1시간 정도 배를 타고 등교했다고 한다. 지금 고향섬은 간척사업으로 육지와 연결이 된 상태다. 현재 검찰에서 여수고 출신 검사는 단 3명일 정도로 호남에서도 비주류다. 김 총장의 약력을 보면 친구로 꼽은 사람은 대부분 고려대 법대 출신의 동기들이고 고등학교 동창은 별로 없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일선 검사들은 김 총장이 청와대 입장을 그대로 전달하는 김 법무장관과 똑같은 잣대를 검찰조직에 들이대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특히 김 총장이 안식구들에게는 세게 나오면서 청와대나 정치권에 굽신거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빠른 속도로 나온다. 즉 검찰 기소권 및 수사권을 위협하는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신설이나 중수부 폐지 등에는 말을 아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단견이라는 지적이 많다. 김 총장은 바둑에서 검찰 최고수라는 송광수 전 총장이 ‘고수’라고 꼽을 정도로 바둑을 잘 둔다. 아마 1급이 공식기력이지만 실은 아마 3~4단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인들에 따르면 김 총장의 바둑 스타일은 싸움바둑이 아니다. 송 전 총장의 스타일은 승부 호흡이 격렬하고 수법이 노골적인 바둑이라고 할 수 있다. 전형적인 싸움바둑이다. 보는 사람도 피가 끓게 하는 현실적이지만 반미학적인 바둑이었다. 그러나 김 총장은 지금 그런 ‘고추장 바둑’을 둘 필요가 없다. 김 총장의 성격상 또 현 검찰이 처한 상황상 차근차근 포석 작업을 하고 나중에 승부를 완성하는 미학적인 바둑을 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총장의 한 측근 인사는 “지금은 수성이다. 승부처는 내년 중반 이후다”라고 밝혔다. 공수처에 대해서는 검찰이 반대하지 않아도 야당이 3권분립을 보장한 헌법에 위배되며 반대하고 있고 법원도 동조하고 있다. 따라서 공수처가 청와대 뜻대로 급물살을 탈 확률은 적어 보인다. 또 대검 중수부도 3과를 축소하고 1과와 2과는 그대로 존치키로 했다. 이는 총장의 최강 친위부대가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총장은 중수부장을 역임한 특수수사통이다. 지금까지 중수부장 출신의 검찰총장은 드물었다. 중수부장 출신의 검찰총장은 수읽기가 다른 출신의 총장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미 대검 중수부와 서울지검 부산지검은 여야 주요 인사에 대한 상당량의 첩보를 입수했다는 소문이 들린다. 대검 중수부가 올초부터 전국으로 내려보낸 건설업체의 공기업 관련 수주비리 수사가 그 좋은 예다. 검찰은 이미 건설업체와 공기업의 비리에서 정치권이 개입했다는 상당한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에 대한 정밀 내사를 진행해 조직이 안정되는 순간 대선자금 수사와 마찬가지로 검찰 특유의 승부수를 던질 전망이다.
한 여당 국회의원이 지난달 29일 인사청문회장에서 “김 총장 후보자는 송광수 전임 총장에 비해 강단이 없어 보인다”라고 비웃듯 말했다. 김 총장은 이를 웃음으로 응수했다. 그러나 김 총장이 강단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그때도 정치권이 김 총장을 부드러운 강단없는 사람으로 평가할지 두고볼 일이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