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들리는 ‘창가’ ‘답가’도 솔솔~
▲ 지난해 4월15일 17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를 마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주민과 악수를 하고 있다. 그의 정계복귀가 현실로 나타날까. | ||
최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다시금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 지지율의 정체와 박근혜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도지사 등 기존의 인재풀로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 등이 보수세력의 시선을 이 전 총재에게 잡아당기고 있다.
‘창사랑’ 같은 이 전 총재 지지세력의 적극적인 외부 활동도 이 전 총재 복귀설에 탄력을 불어넣고 있다. 외출마저 삼가던 지난해 모습과 달리 이 전 총재가 외부 인사들을 적극 접촉하며 사람들 시선에 다시금 익숙해지고 있는 점도 그의 정치행보에 대한 여러 추측을 낳게 한다.
그러나 주변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사자인 이 전 총재는 자신이 거취 문제에 대한 언급을 삼가고 있다.
정계은퇴를 선언한 이 전 총재를 둘러싼 정계복귀설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이 전 총재의 시선은 과연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 것일까.
이 전 총재 정계복귀설에 불을 지핀 것은 바로 ‘창사랑’이다. 이 전 총재 지지자 모임인 창사랑은 현재 전국적으로 2만8천여 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 규모와 조직력에서 기존의 ‘노사모’와 ‘박사모’와 곧잘 비교되곤 하는 창사랑은 5월7일 대구에서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전국대표자회의를 개최해 그 세력을 외부에 알리려는 것이다.
창사랑은 최근 백승홍 전 의원을 새 대표로 선출했다. 한때 이 전 총재 측근그룹에 속하기도 했던 백 전 의원은 “이회창 전 총재의 지도이념을 계승하는 것이 나라의 안정과 발전에 보탬 되는 일”이라며 창사랑 조직 외연 확대에 대한 의지를 불태운다.
창사랑의 이번 전국대표자회의 장소가 대구라는 점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대구는 이 전 총재에게 각별한 추억을 안겨준 곳이다. 대선 패배 이후 미국으로 떠났다가 지난 2003년 3월 일시 귀국해 대구 지하철 참사 현장을 방문했던 이 전 총재는 유족들로부터 “당신이 우리의 대통령이다”란 말을 들으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이 전 총재는 이 지역에서 77.75%의 지지를 얻어 전국 최고득표율을 기록했으며 지난 1월27일 〈조선일보〉와 한국갤럽이 실시한 ‘차기 대통령감’을 묻는 여론조사에서도 대구·경북(TK)지역에선 39.2%를 얻어 박근혜 대표(38.0%)를 누르고 1위에 올랐다. 창사랑이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확대를 꾀하는 것이 대구지역의 이 전 총재에 대한 변함없는 성원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전 총재는 지난 2월18일 대구 지하철 추모 행사장을 찾으려 했지만 ‘정치적 오해’를 우려해 계획을 접었다. 한달 후인 지난 3월18일 이 전 총재는 부인 한인옥씨와 함께 대구를 방문해 지역 종교계 인사들을 비롯한 지인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대구 방문 때 창사랑 지역관계자들과 만났다는 소문도 있지만 이 전 총재측은 이를 강력 부인했다. 이 전 총재 측근인 이종구 전 언론특보는 “창사랑이 벌이는 행사들과 이 전 총재는 무관하다”라며 정치적 연관성을 부인했다.
이 전 총재의 다른 측근인사도 “이 전 총재는 창사랑 활동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고 밝힌다. 그러나 이 전 총재는 최근까지 창사랑 관계자들과 잦은 만남을 가져 왔다. 창사랑 홈페이지(www.changsarang. com)엔 올해 들어 이 전 총재 옥인동 자택을 찾은 창사랑 회원들과 이 전 총재가 다정한 포즈를 취하며 찍은 사진이 여러 장 올라와 있다.
창사랑은 국회 한나라당 소속 보좌진들에게도 대구 전국대표자대회 참석을 권유하는 문자 메시지를 다량으로 발송하는 등 조직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창사랑이 ‘이회창은 이미 죽은 정치인’이라는 일각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세력확대에 열을 올리는 배경엔 여전히 이 전 총재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살아있다는 자신감이 깔려있다. 차기 대선후보를 묻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 전 총재는 상위권에 올라 건재함을 과시했다. 지난 달 대구 방문도 지역인사들의 방문 요청이 끊이지 않은 탓이었다. 대구에 들렀다가 인근 도시들을 방문하며 모처럼의 나들이를 즐긴 이 전 총재 부부는 가는 곳마다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이 전 총재 부부가 경남 하동군에 들렀을 때 방문 소식을 접한 지역 기초의원들이 영접하고자 부리나케 뛰어나왔지만 이 전 총재 승용차가 떠나는 뒷모습밖에 볼 수 없었다고 한다.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일수록 이 전 총재에 대한 향수가 짙게 남아있는 셈이다.
▲ ‘창사랑’ 홈페이지에는 올 초 창사랑 운영진들이 이회창 전 총재의 옥인동 자택을 방문해 함께 찍은 사진이 여러 장 올라와 있다. | ||
이 전 총재 정계복귀론에 대해 김기배 전 의원은 “우리(함덕회)가 이 전 총재의 정계복귀를 위해 애쓴다는 것은 언론의 추측일 뿐”이라면서도 “한나라당의 차기 대선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이 전 총재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전 총재 정계복귀 가능성에 대해 김 전 의원은 “지금 나라 형편을 볼 때 정권교체가 반드시 필요하다. 앞으로 차기 대선까지 3년여가 남아있으니까 한나라당이 차분히 계획을 잡아나가면 된다”라며 이 전 총재 복귀 가능성을 우회적으로 열어놓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이 전 총재가 복귀하려면 무엇보다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전 총재가 복귀하기 위한 여건이란 지금의 한나라당 전력으로는 대권 탈환이 어렵다는 위기감 확대를 뜻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표의 당 장악력에 한계점이 드러나고 있고 이명박 서울시장의 대중적 경쟁력이 아직 검증 단계에 있는 상황이라 당 내부에 ‘이러다가 대선에서 또 패할 수 있다’란 위기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전 총재는 칩거에 가깝게 지내던 지난 2년과 달리 올해 들어 제법 많은 외부 접촉을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 남대문의 한 빌딩에 사무실을 마련했을 당시만 해도 이 전 총재측은 “이 전 총재가 편히 쉴 외부공간일 뿐”이라며 사무실 공개조차 극도로 꺼렸다. 이 전 총재도 이 사무실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가 되면서 달라졌다. 이 전 총재측은 기자들에게 “사무실에 오라”고 스스럼없이 권한다. 이 전 총재도 거의 매일 같이 남대문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낸다. 기자들은 물론 전·현직 정치인들도 남대문 사무실에 자주 들러 이 전 총재에게 인사를 건네곤 한다. 외부 손님을 맞더라도 쉬쉬하며 옥인동 자택으로 불러들였던 지난해 모습과는 딴판이다.
한나라당 내 분위기도 뒤숭숭해졌다. 당의 텃밭인 대구 지역에서 이 전 총재가 아직 최고의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 박근혜 대표나 다른 대선주자의 당내 카리스마가 이 전 총재의 아성에 한참 못 미친다는 점 등이 곧잘 거론된다. 당 지도부가 검토 중인 책임당원제가 전격 도입될 경우 창사랑 회원들이 대거 입당해 대선후보 경선 판도를 뒤엎을 수 있다는 조금은 ‘때 이른’ 추측도 나오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 전 총재가 한나라당에 복귀해서 차기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에 회의적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 당내 역학구도가 만만치 않기 때문. 지금 한나라당엔 이 전 총재 복귀시에 전위대 역할을 해줄 만한 세력이 없다. 한때 이 전 총재 핵심측근이었던 김무성 유승민 의원 등은 이미 핵심당직을 맡아 ‘박근혜 사단’에 합류한 지 오래. 이 전 총재가 신임했던 소장파 박진 정병국 의원 등도 각자의 큰 꿈을 향해 각개약진하고 있다.
정세분석에 밝으며 다년간 정치 노하우를 지닌 함덕회 멤버들이 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에겐 ‘차떼기’ 주역이란 오명이 붙어있으며 지난 총선에서 물갈이 대상으로 지목된 이들의 행보가 이 전 총재를 공개적인 정치무대로 이끌어내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엔 여론의 반응이 냉랭할 것이 자명하다.
판세 분석에 밝은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은 “(이 전 총재가) 정계복귀를 원할 수도 있다. 지난 두 번의 대선을 거치며 1천만 국민의 지지를 받을 때 느꼈던 그 환호성과 박수소리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라며 이 전 총재의 정계복귀 의지를 예상했다. 그러나 “두 번 대선 패배의 짐을 털고 복귀에 따른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이 전 총재가 감수하려 할까”라며 “확실한 여건이 조성돼야 복귀가 가능할 것”이란 전제를 달기도 했다.
이 전 총재를 보좌했던 한 인사는 최근 불거지는 이 전 총재 복귀설에 대해 “이 전 총재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 단정지었다. 지난 대선과 총선을 계기로 이 전 총재 주변에 ‘달라붙어’ 있다가 정치생명의 끈을 놓친 인사들이 ‘이회창’이라는 이름값을 발판삼아 재기의 몸부림을 치는 와중에 이 전 총재 복귀설이 불거진 것이란 지적이다. 이 인사는 “이 전 총재 복귀론 주변에 서있는 사람들 모두 현역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다. 그들이 노리는 게 무엇이겠나”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과거에 이 전 총재를 보좌했거나 여전히 이 전 총재에 호의적인 한나라당 내 인사들은 가능성 높은 이 전 총재의 활동영역으로 재단·연구소 설립을 꼽는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연구활동을 통해 사회적 역량을 다시 인정받게 되면 이 전 총재 본인이 정치권에 재차 뛰어들지 않더라도 당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분이 지닌 정치적 자산이 어느 당을 위한 표심으로 집결되겠는가”라 전망했다.
한나라당의 한 3선 의원은 “이 전 총재가 여러 형태로 외부활동을 늘리게 되면 이는 한나라당 내 대의원 표심을 자극할 것이며 이 전 총재는 한나라당 내 대선후보 레이스 막판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이 전 총재가 당내 후계자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도 이 때문에 나오는 것”이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