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병철의 딸” 공격경영 본격시동
▲ 이명희 신세계 회장 | ||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다섯째 딸인 이 회장은 79년부터 96년 말까지 20년 가까이 신세계 상무로 불렸고, 이후 부사장-부회장을 거쳐 98년 말부터 신세계 회장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최근까지 언론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적이 없었다. 언론에 보도된 사진이라고 해봐야 삼성가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참석한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그가 지난 1월 신세계 사보에 사진과 함께 그의 글을 공개하더니 5월호에는 그의 가족 사진과 아버지 이병철 회장에 대한 추억을 담은 ‘아버지 이병철 회장과 나’라는 글을 실으며 이 회장의 퍼스낼리티를 공개하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였다.
재계에서는 이명희 회장이 신세계의 간판으로 본격적으로 나서는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재계 일각에선 그가 공개한 아버지에 대한 추억도 자신의 경영철학과 뿌리에 대한 ‘우회적인 진술’로 풀이하고 있다. 회장 이미지(PI) 구축작업이 시작됐다는 관측도 있다. 물론 신세계쪽에선 이런 시각이 틀렸다고 해명하고 있다.
국내 최대 재벌인 삼성가 창업주의 딸이자, 2세 분리 이후 수성과 도약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그래서 국내에서는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재벌그룹 총수가 된 경영인 이명희 회장의 모습과, 삼성가의 다섯 번째 딸로서의 이명희씨에 대해 알아봤다.
43년생인 이명희 회장은 올해 우리 나이로 예순셋이다.
그는 사보를 통해 공개한 글에서 “내가 39세가 됐을 때 신세계에서 일해 보라고 권유한 사람은 아버지였다”고 밝혔다. 부친인 이병철 회장이 “여자도 가정에 안주하지 말고 남자 못지않게 사회에 나가서 활동하고 스스로 발전을 해야 한다”고 ‘강요’해 “현모양처의 꿈을 접고 신세계에서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묘한 것은 그의 부상이 남편인 정재은 조선호텔 명예회장의 쇠락과 맞물려 있다는 점.
정 명예회장은 경기고-서울대 공대를 나와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수학한 재력과 지력을 겸비한 엘리트. 그는 삼성가 사위가 된 뒤에도 삼성전자 사장을 지내는 등 성공가도를 달려왔다. 그의 전성기는 80년대 중반 삼성전자와 삼성전관 사장을 겸임하던 시절이다. 이때 삼성전자는 의욕적으로 반도체에 투자했다. 그러다 그는 86년 3월 47세의 나이에 갑자기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경영일선에서 멀어졌다. 이어 삼성종합화학, 삼성항공 등으로 옮기면서 삼성의 핵심에서도 점차 멀어져갔다. 신세계가 계열분리되던 93년부터 96년 1월까지 신세계 회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96년 1월부터 조선호텔 명예회장에 취임하면서 그는 사실상 현역 경영인 생활을 마감했다.
반면 이명희 회장은 97년 1월, 근 20년 가까이 달았던 상무 타이틀을 반납하고 신세계 부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신세계그룹의 중심이 ‘이명희’임을 재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뒤인 98년 11월 신세계 회장에 취임해 명실상부하게 신세계그룹의 총수가 됐다.
이 과정에서 정재은 회장의 급격한 퇴진과 경영일선 은퇴 배경을 놓고 이런 저런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사례가 재계에선 드물었기 때문이다.
신세계가 삼성그룹에서 분리될 때 이명희 회장이 받은 것은 신세계와 조선호텔, 삼성전자 지분 정도. 그때만 하더라도 신세계는 소공동에 2만평 이상의 매장을 가진 롯데백화점의 공세에 눌리고, 강남에 포진한 현대백화점에 밀려 3위권 백화점에 만족하고 ‘평당 매출액에선 아직도 국내 최고’라며 자위하는 정도였다.
신세계가 롯데백화점과 선두다툼을 벌일 정도로 기사회생한 것은 이마트의 성공 때문이다. 93년 11월 문을 연 이마트 창동점은 신세계를 유통대전의 선두업체로 끌어 올렸다.
신세계가 성공만 한 것은 아니다. 신세계는 당시 이마트와 영등포의 코스트코프라이스클럽, 강남의 옛 영동백화점을 인수해 강남 진출 등 세 가지 프로젝트를 거의 동시에 추진했다. 이 중 성공한 것은 신세계가 공을 들였던 강남점과 외국에 로열티를 물고 들여온 프라이스클럽이 아니라 사내 프로젝트로 추진했던 이마트였다. 신세계 영동점은 개점 1년6개월 만에 문을 닫았고, 회원제 할인점이었던 프라이스클럽도 외환위기 때 경영권을 외국에 넘기고 정리했다. 이때 신세계의 경영책임자는 정재은 회장이었다.
이마트 개발당시를 다룬 한 책자에 따르면 이마트 사업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은 ‘신세계의 고위층’으로 “우리나라에는 재래시장 이외에는 중저가 시장이 없으니 미국의 월마트 같은 신개념의 업태를 한번 해보면 어떻겠느냐”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고 한다.
이 고위층이 ‘정재은 회장이냐, 이명희 회장이냐’를 두고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이에 대해 이명희 회장은 최근 공개한 사보 글을 통해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이 회장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87년) 나는 태산이 무너진 듯 슬픔을 견딜 수가 없어 한때 방황을 하기도 했다. 이때의 미국 여행이 오히려 지금의 이마트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환경의 변화가 필요해 찾은 곳에서 나는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사실 삼성에서 분리한 이후 신세계는 조선호텔과 백화점만 운영하는 중소기업 규모에 불과했다. 신규사업을 하기에는 자금과 능력이 부족한 시기였다. 나는 미국에 머물면서 미국이 프라이스클럽과 월마트 등 창고형 점포를 보았고 적은 투자로 가능한 신규사업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것을 회사에 제안하였고 93년 창동에 최초로 테스트 점포를 연 것이 오늘날 이마트의 시작이다”고 밝힌 것이다.
▲ 신세계 사보에 공개한 이병철 회장과 이명희 회장이 함께 찍은 사진. | ||
그는 “외환위기 때 프라이스클럽과 카드 부문을 매각하여 이를 이마트에 집중 투자키로 한 결정이 현재의 신세계로 성장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외환위기는 신세계 입장에선 기회였다. 외환위기로 할인점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고, 할인점의 선두주자였던 뉴코아의 부도로 업계 구조조정이 일어나면서 신세계가 이마트 점포 부지를 확장해 나갈 수 있었다. 이마트 본점으로 쓰고 있는 은평점 부지가 바로 뉴코아로부터 인수한 땅이다. 게다가 당시 유통 최강이던 롯데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할인점 진출에 머뭇거렸다. 그러면서 신세계는 롯데의 매출액에 바짝 따라붙었다.
오는 8월 신축 공사중인 2만여 평 규모의 신세계 본점 신관이 완공되면 전체 매출액에서 롯데를 누르고 70년대 말 내줬던 유통업계 1위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일각에서는 나오고 있다.
요즘 이마트는 구매고객 10억 명 돌파 기념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는 국내 인구가 5천만 명이라고 치면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이마트에서 스무 번 이상 물건을 샀다는 의미다. 이런 이마트의 폭발적인 성장이 있었기에 신세계가 롯데와 다시 선두다툼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회장은 본점 신축 공사장은 물론 지난 봄 문을 연 롯데의 명품관 애비뉴엘 매장을 직접 찾아가 살펴보고 식당가도 둘러보는 등 큰 관심을 표하고 있다. 평소에도 그는 경쟁사나 신세계 매장을 직접 살피는 일이 있었는데 최근 언론에 얼굴이 크게 공개되면서 직원들이 얼굴을 알아봐 곤혹스러워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 회장의 애비뉴엘 방문도 롯데쪽 직원들이 먼저 얼굴을 알아봐 알려졌다고 한다.
그만큼 그는 오는 8월 문을 여는 신세계 본점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초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이 회장은 “손님들이 ‘신세계는 도대체 어딜 가서 이런 걸 뽑아왔어?’라고 할 정도로 놀라게 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단순히 최대 크기, 최신 인테리어의 매장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차별화된, 공을 들인, ‘신세계가 직접 물건을 사서 들여놓은’ 매장을 보여주겠다는 얘기인 것이다.
이 회장은 사보를 통해 유통그룹 신세계가 2012년까지 백화점 9개, 이마트 1백30개, 중국 이마트 매장 25개 이상 출점 등을 통해 매출 33조원을 달성해 세계 10대 종합 유통 소매기업으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신세계는 본점 완공 이후 부산 해운대 신시가지쪽에 센텀시티라는, 공사비만 2조원이 넘게 들어가는 복합쇼핑공간 공사에 들어간다. 이는 코엑스보다 더 큰 복합 쇼핑몰이다. 또 여주쪽에 명품아울렛이라는 새로운 업태도 미국회사와 합작으로 준비중이다. 일각에선 ‘종합유통기업’을 표방하는 신세계가 자동차 소매업 등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가능성도 주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수입차 진출이 늘고 GM대우나 쌍용차 등 판매와 생산이 분리된 국산 완성차 메이커들이 늘고 있다. 때문에 자동차 유통업에 대해 SK 등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는 재벌그룹에서도 미래사업으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명희 회장이 미래사업에 대해 어떤 각론을 제시할지 지금 재계는 그를 주목하고 있다.
이명희 프로필
출생일 1943년 9월생
혈액형 AB
출신학교 이화여고-이화여대 생활미술과
특기 그림
취미 골프와 남산 산책
경력
1979년 2월 신세계백화점 영업사업본부 이사
1980년 2월 신세계백화점 상무이사
1997년 1월 신세계백화점 부사장
1997년 1월 신세계백화점 부회장
1998년 11월 신세계백화점 회장
현재 신세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