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초 얕보면 ‘불도저 삽날’도 흠집난다
▲ 이명박 서울시장이 오는 1일 청계천 개통식을 앞두고 ‘프리투어’에 여념이 없다. 지난 9월20일엔 당내 대권 라이벌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청계천으로 초청했다. 국회사진기자단 | ||
기뻐하는 사람이 어디 서울시민들뿐이랴. 청계천 새물맞이 행사를 가장 가슴 설레며 기다리고 있는 또 한 사람이 있다. 이명박 서울특별시장. 그는 각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난 2003년 7월 청계천 복원공사의 첫 삽을 뜬 뒤 2년 3개월 만에 개통식을 눈앞에 두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처럼 ‘이명박이 아니었다면 이런 대 역사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찬사도 쏟아진다. 이 시장도 청계천의 새로운 ‘물길’을 타고 내친김에 청와대까지 내달릴 기세다.
하지만 청와대로 가는 ‘물길’에는 수많은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이 시장의 몇몇 개인적인 흠결들, 여야 잠룡들의 세 대결, 정치환경의 급변 등 만만치 않은 도전과제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이 시장은 지금까지 여야의 대권주자 그 누구도 만들지 못했던 자신만의 ‘브랜드’ 하나를 국민들에게 확실히 심어 주며 대권가도에 당당히 들어섰다. 청계천에 드리워진 대권 주자 이명박의 명과 암을 짚어보았다.
“나는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아. 그래서 마인드도 굉장히 개혁적인 편이야.”
이명박 시장이 최근 기자들과의 한 저녁 자리에서 처음 보는 생선회에 젓가락을 가져가며 호기심을 보였다. 한입 먹어본 뒤 “맛이 이상하네” 하면서도 선뜻 삼켜버렸다. 이 시장은 ‘이미지가 너무 보수적이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상당히 개혁적인 사람”임을 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보수란 새로운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 하고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할 때, 이 시장은 스스로가 새로운 ‘문물’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 뒤 수용 여부를 결정하는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1964년 고려대 학생회장으로 있으면서 ‘6·3사태’ 주도 혐의로 6개월 감옥살이를 한 것이라든지, 잦은 해외 근무를 통해 체득한 서구 스타일의 실용적인 생활 자세도 그가 변화를 싫어하는 수구적 보수주의의 ‘낙인’을 결단코 거부하는 명분이 되기도 한다.
이날 저녁 자리에서 그는 자신에게 덧씌워진 ‘왜곡된’ 이미지를 걷어내려는 듯 폭탄주를 여러 잔 비우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이야기 주제의 대부분은 ‘청계천’이었다. 기자들은 이 시장의 대권 도전 가능성이나 그밖에 ‘까실까실한’ 질문들을 던지며 혹시 모를 ‘낙수’를 기대했지만, 이 시장은 노회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화제로 올리며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이야기는 샛길로 빠지는 것 같다가 다시 청계천의 ‘본류’로 되돌아오곤 했다. 그래서 이날 저녁 자리는 청계천 개통행사의 ‘사전 정지작업’쯤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 시장은 지난 7월 말 <조선일보>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누르고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고건 전 총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그는 그때를 기점으로 정무부시장 교체와 특보진 보강 등 인사를 단행했다. 언론인 접촉도 강화했다. 큰 뜻을 펼치기 위한 도약대에 한 발을 내디뎠던 것이다. 최근 이 시장의 발빠른 ‘정치적’ 행보는 모두 오는 10월1일 청계천 개통식에 맞춰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권 쟁취를 위한 일종의 ‘D-day’ 선언인 셈이다.
▲ 이명박 시장이 지난 3월 프로축구단 ‘FC서울’의 개막경기에 참석해 선수들을 격려했다. | ||
그가 “청계천 주변 상인들이 공사에 반대하며 분신까지 하는 등 최악의 상황이 계속됐지만 4천 번도 넘게 상인들을 만나 설득, 또 설득한 끝에 공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말할 땐 청계천 공사가 자신에겐 일종의 신성한 도전이었음을 역설하고 있는 듯했다. 어떤 기자들은 ‘청계천 공사와 국가 운영은 분명 다르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고 싶었겠지만 청계천 프로젝트의 성공을 확신하는 그의 ‘결기’에 밀렸는지, 모두 조용히 듣고 있었다.
현대건설 회장 출신의 ‘CEO 시장’ 이명박은 요즘 청계천 ‘팔기’에 여념이 없다. 빗발치는 인터뷰 요청도 모두 접어두고 날마다 청계천 개통식 행사를 진두 지휘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청계천 개통식을 앞두고 정치권과 언론계, 종교계 등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을 모두 청계천으로 초청, ‘프리투어’ 행사를 가지며 공사 성공을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이 시장은 10월1일 개통식을 축하의 장으로 만드는 동시에 자신의 잠재력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복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덜그럭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이 시장은 이번 복원행사 홍보비용으로 총 9억2천6백만원을 책정했는데 이런 홍보비가 자신의 대권가도 홍보를 위한 용도로 ‘전용’되고 있다는 것이 여권의 주장이다. 특히 여권에서는 청계천 복원에 즈음해 항간에 ‘청계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떠돌자 ‘청계천이 정략적으로 이용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열린우리당 전병헌 대변인은 “국민 세금으로 얻은 청계천은 서울시민의 공유물이지 특정인의 사유물처럼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며 이 시장의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이 시장의 청계천 행보에 브레이크가 걸릴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 시장은 앞으로 대권가도에 ‘청계천 프리미엄’을 적극 이용할 것이다. 특히 이 시장은 이번 청계천 복원공사 성공으로 다른 어떤 대권주자들이 가져보지 못한 확실한 ‘브랜드’ 하나를 얻었다.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정부의 문화 마인드 부족을 탄식하며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중앙 정부가 거창하게 (광복 60주년) 행사를 한 것 같은데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남아 있지 않다. 대중의 기억 속에 남은 잔영은 서울시청을 뒤덮은 3천6백 장의 태극기다. 청계천이 오는 10월1일 복원되는데, 서울시민의 머릿속에는 벌써부터 청계천이 흐르고 있다. ‘서울시장 이명박’이 등장하지 않아도 태극기가 있고, 청계천이 흐르고, 시청 앞과 남대문의 잔디광장이 있는 ‘문화적 접근방법’을 사용한 홍보효과를 (서울시는) 톡톡히 보고 있다.”
정치인들에게 이미지는 중요한 문화적 코드이며 자신을 알리는 정체성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권을 앞두고 있는 차기 주자들에게 ‘첫 인상’은 투표하는 순간을 좌우하는 중요한 득표 요인이다. 민 의원은 “그 동안 열린우리당이 간과하고 있는 문화의 힘을 이 시장은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 시장의 잠재력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 ‘노무현식 밀어붙이기’의 문제점을 경험했기 때문일까. ‘이명박식 밀어붙이기’를 우려하는 여론도 높은 게 사실이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대통령과 시도지사의 간담회. | ||
문제는 그의 ‘타고난’ 인간성이다. 개인의 성향은 어떻게 해서든지 잘 고쳐질 수 없다. 특히 이 시장의 경우 ‘불도저’라는 별명이 말해 주듯이 타협보다는 밀어붙이기가 체질화된 사람이다. 지금도 ‘노무현식 밀어붙이기’에 정치가 겉돌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만약 그가 정권을 잡게 될 경우 ‘이명박식 밀어붙이기’에 정치가 또 다시 휘둘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주변의 조언을 경청하지 않고 독단적이라는 평가 때문이다.
지난해 경실련 여론조사에선 이 시장의 ‘의견수렴 능력’이 시민들로부터 낮은 점수를 얻었다. “시장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는가”란 질문에 ‘매우 그렇다’고 대답한 시민은 전체 1백94명 중 3.1%, ‘그렇다’는 13.4%였던 반면, ‘매우 그렇지 않다’는 32%, ‘그렇지 않다’가 34%였다. 부정적인 응답이 66%에 달한 셈이다.
다시 이야기를 이 시장과의 저녁 식사자리로 돌려보자. 폭탄주로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을 때, 한 기자가 이 시장에 관한 정치적 의혹사건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문건 파동의 배경에 이 시장측도 관련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시장은 이에 대해 “금시초문”이라며 부인했다. 그런데 이 시장은 질문을 했던 기자에게 “어디 신문사 다니느냐”고 물었다. “XX신문입니다(이른바 ‘조중동’ 메이저 신문은 아니었음)”라고 대답하니까 “(사실이 아닌 것을 얘기하는 것을 두고) 그러니까 그런 신문사에 다니지”라며 ‘면박’을 주었다. 보다 못한 한 측근이 “그런 이야기도 있다”라며 어색한 분위기를 서둘러 수습해야만 했다.
사실 이 시장이 언론이 제기하는 온갖 의혹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까닭이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비판은 정확한 정보와 근거에 바탕을 두어야 하며 정치나 행정은 말이나 구호가 아닌 행동과 성과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정보나 근거도 없이 함부로 특정인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깔려 있는 것이다. 백 번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예전에도 일간지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때 한 기자가 이 시장이 들으면 아플 만한 ‘고언’을 한마디했다고 한다. 이 시장은 이에 “XX신문, 사람들이 만명이나 보는가”라며 공격적으로 대꾸했다고 한다. 이 기자는 그 후에 “‘모욕’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선선히 넘어갔다. 그의 답답함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며 소회를 밝힌 바 있지만 이 시장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누구나 개인에게 ‘흠결’은 있다. 앞서 소개한 두 가지 에피소드가 이 시장의 독단적 성격을 단정적으로 말해준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보기에 따라서 이 시장의 약점이라고 지적할 수 있는 ‘밀어붙이기’나 ‘독단’도 ‘추진력’이나 ‘강력한 리더십‘으로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주관적인 평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날 저녁자리를 수행했던 참모들이 이 시장의 반응에 크게 신경을 쓰며 말을 극도로 조심하는 등, ‘주군’의 심기를 너무 많이 살피는 것이 아니냐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사실이 열린우리당 정장선 의원이 지난 6월 이 시장을 두고 “(이 시장은) 너무 거칠다. 자신은 말을 심하게 하면서 직원들은 직언을 못하게 하는 분위기라고 한다”고 평가했던 부분과 맞닿아 있다면, 이 시장도 한번쯤 자신의 ‘인간적’ 모습을 되돌아봐야 할지도 모른다. 혹시 그가 청계천을 타고 청와대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소한’ 문제 때문에 국사가 어긋나는 불행한 사태가 올지도 모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