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변해도 ‘노빠’는 영원
▲ 지난해 3월 대통령 탄핵안 의결을 저지하던 유시민 의원. 아래 사진은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와 귓속말. | ||
‘노무현 구하기’를 위해 과감히 정계에 투신한 그는 개혁당의 창당을 주도했다. 노 대통령과의 인연을 맺어준 개혁당의 힘은 실로 놀라웠다. 철저히 기간당원제로 운영된 개혁당은 창당 몇 개월 만에 수만 명의 당원을 거느린 정당으로 성장했고 이후 열린우리당 창당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개혁당 시절부터 그는 줄곧 노 대통령과 호흡을 같이하는 정치를 해왔다. 그리고 2003년 4월 재·보궐 선거를 통해 국회입성에 성공한 이후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통령의 원내경호실장’ 역할을 해왔다. 야당, 때로는 여당 내부에서 노 대통령을 공격할 때마다 그는 언제나 싸움의 최전선을 지켰다. 얼마 전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연정론을 제안했을 당시에도 그는 당내 반대 기류 속에서 대통령을 적극 엄호하고 나섰다.
17대 국회 초기 탄핵의 굴레에서 벗어난 노 대통령이 다수당의 힘을 등에 업고 본격적인 개혁 드라이브를 시작하면서 그의 역할은 두드러졌다. 이 시절 유 의원은 당내에서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렸다. 항간에는 유 의원이 “각각의 현안에 대해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아 움직인다”는 소문까지 번질 정도였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통령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다는 소문이 나오면서부터였다. 실제로 국무회의 등의 자리에서 유 의원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대통령이 “유 의원 얘기는 그만하고…”라는 언급을 몇 차례 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그의 주가는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역시 ‘충신’이었다. 연정론, 지도부 사퇴 파문 등에서 그가 보여준 태도는 여전히 ‘노빠’ 그 자체였다. 일각에선 유 의원이 자신의 입지를 위해 대통령을 팔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지만 당내 재야파 출신 한 의원이 내린 평가는 달랐다.
“유시민은 정말 사심은 없는 사람이다. 그를 아무리 욕해도 그것 하나만은 알아줘야 한다. 그는 그냥 대통령을 위해 태어나고 정치하는 사람일 뿐이다. 대통령과 함께 정치판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이 같은 평가가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는 결국 유 의원의 향후 행보를 놓고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