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광팬 동시에 만든 ‘독불장군’
▲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나보고 대놓고 나가라는 사람도 있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유시민은 나가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한다. 내가 나가서 당이 평화로워진다면 나갈 수도 있다.”
최근 유시민 의원이 털어놓은 심경의 일단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던져 만들었던 열린우리당 1백40여 명의 ‘동지’들로부터 직·간접적인 탈당 압력을 받으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좋아하던 언론과의 접촉도 “더 미움받기 싫다”며 피하고 있을 정도다.
유 의원에게 11월 늦가을은 ‘슬픔의 계절’이다. 어쩌면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자의반 타의반 떠나야 할지도 모를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천재 또는 깡패’ 정치인 유시민. 그는 왜 여권 내분의 한가운데서 집중타를 맞고 있는 것일까.
비록 벼랑 끝에 선 처지이긴 하지만 그는 여전히 ‘스타 정치인’이다. 지금도 그의 홈페이지에는 하루에도 수백 명이 넘는 지지자들이 찾아와 격려의 글을 올리고 있다. 각 여론조사의 국회의원 선호도·비선호도 부문에서 유 의원의 이름이 각각 상위에 오르는 것은 그에 대한 세상의 평가가 얼마나 극단적인지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여당의 한 의원은 “유시민의 독불장군식 정치 스타일과 독설이 그를 싫어하는 안티층을 만드는 동시에 지지층도 함께 만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사실 유시민식 ‘막말 정치’는 하루이틀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독설은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 그를 상대로 ‘맞짱’을 뜨는 여당 정치인은 흔치 않았다. 이유는 그가 노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는 논리적인 대응으로 그를 넘어설 자신이 없었다는 게 열린우리당 의원들로서는 보다 솔직한 심정이었을지 모른다.
지난해 총선 직전 기간당원제 문제로 열린우리당이 내홍을 겪을 당시 한 의원은 유 의원을 향해 “사실 저 사람이 하는 말에 틀린 소리는 없다. 게다가 자신이 하는 일은 모두 옳고 잘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 정말 무서운 사람이지”라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지난 10·26 재선거 패배 이후 열린우리당은 선혈이 낭자한 당내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싸움’을 건 쪽은 재야파였고 기습을 당한 쪽은 친노그룹을 포함한 당권파였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을 받은 당권파는 변변한 공격 한번 못한 채 2년여 동안 쥐고 흔들던 당권을 내줘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곧 친노그룹의 반격이 시작됐다. 앞장선 사람은 영원한 ‘노빠’ 유 의원이었다. 재선거의 책임을 지고 당지도부가 전원 사퇴한 다음날인 지난달 29일 중앙상임위원직을 던진 유 의원은 지방의 한 강연에서 지도부 사퇴를 요구한 당내 세력을 향해 ‘다수에 의한 쿠데타’, ‘작은 탄핵’이라고 공격했다. “대통령이 재선거 패배의 책임이 정부에 있음을 인정했음에도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는 논리였다.
그 날 이후 유 의원은 당내 권력 투쟁의 중심에 서게 됐다. 그리고 급기야 탈당을 요구하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운동권 출신 의원들부터 보수 성향의 의원들에 이르기까지 유 의원을 비판하는 데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학생운동권 출신인 같은 당 한광원 의원은 지난 1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유시민 의원! 그만하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유 의원의 ‘작은 탄핵’ 발언에 대한 답변이었다. 한 의원은 이 글을 통해 “유 의원이 생각하는 당의 길은 무조건 대통령의 말에 따르고 본인의 뜻과 맞아야 하는 것이냐. 의원들이 소신껏 목소리를 내면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냐”고 따졌다.
이번 사태가 벌어지기 며칠 전 의총에서는 당내 중도보수파 그룹을 이끌고 있는 유재건 의원이 “그렇잖아도 정치 경험이 부족한 젊은 의원들 때문에 이민 가겠다는 국민이 많은데 (우리) ‘안개모’는 모씨 의원처럼 ‘개판’치기 위해서 만든 게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말한 ‘모씨’는 바로 유 의원이었다.
유 의원이 많은 동료 의원들로부터 이렇게 집중 성토를 받게 된 연유는 도대체 뭘까. 상당수 당 관계자들은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그런데 그 중 첫 번째가 다름아닌 “유시민은 싸가지가 없다”는 감정적인 지적이었다. 심지어 그의 정치개혁 노선을 지지하는 개혁당 출신 의원들도 그의 ‘싸가지 없는’ 말투와 행동에 이르면 입을 닫을 정도다.
지난해 7월, 총선 직후부터 선거법 위반 혐의로 내내 구치소에 있다 풀려난 오시덕 의원이 같은 당 의원들에게 감사를 표시했을 당시 유 의원이 “그만 마무리하시죠”라고 했던 발언이나 지난해 10월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으로 여당 내 분란이 있을 때 그가 정장선 의원에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고 냉랭하게 쏘아붙였던 일 등은 열린우리당 상당수 의원들 마음속에 아직 깊이 각인되어 있다. 이 같은 일들이 계속되면서 그의 ‘똑똑하고 곧은 정치인’ 이미지는 ‘싸가지 없는 독불장군’으로 변해갔다.
특이해서일까. 그의 오만하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듯한 말투와 행동은 종종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정신과 전문의인 정혜신 박사는 최근 한 언론에 기고한 글을 통해 “유 의원은 ‘지적 권위주의’가 강한 사람이다. ‘지적 권위주의’란 매사 논리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경향을 말하는데 이것은 수평관계보다 수직적 관계를 축으로 이루어진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상대의 논리를 내 논리에 종속시켜야 속이 후련한 사람”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정 박사는 “‘지적 권위주의’ 성향이 있는 이들에게 ‘앎’(知)은 삶의 가장 중요한 척도다. 매사 ‘너 그거 알아?’ 하며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따지기 좋아하고 상대의 이해력을 끊임없이 저울질한다. 그런 사람은 대개의 경우 합리적이지만 권위주의적 색채가 짙어지면 제3자를 무시하거나 냉소적으로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신의 ‘앎’을 최종 결론으로 미리 단정하고 논의를 시작하기 때문에 토론이 아닌 설득이 된다”고 그의 태도를 분석하기도 했다.
유 의원이 지금처럼 ‘미운 오리새끼’가 되어 당 안팎의 성토를 받게 된 두 번째 이유이자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앞장서온 기간당원제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유 의원 본인도 기간당원제 논란을 “내가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로 꼽고 있기도 하다. 그는 “의원들이 당헌당규 한번 제대로 안 읽어보고 기간당원제를 문제 삼고 있다”며 “사람들이 나를 잘 알면서도 싫어한다. 내가 조용히 지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고 밝혀 사실상 이 문제에 관한 한 ‘타협’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지난 총선 이후 치러진 각종 선거에서 전패의 수모를 당한 여당 내에서 외부 인사 수혈이 어려운 ‘기간당원제’가 원인으로 거론되면서 비난의 화살은 그를 향했다. 열린우리당 당헌상 기간당원은 6개월 이상 당비를 냄으로써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게 된 사람을 말한다.
지난 10·26 재보선 직후 열린 중앙위원·의원 연석회의 당시에도 이 문제는 전면에 부상했다. 당권파인 김현미 의원이 “다른 것(선거)은 어떻게 돼도 정당개혁, 정치개혁만 성공하면 된다는 분들은 다른 데 가서 하라”고 말한 것도 기간당원제의 ‘폐해’를 지적한 것이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기간당원제를 손질해야 한다는 여론이 당내에 광범위하게 번지면서 유 의원은 점점 고립무원의 처지가 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기간당원제하에서는 당내 어느 세력도 지방선거나 국민경선 등에서 득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당내 기반이 약한 김근태 장관 진영이나 민주당과의 합당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염동연 의원을 비롯한 호남지역 인사들을 중심으로 기간당원제 폐지에 대한 기대치는 더욱 높다. 최근 민주당과의 합당 추진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염 의원은 “기간당원제는 비현실적인 정치실험이며 사실상 우리당이 처한 정치토양에서는 실패한 제도”라며 기간당원제 폐지를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유 의원은 지금도 이러한 당내 분위기를 “좋았던 옛날로 돌아가기 위한 ‘최초의 폭발점’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논란의 여지가 크긴 하지만, 유 의원이 비판받는 세 번째 이유로 적잖은 사람들이 꼽는 것은 ‘기회주의적인 성향’이다. 최근에도 그는 ‘말바꾸기’를 했다는 보도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지난달 재선거 직후 <한국일보>는 “유 의원이 10·26 재선거일 오전부터 ‘전패할 경우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하겠다’고 해놓고 다음날 노무현 대통령의 ‘문희상 체제 유지’ 입장이 알려지자 ‘당장의 지도부 사퇴는 무책임하다’고 식언을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물론 유 의원은 즉각 반발했다. 그는 “식언한 적 없다”며 “이번 선거에서 전패할 경우 현 지도부가 2월 전당대회 때까지 지도부직을 수행하고 그뒤 즉각 물러나자는 절충안을 생각했다. 대통령 발언은 ‘덕담’ 정도로 생각했을 뿐 영향받은 바 없다”고 반박했다.
지난 4월 전당대회 당시 유 의원은 공개적으로 정동영 장관을 중심으로 한 당권파를 공격하면서 김근태 장관을 중심으로 한 재야파와의 연대의사를 밝혔었다. 재야파 중진인 이해찬 총리의 보좌관을 지낸 바 있는 그는 실제 당내에서 범재야파 인사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이번 지도부 사태 파동에서 재야파와 완전히 갈라서는 길을 택했다. 오히려 자신이 그동안 줄기차게 비판해온 당권파에 몸을 실은 모양새까지 보이고 있는 양상이다. 이러한 유 의원의 ‘변신’도 그가 비판받는 또 다른 이유가 됐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지난해 총선 직후 실시된 원내대표 경선 당시에는 유 의원이 재야파 출신의 이해찬 의원이 아닌 당권파인 천정배 의원을 측면 지원하면서 재야파를 포함한 개혁진영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기도 했었다. 이런 그의 정파와 세력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갈지자 행보가 계속되면서 기회주의 정치인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유 의원 주변에서는 “어느 특정 계파를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냐. 가장 당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했을 뿐”이라며 유 의원의 처신을 옹호하고 있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정치인 유시민’의 색깔이 달라질 수밖에 없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유 의원의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는 그가 지난 10월28일 중앙상임위원직을 던지면서 쓴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하나 올라와 있다. 홀로 감당하기에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애증의 무게가 너무 버거운 것이었을까. 이 글에서 그는 “다시 ‘양민’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직업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마지막 그 날까지 ‘의병’으로 일어섰던 ‘처음 마음’ 그대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고 심경을 밝히고 있다. 과연 유 의원의 ‘나 홀로 거사’는 어떤 결말과 만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