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닥치면 더욱 빛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
▲ 금강산 관광 7주년을 맞은 지난 18일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이 경기도 하남 현대가 선영에 있는 정주영 회장의 묘소에 헌화하고 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 ||
이날 현 회장은 19일 금강산에서 열릴 금강산 관광 7주년 기념식에 참가하기 위해 금강산으로 떠나기 직전 선영을 방문한 것이었다. 지난 8월 남편 정몽헌 회장의 2주기 이후 이례적으로 다시 찾은 이번 참배는 현 회장에게는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북한의 현대 흔들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소신을 지킨 덕에 ‘현정은호’의 현대는 오히려 대북사업에 있어 더욱 공고한 사업 파트너의 위치를 확보했고, 동시에 현 회장은 그룹 대내외적으로 확실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북한도 더 이상 원칙을 벗어난 협상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미국도 쩔쩔매게 만드는 북한과의 담판에서 밀리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협상력을 높게 살 만하다.
하지만 현 회장은 그간 남몰래 마음고생을 겪었다. ‘김윤규 부회장’ 거취 문제로 현대와 북한 지도부의 갈등설이 불거진 뒤 수척해진 모습이다. 김윤규 전 부회장이 귀국할 때 골프를 치다가도 혼자 나가서 텔레비전 중계 뉴스 화면을 쳐다봤다는 얘기가 전해져 올 정도로 그는 올 한 해 김 전 부회장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결과적으로 이 문제는 그의 리더십을 현대 안팎에 알리게 된 두 번째 계기였다. 첫 번째가 시숙부와의 경영권 싸움이었다면 두 번째는 북한과 이를 등에 업은 가신과의 대결이었던 셈이다.
북한당국과의 갈등이 고조되던 지난 9월12일 홈페이지에 올린 ‘국민 여러분께’라는 글에서 현 회장은 “요즘 자주 밤하늘을 보게 됩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아서인가 봅니다. 밤하늘에 점점이 박힌 별을 세어 보기도 하고, 커다란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어 보기도 합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평소에도 현 회장은 회장 취임 이후 가장 힘든 부분은 결정을 내려야 할 때라고 밝힌 바 있다. “정몽헌 회장님이 생전에 현대그룹을 경영하면서 혼자 감당해 내셔야 했던 책임감과 외로움을 이젠 잘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대북사업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정몽헌 회장의 목숨과도 바꾼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 결정의 무게는 컸을 수도 있다.
현 회장은 2003년 10월 취임한 이후 세 번의 중대한 결단을 내렸다. 첫 번째는 취임 직후 시숙부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이었다. 당시 정 명예회장이 ‘현대그룹이 김·현씨네 집안으로 넘어가게 둘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현대그룹 접수에 나서자 현 회장은 ‘국민주 모집을 통한 현대그룹의 국민기업화’를 선언하며 반격에 나섰다. 2004년 3월 현대엘리베이터 주주총회에서 현 회장은 회장 자리를 지키면서 대외적으로 현대그룹의 수장임을 인식시켰다. 당시 현 회장이 취했던 조치들을 종합해보면 전업주부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치밀하고 공격적이었다고 한다.
그룹 내부에서는 이때부터 현 회장의 경영능력을 믿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한 임원은 “배포가 여간 아니다. 본인 스스로도 ‘내가 이런 속배짱이 있는 줄 몰랐다’며 웃어넘긴다”고 전하고 있다. 이 일로 현 회장은 ‘현다르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경영 참여를 결정하고 경영권 분쟁을 버텨낸 것이 ‘속배짱’이었다면 김윤규 부회장의 퇴출은 ‘원칙’이었다.
김 부회장의 퇴출은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의 성격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는 작업이었다. 뒷거래가 아닌 공식 루트를 통해서 대북사업을 투명하게 운영하자는 것이 현 회장의 생각이었다. 이는 대북송금 문제로 궁지에 몰린 정몽헌 전 회장이 끝내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 수도 있다.
이를 현 회장은 ‘국민 여러분께’라는 글에서 “남북한의 경제 협력은 상호간의 정직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겨레의 염원인 통일을 위한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금강산 방문 때 핸드백까지 열어보이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저는 한 가지만 생각하였습니다. 목숨과 맞바꾼 사람도 있는데 이 정도 모욕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 저들도 나의 진정한 뜻을 알아줄 것이다라고 가슴속으로 되뇌었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 대북사업 위기를 무사히 넘긴 현 회장은 이날 기자들과 담소를 나누며 오랜만에 활짝 웃는 모습을 보였다. 금강산=공동취재단 | ||
그렇지만 현 회장은 별다른 수사 없는 정면 승부를 택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글에서 “얼마 전 우리는 남에게 알릴 수 없었던 몸 내부의 종기를 제거하는 커다란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이 커져서 나중에는 팔다리를 잘라 내야하는 불구의 몸이 되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라며 김 전 부회장을 ‘종기’에 비유하는 등 직설적이고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파했다.
그룹 내부에서조차 이 글에 당황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누구의 입을 빌리지 않고 본인이 직접 나서서 김 전 부회장의 퇴진에는 협상의 여지가 없음을 오히려 더 분명하게 밝힌 것. 때문에 “아무리 그래도 그룹에 공이 많은 전문경영인을 종기로 비유한 것은 너무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부터 “협상의 여지를 너무 없애는 것이 아니냐”는 통일부의 불만도 있었다.
그렇지만 현 회장은 같은 글에서 “우리 현대아산과 북한은 오랜 우정을 나눈 친구입니다. 아니 그 이상의 형제입니다. 형제는 천륜(天倫)입니다. 천륜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인데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대북사업이 김윤규와 북한이 아닌 현대와 북한 간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북한은 이 글을 올라온 지 10일 뒤 현대와의 대북사업 재검토라는 초강수로 맞받아쳤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협상이 이어졌던 듯하다. 일주일 넘게 냉각기간이 지나면서 현대그룹은 북한이 지목한 ‘야심가’ 중 한 사람인 최용묵 경영전략팀 사장을 퇴임시키면서 북한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10일 뒤 현 회장은 북한을 방문해 개성관광 완전 정상화라는 결과물을 안고 돌아왔다. 우려가 많았던 만큼 현 회장의 협상능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북한과의 갈등이 지속되는 동안 국민의 관심도 현 회장에게 쏠려 있다 보니 현대그룹과 북한뿐 아니라 이제는 국민적으로 현 회장의 ‘속배짱’이 인정받게 된 셈이다. 원칙에 있어서는 단호하면서도 감성적인 호소를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현 회장의 협상 방식은 이른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현 회장의 협상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주변에서는 그의 경영능력은 DNA에 잠재해 있었다고 평가한다. 평범한 가정주부일 때도 이미 경영자의 자질이 숨어 있었다는 얘기다. 성장과정을 살펴보더라도 이를 알 수 있다.
현 회장은 경기여중·고 시절 이름난 수재였다. 국민학교도 5년만 마치고 중학교에 입학했고, 월반을 거듭해 17세에 이화여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대학교 4학년 때 정몽헌 회장을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아버지 현영원 신한해운 사장이 당시 현대중공업에 수주한 선박 기공식에 대학교 4학년인 현 회장을 데리고 갔다가 정주영 회장의 눈에 띄어 며느리가 되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며느리들의 사회활동을 금하는 현대가로 시집갈 당시 현 회장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다고 한다. 고 정주영 회장도 “집안에 숨겨놓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말을 할 정도로 현 회장은 재원이었다. 대학교 지도교수인 한완상 교수도 현 회장이 어머니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처럼 학교에 남기를 바랐을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고 그가 집안에만 머문 것은 아니었다. 회사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어머니 김 이사장의 도움으로 한국걸스카우트연맹, 대한여학사협회, 대한적십자사 등의 사회단체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현 회장은 경영인으로 변신한 뒤 자신의 버팀목이 정몽헌 전 회장이라고 공언했다. 어려운 결정의 순간마다 정 전 회장을 떠올리곤 한다는 것. “이제 저는 대북사업을 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의 기로에 선 듯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저 혼자서 결정할 수만은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주영 회장님과 정몽헌 회장님의 필생의 사업이셨고, 온 국민이 염원하는 통일의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현 회장은 지난해 비전 선포식에서 2010년까지 매출 20조원으로 재계 10위권 안으로 진입할 것이라는 중장기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올해 7월에는 시스템 통합업체인 현대유앤아이를 설립해 IT업종에 진출하는 한편 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도 착수한 상태다.
아직 현대호의 앞날이 순탄하다는 보장은 없다. 대북사업의 경우 북핵이나 미국과의 관계 등 변수에 취약하고 아직 관광사업이 적자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또 KCC는 아직도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21.4%를 가지고 있어 여전히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남아 있다. 두 번째 파도를 넘어선 듯 보이는 현 회장의 전투력이 어디까지 커나갈지 주목받고 있다.
우종국 기자 woobea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