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지대’ 형성하고 문재인 ‘친노 굴레’에 가두기…차후 유승민 합류 가능성
다만 지난 4·13 총선 당시 거대 야당 승리의 두 주역이었던 안철수·김종인 전 대표가 연대 가능성을 ‘2%’ 열어뒀다는 것만으로도 대권 구도가 출렁일 조짐이다. 여권 친박(친박근혜)계와 야권 친노(친노무현)에서 배제된 ‘소수파의 플랫폼’이 현실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후발주자들의 ‘대권 판돈’이 커져 잭팟을 터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3월 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정치인생을 담은 ‘김종필 증언록’ 출판 기념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4·13 총선 과정에서 여야 주류 세력을 초긴장 상태에 빠트린 ‘안·김’(안철수·김종인)의 연대설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종착지를 만나게 된다. 제3 지대·비패권지대 등 정치적 수사가 난무하지만 핵심은 ‘중간지대’ 형성이다. 여야 주류에 균열을 가하면서 ‘탈이념 중도세력’을 고리로 대선판을 흔들려는 포석으로 분석된다.
양당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4·13 총선 당시 김 전 대표의 통합 제안을 뿌리친 안 전 대표는 지난달 말 김 전 대표 측과 중도개혁 연대 방안을 논의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간의 앙금을 털어낼 수 있는 판의 물꼬가 트였다는 점에서 정치권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둘의 메신저는 ‘김종인 사단’의 핵심인 곽수종 전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연구실 수석연구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곽 전 수석연구원은 현재 김 전 대표의 토크콘서트와 경제포럼 등의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김종대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과 주진형 전 한화증권 대표 등도 ‘김종인 사단’의 핵심 인물이다.
한때 안 전 대표 사람으로 분류됐던 곽 전 수석연구원은 지난 총선을 거치면서 김 전 대표와 가깝게 지냈다. 곽 전 수석연구원은 안 전 대표가 독자신당 창당에 나섰던 2014년 3월 김한길 당시 민주당 대표와 통합 논의 때 배석했던 인물이다. 그는 당시 새정치연합의 총무팀장을 맡았다. 극비리에 진행됐던 민주당과 새정치연합 간 통합 과정에서 ‘마스크’를 쓴 채 다니면서 ‘안철수의 그림자 권력’으로 불리기도 했다.
곽 전 수석연구원은 2012년 대선 전후로 김 전 대표와 한 달에 한 번꼴로 만나면서 경제 관련 얘기를 나눴다. 그 인연으로 지난 2월 ‘김종인 체제’에서 정무특보를 맡았다. 정치권 안팎에선 경제학 박사인 그가 정무특보를 맡자 총선 막판 국민의당과의 연대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더민주 한 관계자는 “그런 추측이 많았다”며 “(통합의) 현실 가능성은 높지 않았지만 3월 초 전격적으로 통합 제안을 하면서 야권 지지층이 결집하는 계기가 됐었다”고 당시 상황을 복기했다. 안 전 대표는 당시 김 전 대표의 통합 제안에 대해 “의도가 의심스럽다”며 단칼에 거절했다.
샛강을 두고 각자도생하던 이들이 10월 정국 들어 부쩍 가까워진 모양새다. 여의도에선 안 전 대표와 김 전 대표가 조만간 독대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 전 대표는 ‘변화’가 전제된다면 누구와도 만날 수 있다고 측근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전 대표도 당내 ‘호남파의 흔들기’가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문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워온 김 전 대표와의 회동을 거부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실익이 크지 않다.
반면 김 전 대표와 더민주 주류와의 간극은 커졌다. 김 전 대표는 10월 12일 문 전 대표의 ‘국민성장론’을 겨냥, “말장난 같은 성장변형론”이라며 친노 세력을 비판했다. 이 와중에 안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은 심상치 않은 교감을 나눴다. 안 전 대표는 같은 날 유 의원이 자신의 ‘창업국가론’을 칭찬한 데 대해 “여러 접점을 갖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문제 해법에 대해 논의를 좀 더 적극적으로 시작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중간지대 플랫폼의 최적 카드인 ‘안철수·김종인·유승민’ 조합이 탄생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그 출발은 ‘안·김’ 연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이들이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공조 행보를 할지는 미지수다. 실제 이들은 가깝고도 먼 사이다. 김 전 대표는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안 전 대표의 대표적인 멘토 중 한 명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안 전 대표가 제도권 정치에 발을 디딘 이후 이들은 화학적 결합은커녕 물리적 연대도 하지 않았다.
2012년 대선 때 김 전 대표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 캠프에서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맡았다. 독자행보에 나섰던 안 전 대표는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와 야권 후보단일화에 나섰지만, 끝내 사퇴했다. 대선 후 안 전 대표는 창당 시도 끝에 제1야당과 손을 맞잡았고, 김 전 대표는 야인 생활을 했다. 4·13 총선을 앞두고 안 전 대표는 ‘탈당→신당 창당’에 나선 반면, 김 전 대표는 제1야당의 전면에서 선거를 진두지휘했다. 4·13 총선 결과는 더민주 제1당, 국민의당 제3당 구축.
예상 밖 승리였다. 연대 없이 생존에 성공한 이들은 불과 반년 만에 공조행보의 고리를 만들었다. 이는 이들이 처한 정치적 상황과 무관치 않다. 당 내부 헤게모니 장악에 실패한 안 전 대표는 유일한 무기인 ‘지지도’까지 흔들리는 상황이다. 김 전 대표는 8·27 전대에서 친문계 지지를 받고 당선된 ‘추미애 체제’를 먼발치에서 바라만 봤다. 여권에선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의 대망론이, 야권에선 문 전 대표의 대세론이 유효하다. 안 전 대표는 제3 지대, 김 전 대표는 대권주자 감별사를 뛰어넘는 ‘플랜 B’가 없는 상황이다.
더민주 범주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반 총장과 문 전 대표를 제외하고 타 후보들은 정권교체 불쏘시개 역할에 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비안철수계 한 인사는 “선거판에서 1년의 시간은 대세론을 얘기하기에 너무도 긴 시간”이라고 안 전 대표를 우회적으로 비토했다.
연일 안철수 띄우기를 통해 ‘문재인 때리기’에 나섰던 새누리당도 국민의당을 향해 “더민주의 충실한 2중대”라고 비판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10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국민의당이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반대, 북한 쌀 지원 주장을 언급하며 “(그 포지션을) 계속하면 친노(친노무현) 세력에 흡수통합당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계개편 등의 승부수 없이 ‘마이웨이’만 고집할 경우 자기 영역에 갇힌 나머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갈라파고스 증후군’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들이 연대의 물꼬를 튼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여기에는 ‘문재인 고립화’ 작전이 깔렸다. 야권 최대 주주인 문 전 대표를 친노 굴레에 가두고 중간지대를 형성한 뒤 대권을 차지하는 전략이다.
시간은 촉박하다. 이미 이들의 경쟁자인 더민주는 10월 중순 호남 탈당 당원들에 대한 진상 파악을 시작했다. 한 당직자는 “일부 광역시도당에서 복당 의사를 가진 당원 파악에 나선 것으로 안다”며 “호남 복원이 최대 관심사”라고 말했다. 더민주 조직적인 세 규합 여부에 따라 ‘안·김’ 연대 움직임이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들 연대의 ‘승수 효과’ 여부다. 세력상으로는 친박과 친노계를 제외한 제 세력의 규합, 지역적으로는 부산·경남(안철수)과 호남(김종인), 세대로는 2040(안철수)과 5060(김종인) 간 조합을 꾀할 수 있다. 여기에 유 의원이 가세할 경우 2040세대와 수도권, 화이트칼라 등 캐스팅보트 계층의 지지가 한층 강화된다. 가시적으로 공조 행보의 승수 효과 등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이를 시작으로 ‘중간지대 플랫폼’이 차기 대권의 핵심 변수 격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안·김’ 연대는 거대 야당 체제의 분열 없이는 불가능하다. 비례대표 신분인 김 전 대표가 탈당할 경우 의원직을 상실, 현실화에 근접할 때까지 움직일 공간이 넓지 않다. 게다가 ‘대통령 후보 안철수-킹메이커 김종인’ 등의 역할 분담도 쉽지 않은 문제다.
탈당에 선을 그은 유 의원까지 가세할 경우 정계개편 조합이 한층 복잡해진다. ‘반대 프레임’만으로는 새판 짜기를 할 명분도 부족하다. 이들의 연대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세론’ 등이 공고할 경우 안 전 대표와 김 전 대표가 정치적 변곡점에서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더민주 비주류 의원은 “김 전 대표 탈당은 상상하기 힘들다”며 “그냥 정치권에서 나오는 얘기”라고 평가 절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리하기에는 가까운 당신, 안철수·김종인 전 대표는 공통점 찾기에 나설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