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설경구 잇는 또 한 명의 ‘대학로 스타’
▲ 지난 11월29일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후 웃는 황정민.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이는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며칠 뒤 열린 제 4회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는 남우조연상과 남우주연상을 연이어 수상한 황정민은 2005년 최고의 배우로 등극했다. 특히 눈길을 끈 대목은 그의 진솔한 수상소감이다. 연예인답지 않은 소탈한 그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감동의 박수갈채를 보낸 것. 화제가 된 세 번의 수상 소감을 통해 배우 황정민이 걸어온 길을 따라가 본다.
“‘무대에서 건방 떨지 말고 항상 솔직하게 하라’고 질책해주셨던 김민기 선생님께 감사드려요”
황정민이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뒤 가장 먼저 언급한 이는 극단 학전의 김민기 대표였다. 황정민은 극단 학전이 배출한 스타 가운데 한 명이다. 황정민을 비롯해 설경구 조승우 장현성 방은진 이두일 오지혜 나윤성 김윤석 등이 극단 학전 출신.
1970년생으로 서울예대 연극과 90학번인 황정민은 영화배우 정재영과 동기로 대학 시절 장진 감독이 회장으로 있던 연극동아리 ‘만남의 시도’에서 활동해왔다. 졸업 이후 황정민이 찾은 곳은 대학로 연극판으로 극단 학전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그의 데뷔작이다. 이때가 95년으로 설경구 방은진 이두일 나윤성 등 94년 초연 멤버들의 열연으로 <지하철 1호선>이 대학로에서 상당히 주목 받던 시절이다. <지하철 1호선> 95년 공연 멤버로 대학로에 입성한 그는 이후 <의형제> <개똥이> <모스키토> 등 학전에서 올린 여러 편의 연극과 뮤지컬에 출연하며 연기의 기본기를 다졌다. 2001년에는 <지하철 1호선> 독일 베를린 투어 공연 멤버로도 활동했다.
초연에서 설경구를 직접 캐스팅했던 김민기 대표는 95년 공연에서 황정민이라는 또 한 명의 걸출한 스타를 발굴해냈다. 당시 학전에서 함께 활동했던 김윤석은 황정민을 처음 만났을 당시를 회상하며 “너무 촌스러워 시골에서 온 줄 알았다”고 얘기한다. 극단 학전 관계자는 “다른 학전 출신 배우들이 한두 작품에만 출연했던 데 반해 황정민은 오랫동안 학전에서 활동하며 기본기를 다졌다”라며 “그만큼 김 대표의 영향을 많이 받아 특별히 수상 소감에서 언급한 것 같다”고 얘기한다.
▲ 영화 <달콤한 인생>의 ‘백 사장’(위),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석중’. | ||
“처음 영화에 입문하게 해준 임순례 감독님 너무 감사합니다”
대학로에서 기본기를 갈고 닦은 황정민을 스크린으로 이끈 이가 바로 임순례 감독이다. 저예산 독립영화로 제작된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출연진은 대부분 무명 배우들로 황정민과 같이 대학로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받은 이들이었다. 저예산 영화의 한계상 인기스타를 캐스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임 감독은 무명의 실력파 배우들을 대거 기용한 것. 이얼 류승범 박해일 황정민 오지혜 등이 <와이키키 브라더스> 출연진으로 지금은 하나같이 인기 스타로 발돋움했다. 황정민은 극단 학전에서의 활약으로 주목받아 같은 학전 출신의 오지혜와 함께 이 영화에 캐스팅됐다.
당시 오디션을 통해 황정민을 캐스팅한 임 감독은 “보석으로 깎이기 전의 거친 원석을 발견한 느낌이었다”라며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없는 ‘원초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배우”라고 황정민을 평가한다.
황정민에게 이 영화가 기회가 된 또 다른 이유는 제작사였던 명필름(현 MK픽쳐스)과의 만남 때문이다. 당시 <공동경비구역 JSA>로 큰 돈을 번 명필름은 수익금을 영화계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저예산 독립영화인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제작을 맡았다. 이 영화로 첫 인연을 맺은 명필름은 황정민에게 꾸준한 기회를 제공했다. 영화
“오정완 대표님, 이유진 이사님, 프로듀서 안수현 PD 고마워요”
어떤 작품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을 때 함께 고생한 감독과 배우, 그리고 스태프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황정민은 이들 외에도 제작사인 영화사 봄 관계자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는 2005년을 황정민의 해로 만든 두 작품 <달콤한 인생>과 <너는 내 운명>이 모두 봄 영화사에서 제작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임 감독과 명필름이 황정민에게 기회를 제공했다면 봄 영화사는 그가 최고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게 도와준 인연이 있다.
▲ 1.<달콤한 인생>으로 지난 7월8일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2.<너는 내 운명>으로 11월29일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3. 12월4일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는 <달콤한 인생>으로 남우조연상, <너는 내 운명>으로 남우주연상을 모두 차지했다. | ||
<바람난 가족>에서 함께 작업했던 임상수 감독은 “황정민은 주어진 캐릭터에 100% 충실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색깔을 완벽히 버릴 줄 아는 배우”라고 칭찬한다. 주어진 캐릭터에 충실한 배우. 이러한 연기자세로 황정민은 ‘순진한 농촌총각’과 ‘극도로 악랄한 건달’이라는 상반된 캐릭터로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모두 차지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달콤한 인생>에서 함께 연기한 이병헌에 대해서도 “병헌씨랑 좀 낯설었는데 이제는 같이 친구 먹었어요”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영화 <달콤한 인생>에 대해 “여러 관객들이 저를 많이 알아 봤죠”라고 특별한 의미를 뒀다. 이는 그가 스타 출신 배우가 아닌 대학로 출신 배우임에 기인한다. 그만큼 오랜 무명 시절을 거친 황정민은 <달콤한 인생>을 통해 좀 더 많은 유명세를 얻었고 이병헌으로 대상화한 스타 출신 배우들과의 친분을 다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황정민의 운명’인 집사람에게 이 상을 바치겠습니다”
세 번의 수상소감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역시 사랑하는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부분이었다. ‘황정민의 운명’ 김미혜씨는 현재 <넌센스 잼보리>에 출연중인 뮤지컬 배우다.
계원예고 동기동창인 두 사람은 지난 99년 뮤지컬 <캣츠>를 함께 공연하며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황정민은 아무도 없는 무대 뒤 대기실에서 색소폰으로 ‘You are so beautiful’을 연주하는 것으로 사랑을 고백했고, 5년여를 연애한 두 사람은 지난 2004년 9월 결혼했다.
평소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많이 알고 나를 가장 많이 이해해주는 사람”이라며 아내를 칭찬하는 황정민은 소문난 애처가다.
황정민이 영화제에서 연이어 수상의 영예를 안은 뒤 이들 부부의 생활도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우선 몰려드는 인터뷰 요청. 특히 여성잡지에서는 이들 부부를 함께 인터뷰하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두 사람 모두 너무 바빠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황정민은 부산에서 영화 촬영 중이고 김씨 역시 뮤지컬 무대에 오르고 있기 때문.
또 한 가지 달라진 부분은 김씨에게 고급 승용차가 생겼다는 점이다. 황정민이 상금으로 받은 돈을 모아 아내에게 승용차를 선물한 것. 정작 황정민 자신은 아직 개인 승용차가 없다.
신민섭 기자 ksim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