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컴퓨터’ 의 정치도박 계산은 끝났다
▲ 재계와 관계에 이어 정계도 ‘평정’할 수 있을까. 진대제 정통부 장관의 행보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사실 그는 지난해 초부터 정치권의 경기고 인맥을 바탕으로 정치권 입성을 꾸준히 모색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때는 진 장관이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후보로 본격 거명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특히 여권 일각에서는 올해 1월 초에 진 장관이 노 대통령을 두 시간 동안이나 독대한 뒤 당에서 자리 잡을 구체적인 계획까지 의견조율이 끝났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진 장관은 경기고-서울대(KS) 출신에 메모리 반도체 개발을 이끈 공로로 ‘삼성 신화’의 주역으로 통했다. 그 뒤 정보통신부에 입성해서도 ‘약체’ 부처를 1등으로 키웠고 장관 평가도 최우수였다. 기업과 정부에서 2관왕을 차지한 진대제 장관. 이제 그는 경기도지사직 도전을 통해 국민들의 심판을 받는 정치적 무대에 서게 됐다. 과연 그가 재계-관계에 이어 정계도 1등으로 섭렵하는 ‘트리플 크라운’의 영예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인지 진단해보았다.
지난 2005년 4월 중순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경기고 출신 국회의원들에게 ‘집합’ 명령을 내렸다. 유인태 열린우리당 의원(경기고 63회·67년 졸업)이 서울시당 위원장에 당선되자 진 장관(66회·70년 졸업)이 축하 모임 저녁식사를 주선한 것이다. 이날 모임에는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 한나라당 박진 의원 등 현역 의원 10여 명이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경기고 출신 한 의원은 이 날 모임에 대해 “진 장관이 직접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초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아마 그때 모임은 유 의원 아래 기수만 초대를 했던 것으로 안다. 1년에 두어 번 경기고 출신 의원들이 모여 단합대회를 한다. 유 의원과 친하고 해서 한번 모이자고 하는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사실 진 장관은 2003년 2월 참여정부에 입각하기 전에는 정치권과 별로 관련이 없었다. 그런데 정통부 장관이 되었을 때 경기고 선배인 유인태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과 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경기고 동문인 A 의원은 이에 대해 “진 장관은 평소 경기고 모임에 자주 참석하지도 않았는데 참여정부에 입각하고 난 다음부터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정치권에 끈이 별로 없던 진 장관은 유 의원을 ‘정치적 대부’로 모시며 조용히 정치권 진입을 노렸던 것 같다. 그 날 ‘63회 이하 의원 모임’은 사실 진 장관이 주도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유 의원과의 친분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자신이 직접 연락을 취하며 모임을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진 장관은 4월 경기고 모임에 이어 5월 초 김근태 복지부 장관과 유인태 의원 등이 참석한 경기고 모임에 또 참석했다. 그 날 모임은 차기 대권주자인 김 장관과의 동석이란 점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5월 16일에는 ‘성년의 날’을 맞아 열린우리당 문희상 당시 의장과 함께 20대 청년 40여 명을 초청, 간담회를 가진 뒤 호프미팅에도 참석했다. 그리고 그 며칠 전에는 정치인들의 단골 메뉴인 독도에도 다녀온 바 있다. 그 즈음 정동채 문화부 장관과 인터넷 게임 ‘카트라이더’ 대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진 장관은 2003년 2월 입각 당시만 해도 정치와는 무관한 듯 보였지만 2년여의 성공적인 장관직 수행을 발판으로 지난해 1월 초부터 여론조사를 통해 ‘대중 정치인’으로 떠오르자 ‘정치적 행보’도 더욱 적극적으로 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진대제 장관(오른쪽)과 노무현 대통령. | ||
경기고 출신의 한 의원은 그에 대해 “상당히 정치지향적이고 야심만만한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의원은 “친구들 사이에서 진 장관은 승부욕이 강하고 야망이 커 정계로 가게 될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았다. 단신임에도 체력이 좋고 한번 마음먹은 것은 꼭 해내고 마는 독한 성격이라 정치인의 조건도 두루 갖추었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의 승부욕은 이해찬 총리가 인정할 만큼 참여정부 장관들 중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이 총리는 “골프 칠 때 가장 깐깐하고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 진대제 장관이고 각료 중 가장 잘 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진 장관을 가까이서 지켜본 반도체 학계의 한 교수는 “한 번 만난 사람은 잘 잊어버리지 않고 반도체 공정의 수치를 줄줄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비상하다. 평소 승부근성이 강해 그를 상대로 내기에서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예측과 전망하기를 좋아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도 많다는 평도 있다.
진 장관의 정치에 대한 ‘갈증’은 그의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아직도 나를 쓸모 있다’고 생각하는 곳이 있다는 것이 아주 좋다. CEO도 잘했다고 보고 공직에 와서도 대과 없이 했다고 본다. 그런데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갈 것이다”라고 밝혀 정치 참여의 뜻을 굳혔음을 짐작케 했다.
하지만 그는 선거라는 거대한 벽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는 “선거라는 절차는 한 번도 안해본 일이라 고민이 더 필요하다. TV 인터뷰에서도 말했는데 선거라는 게이트웨이를 제외하면 기업이든 공직이든 행정이든 잘할 자신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선거를 통해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성공신화에 많은 생채기가 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그가 장관 교체 대상에 올랐지만 아직 정치입문을 위한 공식 표명을 하지 않은 것도 선거란 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외에 또 다른 이유도 거론되고 있다. 먼저 일각에서는 최근 그가 한 외국계 펀드 회사로부터 최상의 조건으로 CEO 자리를 제의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정계 진출도 망설이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 경우 장관을 지낸 뒤 곧바로 외국 회사로 가는 전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도의적으로 옳지 않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두 번째는 가족들의 정계진출 반대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진 장관의 한 측근은 이에 대해 “정치에 나선다면 장남의 국적문제 등이 다시 불거질 것을 크게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또한 선거 과정에서 제3의 돌발 변수가 생겨 가족들이 받을 상처에 대해서도 염려를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가 아직 서울시장 후보에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에 정계진출 발표를 미루며 기회를 보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사실 그는 지난해 초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서울시장 후보로 더 알려졌지만 그 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서울시장 후보 프리미엄을 뺏긴 셈이 됐다.
아직도 진 장관은 내심 서울시장 후보로 정리되길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로 그의 측근인 임형찬 정책보좌관이 최근 “(진 장관이) 출마를 결단한다면 출마 지역은 지금의 언론 보도와는 다를 수 있다”고 말한 대목에서 진 장관측의 심중을 읽을 수 있다. 일각에선 진 장관이 그동안 불출마 의지를 강하게 천명해오다가 갑자기 정계 진출을 선택한 것이나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놓고 강 전 장관과 경쟁하는 듯한 모양새를 갖추게 된 것도 그의 치밀한 ‘주가 올리기’ 전략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한 진 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 ||
그런데 진 장관이 정치권에 진출한다고 해도 성공할 수 있을까. 먼저 진 장관은 각종 장관 평가에서 유일하게 ‘수퍼리더형’으로 평가받을 만큼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진 장관은 한 언론사가 실시한 평가에서 전략적 사고(7.5), 문제의식(7.5), 창의성(7.4) 분야에서 고루 높은 점수를 받았다. 또한 치밀성(7.4), 신속성(7.3)의 점수도 좋았다. 이는 기업 경영자들이 지녀야 할 덕목과도 부합하기 때문에 그가 정확히 CEO형 장관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견수렴(4.7), 겸손(5.0), 포용력(4.4) 항목에선 줄줄이 낙제점을 기록해 조직의 인화를 이끌어내는 화합형 리더십은 부족한 것으로 평가됐다고 한다.
그래서 부하들 사이에선 “너무 차다는 게 그의 단점”이라는 말도 나온다고 한다. 정통부의 한 간부도 “진 장관은 자신의 능력을 깃발 삼아 몰아붙이는 데는 능하지만 따뜻한 배려로 조직의 사기를 올리는 것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진 장관은 이런 지적을 의식한 듯 최근 싸이월드 팬클럽 사이트에 띄운 글에서 “업무에 관해서는 목표를 설정하거나 실천하는 데 양보가 없고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가차없이 야단을 치니 그런 얘기를 들을 만한 것 같다”고 해명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차갑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나를 어느 정도 알게 되면 한결같이 ‘뜻밖이다. 적어도 같이 일하거나 지내기에 허물없는 성격이네’라며 입을 모은다. 나는 천성적으로 권위적인 것하고는 거리가 멀고 특히 업무 외적인 것에 대해서는 허물없는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진 장관은 기업과 정부에서 각각 최고봉에 올랐고 이제 정치권으로 날갯짓을 하려 한다. 그런 그가 정치권의 ‘러브콜’을 계속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경기고-서울대-스탠포드대의 ‘좋은 머리’에 “한 달의 절반은 하늘에 떠 있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고 다닐 만큼의 타고난 부지런함을 동시에 지녔다는 장점 때문이다. 진대제 장관은 과연 이번 지방선거에서 ‘블루칩’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까. 5·31 선거를 앞두고 흥미진진한 관전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