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이 아니고 ‘박한’ 이라니까요”
▲ 갓난 아들 ‘길’을 돌보고 있는 한명숙 지명자의 남편 박성준 교수. | ||
당시 한 지명자는 한 차례도 빠짐없이 매주 편지를 보냈고 매달 남편을 면회했다. 박 교수 역시 빠짐없이 답장을 보냈다. 박 교수는 “아내는 여리디 여린 여자이지만 그 긴 세월을 정성껏 옥바라지를 한 강인한 여자이자 순정의 여인이다. 그가 내 삶의 존재의 이유다”라고 말했다.
그러던 한 지명자의 ‘사랑의 편지’가 긴 세월 끊긴 적이 있다. 그가 ‘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으로 투옥됐기 때문이었다. 박 교수는 “아무 연락 없이 편지가 끊기고 면회도 오지 않아 아내가 죽은 줄 알았다”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자신이 참혹한 고문과 감옥생활을 겪은 이후 한 지명자는 정치범인 남편의 구명을 위해서 팔방으로 뛰어다녔다. 정부와 재야 인사들을 쫓아다니며 석방운동을 했지만 별 소득이 없자 지난 81년 겨울 그는 “남편과 고통을 나누겠다”며 단식에 들어갔다. 하늘도 감동했는지 단식 5일 만에 남편은 그해 성탄절 특사로 석방됐다. 스물일곱 청년의 모습으로 ‘새댁 한명숙’의 곁을 떠났던 남편은 마흔한 살 중년의 모습으로 서른일곱의 ‘아낙 한명숙’에게 돌아왔다.
뒤늦은 신혼을 다시 시작한 부부는 지난 85년 첫아이를 낳았다. 아들이었다. 이때 한 지명자의 나이가 마흔한 살. 그는 이 아들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아들의 이름은 ‘길’, 진보 여성운동가답게 한 지명자는 아들의 성을 남편과 자신의 성을 하나씩 따서 ‘박한’으로 지었다. 그러나 출생신고를 하며 아이의 이름을 ‘박한 길’로 썼다가 동사무소가 발칵 뒤집혔다. 결국 출생신고서에는 아들의 이름을 ‘박 한길’로 썼지만 한 지명자는 아들을 여전히 ‘길’이라고 부른다.
김지훈 기자 rapier@ilyo.co.kr